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꽃게 몇 마리 샀는데 상해서 몽땅 다 버렸습니다. 분명히 살아움직이는 것을 보고 샀고만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어린놈의 시키들이 나를 속인 걸까요? 이제는 늙어 내 촉이 죽은 걸까요? 국가 폭력은 어떻게 ‘정의’라는 이름을 훔치는가? <화려한 휴가 2>입니다. 띵동! "단결! 하시는 일은 잘 되시죠... (광주는 어쩐 일인가?)" 예비역 대령인 박흥수(안성기)는 특전사 출신으로 극중 공수부대 김상원 대위가 가끔 방문해서 '선배님'이라 부르며 존대합니다.
-
최순기 준장과는 서로 친구 같은 관계라는 점을 볼 때, 동기인 것으로 보이며, 본인은 대령으로 예편하고 친구는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한 것 같습니다. 김 대위의 방문 장면에서 스스로를 '실패한 군인'이라고 한다거나, 전 두환의 행보를 우려하는 점을 보아, 부마항쟁 혹은 12.12 군사 반란의 영향으로 군복을 벗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민우가 근무하는 택시회사 사장이고, 무남독녀 신애를 끔찍이 사랑하는 아버지입니다.
-
나는 이번 <화휴>를 보면서 예비역 대령 박흥수와 무등산 타산(박흥숙)이 왜 오버랩되는지 모를 일입니다. 무등산 타잔을 아시나요? 아기다리고기다리던테이트를 나가는데 무장 군인들이 시내에 쫙 깔렸습니다. 나는 이들이 하던 <폭동진압 16개 동작>을 1년 동안 하루 4시간씩 뺑이 치면서 했다는 것 아닙니까? 영화관에 채두탄이 떨어지자 더 이상 영화 관람이 어렵게 됐습니다. 일행이 우르르 밖으로 나갔고 신애(이요원)가 계엄군에 쫓겨 막다른 골목에 처했습니다. 하마터면 신애가 봉변을 당할 뻔했는데 민우가 큰일 했습니다.
-
군종 속에서 진우를 용케도 찾아 민우/신애가 무사귀환을 합니다. "저 대학생 아니에요... 잘못했어요(잘못을 했으면 맞아야지 C 발 놈아!)" "내가 보기엔 군인들이 나라를 아주 먹어버릴 모양이야(그럼 이게 오늘로 끝날 일이 아니란 말이에요?)(김 신부/민우)" "신애 씨! 밖에 군인들이 쫙 깔렸어요... 당분간 출퇴근은 제가 시켜드릴게요... 택시 비는 걱정 마시라(상경)" "너희들까지 이러면 어쩌려고 그러냐?... 철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어서 들어가!... 지금 나가면 개죽음밖에 안돼!(선생님)"
-
"비켜주십시오, 선생님. 상필이가 죽었습니다(진우)" 미래의 법관을 꿈꾸는 고3 진우는 절친 상필이가 아무런 이유 없이 진압군에게 맞아죽은 사건을 계기로 전교생을 이끌고 시위대에 가담하여 누구보다 앞장서서 시위합니다. 결국 5월 21일 도청 앞 집단 발포 때 철수한다며 페이크를 치고, 총질을 해댄 진압군의 총을 맞고 숨을 거둔 진우는 광주 대동고등학교의 전영진을 모티브로 한 것 같습니다.
-
갑작스럽게 투입된 공수부대가 무고한 시민들을 무차별 폭행하고 연행하는 사건이 벌어지며 갈등이 생겼고, 민우의 소중한 동생 진우(이준기)마저 계엄군의 총탄에 목숨을 잃게 되면서 문제가 심화됩니다. 평범한 시민이었던 민우는 동생의 죽음 앞에 절규하며, 퇴역 장교 출신 흥수(안성기)를 중심으로 결성된 시민 군에 합류해 전남도청을 사수하기 위한 최후의 항전을 준비합니다. 사랑하는 여자 신애(이요원)를 뒤로한 채 그들은 가족과 이웃을 지키기 위해 무기고를 열고 총을 듭니다.
-
이 무렵(5.21) 우리 학교에서도 광주로 시위 원정을 가자는 쪽과 반대하는 두 패가 갈라졌어요. "전두환은 물러가라! 계엄군은 물러가라!" "여러분 금일 저녁까지 계엄군을 물릴 테니 해산하십시오!" "아따, 군인들 겁도 줄 겸, 앞으로 10보만 전진합시다. 하나. 둘. 셋..." 애국가를 울려 나오고 계엄군의 총구가 시민들을 향해 발사되었습니다. 탕! 탕! 탕! 탕! 탕! 탕!
-
<<딸아이가 인 스타에 5.18을 언급한 것을 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5·18 당시 북한군이 개입했고, 全 통은 관여하지 않았으며, 헬기 사격이나 폭력진압이 없었다는 내용이 아직도 돌아다니는 모양입니다. 북한군 개입설은 ‘교도소 습격 설’을 두고 한 말 같습니다. 헬기 사격은 이미 증거가 나왔고, 전 두환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특전 사령관 정호영이 발포 명령을 했나? 79.12.12사태가 일어난 후 최 규하를 권한 대행으로 앉혀놓고 전 두환이 국보위에 있었던 것은 전 국민이 아는 사실입니다.
-
1980년 3월 4일-3월 6일 수도경비 사령부에서는 '제1차 충정 회의'에서 군의 투입을 요하는 사태 발생 시 강경한 응징 조치가 필요하다고 내려졌으며, 이미 80년 초에 학생 시위가 가열될 것을 대비해 전국 군부대에 ‘충정 훈련’이 강도 높게 실시됐고, 5월 10일부터 2군 사령부에서는 광주·대전 등에 제7공수여단을 배치하는 방안을 의논했습니다. 5월 14일부터 제31사단은 광주 지역의 주요 보안 목표를 점거하기 시작했으며, 5월 15일 제7공수여단은 광주·대전으로 이동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
내가 80년 당시에는 담양에서 고1 봄 학기를 하고 있었고 84년에는 필동에 있는 충정 부대에 근무를 했는데 직속상관이 신 윤희 대령이었습니다. 신 대령은 신군부개국공신입니다. 우리 임무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APC와 함께하는 폭동진압이었습니다. 무조건 하루 4시간은 실전처럼 의무교육을 했습니다. 그때 우리 헌병대에서 실행했던 연무선 16개 동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
1. 차렷 총-2. 높이 들어 총-3. 허리에 총-4. 뒤로 돌아-5.3연속 앞으로 이동-6. 뒤로 돌아-7.3연속 뒤로 이동-8. 찔러-9. 밀어-10. 좌우로 돌아-11.3연속 비켜 쳐-12. 뒤로 돌아-13. 밀고 쳐-14. 차렷 총-15. 좌로 돌아-16. 차렷 총(쉬어)
-
광주 시내에서의 시위 진압에 투입된 한 공수부대원은 시위 진압이 해산 위주가 아닌 체포 위주였기 때문에 과격 진압이 발생했다고 진술했는데 실제로 계엄사령부와 2군 사령부 등 체포 위주로 진압하라는 상부의 지시는 공수부대 원들의 과격 진압을 부채질했습니다. 광주에서 시위가 계속되자 계엄 부사령관인 육군 참모차장 황 영시는 강력하게 진압하도록 지시했습니다. 5월 18시 23시 부로 2군 사령관의 강조 사항이 각 공수부대에 지시됐고
-
이 지시는 ‘공수부대 시내 출동, 융통성 있게 운영’하며, ‘전 가용 작전부대 투입’하여 ‘주모자 체포‘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날 내려진 지시는 ’포고령 위반자는 가용 수단 동원 엄중 처리‘하며 ’소요 자는 최후의 1인까지 추격하여 타격 및 체포‘토록 지시했습니다. 이 같은 지침으로 인해 현장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은 더욱 과격한 진압에 나서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
계엄사는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김대중 연행에 항의하는 광주 시민들의 시위를 '불순분자'나 '고정간첩들의 책동으로 몰아갔습니다. 5월 21일 계엄 사령관 이 희성은 담화문을 발표합니다. 이 담화문에서 "오늘의 엄청난 사태로 확산된 것은 상당수의 타 지역 불순 인물 및 고정 간첩들이 사태를 극한적인 상태로 유도하기 위하여 여러분의 고장에 잠입, 터무니없는 악성 유언비어의 유포와 공공시설 파괴 방화, 장비 및 재산 약탈 행위 등을 통하여 계획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
-
선동하고 난동 행위를 선도한 데 기인된 것이다"라고 규정했습니다. 이 같은 요인들 때문에 현장에서 시위 진압에 나섰던 공수부대원들은 시위를 '불순분자'의 소행 또는 시위대를 '적'으로 규정했고,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결과적으로 공수부대원들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폭력적이고 가혹한 진압을 하는 배경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타격 분대 체포 조(저격 조)라는 것이 있는데 “나는 타격 분대 체포조로서 명에 의거 특정 인물 체포, 이상입니다”
-
수경사(수방사 전신)는 차 지철 때부터 정권의 1중대이었습니다. 내가 신병으로 갔을 때 병에서 중사로 말뚝을 박은 고 참 중에서는 중앙청 앞에서 단 측정을 직접 했다는 사람도 있었고, 여의도 광장에서 수경사 기동대가 교육을 받은 것을 제가 직접 목격했습니다. 물론 경찰서 무기고가 털렸다는 이야기나 광주교도소 탈옥시도를 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당시는 내가 직접 보지 않았으니, 이것이 유언비어인지 아닌지 사실 확인을 할 수 없었는데,
-
훗날 여러 정황을 볼 때 광주 교도소 습격은 불가능합니다. 광주교도소는 31사단에서 경비를 서다가 나중에 공수부대가 직접 경계근무를 섰고 당시 교도소장의 증언에 따르면 교도소 근처에 단 한 구의 시체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무자비하게 죽고 터지다 보니 아차, 이러다간 개죽음밖에 안 되겠다 싶어 자구책으로 동네 파출소 무기고를 털고 결국 군납업체인 광천 동아시아 자동차에까지 가서 장갑차 끌어오고 도청에서 사격전을 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었을 것입니다.
-
“왜 쏘았지 총, 왜 찔렀지 칼, 트럭에 싣고서 어데 갔지” 당시 계엄군이 사용한 총은 M16이고 31사단은 향토 사단이기 때문에 M1이었습니다. 31사단장이었던 정 웅 소장이 주동자란 신군부의 주장은 엉성한 주장입니다. 저는 M16으로 폭동진압을 할 때 직접 대검을 장착했습니다. since 2020>>
-
"왜 쏘았지(총) 왜 찔렀지(칼) 트럭에 실고서 어디 갔지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 개 피발 서린다 5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쏟네 (피피피피피!)"
2.
국가폭력은 언제 시작되는가? 총을 쏘는 순간인가, 아니면 시민을 먼저 ‘불순분자’와 ‘적’으로 호명하는 순간인가? 그리고 명령에 복종한 개인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꽃게 몇 마리를 샀는데 몽땅 상해서 버렸습니다. 분명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고 샀는데 집에 와보니 영 딴판입니다. 어린 장사꾼들이 나를 속인 것인지, 아니면 사람 보는 촉이 죽은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별것 아닌 꽃게 사건이 <화려한 휴가>와 연결됩니다. 사람은 대개 보이는 것을 믿습니다.
-
살아 움직이면 싱싱하다고 믿고, 군복을 입으면 국민을 보호할 군인이라고 믿으며, 국가가 ‘질서’와 ‘정의’를 말하면 적어도 그것이 시민을 향한 총구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겉모습과 실체가 갈라질 때 발생합니다. 국가폭력의 가장 위험한 순간도 국가가 폭력을 사용한다는 사실 자체에만 있지 않습니다. 폭력을 ‘정의’라고 부르기 시작하는 순간에 있습니다.
1. 실패한 군인 박흥수와 ‘성공한 군인’의 역설
『화려한 휴가』에서 박흥수는 묘한 인물입니다. 특전사 출신 예비역 대령이지만 자신을 ‘실패한 군인’처럼 말합니다. 반대로 군 내부에 남아 진급하고 권력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세속적 기준에서는 성공한 군인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질문합니다. 군인의 성공은 진급인가, 군인의 본분을 지키는 것인가? 군대의 존재 이유가 국민과 헌정질서를 지키는 데 있다면, 시민에게 총을 겨누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군인의 본질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
여기에서 칸트의 도덕철학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칸트에게 인간은 어떤 목적을 위한 단순한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국가폭력이 시작되면 시민은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됩니다. “몇 명을 때려잡아서라도 질서를 잡아라.” 이 순간 인간의 존엄은 목적에서 도구로 전락합니다. 그래서 박흥수의 ‘실패’는 역설적입니다. 권력의 관점에서는 실패한 군인이지만 인간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군인의 윤리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2. 폭력은 총보다 먼저 언어에서 시작된다
『화려한 휴가』에서 가장 무서운 장면은 총격 이전에 이미 시작됩니다. 시민들은 어느 순간부터 ‘시민’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불립니다.불순분자. 폭도. 주모자. 적. 이 변화가 결정적입니다.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를 분석하면서 반복해서 지적했던 문제도 이것입니다. 폭력은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을 죽이는 데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먼저 사람의 이름을 바꿉니다. 옆집 청년이 ‘폭도’가 되고, 학생이 ‘불순분자’가 되며, 정치적 반대자가 ‘국가의 적’이 됩니다.
-
그때부터 폭력은 이상하게 쉬워집니다. 사람을 때리는 것은 양심에 걸리지만 ‘적을 제압하는 것’은 임무가 되기 때문입니다. 1980년 계엄당국도 광주 시위를 외부 불순세력이나 간첩의 책동과 연결하는 담론을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법원의 확정판결은 5·18 당시 북한군·공작원 등이 투입돼 시위를 격화시켰다는 주장을 허위로 판단했고, 헬기 사격이 없었다거나 시민의 선제무장 때문에 계엄군이 자위권 차원에서 총기를 사용했다는 주장 역시 허위라고 판단했습니다.
-
그래서 국가폭력의 첫 단계는 총이 아니라 <호명>입니다. “저 사람은 우리와 같은 시민이 아니다.” 그 문장이 등장하는 순간 폭력을 막아주던 윤리적 장벽 하나가 무너집니다.
3. 명령은 개인의 양심을 면제해주는가?
여기에서 개인적인 군 경험이 글에 강한 무게를 줍니다. 폭동진압 동작을 반복해서 훈련했다는 기억입니다.
차렷 총.
높이 들어 총.
허리에 총.
찔러.
밀어.
비켜 쳐.하루 네 시간씩 반복하면 동작은 생각보다 먼저 움직입니다. 이것이 군사훈련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전투 상황에서 병사가 매번 철학적 숙고를 하고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도록 훈련합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윤리적 문제가 생깁니다. 몸이 명령에 익숙해질수록 양심의 판단은 언제 개입해야 하는가? 아렌트가 아이히만 재판에서 제기한 ‘악의 평범성’은 악인이 평범하다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
“명령이었습니다.”
“규정대로 했습니다.”
“제가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하는 상태입니다. 악은 때때로 증오에서보다 사유의 중단에서 더 쉽게 발생합니다. 군인은 명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명령이 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국가가 존재한다고 해서 국가의 모든 행동이 정의가 아니듯, 상관이 명령했다고 해서 모든 명령이 윤리적으로 정당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민주국가의 군인은 두 종류의 충성을 구별해야 합니다. 권력자에 대한 충성과 헌정질서에 대한 충성이 충돌할 때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가 군인의 윤리를 결정합니다.
4. 푸코 ― 폭력은 몸을 먼저 길들인다
사용자가 적은 16개 진압 동작은 푸코의 『감시와 처벌』을 떠올리게 합니다. 푸코는 근대 권력이 사람의 생각만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훈련한다고 보았습니다. 발을 맞추고, 줄을 맞추고, 명령에 동시에 움직이고, 같은 동작을 반복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몸을 푸코는 ‘유순한 몸(docile body)’이라고 불렀습니다. 군대 자체를 악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훈련된 몸이 어떤 정치적 목적에 사용되는가입니다.
-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시민을 지키기 위해 훈련된 몸이 시민을 제압하는 데 투입되는 순간 군사적 기술과 정치적 폭력의 경계가 무너집니다. 그래서 광주를 단순히 “군인들이 왜 그렇게 잔인했을까?”라는 심리 문제로만 설명해서는 부족합니다. 개인의 잔혹성 이전에, 명령체계가 있었고, 훈련체계가 있었으며, 시민을 적으로 인식하도록 만드는 정보와 언어가 있었습니다.이 구조를 보지 않고 병사 개인만 악마화하면 국가폭력이 어떻게 재생산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5. 그러나 구조가 개인의 책임을 없애지는 않는다
반대쪽 위험도 있습니다. “명령체계가 문제였으니 병사들은 아무 책임이 없다.” 이렇게 결론 내리는 것도 곤란합니다. 구조와 개인 책임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상부는 더 큰 책임을 집니다. 현장을 설계하고 명령하고 허용한 사람은 수행한 사람보다 훨씬 큰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직접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에게도 최소한의 도덕적 선택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어려운 이유입니다.
-
상명하복 체계에서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전한 곳에 앉아 당시의 병사 한 사람 한 사람을 쉽게 재판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명령받았다”는 한 문장으로 인간의 책임을 완전히 지울 수도 없습니다. 뉘른베르크 이후 현대 윤리와 국제법이 계속 고민해온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복종과 책임 사이에는 언제나 긴장이 존재합니다.
6. 시민군은 언제 만들어졌는가?
여기에서 『화려한 휴가』의 가장 중요한 전환이 발생합니다. 처음부터 시민들이 무장했던 것이 아닙니다. 영화 속 민우는 정치혁명가가 아닙니다. 택시 몰고 동생 챙기고 연애나 잘해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느 순간 총을 듭니다. 왜일까요? 국가가 시민을 보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위협한다고 느낄 때 시민에게 무서운 질문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나는 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여기에서 홉스의 사회계약론이 뒤집어집니다.
-
홉스에게 시민은 폭력의 권리를 국가에 맡깁니다. 개인들이 제멋대로 폭력을 행사하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되기 때문에 국가가 폭력을 독점합니다. 그러나 그 독점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국가가 시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 국가가 오히려 시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사회계약의 정당성 자체가 흔들립니다. 그래서 시민의 무장은 단순히 “무기를 들었으니 폭도”라는 공식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누가 먼저 시민과 국가의 관계를 파괴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
다만 한 가지 사실은 정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광주교도소 주변에서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 충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법원의 판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수감된 간첩을 석방하기 위한 북한 측의 조직적 개입’으로 설명하는 주장은 허위라고 대법원이 확정했습니다. 이 구분이 중요합니다. 역사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불리한 사실까지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확인된 사실과 정치적으로 덧씌워진 해석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7.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위험한 역설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질서를 정의라고 불렀습니다. 바로 이때 ‘정의’라는 단어가 위험해집니다. 정의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정의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는 언어의 의미가 뒤집힙니다. 전쟁은 평화가 되고, 자유는 예속이 되고, 무지는 힘이 됩니다. 권력이 언어를 장악하면 폭력도 미화될 수 있습니다. 고문은 ‘정화’가 되고, 강제수용은 ‘순화’가 되며, 시민 탄압은 ‘질서회복’이 됩니다.
-
국가폭력의 가장 고도화된 모습은 사람들에게 폭력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폭력을 보면서도 그것을 정의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지켜야 할 것은 단지 선거만이 아닙니다. 언어입니다. 국가가 누구를 ‘적’, ‘불순분자’, ‘반국가세력’이라고 부를 때, 시민은 항상 한 번 더 질문해야 합니다. 누가 누구를 어떤 근거로 적이라고 부르는가? “왜 쏘았지(총!)”
-
그래서 마지막에 반복되는 질문, “왜 쏘았지?” 이 질문은 단순합니다. 그러나 철학적으로는 굉장히 깊습니다. 누가 명령했는가. 누가 허용했는가. 왜 시민을 적이라고 판단했는가. 왜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는가. 어떤 언어가 살인을 정당화했는가. 그리고 국가가 다시는 시민에게 총을 겨누지 못하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지 않고 “과거 일이니 그만하자”고 하면 역사는 끝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모든 군인을 악마로 만들고 증오만 반복해도 역사는 극복되지 않습니다.
-
필요한 것은 책임의 층위를 정확히 밝혀내는 일입니다. 명령을 설계한 책임. 명령을 전달한 책임, 명령을 수행한 책임, 거짓말로 은폐한 책임. 그것들을 구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정의와 복수의 차이입니다. 복수는 상대가 당한 만큼 돌려주려고 하지만, 정의는 누가 무엇을 했는지를 정확히 묻습니다.
9. 총을 쏘기 전에 이름을 빼앗는다
국가폭력은 어느 날 갑자기 총성이 울리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사람에게 시민이라는 이름을 빼앗깁니다. 불순분자가 되고, 폭도가 되고, 적이 됩니다. 그다음 명령이 내려옵니다. 그리고 훈련된 몸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징후를 알고 싶다면 탱크가 거리에 나오는 순간만 볼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부르지 않기 시작하는 순간을 보아야 합니다. 꽃게는 살아 움직인다고 해서 반드시 속까지 싱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가 ‘질서’, ‘안보’, ‘정의’를 말한다고 해서 그 행위까지 자동으로 정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의는 이름표가 아니라 행위로 검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화려한 휴가』가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국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국가가 하는 일을 무조건 믿는 것인가, 아니면 국가가 정의에서 벗어날 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2026.8.27.THU.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