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생활 생물 에세이 시리즈" 2권 -생명의 시-에 나오는 글입니다.
가을이면 단풍잎은 말한다.
-울긋불긋 내 몸이 변하고 있다. 내가 바라서 이렇게 고운 옷을 입게 된 것이 아니다. 어쩔 수가 없었지.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라서
내 초록 옷이 울긋불긋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내가 봄빛을 맞아 초록 옷을 입고 태어난 후로 나는 내 가족의 먹을거리를 책임졌다. 내가 없음 내 몸 굶어 죽는다. 아니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죽는다.
나는 대단한 존재다. 모든 생명체가 나로 인해 살고 있다니.
그 이유를 말해 드리리다.
나, 녹색 잎은 엽록체를 가졌잖소! 이 엽록체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햇빛에너지를 탄수화물 속에 화학 에너지로 확 바꾸어서 저장하는 공장이다.
지구상에서 유기물을 최초로 생합성하는 공장이 바로 엽록체다.
내 몸이 녹색인 것도 바로 이 엽록체가 녹색이기 때문이다.
엽록체가 내 몸을 지배할 적에 나는 이 세상에서 부러운 것이 없었다.
엽록체가 탄수화물을 생합성하면 탄수화물은 내가 먹고도 남아돌아서 온몸으로 뻗은 체관을 통해 온 몸 구석구석으로 보냈다.
세포들은 탄수화물을 원료 삼아 단백질도 만들고 지방도 만들고 비타민도 만들고 핵산도 만들고 유기질로 된 모든 유기물을 만든다.
그리하여 각종 유기물들은 열매 속에서는 열매를, 씨앗 속에서는 씨앗을 줄기를, 새 줄기도. 뿌리를, 새 뿌리를, 모두 모두 키웠다. 내 덕으로.
그런데 알고 있는가?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을. 토끼 사냥에 이용됐던 사냥개는 사냥이 끝나면 죽임을 당하지. 내가 바로 그 신세이지
내 신세타령을 들어 보겠는가?
가을이 되면, 해가 머무는 시간이 짧아져 기온은 떨어지고 건조해져서 내가 품고 있는 엽록체가 광합성 즉 탄소동화작용을 못하게 되어 엽록체의 유기물 생산량이 점점 줄어들고 급기야 시들시들 앓게 되었지.
탄수화물 생산량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것을 알게 된 줄기가 하루는 잎자루와 줄기 사이에 있는 물관 속에 떨켜층을 만들더군. 떨켜층은 바로 떨어져 나간다는 부분이란 뜻일세! 떨켜층이 생기자 줄기로부터 물이 오지 않더군.
물을 공급받지 못하는 생명체는 죽는다는 것을 그대들도 알고 있잖소! 잎들이 광합성을 제대로 못하자 줄기들은 잎으로 가는 물관에 떨켜층을 만들어 잎과의 모든 인연을 끊어 버리자 물을 먹지 못해 목마름에 지친 내 몸속의 엽록체들이 그냥 죽어가더군. 그러더니 왜 있잖아. 호랑이 굴속에 호랑이가 없으면 토끼가 왕이라고.
실은 엽록체가 녹색인 것은 엽록소가 녹색이기 때문이야.
그런데 그 엽록체 속에 엽록소만 있는 것이 아니었지 그 속에는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있었네. 카로티노이드에는 카로틴과 크산토필도 있는데 카로틴은 등황색이고 크산토필은 황색 계통이 다네.
즉 엽록체 속에는 녹색을 띠는 엽록소와 등황색을 띠는 카로틴과 황색을 띠는 크산토필이 함께 살고 있었지. 이 셋의 색깔 중에서 엽록소가 나타내는 녹색이 너무 강해서 햇빛이 쨍쨍할 때는 녹색을 나타내며 살고 있었다네.
그런데 햇빛이 기운을 잃어 가니 햇빛을 먹고사는 엽록소가 죽어가고 녹색도 따라서 사라져 가면서 카로틴과 크산토필의 색이 두각을 나타내는 거야.
그래서 잎은 녹색에서 노랗게 변하게 된다네. 즉 노랑 단풍은 카로티노이드 색깔이 나타나는 거라오.
그렇지만
단풍들 중에는 아주 새빨간 핏빛 같은 붉은 단풍도 있고
아주 황금색 같은 단풍도 있어 그것은 화청소 즉 안토시안이 만들어낸다네.
안토시안은 액포 속에 있는데 열매나 꽃 속에 들어서 아름다운 색깔을 뽐내지. 액포 속의 액성이 산성이냐 알칼리성이냐 중성이냐에 따라 색깔을 다르게 나타내서 꽃 장사들이 그걸 이용해서 자연 상태에서는 없는 꽃의 색깔을 탄생시킨다고 하드군.
화청소(안토시안)는
산성에서는 붉은색,
중성에서는 보라색.
알칼리성에서는 노랑을 나타내.
액포가 무엇인지 알고 있나? 액체를 품고 있는 주머니야. 식물체가 물을 많이 품고 있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액포들이 많아서야. 과일을 그냥 먹을 때 보다 갈아서 먹으면 물이 엄청 더 많이 나오지 그건 갈아질 때 액포가 터져서 그 속에 갇힌 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도 떨켜층 덕분에 물이 오지 않아 가벼워진 몸을 바람이 불면 훨훨 날아서 춤을 추다가 뿌리 위에 떨어지지. 단풍들의 춤은 사무(死舞)지. 암만 사무지 .죽음의 춤이지. 우린 가지고 있는 기운의 원료를 다 사용되고 나면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어 그 가벼운 몸이라도 땅 속에 살고 있는 중력이 잡아 다녀서
아래로 몸이 당겨지고 그때 떨켜층이 떨어지게 되지 즉 줄기는 미리 잎자루가 떨어져도 상처를 입지 않으려고 딱지를 만들어 잎 떨어진 부분을 미리 보호하기 위해서 떨켜층을 만들어 놓은 거야.
단풍잎 색은 엽록체 속의 카로티노이드와 액포 속의 화청소가 나타낸다.
화청소는 주로 꽃 색깔과 과일 색깔 그리고 새싹의 색깔을 나타내지만 단풍 들 때 카로티노이드 색소에 더 가미되어 더 노랗게 더 붉게 만들어 준다.-
단풍잎과의 대회가 끝나고 나는 하늘을 본다. 날마다 해는 보다 더 남쪽에서 뜨다가 동지가 지나면 다시 조금씩 북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동녘에 솟아올라 봄바람 불면 나무들은 다시 녹색 잎을 탄생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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