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일런스(Silence)”에 나타난 기독교 박해 (2부)
3. 원작 “침묵(沈黙)”에 나타난 '신'의 침묵
영화의 모티브가 된 작품 “침묵”을 통해 작가 ‘엔도’는 신의 침묵에서 일본인이 갖는 특수성을 ‘초월’과 ‘침묵’이라는 키워드로 질문하고 있다. 여기서 침묵은 초월적인 ‘신의 침묵’일 수도 있고, 초월에 대한 ‘일본인의 침묵’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약함이라는 모티브가 관련되어 있는데 ‘약함’은 부조리한 세계의 악과 고통에 침묵하는 초월적인 ‘신의 약함’과 그 초월을 견디지 못하는 ‘일본인의 약함’이 숨어있다. 작품에서 ‘기치지로’야말로 이런 일본인의 취약성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침묵”이란 원작 안에서도 ‘로드리게스’는 감동적이고 웅장한 순교 장면을 상상했겠으나 성화를 밟은 후에, 순교의 지극히 단조로운 일상성을 목격하고 “머지않아 자신이 죽음을 당하는 날에도 세상은 지금과 조금도 다름없이 아무 관계없이 흘러갈 것이며, 자신이 죽은 뒤에도 매미는 울고 파리도 윙윙 날아다니겠지.”라 말하고 있다.
“순교자들을 집어삼킨 바다, 곧 아무 감동 없이 시체를 씻어 삼키는 바다, 항상 변함없이 펼쳐져 있는 침묵의 바다” 앞에서 ‘로드리게스’ 신부는 하느님도 저 바다와 마찬가지로 침묵만 지키고 있다고 말하면서 “만약 하느님이 없다면 이 바다의 단조로움과 그 무서운 무감동을 어떻게 견디어낼 것인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작가 ‘엔도’는 어느 좌담회에서 “신은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애를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침묵’이라고 하는 표충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 속에 ‘신의 속삭임이 있다’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결국 좌담회를 통해 엔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신은 외형상으로는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인간들의 인생을 통해서 말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순교자와는 달리 연약함 때문에 배교했다고 하는 사실이 카톨릭 역사의 오점으로 남아 역사 속에 묻혀있으니 그들의 침묵의 음성을 들려주고 그들을 복권시킨다고 하는 엔도 작가로서의 생각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침묵”의 세계에 있어서의 침묵은 “외형상으로는 침묵처럼 보이나 실은 인간의 인생을 통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므로 침묵이라 할 수 없고,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해 범한 과오는 역사 속에 묻혀 말이 없으므로, 이는 복권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오래전 필자가 찾았던 나가사키에는 “침묵”의 작가 ‘엔도 문학관’이 세워져 있고 그 맞은편 작은 언덕위에는 ‘침묵의 비’가 새워져 있다. 한적한 마을과 눈앞에 광활히 펼쳐진 바닷가의 모습. 그곳의 넓고 푸른 바다는 너무나 평온해 보였지만 박해 당시에는 영화에서처럼 해안에 기둥을 세워 신도들을 묶어놓고 수형이 집행 되었던 곳이었다 하니 고통의 바다가 아닐 수 없다. 영화의 장면마다의 신앙인들의 순교로 인해 피로 물들었을 아픔을 품은 채 그저 잔잔하기만 한 저 푸른 바다가 침묵으로 던지는 수많은 질문들에 마음이 아파왔다.
‘침묵의 비’에 새겨진 문구이다.
“인간이 이렇게도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 푸르옵니다.”
첫댓글 영화 한 편 즐감하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