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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로 축발된 위축된 경기가 다시 풀리는가 봅니다.
요즘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 갑니다.
비록 산에 들 시간이 줄었지만 기뻐해야 겠지요.
그리고 기뻐해야 할..
또 하나..
오늘 많은 비는 아니지만 비가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그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에게는 많은 비였지만...
예정된 태조산 넘어 유랑리 고개까지 걸으려 하였지만
비라는 복병으로 엽돈재로 산행을 종료 하였습니다.
이번 산행은 모종의 임무를 띠고 시작한 산행이었는데
그 임무 때문에더 진행 할수 있었던 산행도
엽돈재로 끝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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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산
칠장산에서 뻗어 내린 금북의 마루금에 자리한 서운산은 청룡이 서운(새벽 구름)을 타고 내려 왔다고 하여 산 ㅣ름을 서운산..
그리고 그 산에 있던 사찰을 청룡사라 하였다는 호랑이 고스톱 치던 시절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 옵니다.
산세가 부드럽고 높지도 않지만 부드러운 산세에 숲이 울창하고 경치가 좋은 청룡과 마둔 저수지가 있고 고즈넉한 산사인 청룡사, 석남사를 품고 있는 산입니다.
배티고개
배티를 이티(梨峙)라고도 부른다.
경기도와 충청북도를 가르는 도계상에 있는 고개이며 313번 지방도가 여기를 지나며 해발 370m의 높이로 금북정맥에 걸쳐있다.
행정지명으로 동남쪽은 충북 진천 백곡면 양백리, 서북쪽은 경기도 안성 금광면 상중리가 된다.
배티를 사이에 두고 경기 안성쪽으로 고찰 석남사라는 불교성지가 있고, 충북 진천쪽은 천주교의 배티성지가 있다.
그라니깐 서불교 동천주교..인가요?
동네 어귀에 돌배나무가 많은 배나무 고개라서 이치(梨峙)'라 불렸고, 다시 순 우리말로 '배티'라고도 불렸다 한다.
또 다른 일설로 조선시대 무신년(戊申年)에 신천영(申天永)이 반역의 뜻을 품고 역도(逆徒)를 규합하여 여기에 주둔할 때였다.
과거에 북병사(北兵使)를 지냈던 이순곤(李順坤)이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당시 80세의 노령 이었지만 의분을 참지 못하여 사방에서 의병을
모아 한 바탕 싸움을 벌였다. 신천영이 이끄는 반역군은 80세 농인인 이순곤 공의 의병에게 견디지 못하고 패전의 고배를 마시고 도주하다
잡히고 말았다. 이 때부터 신천영이가 패한 고개라 하여 패티(敗峙) 라 하다가 배티로 변했다는 내용도 있다.
배티성지
1830년부터 본격적으로 배티 인근에 카톨릭 교우촌이 형성되어 왔고 최양업 신부가 이 지역을 근거로 전국을 다니며 사목 활동을 해 왔다.
1866년 병인박해와 1868년 무진박해 때 50여 명의 순교자를 냈는데, 그 가운데 29명은 교회 역사에 기록돼 있고, 나머지는 배티 일대에 이름
없는 묘소들로 남아있다. 천주교회에서는 매년 연례행사로 전국의 교도들이 이 곳까지 순례행군을 하는 대행사가 실시되며, 앞으로 성역화
(聖域化) 시킬 것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배티는 이미 옛날이 배티가 아닌 전국의 명소(名所)로 등장했다.
청룡사
1265년(고려 원종 6) 서운산 기슭에 명본국사(明本國師)가 창건한 절로, 창건 당시에는 대장암(大藏庵)이라 하였으나
1364년(공민왕 13) 나옹화상이 크게 중창하고 청룡사로 고쳐 불렀다.
청룡사라는 이름은 나옹화상이 불도를 일으킬 절터를 찾아다니다가 이곳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절 안에는 대웅전(보물 824), 관음전, 관음청향각, 명부전 등이 있고, 대웅전 앞에는 명본국사가 세웠다는 삼층석탑 등이 보존되어 있으며,
대웅전은 다포계의 팔작집으로 고려말 공민왕 때에 크게 중창하여 고려시대 건축의 원형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법당 안에는 1674년(조선 현종 15)에 만든 5톤 청동종이 있고, 큰 괘불이 있어 대웅전 앞에 괘불을 걸 돌지주까지 마련해 놓았다.
구불구불한 아름드리 나무를 껍질만 벗긴 채 본래의 나무결 그대로 살려 기둥으로 세웠다.
인평대군(麟平大君)의 원찰(願刹)이었다는 청룡사는 1900년대부터 남사당패는 불당골에 살면서 겨울을 뺀 세 계절동안 전국을 돌다가
겨울에는 돌아와 기예공부를 익히기도 하였다.
석남사
신라 문무왕 20년에 고승 담화덕사가 창건했으며 고려 광종이 아들 혜거국사가 크게 중건하는 등 이름 높은 스님들이 석남사를 거쳐갔다.
석남사는 당시 수백인의 참선승이 머물렀던 수행도량으로 이름이 높았던 것. 정면 3칸, 측면 3칸의 대웅전은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단촐하면서도 당당해 보인다.
대웅전 바로 아래 학이 나는 듯한 팔작지붕집이 영산전과 조화를 이루며, 옹기종기 터를 다스린 석남사 경내는 서운산의 풍취에 푹 빠져들게하는 매력이 풍겨난다.
영산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공포를 갖춘 팔작지붕집이다.
날렵한 지붕끝이 숲속에 살포시 가려있어 단아한 운치를 더한다. 이 건물은 공포의 짜임새가 조선 초기와 중기 사이의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적 의의가 크다.
엽돈재
경기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등 삼도(三道)가 만나는 지점이다.
해발 고도 323m 로서 34번 국도가 여기를 지나며, 금북정맥(차령산맥)에 걸친 고개다.
행정지명으로 동쪽은 충북 진천시 이월면 , 서쪽은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 남쪽은 충남 천안시 북구 입장면이 된다.
엽돈재를 다른 이름으로 엽전재(葉錢峙), 엽둔재(葉屯峙), 엽둔티, 율둔티 등으로도 불렀다.
고개이름 유래가 확실한 것이 없지만,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로는 옛날 장을 보려고 이 재를 넘나드는 사람이 많았는데,
숲이 워낙 깊어 장꾼을 노리는 도둑이 많았던 관계로 엽전을 가지고 가던 사람은 모두 빼았겼다고 한다.
자연 '돈'과 연관있는 이름으로 불리워졌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건 그렇고 엽돈재라는 지형은 한쪽만 성급하고 다른 쪽은 '모른 척'이다.
충남 입장(笠場)쪽에서는 무수한 구비를 이루며 고개턱으로 올라서게 되는데, 고개 너머 충북쪽은 갑자기 밑밑한 시골길로 바뀌어 힘들게
걸어 올라간 쪽이 마냥 싱거워진다. 구비가 많은 서쪽 국도는 전부 충남 땅이다.
옛날에 이 조그마한 마을에도 묘하게 지방색이 있었다.
이 산 기슭에 있는 저수지와 국도 사이를 도계선이 지나감으로 저수지 북쪽과 남쪽 마을은 서로 빤히 바라보면서도 타도의 주민증을 가졌다.
"저 마을 사람들은 우리 집 앞에서 버스를 타거나 지나다니기도 하지만, 절대로 막걸리를 팔아주는 일이 없습니다."
저수지 끝 국도변에 있던 주막집 주인의 넋두리다. (옛얘기지만 ....)
현재에도 안성분들은 그런 말을 합니다.
안성은 외지 분들이 들어 와서 돈 벌기 힘들다고..
그 만큼 외지에 대한 배타가 강하다고 해야 겠지요.
그 배타성이 교통의 요지인 안성이 평택에게 교통의 요지라는 자리를 내 주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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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40 엽돈재
09:40 철판 헬리포트
10:10 장고개
11:13 배티재
12:10 서운산
13:27 엽돈재
▲ 종주 진행 위성도
▲ 구간 고도표
▲ 엽돈재
아침 사우의 택배로 이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사우를 배웅하고 배낭을 둘러 메니..
어깨를 누르는 힘이 장난이 아닙니다.
오늘의 산행은 모종의 임무를 가지고 하는 산행입니다.
5월부터 낙동에 들 계획입니다.
야영위주로 진행을 할 계획을 세웠기에 미리 그 준비로 배낭의 무게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지난 번 구간에서 허기로 엽돈재로 구간을 마쳤기에 오늘은 식량도 난민 지원을 하여도 될 만큼 가지고 왔습니다.
도시락에 반찬..참외 3개. 그리고 간식으로 육포 1키로
쵸코바 몇개
얼음물 1리터. 마실 물 2리터.
마시지 않고 배낭 무게 시험용 물 5리터
물만 결국 8리터 입니다.
그리고 의류나 랜턴 구급낭 등..
오늘 반더는 주거쓰~
▲ 사냥
진천쪽은 땅~ 피융~
안성쪽은 땅~ 벌금~
▲ 들머리
들머리는 시멘트 임도길입니다.
글타고 계속 따르믄 마루금과는 더시 재회하지 않으니...
적당히 따르다가 숲으로 쓩~ 해야 합니다.
▲ 힘들오
오늘 비가 온다는디..오후부터
예상 강우량 5mm.
시작은 그리 흐리지 않고..바람은 쪼옴 싸늘하게 찬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그런디도..배낭의 무게로 이미 땀으로 목욕을하였습니다.
▲ 꿈길
올 봄은 그 흔하다는 꽃귀경도 몬하였는데..
옥정재에서 학씰하게 마루금에 오르자 등로 좌우로 진달래가 좌우로 정렬하여 지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오메~ 좋은거~
마루금 걸으며 끝내주는 호사를 누리다니..
▲ 차이
보기에는 직이는 마루금입니다.
좌우의 숲을 보노라면 점점이 수없이 박혀있는 벗꽃(???)들 땜시 숲들이 울긋불긋~ 이 아닌
가끔 토픽에 나오는 비싼 드레스에 박혀 있는 따이아 박힌 드레스 같습니다.
그란디..(요그서 그란디가 중요합니다)
보기는 무쟈게 좋겠지만..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비 오는 것..
첨에는 무재게 좋아했쥬..
그란디 말이쥬..
그란디..
그 임무땜시..그 임무땜시
배낭을 꾸리다가 우의를 빼놓고 넣지를 않았다는 것이
결정적 실수였지유..
그라니 쪼오올딱 비를 맞을 수 밖에 없었지유
즉 요즘 광고에 내오데유..
집 떠나믄 개고생이다
▲ 장고개
이곳도 원래 이름은 장고개 입니다.
이 구간은 장고개가 있는데 실은 두개의 장고개가 있는 것이지요.
요넘은 안성장고개로 불렸던 곳입니다.
안성쪽으로보면 고개의 흔적도 임도 수준으로 발달되어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까 비가 내리더니..5분을 버티지 못하고 그쳐 버렸습니다..
에효~
비가 더 오면 산행을 접으려 하였는데..
계속 산행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 Go~
그렇지만...그것은 비란 놈도 약아서..정찰대를 보낸 것이었는디..
▲ 철판 헬리포트
미군것이라는데..
아마 이곳에 헬기가 많이 내리는 모양입니다.
헬기장 주변의 풀들을 보면 헬기장 밖으로 풀들이 모두 누워서 자라고 있습니다.
그 만큼 헬기의 이착륙이 잦다는 것이겠지요
그런디..나한티는 그냥 좋은 전망대라는 개념만 있을 뿐이고~
그 개념은 날씨로 인하여 조망이 꽝~이라는 것이고..
▲ 지나온 마루금
헬기장에서 보믄 울매나 잘 보였을까요?
그란디 날씨가 욜케 방해를 하여 간신히 마루금의 흔적만 보일 뿐입니다.
하기사..비가 그쳐 준것만도 감지덕지인데...
▲ 무엇에 쓰는 것일까?
헬기장 나무에 매달린 것인디..
팥죽의 경단인가?
그럼 묵기만 하면 되는 것이네..
▲ 장고개
정맥 마루금에서 제일 많은 이름을 가진 고개가 장고개 일 것입니다.
그만큼 정맥 마루금은 우리네 일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마루금이지요.
인간의 문명은 강에서 시작하였지요
고대 문명이 4대강에서 시작하였지요
황하 문명이 황하강 유역에서
이집트 문명이 나일강유역에서
인더스 문명이 인더스강 유역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이듯이..
우리의 문화도 강을 주변으로 발달 하였지요
그 강을 발원시킨 것이 정맥이니까안..
정맥은 딥따~ 중요한디..
그 중요한 마루금을 생일 케잌 자르듯
이리 자르고 저리 자르고 하니..
▲ 알고 있을까?
모...일설에는 중앙 CC의 대표님 선친 유택이라는디..
걍...쉽게 초호화~ 묘역
글케 초호화로 맹글어 놓으믄 선친께서 그곳에서 더 호화스럽게 계실까아???
죽은자는 말이없다~
라는디..그래서 나아두 몰러~
▲ 직인다.
저 아래녘 마루름엔 야생화 만발인디..요그는 아즉이고
잔달래와 벚꽃만 피어 있는디..
요그 헬기장 주변에서 할매꽃을 보았습니다.
직인다~
그란디 이 할매는 젊어서 고생을 마이 한갑다
허리가 완전히 굽어 버렸으니..
▲ 일등 삼각점
이 삼각점은 평탄한 등로길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등인가????
중앙CC 집입도로를 좌측에 두고 마루금은 이어집니다.
모..좌측에 보이는 도로를 따라도 베티재에 같이 도착하니..
걷는 사람 맴이지요
▲ 이탈
이 도로를 좌로 두고 걷고 있노라니..
도로에 벚꽃이 만발이라 5m정도 발품을 팔아서 도로로 내려 왔습니다.
일케 마루금을 이탈하여 사징기로 한 방 박고 다시 마루금으로 오릅니다.
난 마루금파잉께로~
▲ 배티재(이티재)
요그로 내려 설라치믄 마루금에서 로프를 잡고 매려서야 합니다.
딥따 가파른 절개지를 내려야 하니깐요..
하늘을 봉께로..
아까 정찰대가 정찰을 하고 본대에 아즉 보고를 못 한 모양입니다.
아님 보고를 하였는데..점심 묵고 공격할라나???
그래서 저도 계속 걷기로 합니다.
아즉까정 물 한모금 마시지 않았으니..
물무게 8리터의 압박이..
그대로 어깨로 파고 듭니다.
그 넘의 낙똥이 뭔지~
바람은 강하게 매우 찬 바람을 불어 제끼고 있으니..산행하기에는 아주 좋습니다.
단 조망이..꽝~이지만..
▲ 끝내주는 S라인
S라인이 끈내주는 것이 아니라..잘라낸 마루금이 끝내줍니다
우찌 조롷게 잘라내었는지..
한마디로..
실력 조오타~
배티재에서는 서운산 오르시는 분들로 인하여 등로 관리가 잘 되었습니다.
▲ 무명 선교자 묘
라는디... 전 그냥 패쑤합니다.
몇 분이 잔차타고 획~ 하며 지나는디..
지 생명줄이 단축되는 것 같네요
▲ 또 꿈길
아까는 드레스에 박혀 있는 보석 맹키로 벚꽃이 직이더니..
이번에는 만산홍엽으로 직이기 시작합니다.
아~ 나는 오널 두번 뿅~ 간다.
▲ 화환
배티재에서 오름길을 쪼오끔 가파르게 치고는 성거산 가는 길은 고만고만한 오르길 몇번과
직이는 등로 상태를 완만하게 올라야 한다.
학씰하게 성거산은 육산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그 서운산가는 길..
아~ 듀금이다.
완전 꽃길잉께로..
▲ 울긋 불긋
완전 꽃놀이 모드인디..
날씨가 꾸리꾸리 하여서 그런가 산에 오르는 사람도 없고..
나 혼자 실컷 본다~
▲ 순한 마루금
서운산 가는 길
완만한 경사의 마루금
평탄한 마루금에 등로 상태 직입니다.
▲ 이름은 어디 간겨~
헐~ 이름은 웁꼬...고도 표시만..
몬가 바뀌었따아~
▲ 쓰라린 추억
이 곳까정 왔다믄...알바이쥐유..
서운산에서 헬기장 내려서기전에 좌틀인디...
난 그대로 쭈우욱~ 와 버렸다..
게다가 이 정자에 올라가서리..폼까지 잡으며 놀았응께로..
허벌나게 오름길을 올라 빠아꾸를 하였다
20여키로나 되는 배낭을 메고 가파른 오름길 올려 칠라니..
한마디로 폼 한번 잡은 댓가치고는
완전 듀금이었다
▲ 엽돈재
아까 알바한 곳에서 비가 왔으믄 정자에 눌러 앉아 있는 것인디..
다시 빠아꾸하여 마루금을 걷는디..
비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구라청에서 예상 강우량 5mm라꼬 하였는디..
이건 아니다..
무작시롭게 쏟아지고 있다.
게다가 바람은..완전 듀금이다..
허벌나게 걸었다.
배낭의 물을 모두 버리고 걷고 싶었지만..
그 버리는 시간에 더 걷는 것이..ㅠㅠ
그렇게 엽돈재에 내려서니..
진천군청 차량이 날머리에 서 있다.
그란디..두분..공무 수행중이란다..
차에 길게 누워서...공무 수행중이란다.
한 넘..함 일어나 나를 보더니..그대로 다시 누워 버린다.
개자슥~ 이란 욕이 튀어 나온다.
비를 피하라꼬 태워주믄 누가 모라나..
아~ 운제 올라꼬 부른 택시는 오지를 않고..
비를 피할 곳도 없는 엽돈재에서
오뉴월 개떨듯 떨으며 그 비를 맞고 있었다.
택시에 올라 입장에 내렸다. 택시비 콜비 포함 9700원
우선 옷도 갈아 입어야 하고..
또한 추위를 잊을라믄 우선 목욕탕으로 향하였다
그렇게 목욕탕에 들어 가서 싸우나에 들어 가다가 또 일을 벌였다
싸우나 문을 열고 들어 가는 순간..억쑤로 뜨거운 열기에 멈칫하는 순간
문이 닫히면서..발 뒷꿈치를 그대로 가격을 하였다.
순간 피가 줄줄 흐른다.
날카로운 알미늄 날카로운 문틀에 뒷꿈치가 찢어졌다.
나가니깐...바로 밴드를 내어 준다.
가끔 있다고 한다.
또 욕이 나온다.
그럼 진즉에 문을 바꾸등가..
문을 자동으로 닫히게 할라꼬 문에 스프링을 달아 놓았으니..
아~ 혈압 팍팍 오르네..
졸지에 내일과 모레의 산행 계획은 날아갔다.
덕분에 이틀간 실업자가 되었고..
글케 몸 녹이고..옷을 갈아 입고..
입장에서 성환 전철역으로 가는 버스는 매시 50분에 있다고 하여 그 버스편으로 성환 전철역에 오니..
천안에서 용산행 급행 전철이 방금 출발하여 그 급행 전철로 바로 쓩~
졸지에 3일의 산행 계획이 이리도 무산되고..
남은 이틀은 졸지에 실업자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낙똥길 체력 테스트는 대체로 합격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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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했읍니다. 무거운거 지고 이고 들고 메고 헐~~ 반더님 산행기에 태클을 겁니다 ㅋㅋㅋ 참고하시기를~ 1,산행기마다 언제 산행을 했는지 산행날자는 없고 시간만 있다? ~ 아마도 언제했는지 다 몰라도 된다 ㅎㅎㅎ 2. 낙동길 갈때 반더님은 샤워하고 목욕할물까지 다지고 다닌다 ? ~ 2박3일을 가도 물많이먹는 두루도 5리터면 뒤집어 쓰더라 ~ 두루같으면 식량은 되도록 물 많이 안쓰는걸로 준비한다. 3. 과일은 되도록 무거운걸로 준비한다? ~ 하고많은 과일중에 제일무거운 참외로 그것도 3개씩이나 ~ 두루같으면 가볍고 수분많은 오이3개로 해결한다. 4.의류는 매일갈아입을걸로 준비한다. 이렇다는 참고말씀입니다.
5리터는?????나중에.야영할배낭 무게라는듯????
만사님 잘아는데요 궨히 반더님 염장지를라꼬 쓴말입니다. 낙동으로 이사갈라꼬 저리 짐준비하는듯합니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