관해정 은행나무
성선경
지난 가을
마음이 많이 야위었습니다
스산하던 생각들을 다 가지치기를 한 까닭이지요
이젠 바다도 한참 멀어져
관해(觀海)라는 말도 머쓱한 언덕배기에서
참 오래도 머물렀다는 생각을 하며
허튼 마음을 비운 까닭이지요
오가는 길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오고가는 것도 다 부질없는 바람이라
팔랑이는 잎들을 다 떨군 까닭이지요
지난 가을 나는
몸을 한껏 낮추었습니다
바다를 가린 빌딩숲 사이
바다보다 빈 하늘이 더 가까워
관해(觀海)라는 이름이 잊힌 언덕배기에서
참 오래 서 있었다는 생각을 하며
발돋움 하던 그리움들을 모두 거둔 까닭이지요
잎을 다시 피우는 일도
잎을 다시 지우는 일도
다 부질없다 여긴 까닭이지요
지난 가을 나는
바다를 꿰뚫어 본다는 말도 다 잊었습니다
마음 닿지 않는 눈길을 모두 거둔 까닭이지요.
강림통술1호점
성선경
뭔가 잘 풀리지 않는다 싶을 때
갑남과 을녀가 자! 여기
한 상 받아라, 차려놓고
잔을 부딪치는 곳
일이 너무 쉽게 술술 넘어간다 싶을 때
장삼과 이사가 자! 여기
한 상 받아라, 차려놓고
잔을 부딪치는 곳
너무 바싹 마른 날이거나
너무 축축 젖은 날이거나
뭔가 매듭이 엉켰다 싶을 때
갑남과 을녀가
장삼과 이사가
자! 여기 한 상 받아라, 차려놓고
잔을 부딪치는 곳
여기 마산이라는 항구에서
불빛 흐린 통술집에서
갑남과 을녀가 장삼과 이사가
꽉 찬 허기 텅 빈 충만
자! 여기 한 상 받아라
잔을 부딪치는 곳.
[약력]
성선경(成善慶)
*1960년 경남 창녕 출생
*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바둑론」 당선
* 시집 『햇빛거울장난』『네가 청둥오리였을 때 나는 무엇이었을까』외
* 고산문학대상, 산해원문화상, 경남문학상, 마산시문화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