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두동마을'산수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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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의 남쪽 끝 자락을 가까스레 움켜쥔 봉화의 깊은 산골,
'두동마을'은 4월 초순이 되면 온통 노랗다.
산도 노랗고 지붕도 노랗고, 길도 노랗다.
빨래줄에 빨간 옷을 널어 놓아도 노랗게 보인다.
보고 있는 사람 마음까지도 노랗다.
더 이상 나갈래야 나갈 수도 없이 빙 둘러쌓여 있는
산 아래 옴푹하게 자리를 잡은 이 마을은 온통 노란 산수유로 뒤덮여 있다.
![]()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산수유 나무들로 가려져 집들은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다.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기에 그저 마을 주변에 보기 좋을 정도로만 심겨져 있을거란
상상을 하고 찾은 이 마을은 400년 역사의 산수유 마을이다.
꼭 산수유만 있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이 마을엔 고택이 서너채 자리하고 있어
더욱 정취를 느끼기에 좋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고택의 지붕과 흙과 돌을 적당히 섞은 흙돌 담장이 기와를 이고
나즈막히 서있는 너머로 산수유 가지가 걸쳐져 있는 풍경은 다른 곳에서는 느낄수 없는
그윽함을 전해준다.
![]() 전체 20가구 정도가 되는 마을에 현재 사람이 거주하는 가구는 13가구 쯤 된다.
남양 홍씨 집성촌으로 이 마을의 입향조는 '두곡 홍우정' 선생이다.
두곡 선생은 인조의 삼전도 치욕을 참지 못하고 벼슬을 버리고 이 곳 으로 숨어들다시피 하여
은둔하며 마을을 일구었던 것이다.
서울서 내려올 때 이천에서 몇그 루의 산수유를 가져와 심은 것이 시목이다.
선생이 굳이 산수유를 심은 것은 이유가 있다.
자신 역시 두번 다시 벼슬길로 나아가지 않고자 은둔길로 들었지만
후손들 역시 벼슬길로 나가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벼슬하기 위해 공부하지 말라. 이 산수유만 잘 가꾸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을것이니,
공연한 세상일에 욕심을 두지말고 휘말리지 말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그러한 선생의 의지는 마을의 지형을 가만히 살펴 보면 더욱 선명하다.
![]() 그 옛날 이곳은 산골 중의 산골, 첩첩산중이다.
앞 마을 정도에서 보면 뒤쪽으로는 더 이상 마을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지형이다.
병목 같은 입구가 휘어져 있어 마을 코 앞까지 가지 않고서는 마을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들어오는 길은 있어도 나가는 길은 없다.
마치 천혜의 군사 요충지 같기도 하다. 그런 산골에 당연히 논 밭을 일굴만한 터도 없을 것이니
산비탈에서도 키울수 있는 산수유 농사를 시작한 것이 지금의 마을 모습이다.
이 마을엔 산수천냥, 과실천냥, 명주 천냥 이란 말이 있다.
논 밭이 없으니 산수유와 과실수를 심어 삶을 영위 했을 것이고
다른지역 보다 더 많은 과실수를 공들여 키웠을 것이고 더 열심히 길쌈을 맸을 것이다.
![]() '띠띠미' 인가 '뒤뜨물'인가 아니면 '띠띠물이' 인가?
이 마을을 찾으면서 산수유의 아름다움도 그렇지만 가장 궁금했던 것이 마을 이름이다.
마을의 공식적인 이름은 '두동(杜洞)'마을이다. 막힐 '두' 를 썼다.
산으로 꽉 막힌 마을이란 뜻 이다.
인터넷에 봉화 산수유 마을 이라고 검색하면 '띠띠미' 또는 '뒤뜨물' '띠띠물' 마을이라고 나온다.
다 비슷하나 어느 것이 정확한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는 마을 사람들 조차도 모른다.
![]() 띠띠미는 '뒷띠미'가 변화 한 것이라 기재 되어 있는데,
'뒷마을' 이란 뜻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띠미'는 무엇이 변한 말인가.
'띠미' 가 마을이 될 수 있을까?
![]() 마을을 살펴보면 더 이상 나갈 곳이 없는 꽉 막힌 산으로 둘러쌓여,
그 옛날이라면 오지중의 오지다. 당연히 뒤쪽엔 마을이 없고 앞 쪽으로만 마을이 있는데
꽉 막힌 산비탈에 걸쳐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니
앞 마을 이나 인근 마을에서 부르기를 '뒷듬' 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 어느 것이 정확한건지는 마을 사람들이 가장 잘 알겠지만
이 마을 이름의 뿌리는 '뒷듬'에서 유래 된 것은 맞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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