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소진님의 자전거 도둑을 읽고

[예누위]

 김 소진의 자전거 도둑을 읽자마자 먼저 영화 “자전거 도둑”을 봐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렇지 않고는 소설속의 주인공 나와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렵게 찾아낸 매체를 통해 1시간 27분 상영시간의 낡은 흑백영화 이탈리아 작품 “자전거 도둑”을 운 좋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 자전거 도둑을 통해 소설 “자전거 도둑” 작가가 연결시킨 함축적인 주제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현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소설 속 줄거리는 주인공 “나”의 자전거를 몰래 타는 자전거 도둑 서미혜를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자전거를 통해 가까워진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영화 “자전거 도둑”을 매개체로 나와 서미혜 두 사람의 과거 어릴 적 상처를 서술한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주요한 모티브로 “자전거 도둑” 영화를 삽입하므로 써 영화 속의 상황과 주인공 나와 서미혜의 과거 아픈 기억을 다른 듯, 같이, 기억의 상처를 공유하며 소설에서 영상으로 과거를 형상화 시킨다.

 주인공인 나는 브루노를 통해 어린 시절 혹부리 영감에게 수모를 당한 아버지를 떠올리고 서미혜는 영화 속 자전거 도둑 젊은 청년이 범행이 발각되자 간질을 일으키는 장면을 보며 간질 환자였던 친오빠를 동일시한다. 하지만 주인공 나는 어릴 적 혹부리 영감에게 받았던 아버지의 수모를 되갚음으로써 혹부리영감을 화병이란 죽음으로 응징하지만 자전거 도둑 서미혜는 성추행한 오빠를 철저하게 외면해서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인공 나는 강자인 혹부리 영감을 통해 그 당시 통용되었던 부조리에 당당하게 맞섬으로써 자신의 과거에서 탈피, 현재도 부조리를 고발하는 신문기자로 소소한 일상을 찾은 듯 보이지만 약자인 간질 환자인 오빠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의 현실은 또 다른 상반된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더구나 휠체어를 의지하고 햇볕을 쬐어야만 살 수 있는 오빠에 대한 죄의식을 털어내지 못한 채 자전거를 훔치며 햇살을 가르고 다니는 서미혜에게 있어 자전거를 훔치는 행위는 일종의 과거에 대한 도피가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주인공 나는 상처를 이겨낸 것처럼 보이지만 어릴 적 혹부리 영감의 종용으로 자신의 뺨을 때리는 아버지의 고인 눈물을 보면서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 사람이다. 서미혜 역시 자전거를 훔치며 과거를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면 쓸수록 벗어날 수 없는 과거의 굴레에 갇힌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과거를 이겨낸 승자인 나와 극복하지 못한 패자처럼 보이는 서미혜를 묘하게 대비하면서 나는 혹부리 영감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모습으로 미혜는 간질병 환자인 오빠에 대한 피해자와 가해자로써 두 사람에게 면죄부를 쥐어준다.

 하지만 얼마 후 자전거 도둑 영화를 보면서 나는 혹부리 영감에 대한 기억을 스스로 속죄하듯 고백하지만 미혜의 고백에 대해서는 죄 지은 자의 고해성사처럼 불편함을 느끼며 도망치듯이 빠져나온다. 그래서인지 달포가 지난 어느 날 우연히 서미혜가 또 다른 자전거를 훔쳐 타는 마지막 장면은 자신을 속죄시켜 줄 구원자를 찾는 듯 애잔한 마음이 엿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자신을 지탱할 수 있도록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아줄을 기다리는 간절함처럼 말이다.

 영화 “자전거 도둑”의 엔딩 장면에서도 자전거를 도둑맞은 아버지 안토니오가 결국 본인 역시 자전거를 훔친 도둑으로 붙잡히지만 아들 브루노로 인해 용서를 받고 어린 아들 손을 꼭 잡은 채 많은 인파속에 사라지는 모습 역시 아들을 통해 삶의 재 의지를 부여받는 간절한 구원자의 모습이었다. 비록 영화 속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초라한 모습과 자전거를 찾을 수 없어 좌절 할지라도 꿈꾸던 부(富)의 상실감은 다른 삶의 영속성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모습이기도 했다.

 솔직히 영화도 소설도 어떠한 상상을 하던 열린 결말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우리의 과거가 그랬고 지금도 행해지는 불편한 진실은 시대와 공간 구분 없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역(逆)으로 생각해보면 주인공인 나와 서미혜가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는 순간 역시 기억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그 역시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어쩌면 스스로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야말로 두 손을 꼭 잡고 석양아래 인파속으로 사라지는 부자(父子)처럼 리얼리즘의 길은 항상 그 자리에 열려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작가의 면면을 살펴보자. 실향민 출신의 아버지 아래 태어난 김 소진은 작품에서 분단의 현실 속에서 잡초처럼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민초의 삶을 잘 녹여내고 있다. 비교적 도시 주변부 서민들의 삶을 그려내며 해학과 인간미를 다룬 주제의 작품은 1963년 출생 작가들을 일컫는 이른바 '63세대' 작가군의 한 사람으로 1990년대의 탁월한 사실주의 작가로 꼽혔다. 1988년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1990~95년 한겨레신문사 기자를 지냈으며, 1991년 단편 〈쥐잡기〉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 주제를 그는 '아버지'라는 인물을 통해 형상화했다. 이 땅의 분단현실과 민중들의 삶을 조망한 밑자리에 그의 '아버지'는 항상 꿈틀대는 혼으로 살아 있었다. 이 '아버지'는 과거 한국문학에 빈번하게 보였던 부정하고 극복해야 할 군주나 기억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로서 존재했다. 아버지를 기반으로 한 그의 사실주의는 '활달한 토속어를 구사하는 이야기꾼'이라는 그 나름의 문체를 갖도록 했는데 이는 그의 유년 체험에서 힘입은 것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달동네 사람들과 더불어 성장하며 겪은 문학적 원체험이 그의 소설을 형상화시켰다고 볼 수 있겠다.

 아버지 세대가 통과해온 전쟁의 폐허와 산업화 속의 1960, 70년대, 그리고 변혁의 1980년대와 환멸의 1990년대가 고스란히 그의 소설적 관심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배경과 사실주의 정신이 결합된 결과였다. 여기에 보태어 능란한 이야기 솜씨와 단단한 서사구조, 겨레의 정서에 밀착된 능청과 해학은 그를 한국 사실주의 문학의 본령을 이어가는 작가로 떠오르게 했다. 1995년부터 전업 작가로 나섰고, 1996년 문화체육부가 주관하는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다음의 백과사전 참고)

참고로 영화 “자전거 도둑” 줄거리를 간략하게 적어둔다.

1948년 이탈리아 감독 비토리오 데시 카

 2차 대전 직후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의 거리. 오랫동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던 안토니오는 직업소개소를 통해 벽보 붙이는 일거리를 얻는다. 그런데 일하기 위해서는 자전거가 필요했고 이 사실을 안 아내 마리아는 남편의 직업을 위해 자신이 소중하게 간수했던 침대 시트를 전당포에 잡히고 맡겨 둔 자전거를 찾는다. 다시 직업을 갖게 된 안토니오와 아들 브르노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함께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지만 안토니오가 벽보를 붙이는 사이 젊은 청년이 자전거를 훔쳐 타고 도망친다. 도둑을 쫓다가 놓치고만 안토니오는 절망감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자전거를 도둑맞은 안토니오는 다시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다음 날부터 안토니오 부자는 배고픔도 잊은 채 자전거를 찾으러 로마 거리를 배회한다. 경찰에 신고를 하고 로마의 자전거를 분해해서 파는 시장까지 뒤져보지만 찾지 못하다 우연히 소나기를 피하던 중 자전거를 훔친 도둑을 발견하지만 또 놓치고 만다. 하지만 도둑을 아는 노인을 교회까지 쫓아가고 노인 역시 놓친 안토니오는 홧김에 아들에게 손찌검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자전거에 대한 미련을 잠시 접고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하며 아버지 안토니오는 아들 브루노에게 말한다. “까짓것 전부 잊어버리고 오늘만큼은 신경 쓰지 말자. 다 수가 있을 거야. 죽는 것만 빼고 말이야” 어쩌면 이 대사 한 구절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나타낸 명대사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지만 운명은 마음을 비우고 식당을 나선 그 순간 또다시 자전거 도둑을 발견하고 집까지 쫓아가서 도둑을 잡지만 증거물인 안토니오의 자전거는 없다. 오히려 간질병 환자인 도둑의 발작으로 동네 주민들에게 도망치듯 쫓겨나고 만다. 자전거를 찾을 수 없게 된 안토니오는 허탈한 마음으로 거리에 앉아 우연히 사이클 경기를 보게 되고 자신의 생존 수단인 수많은 자전거가 세워진 모습을 바라보다 그 역시 자전거를 훔치게 된다. 자전거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현실. 하지만 안토니오는 그 자리에서 잡히고 온갖 멸시와 모욕을 받다가 아들 브루노로 인해 풀려나게 된다. 그리고 해가 지는 로마 거리를 분노와 절망과 우울한 표정의 안토니오 부자는 두 손을 꼭 잡은 채 인파속으로 사라진다.

**** 예누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