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Title) : 산상설교 해설(Explanation of Sermon on the mountain)
부제(Sub-Title) :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성경 본문(Bible Text) : 마태복음(Matthew) 5장 1~3절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Now when he saw the crowds, he went up on a mountainside and sat down. His disciples came to him, and he began to teach them, saying: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돈과 권력과 명예를 가진 사람들 가운데 교만하고 스스로 높아져서 권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진정으로 겸손하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아무 것도 없음으로 인하여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사람들이 있으나 반면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교만한 사람들도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 많으나 적으나 진정으로 자신의 연약함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안식과 평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하시게 된 배경
산상설교를 하시게 된 배경을 살펴봅시다. 그 배경은 마태복음 4장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의 모든 시험을 이기셨습니다.(4:1~11)
둘째, 세례 요한이 잡혔다는 것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습니다.(4:12~16)
셋째, 사역을 시작하시기 위해 먼저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 그리고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이 네 명은 모두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로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4:17~22)
넷째, 제자로 삼은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시니 유대 땅 각지에서 수많은 무리(군중)들이 예수님께 모여와 따랐습니다.(4:23~25)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군중)들을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2. 사복음서의 제자의 개념은 무엇입니까?
여기서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산상설교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산상설교가 제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가, 아니면 군중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들은 본문을 살펴볼 때 산상설교의 대상이 제자들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산상설교를 하시는 방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군중들에게 설교하고 가르치시기 위해서는 일어나셔서 대중 연설을 하시듯이 소리를 높여서 큰 소리로 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장소가 야외여서 많은 잡음들이 들리는 지역이고 또 많은 사람들이 넓게 퍼져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대중 연설을 하시는 방식을 취하지 않으시고 자리에 앉으셔서 가르치셨습니다. 이런 방식의 설교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설교하시고 가르치실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가르치실 때 군중들 중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왔습니다. 이 군중들 가운데 제자들이 나아온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왔다는 것은 제자들에게만 이 메시지가 전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상설교는 군중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제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통해 우리는 제자는 누구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자는 분명히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따라다니는 군중들이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특별히 부르신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 제자들은 모든 사복음서에서 공히 예수님께서 불러서 함께 다니기도 하고 함께 사역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12명이었습니다.
3. 사도행전에서 바뀐 제자의 개념
그러나 사도행전에 가면 제자의 개념이 바뀝니다. 사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제자였던 소수의 사람들은 사도행전에서 사도들로 명칭이 바뀌며(사도행전 6장부터), 그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제자란 명칭을 붙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사도행전 1~2장에서는 여전히 예수님을 따랐던 12명에게 제자라는 명칭이 붙지만 그 이후에 특히 6장부터 사도들의 설교와 가르침을 받아서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 그리고 교회에 출석하여 신앙생활을 하며 주님께 순종하여 살려는 사람들을 제자라고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은 예수님을 믿고 교회 공동체에 가입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제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4. 예수님의 첫 번째 가르침, 팔복(八福,Beatitude)
산상설교의 첫 번째 가르침은 여덟 가지 복(八福,Beatitude)입니다. 그 팔복은 마태복음 5장 3~12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 팔복 가운데에서도 첫 번째 가르침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라는 것입니다.
5. 심령이 가난한 자(the Poor in spirit)는 누구입니까?
보편적으로 예수님께서 이 설교를 하실 때 원래는 누가복음에서 나와 있듯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하셨을 것입니다.(눅 6:20) 그 이유는 재산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계를 걱정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의 마음은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난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나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뿐만 아니라 생존 자체가 힘들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자신들은 무기력하고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생존이 힘들다고 생각하여 전적으로 타인과 하나님만을 의지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5장 3절에서는 그냥 “가난한 자”가 아니라 “심령(spirit)이 가난한 자”라고 표현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학자들 가운데는 마태가 쓴 복음서의 대상 가운데 부유한 사람들이 있어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바꾸어서 표현했다고 합니다. 부유한 사람들 때문에 ‘가난한 자들이 복이 있다.’는 문장이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복이 있다.’고 바뀌어서 기록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재물이 많은 사람들도 가난한 자들과 같이 심령이 가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재물도 많이 가지고 있고 권세와 명예가 있지만 그것들이 영생을 보장할 수 없고 또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할 수 없으며 구원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보장해 준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는 심령이 가난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과 공로가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면하지 못하게 하며 구원과 영생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오직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에게만 구원과 영생이 달려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즉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은 실제적으로 가난한 자들이 될 수도 있고, 사회적 지위가 높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것에서만 소망을 발견하는 사람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실제적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외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가난하냐 아니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에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무기력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과 인도하심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고 소망이 없다고 인정하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려는 마음을 가진 자가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첫째,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마음
둘째, 소망은 자신이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고 인정하는 마음
셋째, 그래서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려는 마음이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6. 글을 맺으면서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며, 소망은 자신이 가진 것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있으므로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만 의지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심령이 가난 한 것입니다.
혹시 우리들 가운데 무언가 가지고 있으므로 심령이 부요한 자가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가지고 있는 것들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려는 마음이 약해지지는 않았습니까? 혹시 가지고 있는 것, 즉 돈과 명예와 권세로 인해 교만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으며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심령이 매우 부요한 자가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