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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노경미 경기잡가 포럼 원문보기 글쓴이: 송재만
국악지도의 목표를 제대로 알고 방법론을 개발해야(최종민의 국악컬럼에서)
Ⅰ. 들어가는 말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는 민요를 교재로 한 국악단원이 많이 들어가 있다. 교사들은 이런 단원을 설정한 이유와 지도목표를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먼저 이런 문제에 대한 3가지 태도를 생각해 보자.
첫째 기존의 음악교육 목적과 방법론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 : 서양음악 중심으로 음악교육이 이루어졌던 종래의 방법에 한국민요 단원 몇 개를 추가하여 가르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인데 이것은 올바른 생각이 아니다.
두 번째 포괄적 음악교육의 방법론을 도입하여 한국민요를 여러 나라 민요의 하나쯤으로 생각하고 개념접근법에 의해 지도하는 방법인데 이것도 다민족 국가인 미국의 형편에서는 좋은 방법이지만 우리에게는 적당치 않다.
세 번째 한국민요를 통해 한국음악의 음악언어를 가르치는 방법인데 이것이 음악의 모국어를 가르치는 우리 음악교육의 본래적인 목표에 합당한 것이다.
Ⅱ. 한국문화를 가르치지 않은 식민지시대의 교육
우리민족은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을 잘 하는 민족이다. 모심을 때도 노래하며 모심고 김 맬 때도 역시 노래하며 김을 맸다. 생활의 갈피갈피에 노래와 풍물이 있고 여유롭게 풍류를 즐기며 살았다. 궁중음악은 일찍부터 발달했고 궁중악사의 수도 많았다. 민속에도 굿에 종사하는 음악가나 기생·광대 같은 전문 예능인들이 많아 다양하고 수준 높은 음악이 발달했었다. 이런 우리나라에 일제강점기가 되면 소학교·중학교·대학교를 세워 현재로 이어지는 학교교육을 시작하게 된다. 일제는 식민지인을 양성하기 위해 우리역사는 왜곡해 가르치고 우리문화는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야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한국역사와 문화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음악은 문화의 한 부분이고 문화란 이 땅에서 자생한 고유문화가 계속 현재화하며 형성된 전통문화와 외부에서 들어와 한국화한 외래문화로 되어있는데 일제는 우리 전통문화는 교육하지 않고 외래문화로 교육했다는 말이다. 그 교육의 효과는 해방 후에 잘 나타나 계속 전통문화를 외면하는 문화교육을 하게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문화가 전통문화와 외래문화로 되어있다면 그 두 가지를 균형 있게 가르쳐야 한국교육이 바로 설 것인데 아직도 전통문화 쪽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정책을 펴고 있다. 전통문화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에 대해 반성을 해 본적이 없다.
내가 경험한 바로 한국의 교육 정책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교육이란 교사와 학생이 두 주체이다. 전통시대 우리네의 교육은 교사 중심이었다. 헌데 내가 사범학교를 다니던 ‘50년대에는 존듀이의 이론과 같이 학생중심으로 교육하도록 가르쳤다. ‘61년 소련이 스프트닉이란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자 미국교육은 급히 방향을 선회하여 수월성을 높이는 교사중심의 교육을 발전시키게 된다. 내가 교육대학 교수를 하던 시절에는 피아제나 브루너 같은 학자들의 이론이 유행하고 완전학습이론까지 소개되어 교육개발원을 만들게 된다. ’90년대에 대두된 것은 21세기가 정보화시대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에 창의성 있는 개인을 기르기 위해서는 학생중심 교육으로 돌아가야 하고 획일적인 교육보다는 다양성을 살린 열린교육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이런 추세의 변화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의 교육내용과 방법에 우리네의 전통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것에 대해 반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Ⅲ. 서양의 음악언어를 가르쳐 온 우리나라 음악교육
음악언어란 말을 바탕으로 자연스레 발달하는 것이다. 말이 다르면 음악언어가 다르게 발달한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지방에 따라 사투리가 다르면 노래의 토리가 달라진다. 음악이란 두 글자를 광주 학생들은 “으마아악”하고 발음하고 마산학생들은 “어막”하고 발음한다. 그러면 그 만큼 그 지역의 노래도 다르게 발달한다. 실제 전라도의 아리랑인 진도아리랑은 “문겨엉 새재애느은 웬 고오오갠가”와 같은 식으로 하지만 경상도의 밀양아리랑은 “날 쫌보소오 날 쫌 보소오”와 같이 노래한다. 두 노래와 그 지방 말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 안에서도 지방에 따른 음악의 특징이 서로 다르다. 같은 식으로 생각하면 인도음악과 우리음악이 다른 것도 두 나라의 말이 다른 것만큼 다른 것이고 영국민요와 한국 민요가 다른 것도 두 나라의 말이 다른 것만큼 다를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것을 잘 정의해 놓은 것이 15세기에 만들어 놓은 악학궤범에 있다. 歌所以永言而和於律 이라는 구절이다. 노래는 말을 읊조려서 음율에 조화되게 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노래(歌)’라는 말 대신 ‘영언(永言)’이란 말을 쓰기도 했다. 이처럼 말과 노래는 밀접한 관계이다. 노래의 외연을 확대하여 문화라는 말로 바꾸면 말과 문화도 밀접한 관계가 되고 일반언어와 문화언어도 밀접한 관계가 된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기 때문에 각국이 문화언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는 아직도 음악의 외국어를 가르치고 있으니 말이다.
1840년 유럽에서는 동유럽의 신생국들도 의무교육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다. 유럽의 의무교육에서 중요하게 설정한 과목은 모국어와 음악의 모국어였다. 각 나라는 음악의 모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자기나라 민요를 교재로 썼다. 헌데 헝가리의 경우 몇 백년간 독일의 식민지로 있었기 때문에 독일음악을 배제하고 가르치려고 하니 교재를 마련할 수 없었다. 많은 교사들은 독일민요 아니면서 헝가리민요도 아닌 본인들이 작곡한 노래를 교실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학생들도 음악시간에 그런 노래들을 배우기는 하는데 밖에서 놀 때는 그런 노래를 하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한참 흘러간 다음 헝가리에 졸단코다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벽지 산골을 다니며 민요를 채집하여 남성합창으로 편곡한 것을 발표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 민요를 듣고 이것이 진짜 헝가리 민요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국가에서는 코다이에게 음악교육연구소를 만들어 주었고 코다이는 제자들과 계속 작업하며 음악교육에 사용할 민요교재를 개발하여 600곡의 민요교재를 완성하게 된다. 헝가리는 독일음악과 다른 헝가리민요를 가르치면서 음악교육의 노하우를 축적하여 20세기가 되면 유럽에서 음악교육이 발달한 음악교육의 선진국이 되었고 바르토크 같은 작곡가가 출현하여 헝가리음악의 위상을 높였다.
한국은 아직도 음악의 모국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네 음악교육은 영국·미국·독일·이태리 네 나라의 교재를 가져와 그 나라의 교과서에 있는 민요 중 몇 곡씩을 모으고 일본에 가 서양음악 공부한 사람들이 작곡한 노래를 보충하여 우리나라 음악교과서를 만들어 사용했다. 음악언어로 보면 영어권과 같은 서양음악언어를 가르친 것이다. 서양음악언어는 영어식이기 때문에 말을 바탕으로 민요의 리듬을 따져본다.
The cat can get the rat. 와 같은 문장이 있다고 하자. 중요한 단어는 주어 동사 목적어인 명사와 동사이고 관사나 조동사는 중요하지 않은 단어이다. 때문에 발음할 때에도 명사나 동사에 힘을 주고 관사나 조동사에는 힘을 주지 않는다. 약하게 발음한다. 이런 말을 노래로 만들 경우 세로줄을 다음과 같이 긋게 된다. The/cat can/get the/rat. 못 갖춘마디의 구조가 되는 것이다. 영어나 독일어나 이태리어과 같은 서양말은 못 갖춘마디 구조를 갖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실제 우리가 배운 서양민요들을 생각해 보라. 영국민요 올드랭자인, 불어라 봄바람, 어메이징 그레이스, 한 떨기 장미꽃, 앤니로리, 아 목동아 등 모두 못 갖춘마디로 되어있다. 독일민요 오 탄덴바움이나 로렐라이 등도 다 못갖춘마디이고 슈베르트의 보리수나 베토벤의 아델라이데도 그렇다. 이태리의 오페라 아리아 축배의 노래도 못갖춘마디로 되어있는데 이것을 한국어로 번역해 부르면 정말 우스꽝스러운 노래가 된다. 헌데 지금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교과서의 노래들이 가사와 곡조가 맞지 않아 우스꽝스럽게 되어있는 것이 많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나는 잠시 중·고등학교 음악교사를 한 적이 있다. 중학교 1학년 교재에 ‘노래는 즐겁다’라는 단원이 있었는데 가르치자마자 금방 잘 따라 부르고 신나게 노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노래를 시험곡으로 하여 시험을 봤다. 1번부터 부르도록 했는데 내가 피아노를 치고 전체가 노래하도록 했을 때에는 꽤 흥겹게 즐거운 표현을 하며 불렀었는데 한 명씩 시험을 치라하니까 전혀 흥겨움이 없는 무뚝뚝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몇 명을 시켜봐도 계속 그렇기 때문에 9번 학생 차례가 되었을 때 “너 유행가 할 수 있어?”했더니 처음에는 매 맞을까봐 망설이더니 많은 학생들이 “야 해봐 해봐” 하니까 유행가를 하기로 작정을 하는데 유행가를 하기로 작정하니까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온 몸에 힘을 빼고 눈을 감고 몸을 흔들며 ‘섬 마을 선생님’을 하는데 온 몸을 파르르 떨고 비비꼬면서 정말 멋지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노래시간은 표현훈련을 하는 것인데 내가 가르친 서양민요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서 유행가는 온 몸과 함께 멋지게 표현했다. 선생인 나는 정말 황당했다. 내가 매를 때려가며 가르친 노래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학생이 제 멋대로 그냥 배운 노래는 그토록 멋지게 표현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유를 따져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내가 가르친 서양민요는 서양말에 맞게 곡을 붙인 것인데 우리는 그런 것을 가져다가 곡조는 그대로 두고 우리말로 번역해 가르쳤기 때문에 악센트의 위치가 엇갈리게 되어 있어 표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편 유행가는 표현이 되었으니까 말과 곡조의 무엇인가가(악센트) 잘 맞는다는 것인데 그것은 또 왜 그렇게 되었을까?
우리네 유행가는 일제강점기에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민요에 트로트리듬을 붙인 것이 흔히 뽕짝가요라고 하는 왜색가요이다. 그런데 그런 노래는 일본민요가 일본말을 바탕으로 발달했고 일본말과 우리말이 같은 계통이어서 어순이 같다든지 프레이징이 같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발음할 때 시김새를 사용하는 것도 서로 공통인데 유행가에서는 그런 요소를 그대로 수용했기 때문에 일본민요 요소가 많은 유행가를 우리는 쉽게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유행가를 널리 퍼뜨릴 수 있었고 다양하게 발전시켜 부를 수 있었다. 일본민요의 요소를 가진 우리네의 대중가요가 되었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미국의 팝송을 그대로 흉내 내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신세대 가요하고 할 수 있는 이런 노래들은 구조적으로 악센트가 어긋나게 되어있어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고”같은 가사가 있다면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고 와 같이 발음한다. 전혀 우리말의 어법에 맞지 않는 것인데 이런 것을 아무렇지 않게 수용하고 있는 것이 우리 청소년들이다. 음악을 통해 기르는 중요한 덕목이 和 즉 조화에 대한 부분인데 이처럼 가사와 음악이 맞지 않고 창법이 또한 우리말을 표현하기 어렵도록 되어있는 이런 노래를 아무렇지 않게 늘 부른다면 어떻게 될까? 또 한 때 유행했던 통기타 가수들이 하던 노래를 우리는 포크가요라고 한다. 포크가요의 그 포크가 어느 나라 포크일까? 한국의 민요는 아니다. 우리나라 학교교육에서 꾸준히 가르쳐온 서양의 민요이다. 우리는 서양민요의 음악언어를 배워서 그런 포크가요도 만들고 한국가곡도 만들었다. 한국가곡이라고 하는 노래장르도 그 음악언어는 우리의 음악언어가 아니다. 우리말을 자연스레 표현하는 노래가 아니라는 말도 된다. 그래서 그런 노래를 서양에 가서 부르는 일은 거의 없는데도 한국에서는 대단한 위력을 가진 우리 가곡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한국 성악가 몇이 독일에서 독일 성악가들과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독일 성악가가 한국 성악가 보고 한국가곡을 한번 해보라고 했단다. 한 사람이 나가서 “누구의 주재런가 말고 고운 산 -”하고 부르니까 끝나기 전에 손사래를 치면서 “아 그런 노래하지 말고 한국가곡을 해 보시오”하는 것이었다. 또 한 사람이 나가서 “세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그런 노래는 하지 말고 한국가곡을 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성악가가 나가서 “날 쫌 보소오 날 쫌 보소오” 하고 했더니 “아 그 가곡 참 좋습니다. 또 해 보세요”해서 아는 민요를 이것저것 했는데 한국가곡 참 좋다고 하면서 자기가 근무하는 대학에 와서 특강을 해 달라고 해서 가 해 주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독일 성악가들은 한국의 그리운 금강산을 듣고 그것은 한국가곡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었을까? 음악언어 때문이다. 가사인 우리말과 어울리지 않는 음악구조라는 것을 금방 느끼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헌데 우리나라 사람은 그런 것을 알 수 있는 심미안마저 발달해 있지 않다. 안목과 심미안을 길러야 하는 예능교육이 전혀 제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음악이 발달하고 음악을 잘 하는 우리나라에 한국민요언어로 된 대중가요가 발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민요를 통해 음악의 모국어를 가르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것은 꽤 심각한 문제이다. 오랜 세월 중국의 영향을 전면적으로 받았으면서도 지금 한국전통음악에 중국음악언어로 된 음악은 없다. 단 하나 세종 때 중국아악의 방법으로 작곡하여 문묘제례에 사용하고 있는 음악이 있는데 그 구조나 악기편성은 중국식이라도 표현방법은 한국식으로 하고 있다. 음악언어란 그렇게 동질적인 방향으로 발달하는 것인데 지금 한국의 작곡현실은 문제가 많다는 말이다.
Ⅳ. 음악의 모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에 대하여
한국민요를 교재로 하여 그 민요에 내재한 우리의 음악언어를 가르치면 되겠는데 그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다. 우리민요는 지방에 따라서 다르고 개인에 따라서도 다르다. 때문에 체계 있게 교재를 개발하고 방법을 계속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우선 서양음악을 배운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악보를 체계 있게 잘 만들어야 한다. 메나리토리 같으면 ‘상주 모심기노래’, ‘한 오백년’, ‘강원도 아리랑’, ‘정선아리랑’ ‘쾌지나 칭칭’ 같은 민요를 통해 그 구조와 표현법을 익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악보의 노래를 먼저 실제 노래부터 배운 다음 그 가락을 계명으로 충분히 익혀 비슷한 선율을 척척 할 수 있게 하면 좋다. 다른 토리의 민요도 같은 방식으로 하면 된다. 남도 육자백이토리 같으면 ‘진도 아리랑’, ‘물레타령’, ‘둥당기 타령’,‘함양 양잠가’, ‘각시풀노래’, ‘강강술레’ 같은 민요를 가지고 처음에는 그냥 민요로 부르도록 배우고 그 민요를 계명으로 원활하게 할 수 있게 하면 그런 음악언어를 악보로 그릴 수 있게 된다. 그런 민요를 통해 육자백이토리를 할 수 있고 그런 가락을 악보로 그릴 수 있게 되면 그런 식의 대중가요도 만들 수 있을 것 아닌가? 경기민요는 ‘창부타령’, ‘노래가락’, ‘경복궁타령’, ‘한강수타령’, ‘양산도’, ‘방아타령’ 등을 같은 방식으로 가르치면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교 음악교육이 음악의 모국어를 가르치는 것이어야 하고 음악의 모국어는 민요를 교재로 하여 음악어법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민요를 통해 음악언어를 터득하도록 하는 방법은 교사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얼마든지 다양하게 개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방면의 전문가가 더 많이 나타나 서로 협력하며 노력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