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바댜서는 구약성경 중에서 가장 짧은 성경입니다.
1장으로 되어 있구요...한장도...21절까지만 있는 책입니다.
신학을 다닐 때 어떤 전도사님께서 우스개 소리로 자기는 구약성경 중 한권을
하루에 100독을 했다고 했습니다. 사실 하루에 백독을 하기란 아무리 짧아도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무슨 성경을 100독했냐고 물어보니...오바댜서라는 겁니다....
그래서 겨우 한 장짜리를 100독...그러면서 서로 한바탕 웃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 전도사님과 웃기는 했지만 돌아와서...혼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실 1장이지만 하루에 100독이 쉽지 않습니다.
100*21=2100절입니다...2100절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하루에 다 읽었다는 것인데 이게 쉬운 것일까요?
하루에 그렇게만 읽는다면 성경전체가 31200절 조금 안됩니다. 31171절이니까...
31200절 잡고...15일이면 1독을 하니까...엄청난 것입니다.
그러면 한달이면 2독...일년이면 성경을 24독을 하는거니까...엄청난 것입니다.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것은 오바댜서를 하루에 100독 쉽지 않다는 겁니다.
오바댜를 들어가기 전에...오바댜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성경이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바댜의 뜻은 여호와의 종, 여호와를 예배하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그의 부모님이 특별한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오바댜가 태어났을 때...자기가 자기 이름을 나는 오바댜 할 거야...그래서 지은 것이 아닐 것이니
당연히 부모님께서 지어 그 이름을 오바댜라고 불렀을 것입니다.
너는 여호와의 종이 되라...여호와를 예배하는 자가 되라...멋지쟎아요?
왜 여호와를 예배하는 자가 되라고 했을까요?
아마도 오바댜의 아버지가 예배의 중요성을 깨달은 분이실거라고 추측합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배에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기독교 방송 캠페인으로 흘러나온 구호가...
예배에 성공하면 믿음에 성공하고 예배에 실패하면 믿음에 실패한다...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어디에 승부수를 띄워야 하느냐...예배에 승부수를 띄워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제일 안타까운 것은 예배를 우습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성도는 예배에 인생의 승부수를 걸어야 합니다.
예배에 성공하면 믿음에 성공하고요..믿음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합니다.
오바댜라는 이름에서 예배를 귀중히 여긴 오바댜의 아버지 신앙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 자기 아들이 잘되는 것을 싫어하겠습니까?
모든 세상 부모의 한결같은 소망은 자식하나 잘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잘되는 길이 뭡니까? 그것이 참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참 믿음의 사람이 되는 길이 뭡니까? 예배를 귀중히 여기는 자가 되는 겁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해야할 일이 많고 많겠지만...
그중에 끝까지 포기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면...
자식에게 참 예배자가 되기를 권고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시대를 보면서 교회가 너무 세속화 되어 위기를 느낍니다....
교회가 세속화가 되면...3무를 몰고 올까 위기를 느낍니다....3무란 3가지가 없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정말 믿음있는 사람이 있을까? 참 예배자가 있을까?
끝까지 기도하고 기도하는 자가 있을까? 없을까봐 위기를 느낍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진실한 믿음...마음을 다해 예배하는 자...끝까지 쉬지 아니하고 기도하는 자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라는 걱정과 위기를 느낀다는 겁니다.
어제 새벽에 오바댜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오바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성경은 없습니다.
그의 출신이 왕족인지...제사장 계열인지...아니면 평민이었는지 무엇인지 알수가 없구요
그의 직업도 그가 결혼을 한 선지자인지 아닌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바댜에 대해서 알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의 이름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신앙인이요..오바댜는 그의 이름대로 쓰임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오바댜의 뜻은 여호와의 종, 여호와를 예배하는 자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오바댜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선지자로 세움을 받았다면
그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귀히 여기는 자로 산다면...나타나는 삶이 무엇이냐? 예배하는 자라는 겁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그는 가는 곳곳마다 뭐를 쌓았다..제단을 쌓았다고 합니다.
제단을 쌓았다...그것을 오늘 우리에게 대입시켜 본다면 예배하였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고...하나님을 높여 드리고...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인간의 행위가 무엇이냐하면...하나님앞에 나와 예배함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두 번째 오바댜는 기도하는 자였다는 겁니다.
계시를 받고...환상을 보고...묵시를 받은 사람중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가 오전 예배시간에 다니엘서를 배우고 있지만...다니엘서 많은 계시들이 나타납니다.
그것을 언제 받았습니까? 다니엘이 80이 되어도...90이 되어도...
그는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그 나이에도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여러 가지 계시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오바댜를 불러서 말씀을 주시고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바댜는 어느 나라에서 활동하던 선지자냐?
오늘 성경을 보면 에돔족속에 대해서 받은 묵시입니다.
에돔족속은 누구의 후손입니까? 에서의 후손입니다.
이 에서의 후손이 자리를 잡고 살고 있었던 곳이 어딥니까? 세일산을 중심한 땅입니다.
그렇다면 오바댜가 활동하고 있는 주 사역지가 어디일까요?
보통 일반적인 선지자들은 자기가 쳐서 외치는 그 곳에서 선지자 사역을 감당합니다.
예를 들어서 엘리야와 엘리사는 어느 나라를 위하여 파송된 선지자입니까?
당연히 북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북이스라엘에 대해서 예언케 하신 선지자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아모스 선지자는 어디에 파송된 선지자입니까? 북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시면 벧엘과 단과 브엘세바와 길갈에 가지마라고 하였쟎아요
벧엘과 단과 브엘세바와 길갈은 어떤 곳이라고 했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더 가봐야하는데 하나님은 왜 왜 그곳에 가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영적으로는 그곳이 성지인데...하나님이 역사하신 곳인데...
남북이스라엘이 나누어지면서...북이스라엘이 차지한 땅에는
그 영적 성지마다...우상의 단을 세워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고 우상을 섬기도록 했기 때문이라고0
벧엘과 단과 브엘세바와 길갈에 가지 말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에 가서 우상을 살아있는 신이라고 하고..거기에 제사를 지내고 제사만 아니라...
그들이 우상의 제단에 맹세...서원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바댜는 어디서 에돔족속을 향한 묵시를 받았다는 겁니까?
남유다에게 묵시를 받았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남유다 선지자가 어떻게 에돔족속에 대해서 경고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느냐
당시에 에돔족속이 세일산을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세일산은 당시에 요새였습니다...적군들이 쳐들어와도 에돔족속은 건드리지 못하는 겁니다.
왜 그곳은 요새로 되어 있어서 다른 나라가 에돔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이러니까...에돔족속이 당시에 엄청 교만하였던 것입니다.
얼마나 교만하냐 하면 3절에 보시면...이렇게 스스로 고백합니다.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바위 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산속 요새에서 사는 이들이 교만하니까...뭐라고 하는 겁니까?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라고 한다는 겁니다.
이는 교만이 머리끝까지 넘쳐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바댜서 단락을 나누어 봅시다...단락은 세 단락으로 나눕니다.
1단락 / 1-9 / 에서의 산에 있는 자는 멸절되리라(9절끝절)
2단락 / 10-14 /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악으로 인하여(10상)
3단락 / 15-21 /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15상)
이렇게 단락을 나누고 보면 오바댜서는 어떤 책인가가 보입니다.
오바댜가 교만한 에돔만 멸하겠다고 하는 책이 아닙니다.
만약에 오바댜서를 그렇게 본다면...오바댜는 속좁은 국수주의자일 뿐입니다.
교만한 에돔을 심판함은 심판의 시작이요..전주곡일 뿐입니다.
교만한 에돔을 심판하겠다에서 마지막 단락에서는 교만한 애굽 앗스르 바벨론등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만국을 심판하겠다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에돔과 애굽과 앗스르와 바벨론만 심판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수요일 저녁에 배우고 있는 열왕기상하를 보면..북이스라엘도...남유다도 심판하시는 하나님0
하나님을 대적하고...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고...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무리들은
결국은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씀하는 핵심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겁니다.
호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우리가 어제 새벽에 나눈 말씀이 오바댜서는 어느 나라를 중심으로 선포한 말씀이냐?
그것은 에돔족속을 중심으로 선포된 말씀이다.
그렇다면 오바댜는 어느나라 어디서 활동한 선지자냐?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자기가 말씀을 선포하는 나라에서 활동을 하였지만
특이하게 오바댜는 남유다에서 에돔족속에 내릴
하나님의 심판을 내다보고 선포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에돔족속이 왜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당하게 되느냐...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나라를 대적하고 괴롭히고...이방나라의 침략을 도운 죄입니다.
그렇다면 오바댜서가 오직 에돔의 심판만 말씀하고 있느냐 아니라고 했습니다.
세계열방의 심판까지 선포하고 있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곧 에돔의 심판은 심판의 시작에 불과할 뿐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고...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이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결국은 개인도 나라도 심판의 대상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핵심은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겁니다...돌아오는 길이 사는 길이라는 겁니다
돌아오면...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그것을 어디서 우리가 알 수 있다고 했습니까? 단락 나눔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1단락의 중심점은 “내가 너를 끌어 내리리라”에 있습니다.
이 말씀이 4절에 있습니다.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교만하게 스스로 높은 자리에 올라간 자를 하나님은 끌어 내리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끌어내리시겠다는 이가 누구입니까? 누구를 끌어 내리리시겠다는 겁니까?
지금까지 설명드린 에돔족속입니다.
어제 새벽에도 말씀을 드렸지만...에돔족속은 3절에 보시면...
세일산 산악지대를 요새로 만들어 난공불락의 진지를 구축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스스로 고백하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 내리겠느냐...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 내리리라...고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끌어내리신다는 겁니다.
1. 오바댜의 묵시라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소식을 들었나니 곧 사자가 나라들 가운데에
보내심을 받고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날지어다 우리가 일어나서 그와 싸우자 하는 것이니라
누구를 끌어내리신다는 것입니까? 에돔입니다.
이 에돔에 대한 심판 메시지는 오바댜만 선포한게 아닙니다.
예레미야선지자도 렘49:7-22 / 에스겔 선지자도 겔25:12, 35:5 등을 통해서도 선포하신 말씀0
그렇다면 왜 이렇게 에돔족속을 향한 심판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을까요?
실제로 세상속에 에돔족속만 교만합니까? 아닙니다. 많은 나라들이 교만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선지자를 세워서 에돔족속을 하나님이 집중적으로 말씀하게 하셨을까요?
이 세상에는 많은 민족 많은 나라...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영적논리로 보면 딱 두 분류 뿐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길로 가느냐 에서의 길로 가느냐는 겁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훨씬 야곱이 죄인입니다...죄인이지만 야곱은 하나님을 귀히 여기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장자권을 귀히 여기고...하나님앞에 엎드리기를 잘합니다.
반면에 에서를 보면 에서가 훨씬 남자답습니다.
세상 사람으로 보면 훨씬 신사적입니다...경상도 말로 얍삽하지도 않습니다. 좀 과묵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그는 하나님을 귀히 여기지도 않았고
어제 새벽에 에돔족속이 어떤 족속인가에 대해서 나누었더랬습니다.
에돔은 에서의 후손입니다...그리고 에서와 형제가 동생 야곱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중에 하나님은 왜 야곱을 선택하시고 에서를 버리셨느냐...
그것은 하나님의 관점이 사람의 관점과 다르다고 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야곱보다 에서가 훨씬 더 멋진 사람이고 더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야곱은 당연히 버림 받아 마땅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에서가 아닌 야곱을 더 사랑하셨다는 겁니다.
그 이유가 뭐냐? 야곱이 남의 발 뒷꿈치를 잡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는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앞에 엎드렸습니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다 죄인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죄인들중에 하나님이 외면할 수 없는 죄인이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앞으로 담대히 나아와 기도하는 죄인을 하나님이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이 은혜주시지 아니하시면...
하나님이 축복하지 아니하면...놓치 않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제가 한번씩 말씀드리는 것이 세상에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지만
이 죄인을 나누어 보면 두 종류의 죄인이 있습니다.
죄인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죄인과...
죄인이지만...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아니하는 죄인이 있을뿐입니다.
에서는 한번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아니했습니다.
거기다 에서는 야곱으로부터 당한 것을 용서한 것 같지만 용서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후손들도 야곱에게 빼앗긴 장자권으로 인하여...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존재로 살아왔습니다.
여기에 에돔족속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왜 자기 조상들이 하나님앞에 버림을 받았는가를 알았다면...
은혜의 보좌로...하나님앞으로...나아와 은혜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 길은 가지 아니하고 도리어 야곱의 후손을 끝까지 괴롭히는 에돔족속이 되어서
이는 곧 하나님을 대적하고...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하는 존재가 되어서 심판을 받게 되었다는 겁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사람을 보시되...두문...두 길 중에서...누구의 길을 가느냐를 보십니다.
에서의 길을 가느냐...야곱의 길을 가느냐
은혜를 구하는 자로 사느냐....은혜를 무시하는 자로 사느냐...
은혜를 구한다면 긍휼을 대상이지만...은혜를 무시한다면 심판의 대상입니다.
그때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지만...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입니다.
데려감을 당한 사람에는 영생이 기다리지만....
버려둠을 당한 사람에게는 영벌이 기다리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두 길...두 문중에서 어느 길로...어느 문으로 들어가시고자 하십니까?
그렇다면 에돔 족속에게 어떤 심판이 있다는 겁니까? 5-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도둑이 네게 이르렀으며 강도가 밤중에 네게 이르렀을지라도
만족할 만큼 훔치면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혹시 포도를 따는 자가 네게 이르렀을지라도
그것을 얼마쯤 남기지 아니하였겠느냐 네가 어찌 그리 망하였는고
에서가 어찌 그리 수탈되었으며 그 감춘 보물이 어찌 그리 빼앗겼는고
6절부터 보시면...에서가 수탈되었다...감추인 보물까지 다 빼앗겼다는 겁니다.
무슨 말입니까? 남김 없이 다 틀렸다는 겁니다.
그것을 5절에서 누구에게 다 틀렸다는 것이냐 하면...도둑과 강도에게...
그런데 5절을 자세히 보시면....도둑이나 강도가 왔더라도
그들이 원하는 만큼....아니면...아주 중요한 한 두 가지만 훔쳐간다는 겁니다.
혹 포도밭에 들어와 포도를 훔쳐가는 도적이나...강도가 있을지라도...
하룻밤에 포도를 싹 다 따가는 도둑이나 강도가 있겠느냐는 겁니다...
그런 도둑과 강도는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에돔족속은 남김없이 수탈되고...숨긴 것 까지도 다 드러나 빼앗길 것이라는 겁니다.
이는 에돔족속에게 심판이 임하시게 되면...철저한 심판이 임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도둑과 강도는 무엇을 말씀하기 위하여 도둑과 강도를 예로 들고 있습니까?
도둑과 강도는 내가 그들을 맞게 될 때와 시간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예로 든 것입니다.
맞습니다...우리는 언제 도둑이 들어오고...언제 강도만난 자가 될지...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 때와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와 시간을 누가 알 수 있습니까?
지금까지 심판이 있다 심판이 있다..
우리나라의 사이비 이단 예언가들이 수도 없이 예언을 했지만 그들의 예언이 다 틀리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도둑같이 강도같이 임하여서 에돔을 심판하실 그분이 누구시냐? 하나님이십니다.
신약성경으로 보시면...예수그리스도십니다...예수님이 오실 때 도둑같이 오시겠다고 합니다.
이는 곧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대 심판의 때를 말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에돔족속을 심판하실 때...도둑과 강도를 말합니다...
그러면서 남김없이 숨은 것 까지 다 드러나게 됨을 말합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에서의 심판이 대심판의 예표라는 겁니다.
마치 애굽의 바로와 그 신하들이..그 백성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켜 주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열가지 재앙중...
마지막 재앙이 장자의 죽음이라는 재앙을 내리시게 됩니다.
장자의 죽음이 뭡니까? 대표자 원리의 예표입니다.
장자가 죽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다 죽는다는 경고입니다.
에서는 하나님을 떠난 자...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의 대표자입니다...
그런 에서의 후손이 당하는 철저한 심판은...마지막 심판의...예표이자 대표자 원리입니다.
끝까지 야곱처럼 은혜의 보좌로 돌아오라...
돌아오지 아니하고...끝까지 에서의 길을 가면...결국은 철저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