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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시집, 동시집 [싸리울]
남 진 원
♥ 시인. 문학평론가
*늦겨울 아침
남진원
햇살이
눈을 밟고
달려오는 이 아침
지붕엔
토옥 토독
겨울이 헐리는데
볕 묻은
흙담 밑에서
봄은 자리 트는가
*봄이 온대요
남진원
얼음장 밑에서
돌돌돌
옥 굴리며 온대요
버들가지 위에
살짝 앉아
눈비비고 온대요
민들레 꽃잎 타고
방글방글 웃다가
솜털 보시시한
병아리 손 잡고 온대요
노오란 참새 부리로
종알종알 지껄이며
살구나무 가지마다
등불켜며 온대요.
산모롱이 양지쪽에서
아물아물 눈짓하며
나비의 나래 잡고
팔랑팔랑 손짓하며
내 마음 돌돌 말아
봄이 온대요.
*3월
남진원
아직은
봄이라지만
구름 같은 날이다
엷은
햇살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길 위론
추운 노래가
또 한차례 지난다.
* 들판에 서면
남진원
새들이 지저귀는
저 소리는
포름한 연두색이다.
땅에선
물컹 솟아나는
흙냄새
나무는
가지마다
분홍꿈을 꾸고
고개 들면
어디선가
꽃내음으로 다가오는
봄 오는
봄 오는 소리.
*개나리
남진원
울타리 휘어지게
별이 총총 열렸다.
연분홍 꽃바람에
나부끼는 순금의 별
마음도 노랗게 익어
마구 걷고 싶은 날
* 4월
남진원
양지쪽
토담가엔
새소리도 잠이 들고
먼 산엔
아지랑이
눈이 아린 아지랑이
바람결 고운 꽃잎인냥
나비 떼도 불어라.
* 해
남진원
나무에 새움 트고
온 산에 윤기가 돌 듯
햇살도 봄이 되면
알알이 매끄러워
지붕 끝 무더기무더기
낙숫물로 떨어진다.
*봄비.1
남진원
온 들판 새록새록
연초록 눈을 뜬다
꿈꾸는 나뭇가지
상긋한 햇순 냄새
그 누가 비를 맞으며
꽃등을 켜고 있나.
*봄비.2
남진원
온통 부산스레
바람 떼를 열어놓고
숲속, 갈피
갈피
빗소리도 걸어 놓고
백금 빛 투명한 못을
종일 박으며
술렁인다.
싯푸른 물소리로
봄비 흘러
가는 밤은
한 줄기, 나도
봄비
잎새 푸른 물이 배고
질펀한 산도랑 따라
마구 팔려 가는 봄.
* 김매기
남진원
초록
물 바람이
흘러가는
이랑이랑
뿌려 논 거름 속에
묻힌 봄 뒤적이며
볕 조각
담는 할머니
봄을 송송 맵니다.
* 봄 뜰엔
남진원
순희는
바둑이 데리고
냇가로 달려가고
어미 닭
병아리 데리고
울 밑으로 모두 나간
봄 뜰엔
발자국 만이
햇살 덮고 잠들었네.
* 산목련
남진원
한나절
아릿아릿
졸음 겨운 하늘 아래
맴돌다
흰 구름만
흰구름만 흠뻑 배인
한그루
순백의 붕대
그리움을 엽니다.
* 어부
남진원
출렁여
푸른 물결
뱃노래로 띄워 놓고
남실남실 뱃고동 소리
떠가는 듯 아련한 바다
유채꽃
아롱진 남도의
봄을 푸는 어부여
*봄을 그리는 도화지
남진원
옷에 묻은 봄빛들을
죄다 담아 넣고
아이는 눈 속에서
번져나는 꽃 내음을
노랗게 물든 언덕에
마구 이겨 바른다.
새소리 바람소리
붓 끝에 묻히더니
팔랑팔랑 숨소리
가지마다 달아매고
도화지 환한 빛속으로
봄이 되어 들어간다.
* 나비. 1
남진원
꽃망울 가득한
꽃밭에
나비 한 마리 날아와
재깍
재깍
돌아가는
숨소리 들어보고
아직
멀었나
살그머니
오늘도
돌아갑니다.
*나비 2
빨간 붕대를
풀고 있는
꽃더미 위에
아지랑이
아롱아롱 짜놓은
햇살 그물
그물에 걸려
파닥이는
노랑 나비
한 마리
*나비 3
살며시
날아오른다.
연두색
바람이 일렁이고
바람
속에
하늘
하늘
떠
다니는
하얀 꽃
노란 꽃
*봄 날
냉이 캐는 아이들
호미 끝에서
초록빛 숨소리가
파랗게 터져나오고
아지랑이
자욱히
산과 들을 맴돌면
나비 등을 타고
쏟아져내리는
분홍 빛 자락
민들레 웃음소리
들판 가득히 지저귀고
종달새 노래 소리
노오랗게 익어가는데
병아리 한 떼가
양지쪽에서
봄을 데리고 놉니다.
*소풍길
이름 모르는 꽃들이
웃음을 물고 선
오솔길로
밤새도록 엮어내던
무지개 꿈을
한 짐 씩 지고 가는 아이들
일렁이는 노래 소리
메아리로 번져
꽃사슴도 숨어
엿듣다 가고
풀잎에 기대 앉아
고개짓하는 바람
돌돌돌 개울물이
구름을 잡아타고
둥둥
구름 속에
함빡 젖은 소풍길이
거꾸로 달린다.
*풍경
처마 밑엔
한나절
햇살이 졸고
산마루엔
한나절
구름이 졸고
그 사이로
뻐꾹
뻐꾸욱
봄날 한나절이
조올다 깼다 한다.
*싸리울
할머니
손등처럼
거끌하지만
다가서면
물씬 풍기는
흙냄새
아랫집 윗집
눅눅한 인정
싸리울 구멍으로 나누어주고
속 마음까지
훤히
내놓고 산다.
*저녁 강가
조용한
강가엔
노을이
지고
보일 듯
말 듯
아련한
강둑
그
위에
혼자
흔들리고 선
송아지
울음
*시골집
싸리울
포근히
감싸고 있다.
봄, 여름
싱그러운
바람이 살고
새들이
천지스레 노래하는
내 고향
시골집
모두
한 식구 되어
살아간다.
*고향집
이맘 때면
내 고향
여름 집
풀 냄새
짙은
모깃불 피고
멍석 위에
풍성하게
쏟아지는 별빛
아늑하게
흐르는
바람
모두가
참으로
평화로워
이맘 때면
내 고향
여름 집
나는
지붕 위
하얀 박꽃이 된다.
*여름밤은 달빛 그물에 걸려
달님이
한 밤에
그물을 친다.
맨 먼저
풀벌레 소리가
자욱하게 걸려 올라온다.
개똥벌레도 걸렸다.
어느새 대숲을 돌아 흐르던
물소리도 치렁하게 걸리고
은비늘
하얗게
날아 내리는 밤
온통
달빛으로 잔
그물에 걸려
출렁이는
출렁이는 여름밤.
*소
미워할 줄
모른다.
소는
화내는 법을
모른다.
묵묵히 일하다
푸줏간에서
죽어갈 때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다.
아, 눈이 큰 황소.
*시골길
아무도 없이
혼자 걸어도
걸어도 걸어도
싫지 않아요.
높다란 가지 끝엔
구름이 동동
잎새 뒤엔 누가 숨어
나를 부르나
산새 들새 지저귀며
반겨주는 길
아무도 아무도
없이 걸어도
종일을 걸어도
싫지 않아요.
*산골버스
산과 버스가
숨바꼭질 한다
굽이굽이
숨었다 나타나고
나타났다 숨고
또 찾았다
또 숨었다.
종일
산과 버스가
숨바꼭질 한다.
*조약돌
바람으로
구름으로
말끔이
닦고 닦는
새 하얀
얼굴
티끌도
부끄러워라
앉으려다
그냥 간다.
*저녁마을
노을이
밀려드는
저녁
마을은
노을이
고와서
너무
고와서
노을이
마을처럼
흐르는
마을
마을이
노을처럼
흐르는
마을.
*풀벌레
그건
누나의 간지러운
웃음소리다.
어디엔지
숨어버린
내 작은 귀다.
여름밤
다정하게 속삭이는
음표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채로
은은하게 은은하게 익어가다
아침이면
이슬 방울 속에
올올이 들어찰
예쁜
예쁜
산열매다.
*여름밤
할머니 이야기
아가 귀에
풀어놓는 밤
아가는
하나 둘 별을
손가락에 걸으며
이야길 듣는다.
눈꺼풀 사르르
꿈나라 찾아
벌써
꼬옥 쥔 손바닥
할머니 이야기가
한 웅큼
별이
한 웅큼
*작은 소망
산꿩이 한나절
심심해서 울어대는
순아! 난 고향에서
농사지며 살으련다.
새소리 귀 맑아지는
흙이 되어 살으련다.
숭늉내음 물씬 물씬
아무데나 정이 솟고
뻐꾸기 꽃인 냥 피는
풀빛 마을 내 고향
그 속에 나도 한 마리
뻐꾸기로 살으련다.
*해야 해야
마을이 서서히
아침의 문을 열면
간 밤의 예븐 꿈도
닦아낼 듯 반짝이는
숲 너머 고개 내밀며
활짝 웃는 해야 해야.
*여름 저녁
풋 고추 상치 쌈에
피곤을 털어 넣고
이 얘기 저 얘기로
꽃 피우는 저녁 상
하늘엔 싱싱한 별꽃
다투어서 피어난다.
장맛으로 익어가는
초여름 저녁 한 때
산나물 배인 옷깃
이야기로 살쪄 가고
멍석엔 개구리 울음
질펀하게 젖었다.
*함지
멀리서 멀리서 보면
숲속은 작은 함지
가만히 함지 위에
파란 보자 씌워지고
함지 속 오골오골 끓는
팥죽 같은 새소리 Ep
올망졸망 푸른 산도
내려앉은 함지 속
졸졸졸 시냇물도
노래처럼 흘러가고
귀연 채 어여쁜 황새
꽃이 되어 서 있네.
오솔길엔 쪼르르르
다람쥐도 꺼내놓고
돌담가 흐드러지게
꽂아놓은 찔레꽃
그리운 봄바람 한 떼
넝쿨처럼 엉켰네.
밤이면 작은 별들
동전 같은 달이 뜨고
단잠 든 아기새
고요만 깊어갈 때
그윽한 물소리들만
함지 가득 채운다.
*참새소리
손바닥
마주 잡고
눌러
대면
쪼록
쪼록
새어
나올듯한
이 새벽
하늘 속에서
눌러대는
소리 소리.
*숲속에 서면
숲속에 서면
누군가의 생각들이
질 고운 바람소리로 모여들고
쉬임없이 오고 가는
저 귀여운 속삭임
바로 그건
숲의 설레이는 마음이래요.
봐요
나무는 나무끼리 손을 붙들고
풀잎은 풀잎끼리 손을 붙들고
너무나 너무나 아름답게
새들을 날려 보내는
나무들의 모습을
풀잎 들의 모습을
포롱포롱 포르르릉
하늘로 하늘로
아침 햇살인냥
마냥 번져가는
싯푸른 저 새소리 떼
오, 그건
푸른 새들의 소원
하늘 가득히 쌓이는
새의 마음이래요.
나도 여기 숲속에 서면
오, 그래요.
한 마리 새처럼
한그루 나무처럼
이름모를 바람의 목소리로 살고 싶어요.
정말이어요, 이 숲 속에 묻혀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꽃바람 풀바람
꽃 속에서 놀다온 바람이기에
바람은 한올 한올
고운 향기입니다.
풀숲에서 놀다 온 바람이기에
바람은 한 잎 한 잎
진초록 풀내음입니다.
그 바람이
살며시 들어온 골목길
골목길엔
꽃내음이 넘실대며
풀내음이 넘실대며
상쾌한 빛깔들이
해해거리며
하늘 속으로 하늘 속으로
날아오릅니다.
*호주머니
군밤 호도 두둑히
넣고 나오면
골목마다 우루루
몰려들지요
날 때리던 돌쇠도
손을 내밀고
날 놀리던 바우도
눈을 찡긋찡긋
석이 녀석 하고만
놀던 순희도
내 주머니 졸졸졸
따라다녀요.
*휴지통
쓰다가 버린 것들
모두 모여서
세상에 버린 것끼리
모여사는 동네
만나는 것마저
버린 것들이
버린 것끼리 만나
만남을 알고
정마저 버린 것들이
버린 것끼리 만나
정을 나누고
쓰다가 버린 것들
모두 모여서
세상에 버린 것끼리
모여 사는 동네
*여름 숲속 아침
나무에서
팥알처럼 떨어지는
새소리에
새벽이 달아난다.
하늘로 하늘로
날아 오르는
은빛 새들의
저 낭낭한 눈부심
하늘 빛 청청한 모습으로
산은
눈망울 번뜩이며 깨어나고
새들의 날갯죽지에서
쏟아지는
푸른 바람 한 떼
산 메아리
이끼로 자란 골짜기 마다
해 뜬 버드나무 잎새 들이 파닥이고
상쾌한 빛깔만 골라 담아
졸졸졸
아침을 굴리며 가는
물소리에
여름 숲속 아침
온통 비취빛 귀를 열고 서 있다.
*해당화
누구를
기다리나
바닷가에서
소라처럼
예쁘게
귀를 열고서
먼 수평선
바라보는
해당화
찰랑이는
파도 소리
종일 모으면
바람도
생각에 젖어
쓸쓸한 바닷가
모래 위엔
꽃잎이 하나, 둘
나뒹군다.
*학교 가는 아침
사랑스런 것은
모두 모아
내 책가방에 싸 주시고
기쁨은 모두 모아
내 도시락에
넣어주시고
그래도 어머니는
허전하신가 봐요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문밖에서 지켜보십니다.
*코스모스
걸어가다
뒤돌아보고
걸어가다
뒤돌아보고
그래도
무엇인지
잃어버린 듯한
늦가을
아쉬움인 듯
아쉬움인 듯
코스모스가
지고 있다.
*고요한 밤
달님이 새근새근
잠이 드는 밤
가만가만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그 고운 귀뚜라미
노래 들으며
모두가 꿈을 꾼다
고요한 한 밤
별님이 새록새록
잠이 드는 밤
가만가만 들려오는
산시내 소리
그 고운 산시내
노래 들으며
모두가 꿈을 꾼다
고요한 한 밤.
*바느질
이불을 당겨
잠든 아기 꿈을
돋우어 놓고
한 올 한 올
아기의 헤진 옷을
깁는 어머니
닳아서 구멍이 뚫린
무릎을 보고
어머닌
아기 크는 소리를 듣습니다.
고요한
밤은
숨결처럼 녹아가고
한 뜸 한 뜸
바늘구멍에 매달리는
아기의 웃음을 깁으며
어머니 마음은
어둔 밤
파란 불씨로 피어납니다.
*추석이면 고향에
추석이면 고향에 간다.
마음 속에서나 그리던 고향에 간다.
울퉁불퉁 험한 산길이지만
시골버스를 타고 가노라면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
한 폭의 그림처럼 벼가 익어가고
골짜기를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들
내 귀가 젖는다. 퍼렇게
순희, 영희, 다 잘 있을까
소꿉친구들 지금은 무얼할까
그 옛날 그 집들은
지금도 그렇게
저녁 연기를 날리고 있겠지
숲속에선 새들의 노랫소리 듣고
나무들의 키가 부쩍 자랐겠지
생각만 해도
그리운 고향 아
들여다보면
파란 하늘
가을이 익어가는 냇가에
서리 물든 오후의 햇살이
한 두름 씩 던져지고
오순도순 모인 아주머니들
통째로 뽑은 무우 통을
여린 물살에 헹구는 고향은
지금 쯤
하얗게 씻은 빨래를 들고
가을 하늘에 더욱 푸른
우리 어머니의 손, 손이
분주히 집 안팍을 돌아보고 계실
고향엘 간다.
고향엘 간다.
마음 속에서나 그리던
고향엘 간다.
*가을 산촌
바람들이
갈대밭에서
웅성거리며 나온다.
무우 인 아주머니의
종종 걸음이
산그늘 속에 저물면
목이 긴 오후의 햇살이
가을을 곱게 물들이는
산촌 마을
빨간
홍시가
떨어지고 있다.
*가을 밤
단풍 밴 뜰 안에
어슴푸레 누운 가을
한 장 고운 바람결도
댓돌 위에 스러지고
뉘 집 창 달빛 어리듯
귀뚜리도 저물어
*풀벌레 울음
누군가 저 먼 나라
쓸쓸히 떠나간다
어둔 밤 꽃잎처럼
달빛에 익는 노래
혼자서 가을을 지고
혼자서
저 혼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