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귀공소 설정
북제주군의 애월읍 지역에는 1889년 제주 본당이 설립된 직후에 이미 복음이 전파되어 애월읍 상귀리에 거주하던 김재환이 입교하였으며, 1909년경에는 애월의 엄장리(구엄리. 애월읍 嚴莊里)에도 7명의 신자가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1901년의 제주 신축 교안 때 그가 순교하고, 그의 아들 김여송도 1949년의 제주 4-3사건 때 죽음을 당하면서 복음이 끊기게 되었다. 그러다가 1950년에는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애월 공소'가 설립되었으며, 1959년 8월28일에는 하귀 ·곽지 ·애월지역의 사목이 제주 본당(현 제주 중앙 본당)으로부터 한림 본당으로 이관됨과 동시에 애월 공소집의 봉헌식이 있었다, 이어 한림 본당의 제2대 주임 은다니엘(D.O' Gorman) 신부는 1961년 말에 '곽지 공소'(애월읍 곽지리), 1962년경에는 하귀 공소'를 설정하였다.
당시 하귀 교회의 설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한림 본당에서 파견된 김화춘(마리아)회장이었다. 김 회장은 그때 하귀리 1698번지의 가정집 방 하나를 임대하여 공소집으로 삼고 6개월 동안 활동하였으며 재3대 전교 회장 안금란(수산나)은 초가집 한 채(하귀리 1875번지)를 임대하여 공소집으로 삼고 공소 예절을 갖기 시작하였다.
1964년 여름에는 안 회장이 공소를 뗘나면서 잠시 고영국(바오로)이 공소를 돌보았고, 1966턴에는 애월 공소의 정실(베드로)-김만화(막달레나)부부가 제4대 전교회장을 맡아 하귀로 이주하였다.
1966년에는 한림 본당의 제3대 주임 길 요셉(J.Crofts) 신부가 하귀리 1894번지의 부지 258평을 매입한 뒤, 1968년에 30평의 공소집(벽돌 슬레이트, 성당. 제의실. 관리인 숙소)을 완공하여 축복식을 가졌다- 이후 하귀 지역의 전교활동은 더욱 활성화되어 갔으며, 1970년 11월 9일에는 광양본당이 신설되면서 공소(신자 수: 약 30명)가 새 본당으로 이관되었다.
이어 1976년에는 제5대 전교 회장으로 강홍전(안드레아)이 부임하였고, 1978년에는 고등학생들의 신심단체인 '예수 성심회(회장 : 고영은 자카리아)가, 1979년에는 힉쌩회(회장 : 박지홍 그레고리오)가 조직되었다. 이처럼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에는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공소가 성장하계 되었다.
2. 하귀공소 성장
1984년 2월 1일자로 신졔주 본당 민 파트리치오(P.Murphy, 민수왕) 신부가 계2대 주임으로 부임한 뒤인 2월 9일자로 하귀 공소 관할권이 광양 본당에서 신제주 본당으로 이관되었다(공소 신자수 97명). 이에 앞서 하귀 공소의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은 1982년 9월 5일 '거룩하신 어머니' 쁘레시디움(단장 : 전경암 라파엘)을 창단하였고(1984년 해산), 1983년 3월 3일애는 공소 인근의 밭 약688평을 매입하였다. 신졔주 본당으로 이관된 후 공소 청년들은 공소의 활성화를 위해 '사도회'(회장 : 박지흥 그레고리오)를 조직하였다. 이어 1987년 1월애 강홍전(안드레아) 회장이 사임하면서 1988년 2월 15일에 이공희(마리 요안나)가 쟤6대 전교 회장으로 부임하였고, 그 무렵 여성 신심단쳬인 '성모 성심회’(회장.: 김영아 율리아)가 결성되었다. 공소에서 여름신앙 학교를 시작한 것도 1988년부터였다. 또 같은 해 12월 1일에는 ‘신자들의 도움’ 쁘레시디움(단장 : 김승호 암브로시오)이 창단되었다. 1989년 5월에는 공소 보수공사를 시작하여 11월에 공사를 마치고 14처상과 야외 성모상을 안치한 뒤 김창렬(바오로)주교와 본당 주임 고승헌(마르코) 신부의 집전으로 축복식을 가졌다.
이후 하귀 공소는 활성화의 기반을 마련하고 성인 예비 신자반을 시작하였고, 구역을 2개 반으로 편성하였으며, 1991년 2월 28일에는 신제주 본당의 이시우(안드례아)초대 보좌 신부를 맞이하여 공소 운영위원회(위원장 : 정창조 도미니코사비오)를 조직하였다. 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자발적인 봉헌금으로 화장실과 창고를 새로 짓고, 1993년 2월 19일 졔2대 보좌 양오왕(요한) 신부를 맞이하여 평신도 사도직 헙의회(회장 :하재우 토마스)를 조직하였으며』 이를 증심으로 유아실 겸 회합실을 마련하고자 공소 성당 확장 공사 및 부속 시설들을 보수 하였다. 이에 앞서 1991년 10월 4일에는 제6대 전교회장 이공희(마리 요안나)가 김녕 공소로 전임되면서 조영숙(젬마)가 계7대 전교회장으로 부임하였다.
3. 성전 신축과 본당승격
1993년에 공소 평협을 조직하면서 하귀 공소 신자들은 본격적으로 본당 승격을 준비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이 해 ‘하상 바오로회'(회장 : 이의형 바오로)가 결성되었고, 1994년 1월에는 '안나회’ (회장 : 변정애 바울리나)가 성모 성심회에서 분리 결성되었으며, 9월 30일에는 조영숙 전교 회 장이 전임되었다. 또 신자들은 1995년부터 수녀들의 공소 파견에 노력하는 한편 하재우 평협 회장을 중심으로 하여 1995년 10월 10일에 '하귀 공소 성전 신축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렇게 성전 신축 운동이 전개되어 가던 중 1996년 2월 9일에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소속 수녀 2명이 공소 에 팍견되었다. 이에 앞서 1995년 2월 15일에는 김석주(베드로) 신부가 신제주 본당의 제3대 보좌로 부임하여 공소 신자들을 돌보게 되었다. 신자들은 김 신부와 함께 전국 각 본당을 돌아다니며 신축 기금을 마련한 뒤, 1996년 9월 1일에는 교구 총대리 허승조(바오로) 신부의 집전으로 신축 기공식을 가졌다. 이 신축 공사는 제4대 보좌 강형민(다니엘) 신부와 졔5대 보좌 현요안(요한) 신부 재임기로 이어졌고, 1997년 7월 6일에는 제5대 주임 이대원(미카엘) 신부의 집전으로 새 성전에서 첫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1998년 1월 25일에는 마침내 하귀 공소가 신제주 본당에서 분리되어 '하귀 본당’으로 승격됨과 동시에 고남일(요셉)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고남일 신부는 1998년 2월 4일 본당에 부임한 뒤 신축 공사 마무리 작업에 노력하여 7월 18일에는 김창렬 주교의 집전으로 본당 설립 감사 미사 및 신축 성전과 회합실 · 교리실 봉헌식을 갖게 되었다. 신축 성전은 연건평 203평(지하 1층, 지상 1층)에 성당 103평, 회합실 및 교리실 등 100평이다. 성전 봉헌식을 마친 본당 신자들은 &월 15일에 '성 빈찬시오 아 바울로회'(회장 : 원춘화 요셉피나)를 조직하는 등 본당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였다. 본당의 신자수는 설립 당시에 412명이었으나, 2003년 12월말 현재 285세대 825명으로 증가하였다.
4. 본당 시설현황
총 대지 : 946평
> 성당 : 103평 (현대식 철근 콘크리트,지하 1층·지상1층)
> 사제관 : 51평
> 수녀원 : 31평
> 회합실 등 : 100평 (지하1층 : 교리실 , 회합실 2, 강당, 주장)
5. 관할구역
북제주군 하귀 1-2리. 상귀리, 유수암리, 고성리, 장전리, 소길리, 수산리, 신엄리, 중엉리,
구엄리. 용흥리, 상가리, 하가리
첫댓글 연혁은 역사이니 계속 업데이트 부탁합니다. 역사에 남을겁니다. 강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