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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수우도풍물굿보존회 원문보기 글쓴이: 지킴이
1.굿이란
'굿'에 대한 사전용 정의는 '굿'을 지극히 사적이고 종교적이며 민중의 참여가 배제된 타율적 영역으로 취급하고 있다.하지만 우리는 흔히 사용하는 '굿났다.', '굿벌인다.' 는 말의 의미에서 볼수 있듯이 '굿'이라는 말에는 대중적이고 능동적이며 삶과 연결된 생활적 부분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굿이란 무엇인가. 굿이란 원래 똑같이 아픔을 당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모여서는, 논의 끝에 픔을 강요하는 압제에 대한 공통의 쟁점을 확인·집약하고, 그것을 쟁취할 알기(주체)를 바로 세우며, 마침내는 행동하고 실천하는 온 과정을 굿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소박하게 이야기하면, 굿이란 민중이 주도하는 민주적인 모임이었으며, 다시 이야기하면 반(反)봉건 혁명의 세계, 그 염원을 창조하는 싸움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민중의 염원의 세계를 실제적인 사회구성체의 문제로 환원시켜 생각했을 때에 뚜렷이 부각시킬 모형이 애매했 던것은, 그당시의 반봉건 운동의 한계, 그리고 그에 따른 여러요인으로 보아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굿으로 모인 굿하는 사 람들은, 그네들 굿의 최종목표, 그 염원의 세계를 극적으로 재창조하며, 갖은 풍물과 재비들을 앞세우고 모였던 사람들이 모두가 굿쟁이가 되어 한바탕 밟아 대고 제치고 휘저었던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굿'이란 원래 똑같이 아픔을 당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공통된 아픔의 원인을 확인하고 논 의를 통해 문제의 해결방안을 찾아내어 이후의 실천 방향을 모색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굿'의 본질적 모습 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굿'을 하는 당일의 눈에 보이는 형식적이고 결과적인 모습에 주목하기보다는 (이런식이라면 굿을 주도하는 무당의 개인적인 신들림이나 혹은 풍물패의 현란한 가락들을 중시하게 된다. 한마디로, '민중의 참여'라는 부분이 배제되는이다.) 무슨 연유에서 어떠한 공동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굿'을 계획하게 되었으며 '굿'을 준비하기 까지 계속 이어지는 구성원들 사이의 토론과 토의의 과정에 더욱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굿'은 민중의 민주적 모임이기때문이다.그래서 당연히 굿거리는 지배체제, 계층에 대한 적대감이 주가 될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민중을 담합하고 공동체적힘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굿의 집체성에 위협을 느낀 지배층에 의해 굿은 왜곡과 변질의 과정을 겪게 된다.
굿은 근본적으로 민중의 삶과 밀착되어 있으며 적극적인 참여와 이해적 기반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굿의 본래 모습은 "마당굿"이라 불리우는 "현장굿"의 모습일 것이다. 바로 삶의 그 자리에서 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억울한 원한을 해결해 내고 지배층에 의해 불합리하게 주어진 판을 깨고 자기판을 들어내는마당굿의모습일 것이다.마당굿은 작살판·박살판으로 번갈아 가며 발전하여, 끝내는 우리 굿의 위대한 절정인 '맘판'으로 그 맺음을 하게 되는데, 굿의 절정의 세계인 맘판은 민중싸움의 절정이며 해방의 절정인 동시에 민중적 염원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2. 어원적 의미로 바라본 풍물굿
'풍물'이라는 말은 주로 경기도, 충청도 지방에서 사용되는 말로 모내기 할 때 간단한 편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신에 소원을 푼다는 뜻이나 농사의 풍년을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농경사회에서 집단적으로 한자리에 모여 마을의 기원등을 함께 공유하고 풀어나가기 위한 공동체적 의식이라 볼 수 있다. '굿'이라함은 주로 호남지방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굿친다."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굿'은 협소하게 '모인다'라는 의미에서 '모여서 공동체내의 모든일을 의논하고 해결하며 공동체적 염원을 집단적으로 기원하며 집단적 신명으로 승화시켜 새로운 삶의 결의를 다지는 일련의 과정"이라는 의미를포함하고 있다.
풍물굿이라 함은 그것의 어원적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공동체성을 기반에 두고, 그 공동이 함께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하나의 생활의 반영인 것이다.
3.(풍물)판굿이란 무엇인가.
판이라고 하는 것은 풍물굿이 행하여지는 공간을 뜻한다.그러므로 간단히 판굿을 정의하자면 어떤 일정 공간에서 행하여지는 풍물굿이라 할 수 있다.그럼 풍물굿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풍물굿 구성의 삼요소를 알아보자.
풍물굿의 삼요소는 풍물, 판 그리고 관객이며 풍물굿은 이 세가지의 일체에서 나온다. 그 일체라 함은 판을 형성하여 악을 치고, 연회 의식을 베풀어 관객의 흥을 최고로 고조(신명)시키는 것을 말한다. 바로 그 구성에서도 연회자와 관객이 하나로 되는 공동체 성을 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풍물굿이 이루어 내는 대동판의 의미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풍물굿은 그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해 내는데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지만은 그것만으로 모든 것의 해결을내올수는 없다는 사실을 잊지말아 야 한다.
풍물굿의 형식보다는 내용, 결과보다는 그 과정, 하나의 도구보다는 생활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성과주의, 결과주의로 굿을 행하지 말고 하나의 과정속에서 굿을 준비하며 그것을 행한 이후에 문제의 해결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판굿은 굿패나 걸립굿, 두레굿과 같이 잽이들이 마당밟이가 끝나고 난 다음, 마을 사람들을 큰 마당에 불러모아놓고 잡색과 함께 걸판지게 악를 치며 노는 굿을 말한다.
호남좌도풍물에서는 판굿을 앞굿과 뒷굿으로 나누어 부른다. 앞굿에서는 일정한 형식을 가지고 진을 짜서 노는 것이고 뒷굿은 잡색이나 구경꾼들이 참여하는 판으로 잽이들의 여러 가지의 기예(技藝)들을 볼 수 있다. 단순하게 치배들의 기량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신명을 돋워내어 함께 어울리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때문에 판굿에서 치배들은 앞굿을 무시할 수 없다. 앞굿을 제대로 해야만 흥과 신명을 끌어낼 수 있다. 판굿은 지방에 따라 다양하다. 지역의 특징적인 가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판굿은 최근 무대공연이 많아지면서 여러 가지 형태로 응용되어 판이 벌어진다.
4.판제와 가름새
보통 풍물굿에는 '판제'와 '가름새'가 존재한다. 한 굿의 판제는 다른 지역의 굿과 판제가 다를 뿐만 아니라 같은 지역의 굿의 판제와도 갈라지는 부분이 명확해서 가름새라 지칭되기도 한다. 풍물굿의 온전성 여부는 판제와 가름새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판별된다. 그래서 이들이 분명하게 쓰인 경우를 보면 우선 순서가 명확하고 용례 또한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판굿의 한틀은 '겉바탕굿'과 '안바탕굿'으로 구성된다. 겉바탕굿(채굿, 호허굿)은 치배들의 역량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상쇠, 설장고, 대포수가 쉬는 반면에 안바탕굿(풍류굿에서 탈머리까지)은 주로 놀이와 상쇠의 판제력에 힘입고, 가름새에 대한 식견이 있어야 하므로 반드시 참여하여야 한다.(범례 : 좌도굿)
5. 판굿의 구성요소
풍물패는 기본적으로 네가지 악기인 사물과 기를 드는 대·소고·잡색·나팔(날라리 포함) 등으로 편성되는데, 그 조직은 대체로 농기 1, 영기 2, 쇠2, 징1, 장구2, 북2, 소고8인과 무동·중·각시·양반·대포수(총잽이) 등의 잡색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편성수는 지역에 따라서 약간씩의 차이가 있다. 풍물을 치는 사람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는데 연주를 주로 하는농기·영기· 날라리 그리고 사물을 '앞치배'라 하고,춤이나연극놀이를 주로 하는 소고와 잡색들을 '뒷치배'라 부른다.
지신밟기나 두레농악을 할 때는 주로 사물과 소고 위주로 편성이 간소화 되어 있으나, 판굿을 할 때는 본격적인 편성을 하게된다. 굿을 할 때 쇠가 3인인 까닭은, 상쇠는 별도로 농악대 전원을 지휘하고 또 양쪽으로 갈라져서 진풀이를 할 때가 많으므로,가락을 맞추기 위해서는 부쇠와 삼쇠(종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통 장구나 북, 징 등이 두 개 이상인 것은 한사람이 실수하더 라도 다른 사람이 가락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이다.
풍물굿의 편성에 있어서도 농기는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있으나, 영기는 경상도 지역에서 없는 곳이 많다. 호남지방에서는 쇠·장구·소고·잡색 등을 중심으로 편성되는 데 비하여 영남지방에서는 징·북·소고가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무동은 경상도 지역에는 거의 없고, 경기·충청 그리고 영동지방에서 주요한 배역으로 되어있다. 전북 남원과 전남 진도에서도무동의 역할이 돋보인다.호남지방의 풍물판굿에서는 특히 가면을 쓴 잡색과 1인 2역의 가장과 (동물가장이 있는것이 특기할 만하다.
6.잽이들의 역할
(1)『앞치배』
①농기
풍물패가 농기를 앞세우고 堂山(당산)에 가서 절가락을 치면서 절하며(神받이) 악을 하겠다고 고한다. 그리고 나서 농기를 세우고 집돌이를 하게 되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神대를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 이때 농기에 술을 대접하거나 농기를땅에 쓰러뜨렸을 때는 다시 당산에 가서 신받이를 한다. 그리고 농기앞을 지나갈 때는 어느 누구든지 기에 절을 하였고, 말을 타고 가다가도 말에서 내려서 지나갔다는 구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농기는 神대 神기의 기능을 가진 신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농기를 가지고 집돌이 행악을 하는 것은 神體(신체)를 모시고 동네를 돌아다니므로 해서 마을의 무사와 풍년을 기원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②영기
청색 바탕에 빨강색의 '令'이라는 글자가 있으며, 명령을 전달하는 말단의 깃발이다. 즉, 영기는 악을 진행할 때 지휘기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 호남지방에서는 악을 시작할 때 어름굿으로 다스름을 먼저 치는데, 이것 또한 神令(신영)을 받는 풍속에서 나온 예능 형태라 할 수 있다. 영기는 잡귀를 막는 힘이 있다고 하며, 가뭄시 논에 물을 순서대로 대게 하는 법기의 역할도 있다고 한다.
③교룡기
왕이 행차할 때 사용하며, 왕의 명령을 하달하는데도 사용한다. 용의 모양과 구름이 그려져 있으며, 황색 바탕에 붉은 불꽃 테가 있는데, 왕과 용신의 존재를 알린다. 임금의 초상화와 같은 의미이다.
④화주
농악의 총무격인 물주를 지방에 따라서 化主 또는 花主라 부르고 있다. 이들은 걸립을 할 때 집주인으로 부텨 곡식이나 자금을 받아내는 역할을 한다.
⑤상쇠
상쇠는 가락을 풍물패원들에게 전달하고, 집돌이로 지신밟기를 할 때는 고사창(辭說·사설)을 하고, 판굿에서는 陣(진)풀이의 선도자가 되는등 모든 풍물판굿을 총지휘한다.
⑥쇠잽이
부쇠와 삼쇠(종쇠)는 상쇠의 가락을 받아 연주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상쇠 대신 풍물패를 지휘하기도 하고사설 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쇠를 비롯한 모든 쇠들은 가락을 연주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지만 개인 놀이에서는 대무를 하기도 하고, 진풀이에 앞장선다.
⑦징잽이
징은 원박을 맞추어 주는 역할을 하는데, 전란시에는 신호용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는 설이 있다.
⑧장구잽이
장구는 쇠와 같이 섬세한 가락을 연주하는데, 설장구는 개인놀이를 할 때 춤을 추기도 하고, 장구잽이 전원이 품앗이하여 흥을 돋구기도 한다.
⑨북잽이
북잽이는 징과 같이 원박을 쳐주고 흥을 돋구는 역할과 설북꾼의 춤과 집단적인 춤을 추기도 한다. 옛날에는 신고나 군고의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2)『뒷치배』
①소고잽이
큰 소고는 원박과 엇박을 연주하지만 작은 소고는 춤만을 춘다. 큰 소고는 노작악에서 주로 쓰는데, 소고놀이를 통한 긴 춤이 중심 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은 소고는 주로 채상모놀이춤에서 주로 사용하는데, 간혹 열두발상모를 담당하기도 한다.
②잡색
잡색의 기본적인 배역은 무동을 비롯하여 대포수(총잽이 또는 초랭이)와 각시·양반·중(조리중)·화동(영남과 호남지방 일부에 있다) 등이 있다. 호남지방에는 많은 잡색들이 있고, 가면을 쓴 잡색도 많은데, 그곳 악이 발달하여 가면극과 분화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혹은 악 편성에 가면극적인 요소를 넣은 것인지, 흥미를 갖게 한다.
잡색은 주로 풍물굿 사이사이에서 재담과 놀이를 벌이거나 춤을 추어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하는데, 호남지방에서는 잡색들의 놀이 가 판굿 속에 한 과장으로 짜여진 것도 있다.무동은 영리하고 건강한 어린아이를 선정하는데, 아마도 마을의 상징인 神童(신동) 이라 할 수 있다. 편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포수는 주로 탈춤에서 총잽이가 사자를 잡는 것처럼 동물을 잡는 사냥꾼으로 분장하지만 총은 양반들을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총을 쏘는의미는 동물이나 사람을 잡는 것이 아니라 액풀이를 하는 의미이다.
7.잽이들의 복색
(1)상쇠
상쇠는 풍물패를 지휘하는 사람이기에 옷이나 장식품이 가장 화려하다. 예를 들자면 호남 우도 풍물굿에서는, 전립에 부포(꽃 상모)를 달고 오색동이를 누빈 반소매 창옷(홍동지기)를 입는다. 그리고 등에는 둥글게 만든 원형의 쇠붙이(거울)를 양 옆에 달고, 안에는 전립에 부포를 단다. 경남 밀양에서는, 五方(오방)을 상징하는 흰옷을 바탕으로 하여, 南을 상징하는 빨강띠, 東을 상징하 는 청색띠, 중앙을 상징하는 노랑색띠, 北을 상징하는 전립 밑에 있는 흑색 천(디림이)등 五方色으로 조화된 복색이다.
그런데 이러한 복색의 앞 뒤 가슴에 동그라 거울을 붙이고, 지방에 따라서는 상쇠계급을 알리는 '上'자를 천에 써서 전립밑에오려 붙이기도 한다.그리고 복장은 지역마다 약간씩 틀려진다.
(2)쇠꾼
대체적으로 상쇠와 같으나, 장식이 없고, 모자는 전립을 쓰는 경우와 고깔을 쓰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가세침복'이라 하여 청색띠 는 허리에 감고, 오른쪽 어깨에는 황색, 왼쪽 어깨에는 적색띠를 두른다.
(3)징수
쇠꾼과 같으나, 전립을 쓰지 않고 패랭이나 고깔을 쓴다. 색띠는 한쪽만 매는 경우와, 쇠꾼과 같이 삼색띠를 감고 매는 것이 있다.
(4)장구수·북수
쇠꾼의 복색과 같이 전립을 쓰는 경우와 고깔을 쓰는 경우가 있다.
(5)소고잽이
쇠꾼의 복색과 기본적으로 같으나, 종이로 만든 꼬리가 달린 채상모를 쓰는 경우와 고깔을 쓰는 경우가 있다.
(6)농기수
흰 옷에 패랭이를 쓰는 경우와, 꽃수건 그리고 고깔을 쓰는 경우도 있고 삼색띠를 허리에 두르거나 매기도 한다.걸립농악에서는 먹장삼과 홍장삼을 입는 경우도 있다. 요즘 보편적으로 쓰인느 깃대에는 세로로 달아매는 소기이다. 이 소기의 깃폭에는 '農者天下之大本'이라 씌어 있고, 기 위에는 꿩장목을 달며 기폭 옆에는 지네발을 오색 가운데서 택일해 쓰고 있다. 농기에서 깃발을 늘어뜨리는 것은 무속에서 귀신을 붙게하는 神발과 같이 주술적 의미를 갖는다.
(7)영기수
농기와 같으나, 지역에 따라서는 쾌자와 더그레를 입는 경우와, 상모 없이 전립을 쓰고 꽃두건을 쓰는 경우도 있다.영기는 들돌이, 노작풍물굿, 그리고 판굿에서 주로 사용한다. 영기의 기폭은 사각형과 삼각형이 대종을 이루며,경기·호남지방에서는 역삼각형으로되어 있는 곳도 더러 있다. 영기의 모양은 군대 깃발에서 나온것이며, 영기수의 복색은 그것을 든 잽이들의 신분이나 성격에 따라 달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8)잡색
기본적인 잡색은 무동을 비롯하여 대포수·각시·중·양반 등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의 복색은 이름에 알맞게 차려 입는다.
(9)나팔수
대체적으로 평복을 입으나 지역에 따라서는 검은 더그레에 짧은 상모를 단 벙거지를 쓰기도 하고, 흰 옷에 더그레를 입고 삼색띠를 어깨와 허리에 두르며 머리에는 꽃수건을 쓰는 경우도 있다.
(10)날라리(새납)
나팔수와 같이 평복차림을 하나, 지역에 따라서는 더그레를 입고 고깔쓰며 삼색띠를 허리에 감거나 어깨에 매는 경우도 있다.
8.악기 및 소품
①쇠(꽹과리;광쇠;깽새기;꽹매기)
작고 둥근 놋쇠판에 끈을 달아 나무공이 달린 채로 들고 친다. 쇠와 징은 청동으로 만들어 지는데, 이는 청동기 시대때부터청동이 귀신을 막아낸다는 사람들의 믿음으로 인한다고한다. 이로 미루어 청동으로 만들어진 쇠를 치는 상쇠는 악의 지휘뿐만이 아니라 귀신을 막아내는 무속인의 구실(신성한 사람)을 했다고도 추측 되어 진다. 쇠는 암쇠와 숫쇠가 있다. 숫쇠는 고음이 나고 금속성 소리가 한층 강하다. 여기에 비하여 암쇠는 다소 저음을 낸다. 상쇠는 숫쇠를 치는 것이 상례로 되어있다.
②징(정;요)
본래 북과 함께 군악인 고취악에 쓰였다. 크고 둥근 놋쇠판에 끄을 달아 부드러운 뭉치로 된 채로 친다. 지름은 40cm쯤 되며,울의 한쪽에 두 구멍을 내어 거기에 끈을 꿰고 채로 쳐서 소리를 낸다. 징 역시 암징과 숫징이 있다고 하며, 그 소리는 보통 三波音(삼파음 이라 해서 음이 세 번 파동을 치며 울린다.
③북
통은 대개 소나무로 만드나, 괴나무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양쪽에 쇠가죽을 씌워 북채로 치며, 판소리의 장단에도 이용된다. 북채 는 대추나무가 아니면 탱자나무와 같이 단단한 나무를 사용한다. 북은 옛날에는 대북·중북·소북 등 세가지로 나뉘었으나, 지금은 획일적인 북으로 남아있다. 군대의 행진과 진격의 신호로 사용하였었다고도 한다.
④장구
통 두 개를 연결한 긴 통의 양쪽에 가죽을 맨 둥근 테를 대고 줄로 서로 얽어 조여 친다. 장구는 고려 예종때 중국에서 들어왔으나, 그보다 먼저 문종때의 기록에 장구가 보이고, 고구려 벽화에서도 보인다. 장구는 두 개의 오동나무통을 가느다란 조롱목으로 연결시켰는데, 통 길이는 70cm쯤 되며, 허리가 매우 가늘고 잘록한 것이 특징이다. 장구에 있어서는 채편이 암소리가 나고, 궁채편이 숫소리가 난다.
⑤소고
소고는 좀 큰 것을 법고라고 말하기도 한다. 소고에는 大小가 있는데, 큰 소고는 소리가 곱게나고, 작은 소고는 춤 도구의 구실을 할뿐 별다른 음악성은 없다.
⑥나팔
나팔은 나무로 만든 것과 쇠로 만든 것이 있다. 나무로 만든 나팔은 주로 경상도에 많이 남아 있고, 호남과 충청도에는 쇠로 만든 나팔이 남아있다. 이러한 나팔은 반드시 암컷과 수컷으로 한 쌍을 이루는 것이 상례이다. 그래서 고음과 저음을 내어 음악적 조화를 이룬다.
⑦날라리(호적;새납;태평소)
나무로 된 관에 겹서를 꽂아 부는 악기이다. 소리는 진중하지 못한 면이 있으나 화려하다. 본래 서역 악기로 중국에서도사용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군악에 쓴 것 같으나, 확실한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날라리의 경우도 암컷과 수컷등 한쌍이었다는 설이 전해오고 있다. 이 악기는 흥을 돋구는 악기이다.
⑧나발
음이 하나인 것이 특징이다. 관이 다소 길며, 입을 대는 부분의 반대편쪽 끝 부분에는 조그마한 깃발이 달려 있다.풍물굿의 준비와 시작을 알린다. 몇번 부느냐에 따라서 신호가 정해진다.
⑨전립
소털을 염색해서 찹쌀가루로 풀을 이겨서 만든다. 그리고 대 밑에 네모지게 옷감(땀받이)을 대고 테를 흰색으로 꾸미고 다시 빨강 색 옷테를 두른다. 양 옆에는 땀대,(멎으로 장식한다.) 상모에다가는 석조시 정자 물채(실을 꼬아서 만든다) 위에 두름털을 단다.
⑩상모
상모는 부포상모와 채상모가 있다. 부포상모는 전립 꼭대기에 '석조시'를 붙이고 적자(구슬)를 달고 '물채'로 이어 꼭대기에 부포 (꽃상모)를 단다. 채상모는 부포와 같이 전립 꼭대기에 석조시를 붙이고 구슬을 단다. 그리고 물채로 이어서 꼭대기에 종이로 만든 짧은 상모와 긴 상모를 달아맨다. 그러나 강원도 지방에서만은 채상모가 짧고 종이가 넓은 편이다.
⑪고깔
안반에다 삼베를 풀로 붙이고 창호지를 두 서너 번 붙인다. 그리고 그 위에 비단을 입히고 사각으로 접어 고깔판을 만들며,뒤는 접는다. 이렇게 하여 삼각형으로 된 고깔이 만들어진다. 꽃종이를 놋젓가락으로 말아서 서른다섯 개의 꽃봉오리를 만든다. 그리고는 가운데에 나비를 만들어 붙여 꽃을 완성한다. 이러한 꽃봉우리는 보통 다섯 개를 다나, 구전에 의하면,지역에 따라 수법고는 여섯 개를 달았다고 한다. 고깔은 당초 백색이었으나 홍청황록 등 여러 색깔로 화려해졌고,경기·강원지방으로 갈수록 꽃이 많이 달린 것을 볼 수 있다. (강원지방은 30∼40개까지 단다.) 따라서 고깔의 꽃의 수는 남쪽으로 갈수록 적고 위로 올라갈수록 많다고 할수 있다.
9. 지방별 판굿의 특색
고려 및 조선초기 동문교장(군사훈련)의 기록문인 권우의 시에도, 군사훈련을 풍물굿으로 행한 기록이 있다. 조선 말기 각종 전란때 외국 군대의 군악에 놀란 나머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우리 악기로 군사 훈련을 한 듯 하다. 그후로 풍물굿에는 신식군 사훈 련인 36개 동작·줄맞추기·뒤로 돌아가기·우향앞으로 가기·두줄만들기·세줄 만들기·네줄 만들기 등이 쓰였는데, 이것은 한일합방 이전에 고종황제의 명으로 신군사교육으로 실시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을사 보호조약으로 군사가 해산되고, 각지방으로 파견된 군사들이 농사짓게 되는 과정에서 신식훈련의 형태가 지역 풍물굿놀이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대개 가락은 남쪽지방이 느린 편이며, 북쪽지방으로 올라가면서 화려하고 빠르다. 그래서 징을 연주할 때에는 경상도 징이 가장 느리고, 전라도·충청도·경기도·강원도의 순서로 점점 빨라진다. 경기도 지방은 국가의 나례행사에 뽑혀간 풍물패원들이 서울의 대갓집 하인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토착 서울 풍물굿이나 남사당 풍물굿은 매우 세련되어 있다.
1.웃다리풍물굿(경기·충청풍물굿)
웃다리풍물굿은 그 지방을 비롯하여 현재 강원도의 영서지방 일대에 전승되고 있는 멀리 황해도나 평안도에 까지 영향을 주었다. 웃다리풍물굿은 경기풍물굿이 주를 이루었는데, 경기풍물굿은 북부와 남부로 나뉜다. 하지만 현재 옛부터 발달한 남부 지역 풍물굿의 특성이 가장 많이 남아있다. 특히 안성지방은 남사당패풍물굿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남사당패들로 인해서이지역은 상당한 굿가락의 발전을 했는데, 한가지 예가 짝드름이다. 본시 짝드름은 호남좌도풍물굿에서 유래했으나 웃다리로 넘어와서 더욱정교하고 치밀하게 다듬어져 이제는 마치 주인노릇을 하여 일품으로 손꼽힌다. 상쇠와 부쇠가 서로 장단을 나누고 품고 앗기 때문에 품앗이가락이라고도 한다.
경기풍물굿은 당산굿은 하지않고 지신밟기만 하며, 여름철에는 두레굿을 한다. 그리고 걸립굿이 다른 지방에 비하여 발달한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웃다리풍물굿은 걸립굿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경기풍물굿은 다른 지방에 비하여 징과 북의 수가 적고, 소고와 법고의 구별이 없으며, 무동의 수가 많다. 가락은 느리고 빠른가락을 고르게 쓰며, 쇠가락의 가림새가 분명하고 수채, 암채가락의 변화를 구사한다.
한편 충청풍물굿은 가락이나 판굿의 짜임새 등은 경기지방과 같으나, 충남지방에 당산굿이 있어서 남쪽지방은 호남좌도풍물굿 과 유사하다. 그리고 남부지방에서는 예능적인 면에서 호남우도풍물굿처럼 상쇠가 꽃상모를 사용하는 부포놀이와 설장구춤이 있다.
①평택풍물굿
경기도 평택군은 소샛들이라는 넓은 들을 끼고 있어 예로부터 농산물이 풍요했다. 이러한 농산물의 풍요는 농민문화를 일으켜 평택지방의 풍물굿을 이루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평택에서 가까운 곳에 청룡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 사찰은 일찍부터 평택지방 사당패(寺黨牌)들의 근거지가 되어, 조선왕조 말기에는 그들의 풍물굿이 크게 발달하였다.팽성읍 평궁리는 평택읍에서 서쪽으로 2km쯤 떨어져 있는 농촌마을로서 예로부터 지신밟기나 두레굿 등 여러 풍물굿을 세게 쳐왔다. 평택풍물굿은 잡색에 대포수가 빠지고 무동과 사미·양반 등이 있는데, 무동의 수가 많다. 쇠가락은 길군악칠채가 다른 지역과 구분되며, 가락의 가림새가 분명하다. 판굿의 진(陣)풀이는 사각행진놀이와 'ㄷ'자형놀이가 특이하며, 노래굿이 있다. 무동놀이는 무동춤과 무동타기로 되어있으며, 이 지역의 풍물굿은 경기풍물굿의 전형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내용과 형태
정초에 지신밟기, 여름철 두레굿(둥기래)과 겨울철 걸립굿에 풍물굿을 크게 치며, 그 밖에 초파일에 등대굿, 단오날에 난장굿을 칠 때도 있다. 마을굿인 대동굿(당굿)은 만신이 한다. 그러나 호남풍물굿에 보이는 섣달 그믐밤에 치는 매굿은 치지 않는다.
②이천풍물굿
경기도 이천군은 광주군과 용인군에 접해 있고, 동으로 충북 음성군과 접하여 도계를 이루며 중부 내륙에 위치해 있다. 이천군의 비옥한 전답은 예로부터 질 좋은 최상미를 생산해냈다. 요즈음도 이천지방에서 나는 쌀은 품질이 좋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도자기의 대표적인 산지로도 이천군은 유명하다. 그리고 이곳은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의 풍속이 함께 병존하고 있는 지역이다.
이천풍물굿은 1978년 이천군의 거북놀이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문공부장관상을 받은데에 힘입어 주로 대원면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풍물굿을 다시 치게 되었다. 이천풍물굿은 호남지방에서 볼 수 있는 용기가 있고, 굿의 내용과 형식은 대체적으로 평택, 안성 풍물굿과 유사하다. 이천 풍물굿의 특색이라 하면 가락에 있어서는 쩍쩍이가락이라 할 수 있고, 지신밟기때 잡색으로 질라아비와 거북이·어슴·여종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③부여 추양풍물굿
부여군 초촌면 추양리는 2백여호 되는 농촌마을로, 4백여년 전부터 대대로 살아오는 전주이씨의 동족마을이다. 2백여호 가운데 타성은 11호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동족마을로서는 매우 드문 예이다. 이 마을은 넘말(陽村), 안말(內村), 새터(新村) 등으로 구분된다.
추양리에서는 예로부터 당산제·두레굿 등의 풍물굿을 쳐왔는데, 대개 마을 머슴들이 했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머슴들의 풍물굿을 적극 장려하여 옛날에는 놀이를 좋아하는 머슴들이 서로 머슴 살러 들어오려고 경쟁을 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추양풍물굿의 특징은 당산제굿과 두레굿의 성격을 가진 풍물굿으로서, 음악적으로는 경기풍물굿과 호남풍물굿의 중간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복색에 있어서는 상쇠의 부포는 호남우도풍물굿과 같이 뻣상모를 쓰고 있으며 다른 잽이들의 편성은 경기풍물굿과 비슷하다. 그리고 판굿을 할 때 진풀이 하는 방법이 사열로 서서 연기하는 것과 무동들이 추는 꽃나부(꽃나비)춤은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내용과 형태
부여 추양리에는 정초에 당산제굿이 있고, 여름철 김매기에 두레풍장과 두레먹기(호미씻이)가 있다. 그 밖에 성년식과 비슷한 '꼼뱅이'라는 의식에 굿을 하며, 새집 짓고 들 때 집들이 굿을 한다. 두레먹기와 같이 크게 놀 때에는 판굿을 치는데, 이것을 '놀음마치'라 한다.
④대전 웃다리풍물굿
대전 웃다리풍물굿은 경기·충남지방의 걸립패(乞粒牌)들의 영향을 받고 있어서 예능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걸립굿으로 지신밟기를 하고 있다. 따라서 지신밟기에 따르는 사설이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쇠가락이나 판굿은 경기 풍물굿과 비슷하고 개인놀이는 호남풍물굿의 영향을 받고 있다. 웃다리풍물굿의 어린무동들의 춤이 특이하다.
2.영동풍물굿
강원풍물굿은 악기편성이나 음악, 판굿의 구성 등을 기준으로 영서와 영동풍물굿을 분류된다.영서풍물굿은 경기풍물굿과 흡사하고, 영동풍물굿은 경기풍물굿과 다른 영동 특유의 향토적 특색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영동풍물굿이 이렇게 개성을 간직하게 된 까닭은 거대한 태백산맥으로 가로막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동풍물굿은 비단 강원도뿐만 아니라 동해안 (東海岸)쪽에 임한 영남풍물굿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영동풍물굿은 마을굿으로 당굿은 별로 하지 않으며 지신밟기가 성행된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달맞이굿을 비롯하여 횃불놀이(다리밟기)가 있으며, 이 밖에 두레굿이라 할 수 있는 김매기굿과 질먹기가 있고 단오날 대관령에서의 길놀이굿이 있다. 또한 배굿으로 풍어제(豊漁祭)와 관계되는 진대백이굿이 있는 것이 특색이기도 하다.
영동풍물굿의편성은 사물과 소고·법고·무동등 잽이들의 수가 각각 동수로 4분화되어 있으며, 무동들은 쾌자나 치마 저고리를 입고 손에는 수건을 든다. 머리에는 댕기를 달고 고깔을 쓰는데, 이 고깔에 달린 꽃의 수가 40개나 되어 우리나라 풍물굿에서 가장 꽃의 수가 많다.영동풍물굿에서 특이할만한 것은 무동 이외의 잡색들이 없다는 것이며, 삼층높이의 무동타기는 대개 어린이가 담당하고 그 위에서 열두발상모놀이를 한다.
판굿진행에 있어서 행진놀이(진풀이)를 보면 다른 지역과는 달리 마치 기마민족들이 수렵을 하는 것처럼, 농군이 전투에 임하는 것처럼, 혹은 소나 말이 논밭을 갈고 있는 것처럼 거칠고 전투적인 면이 보인다. 한편 영동은 지역적으로 산악지대가 많기 때문에 지신밟기를 할 때 마을을 돌기 위해선 산을 넘어야 할 경우가 많으므로 바쁘게 많이 걸어야 하는 데서 나온 동작이 아닌가 보아진다.
이 지방의 풍물굿은 지신밟기를 할 때 사설(고사소리)이 다른 지방에 비해 길고, 단체적인 놀이를 위주로 굿들이 행해진다.
①강릉 홍제풍물굿
강릉시 홍제동은 옛적부터 소박한 향토(鄕土)풍물굿이 전승, 보존되어 오고 있는 지역이다. 홍제풍물굿에는 당굿이 없고 지신밟기가 있는데, 사설은 다양하고 길다. 이밖에 횃불놀이나 두레굿 그리고 해변가에서 하는 배굿(풍어제)이 있다. 풍물패 구성원은 사물·소고·법고·무동 등이 각각 동수(同數)로 편성되는 것이 특징이고, 복색은 벙거지와 상모가 독특하며 고깔 또한 이색적이다. 그러나 홍제풍물굿의 예능적 특징은 가락이 외가락인 것과 무동춤과 농사풀이에서 찾을 수 있다.
#내용과 형태
홍제풍물굿에는 달맞이굿·횃불놀이(다리밟기)·지신밟기(고사반)·걸립굿·김매기굿·질먹기·집들이굿 그리고 마당굿이 있다. 홍제동과 관련된 것이 아니지만 강릉시에서는 단오날 대관령 서낭제의 길놀이에 굿을 했다고도 한다.
②고성풍물굿
고성풍물굿은 기본적으로 강릉풍물굿과 비슷하다. 예로서 편성이나 복색 그리고 판굿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굿의 내용에 있어서 성황굿이 있고 상쇠의 복색이 다르며 쇠가락도 약간 빠르다. 또한 영기가 있으며, 법고와 소고가 구분되지 않으며, 무동춤이나 무동타기를 많이 하지 않고 있다.
3.영남풍물굿
영남풍물굿은 동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영동풍물굿과 비슷한 특징을 가지며, 서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호남좌도풍물굿과 유사해 진다. 그러나 경북풍물굿은 비교적 영동풍물굿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영남풍물굿의 내용은 다른 지역에 비하여 판굿보다도 지신밟기 등과 같은 마을구싱 성행한 흔적이 여러 지역의 굿에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경북풍물굿은 당산제굿은 없고 지신밟기만하는 굿이 있으나, 경남풍물굿은 당산굿이 있는 가운데 지신밟기를 한다는 것이 조금 다르다.
영남지방의 풍물굿을 특징지워 말을 할 때에 흔히 12차라고 한다. 12차는 진주, 삼천포 지방의 풍물로써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북이 자주 쓰여 힘찬 느낌이 든다. 대체로 가락이 부드럽고 느린데서 시작하여 거침없이 빠른 가락으로 옮겨가는 것이 주요 특징인데, 뻣뻣하고 서슴없이 몰아가는 가락이 시원스럽다.
영남풍물굿은 웃다리처럼 혼합박자를 쓰는 곳도 있지만, 비교적 빠른 가락이 많고 특히 3분박 4박자의 덧배기가락은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힘차고도 흥겨운 가락이라 할 수 있다.
예능적인 면에서는 개인놀이보다는 집단놀이가 발달하였고, 노래굿이나 연극적 군사놀이가 있다. 그런데 영남풍물굿에는 판굿 순서에 뒷풀이가 있는 곳이 많은데, 이것은 이 지역이 춤이 발달한 곳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①청도 차산풍물굿
청도군 농각면 차산리는 130여호의 농촌마을로 풍물굿이 전승되고 또 지신밟기가 성하여, 지신밟기 소리가 잘 전승되고 있다.풍각면에서는 예로부터 기맞이굿이 성하였는데, 이것이 뒤에 천왕기싸움(서낭기싸움)놀이로 발전하여 차산풍물굿이 크게 두드러졌다.
차산풍물굿은 지신밟기가 성행한 곳이었으므로 집돌이할 때 행하는 사설의 내용이 다양하다. 편성에 있어서는 대기인 천왕기가 있고, 가락은 비교적 빠른 가락을 구사하며, 호남풍물굿의 품앗이가락인 짝드름과 유사한 호호딱딱이가 있다. 또한 판굿에서는 특이한 진풀이가 있고 영동풍물굿처럼 농사굿이 있는 것도 특징의 하나다.
②금릉 빗내풍물굿
빗내는 금릉군 개령면 광천동을 가리킨다. 현재 이 마을에는 150여호가 살고 있다. 이 일대는 고대국가 시대부터 취락을 이루어 온 전형적인 농촌지대로서 금릉군의 곡창지대라 할 수 있다. 이 지역에서는 풍물굿을 '두레친다' 혹은 '걸립한다', '매구친다'는 등으로 다양하게 부른다.
삼한시대부터 빗내마을에서는 감문국의 나라 제사와, 잦은 수해를 면하려는 풍년제가 동제의 형태로 전승되어 왔다. 동제는 음력 정월 초엿새에 열렸는데, 이때 동제에 이어 풍물놀이, 줄다리기 등의 진놀이가 행해졌다.빗내풍물굿은 단순한 풍물굿과는 달라서 빗신과 전쟁에서 유래하는 진굿으로 전승되어 온 굿이다. 삼년마다 행해져 온 '빗神 '이 육십년 전부터는 십년마다 행해졌다가, 1970년 새마을 운동후 풍물놀이와 동제가 없어지고 약간의 악기만이 남게 되었다.
이곳의 풍물굿은 다른지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빗신굿이 있고, 판굿에는 개성이 강한 진굿이 있다. 또한 판굿에는 대북춤이라든가 소고잽이들이 행하는 기러기춤, 수박치기춤과 같은 것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빗내풍물굿에서는 당산굿·두레굿·마당걸립등이 빗신 판굿을 할 때 행해진다.
③대구 고산풍물굿
이굿을 치는 고산면에서는 옛부터 선조들이 말하기를 '농사가 잘 되려면 악을 잘 하라'고 하였기에 풍물굿이 토착화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곳은 걸궁패와 풍물굿을 하는게 아니라 두레굿을 하는 고장이다. 고산풍물굿의 특징적인 것은 풍물패가 전형적인 마을굿이라는 점과 농악편성에 나무로 만든 나팔 목덩강이 있고 흰 고깔은 우리나라 풍물굿에서 가장 크다. 그리고 당산제굿과 지신밟기가 토착화되어 있고, 가락이 소박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악기의 편성에 있어서 징과 북이 중요시되고 있다.
④예천 통명풍물굿
예천읍으로부터 3km 떨어진 외곽지대에 위치한 통명동은 160호의 가구에 인구 천여명정도의 마을이다. 벼농사가 주이며, 현재는 고추를 많이 생산하고 있다.통명풍물굿은 두레꾼들이 해나온 마을풍물굿인데 이 지역의 풍물굿이 발달한 요인은 이른바 마당제와 지신밟기, 풋굿에서 풍물굿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명풍물굿의 지신밟기는 옛날부터 성행하였으나 판굿은 발달하지 않았다.
#내용과 형태: 통명풍물굿은 걸립에 가장 많이 쓰였다. 걸립의 동기는 동네의 기물을 마련하기 위함인데, 추석에는 하지 않고 음력 7월 13일 풋굿놀이때 놀았다. 이 굿은 마을간의 친목을 위한 놀이로도 행해졌다. 농사지을때에 이 논에서 저 논으로 풍물을 치면서 옮겨 다니기도 했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혹은 새참 때에 풍물을 치고 놀기도 하였다. 굿의 구성은 마당굿·골맥이굿·샘굿·지신밟기 ·판굿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⑤부산 아미풍물굿
아미동은 부산시 서구 산기슭에 자리잡은 마을로, 이 마을은 일찍부터 풍물굿이 성하였다. 아미풍물굿의 특징은 당산굿을 할 때 모듬굿과 기제를 지내고 있는데, 이는 다른 지역에서는 흔히 볼수 없는 의예적(儀禮的)풍물굿이라 할 수 있고, 지신밟기가 발달 하였으므로 지신밟기 사설의 내용이 다양하다. 판굿에 나타난 예능은 연극적인 농사굿과 북춤이 돋보인다.
⑥진주풍물굿
진주풍물굿이 편성법은 경북풍물굿과 호남풍물굿의 중간형태이다. 쇠가락은 거의 3분박 3박자이며 혼합박자가 쓰이지 않는 것도 호남좌도풍물굿과 비슷하다. 그러나 덧배기와 다드라기 그리고 호호딱딱을 쓰는 것은 경북풍물굿과 유사하다. 풍물굿의 편성은 전원이 전립을 쓰고 있고, 개인놀이가 비교적 발달하였다. 판굿에서는 채상모놀이가 돋보이며, 군사놀이인 팔진해무진(八陣解武陣)굿이 특이하다.
4.호남우도풍물굿
호남우도풍물굿은 전라도 서부지역의 악을 말한다.호남우도풍물굿은 농경이 발달한 평야지대의 악으로서 전북풍물굿은 김제의 만경평야를 중심으로 한 인접지역에서 성행하였으며, 전남풍물굿은 나주평야를 중심으로 한 영산강유역에서 발달하였다. 그러나 이지역도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에, 그것은 역사적 지역성의 변화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한시대에도 소도와 같이 방울 달린 깃발의 농기 아래서 줄지어 노래하고 춤을 추었으며, 백제시대에는 오방성의 중앙성으로 문화중심의 고부성이었다백제 무왕은 궁중에서 대신들과 함께 음악을 직접 연주하며 신하와 손을 들고 춤을 추었으며 일본에 탈춤 및 기악을 보냈고 동양 최대의 익산 미륵사탑과 왕궁을 지었다. 이러한 방대한 국력은 백제가 중국의 동부를 식민지로 삼아서 들여온 국방력과 문화가 바탕이 되었을 것으로 본다.
통일신라시대에도 신라의 당나라 통로로서 부안·정읍·임실·남원이 문화사절단 왕래의 거리가 되었다. 그후 조선시대에도 대원군이 전국의 풍물패를 불러서 공연하였던 경복궁의 건축공사가 끝나자 그 인부·명창·풍물패원들이 정읍의 보천교 건축장에 모여들어서 풍물굿반주로 찬송하였다. 서양음악과 군악대음악을 익히 들었던 경향 각지의 풍물패원들은 정읍에서 종교 악공연으로 정착하고 발전하였다. 솔로(solo:독주)가 '산조'라는 말로 되고, '솔로 장구'가 '설장구'라는 말로 창조되었다.
설장구는 군악대 행진드럼곡을 장구로 표현한 것이며, 보천교·강증산교의 찬송 풍물악놀이에서 창조·발전되었으나 지금은 똑같은 박자로 전국의 모든 장구놀이에 유행되어 쓰이고 있다. 좌도 풍물굿의 신기남은 여기서 풍물굿을 연주하였다. 상고시대때부터 풍물굿을 좋아하는 기질이 있어서 역사적으로 풍물굿을 연주하는 자가 환영받는 지역으로 굳혀진 것으로 본다.
호남우도풍물굿은 대부분 호남좌도풍물굿과 맥을 같이 하지만, 서구의 문화물결인 청나라·일본 등의 군사교육이 몰려들자 그것들에 영향을 받아서 약간은 악이 보여지는 식으로 변질되었다.
호남우도풍물굿은 전남과 전북 그리고 지역에 따라서 악의 편성이나 복색 등은 달리하는 곳이 있으나, 근본적인 가락이라든지 내용, 판굿 짜는 방법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도풍물굿의 내용은 당산제와 마당밟기를 중심으로 한 마을굿을 비롯하여 기싸움굿·술매기굿·배굿·주당매기·화전굿 그리고 지심매기굿·영풀베기·보매기굿 등 두레악판, 걸립패들이 하는 결궁굿 등 다양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편성은 앞치배로 사물, 뒷치배로 소고와 잡색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중에서 쇠와 장구는 중요시되고 잡색들의 배역이 다양하다.그런데 잡색은 좌상·대포수·창부·구대진사·양반광대·각시광대·조리중·무동·중광대·참봉·할미·비리쇠·홍적삼등 많은 배역으로 돼 있는데, 일부지방에서는 가면을 쓰고 있으며 특히 영광풍물굿은 목가면을 쓰고 있어 이채롭다.
복색은 주로 흰옷에 조끼를 입으며, 걸립꾼들의 옷은 빨강색 바탕의 마고자에 오색 색동을 단 옷을 입는다. 따라서 좌도풍물굿에 비해 옷이 화려하다 할 수 있다. 쇠꾼의 전립에는 꽃상모라고 하는 부포가 달려있고, 설장구나 소고들의 고깔은 지방에 따라 꽃송이 속에 종이로 만든 나비를 꽂는 곳도 있다. 개인놀이에 있어서 쇠꾼들의 부포놀이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며, 설장구춤과 소고놀이춤을 좌도풍물굿과 비교해보면 가락은 비교적 느린 가락이 많으며 가락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변하여리듬이 다채롭고 구성지다. 그리고 호남우도풍물굿은 윗놀이보다는 밑놀이에 치중하고 있으며, 장구가락이 발달되어 있으다. 이지역은 우리나라 풍물굿에서 가장 가락이 다양한 곳이라 할 수 있다
①김제풍물굿
김제풍물굿은 인근 정읍, 부안, 이리, 익산 등지의 풍물굿과 같은 형태를 지닌 호남우도풍물굿의 계승지이다.김제는 우리나라 수전농업의 기원을 이루고 농경문화의 꽃을 피웠던 벽골제(碧骨提)가 있었던 곳이다. 천혜의 지리적 여건과 토질 그리고 알맞은 기후로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해 왔다. 그 중에서도 호남평야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만경평야는 국내 어느 곳보다도 수전의 기원을 이루어 도작(稻作)문화의 요람이며 미곡의 본고장임을 자처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곳 김제에는 농경문화에서 창출된 여러 민속놀이가 있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입석줄다리기·쌍용놀이·풍물굿 등이다.김제풍물굿에는 처음에는 북이 없었으며, 장구가 유달리 돋보이는 지역이다. 다른 지방의 악에 비하여 악의 내용이나 판굿 그리고 가락이 고도로 발달하여 있다. 따라서 악의 편성도 다양하며 예술적형식도 발달한 곳이다. 김제악의 특징이라하면 편성에 있어서 쇠와 장구를 주악기로 하고 있으며 큰북은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잡색에는 광대가 많고 두레를 감독하는 좌우집사와 창부가 쓰는 관에 어사화가 있는 것이 특이하다. 판굿은 금도삼유의 굿이 전승되고 있는데, 도둑잽이와 일광놀이 같은 군사놀이가 행해진다. 이 밖에 탈머리에서 하는 외부침입자를 잡는 군사놀이가 돋보인다.
②이리풍물굿
전라북도 정읍, 김제, 익산에는 외애밋들이라는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이곳은 이름난 곡창지대로 예로부터 농산물이 풍부하여 농민문화가 꽃피었고, 풍물굿이 뛰어나게 발달하였다. 특히 정읍, 김제를 중심으로 조직되었던 정읍풍물굿패는 풍물굿의 기예로 보아서 최고의 기량을 가졌었다. 지금은 그 잽이들이 작고하거나 타처로 이사하여, 거의 전승이 끊어져 가고 있다.전라북도 이리시 새실마을에서는 옛부터 마을굿이 성하게 전승되었고, 김제, 정읍 등지에서 전문적인 악을 배워 온 잽이들을 받아들이면서 전문적인 풍물굿패로 발전하였다. 이리풍물굿은 비교적 느린 가락을 쓰고 있으며, 가락 하나하나가 치밀하게 변주를 하여 다양한 가락을 구사한다. 춤은 상쇠의 부포놀이와 설장구춤, 소고춤이 돋보이며 또한 진법이 다양하다.
③영광풍물굿
영광풍물굿은 옛날 영무장굿의 전통을 잇고 있다. 영무장악이란 영광, 고창, 무장, 장성 등지의 악을 말한것으로영광과 무장, 장성이 중심이 된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이고장은 낭거립패들이 하던 악을 중심으로 발전하여서 다른 지역에 비하여 예능적인 면에서 다양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예로서 편성에 있어서 잡색들의 기능이 중요시되고 가락은 약간 느린편이며 벙어리가락을 많이 쓰는편이다. 팔진법과 같은 진풀이가 있으며, 잡색들이 목가면을 쓰고 연극놀이하는 것은 영광풍물굿에서만 볼 수 있다.
④진도 소포풍물굿
소포리는 진도군 지산면에서 두 번째로 큰 부락으로, 200여호에 주민 1500명 정도가 살고 있다. 이 마을의 악은 정월에 당산굿을 비롯하여 샘굿, 마당밟기를 하고, 논매기를 할 때와 추석에 마을 축제로 악을 즐기며, 상여 나갈 때도 한다.그런데 소포풍물굿은 전라도 우도굿과 좌도굿 그리고 웃다리의 형식까지도 갖추고 있어서 주목을 끈다. 진도풍물굿의 특징이라하면 그 형태가 낭걸립패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점이고, 악의 내용은 당산굿과 마당밟기 등의 마을굿과 매굿이 주축을 이룬다. 편성에 있어서 쾌자를 입는 농기가 있으며, 조리중이 종이가면을 쓴 것이 특이하다. 그런데 진도풍물굿은 우도풍물굿에 준한 풍물굿이나 준한 풍물굿이나 그 내용은 우도풍물굿과 다른 점이 많이 나타난다.
5.호남좌도풍물굿
호남좌도풍물굿이란 전라도 동부지역 풍물굿을 가리키는 것으로, 전북인 경우 전주, 진안, 남원, 임실, 순창 등지에 전승되어 있고, 전남인 경우 화순, 순천, 광주지역에 전승되어 있다. 호남좌도풍물굿은 비교적 산악지대의 풍물굿으로서 전북지방은 남원의 금지평야를 중심으로 악이 성행하였고, 전남지방은 섬진강 유역에서 발달하였다. 그러므로 호남좌도풍물굿이 전남, 전북지방으로 전파된 것은 금지평야와 섬진강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가무 기예인이나 글안의 기계인을 모여 살게 한 곳이 '거단정'인데, 아마도 '가단정'이라고 불리우는 임실군 강진면인 듯 하다. 그러므로 임실군 강진면은 예술인이 정착하였을 가능성이 많다. 필봉의 좌도풍물굿이 있는 이 지역은 이처럼 예술의 기예가 성행될 만한 여건과 역사적인 배경을 가졌다.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 역시 남원의 황산전투에서 왜병을 풍물굿으로 격퇴하고 남원읍에서 크게 나례(풍물굿)굿으로 개선하였다. 그후로 이성계는 전투때마다 풍물굿을 치면서 임하였는데 매번 승승장구하였다. 1397년에는 육군 훈련소격인 동문교장을 세우고 언제나 풍물소리와 깃발로 훈련을 하였다. 그러므로 좌도(남원)풍물굿은 이 시기에 모두 등용되어, 조선 군악을 유도하였다. 그래서인지 좌도풍물굿으로 진안 중평풍물굿 및 임실 필봉풍물굿, 남원·곡성·화순 등의 풍물굿에는 복장과 박자대형이 농경이나 오락보다 군사훈련성이 많아 보인다.
호남좌도풍물굿은 지역에 따라서 편성법이라든지 복색등은 달리하는 곳도 있으나 악의 내용이나 가락, 판굿짜는 방법등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좌도풍물굿은 당산제와 마당밟기 등 마을굿을 비롯하여, 매굿·기굿·두레굿·걸궁굿·판굿·노디고사굿 등이 있고 편성은 우도풍물굿처럼 쇠와 장구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잡색의 배역과 놀이가 다양하다. 그런데 잡색은 대포수·양반 ·각시·조리중 ·무동과 같은 기본적인 것과 지역에 따라 창부·놈부·화동·할미광대·비리쇠가 있고, 여천지방의 풍물굿에는 잡색이인형으로 가장한 무동·각시·거사 등이 있고 또 소·말·곰·사자·호랑이·닭 등과 같은 동물가장들이 있다. 또 할미광대는 지방에 따라 가면을 쓰고 있으며, 동물가장은 암컷, 수컷 등으로 반드시 한쌍으로 되어 있다.
좌도풍물굿은 가락의 흐름에 있어서 내고, 달아, 맺고, 푸는 4단계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가락속에서 맺고 푸는 구조를 지니고 있음은 물론 풍물굿판 전체에서도 맺고푸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좌도풍물굿의 가락은 우도풍물굿에 비하여 빠르고 거칠며, 일체부터 칠채까지의 가락과 영산과 짝드름은 이 지역 풍물굿의 특색이라 하겠다. 그런데 대부분의 지역은 칠채가락을 판굿의 첫머리에 반드시 쓰고 있으나 지방에 따라서는 판굿 가림새의 사이사이에 끼워 연주하는 경우도 있다.
가락은 맺고 푸는 변주 기교가 구사되나 호남우도풍물굿보다는 덜한 편이다. 일반적으로 잦은몰이로 몰다가 짝드름으로 넘기고 싸잽이로 나가서 휘몰이장단으로 마치는 빠른 가락이 많은데, 이것은 호남좌도풍물굿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판굿의 잦은 영산과 다드래기 영산은 음악적 기교가 매우 훌륭하다. 좌도풍물굿의 가락은 경남풍물굿에 비하여 조금 느리고 우도풍물굿에 비하여 조금 빠른 가락이라 할 수 있다.
판굿은 연주를 위주로 하는 채굿을 비롯하여 노래굿, 각종의 진풀이, 개인놀이, 연극놀이 등 다양하며 예능적으로 보았을 때 쇠꾼들의 부들상모놀이를 비롯하여 설장구춤, 북춤, 소고잽이들의 소고춤과 채상모놀이가 돋보이며, 여천지방의 동물가장놀이나 1인 2역의 인형극적인 놀이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예능이라 할 수 있다.
좌도풍물굿은 우도풍물굿에 비하여 개인놀이보다는 단체연기에 치중하고 있으며, 밑놀이 보다는 윗놀이가 발달하였다.
①임실 필봉풍물굿
임실군에 있는 필봉리는 산간 농촌 마을로, 인구는 214명, 호수는 42호며 41호가 농가이다. 농지면적은 498단(1단=300평)쯤 된다. 남자 103명 가운데 40명이 풍물굿패로 동원되는데, 성인 남자 중 악을 할 수 있는 이는 총동원되는 셈이다.필봉리는 본디 당산굿·마당밟기 정도나 치는 단순한 풍물굿이 아주 옛부터 전승되어 왔으나, 오늘날과 같이 판굿과 외지 걸립굿과 같은 수준높은 풍물굿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상쇠 古박학삼 선생님을 마을로 초청하면서부터라 한다.
박학삼 선생님은 강진면 출생으로 유명한 상쇠였으며, 그가 타계한 뒤에 송주호가 상쇠를 잇고 다시 양순용이 상쇠가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양순용은 필봉리 출신으로, 현재 필봉리 291번지에 살며, 필봉풍물굿의 상쇠로 이 마을 풍물굿을 이끌어 오고 있다. 어려서부터 쇠를 배워 14세 때 박학삼 상쇠 밑에서 끝쇠를 쳤고, 박학삼 상쇠가 타계한 뒤 송주호 상쇠밑에서 중쇠를 쳤으며, 송주호가 연로하자 18세 때부터 상쇠를 쳤다. 23세 때에는 순창에 살던 김문숙(당시 58세)에게서 퍼넘기기·양사 등 부포놀음을 배웠고, 24,5세 때에는 순창, 임실에 걸궁패 상쇠로 불려갔으며, 34,5세 때까지 때때로 걸궁패 상쇠를 했다고 한다.
이 마을에 풍물굿을 심어주었던 박학삼의 스승은 임실 청운리 이화춘이다. 여러지역의 풍물굿에서 비교적 공통되는 점과 필봉풍물굿을 살펴보면 필봉풍물굿은 순박한 산골주민의 한국적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좌도풍물굿은 개성적인 면이 뛰어나지만 장구만은 우도풍물굿잽이 신기남의 거주 이전으로 여기서 기능을 잇고 있다.(cf.상쇠 양순용과 신기남은 임실군 풍물패를 조직하여 만났다. 신기남은 정읍의 이복문과 함께 설장구 장단을 창조하였다.)
그런데 임실풍물굿에서는 경남풍물굿에서 볼 수 있는 화동이 있고, 칠채가락이 가장 명확히 보존되어 있는 지역으로 주목된다. 풍물굿의 내용은 매굿과 마당밟기가 돋보이며, 판굿에서의 수박치기, 등지기, 군놀이, 도둑잽이굿 등은 임실풍물굿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쇠가락에 있어서 호호굿과 노래굿의 간주는 특이한 혼합박자로 꼽을 수 있다.
#내용과 형태
필봉마을에서 치는 풍물굿에는 섣달 그믐에 치는 매굿, 정초에 치는 마당밟기, 정월 아흐레에 치는 당산제, 보름날 치는 찰밥걷기풍물굿, 보름날 징검다리에서 치는 노디고사굿, 보름 지나서 다른 마을로 걸궁하며 치는 걸궁굿(걸립굿), 여름철 김매기철에 치는 두레굿, 튼 풍물굿 치기 전에 치는 기굿, 큰 풍물굿을 칠 때 밤에 치는 판굿 등이 있다.
②화순 한천 풍물굿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한천마을은 옛날에 고을이 있었던 동복에서 1km 떨어져 있는 120호쯤 되는 농촌 마을이다. 옛적에는 200여 호 되는 큰 마을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주민들이 벼농사와 밭농사 외에도 삼베를 많이 짜는데, 오늘날 삼베 생산량은 전국에서 으뜸이다.
이 마을에서는 옛부터 축을 세게 쳐서 동복고을에서는 항상 독상리와 풍물굿 솜씨를 다투어 왔는데, 지금은 독상리 풍물굿은 전승의 맥이 끊어져 버렸고 한천풍물굿만이 전승되고 있다.
한천풍물굿은 한때 우도풍물굿을 배운 상쇠에 의해서 우도풍물굿으로 변했었으나, 1978년 상쇠가 바뀐후로 다시 좌도풍물굿을 치기 시작하였다.
화순 화천풍물굿의 특징은 좌도풍물굿의 특징인 채굿을 판굿 진행에 있어서 처음에 하지 않고 가림새 사이사이에 한다는 것이다. 판굿에는 점호굿이라 할 수 있는 새조시와 이십팔수, 군사놀이인 도둑잽이가 있는데 여기서는 연극놀이같은 특이한 진행법이 있다. 그리고 한천풍물굿의 춤에서는 북춤과 집단푸용인 팔법고춤이 돋보인다.
잡색놀이에 나타난 민중의 미의식과 세계관
잡색놀이는 단순한 놀이형위가 아니라 당시 민중들의 미의식이나 세계관이 녹아있다. 잡색의 놀이 종류나 복장, 구성 등에서 드러나는 미의식이나 세계관을 살펴보자.
민중의 미의식은 당 시대의 고통과 상황 앞에서 좌절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삶에 대한 강인함과 낙관성이 풍자나 해학으로 표현되었다. 예를 들어 대포수는 사냥꾼으로 분장하고 있는데 그는 동물을 잡는 인물구성이나 내용이 당 시대의 타락한 파계승, 양반, 각시, 대포수 등이 중심이 되어 처첩간의 갈등과 천민과 양반의 갈등, 파계승의 풍자 등을 주요한 내용으로 가져갔다.
민중의 삶의 체계와 세계관을 담고 있다.
다산과 풍요에 대한 기원과 민속신앙과 결부되는 액맥이의 의미나 자신들의 공동체를 보존하고 결속시키는 내용들이 잡색놀이에는 담겨있었다. 예를 들어 잡색중 창부의 복색은 개화꽃을 머리에 꽂고 있는데 개화꽃은 벼슬을 하고 금의 환양할 때 쓰는 축복의 관이다. 이것을 농사꾼이 쓰고 있음은 농사의 중요성과 풍년을 상징화하는 것이다. 또한 대포수의 경우 총을 들고 짐승가죽을 매는 등 무서운 존재로 분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액을 막은 축술사로서의 의미를 상징화하고 있다.
놀이 중에는 전남지역의 동물가면극의 경우는 동물의 암컷과 숫컷의 성행위응 연상시키는데 이는 다산과 풍요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 가면을 태워 그 재를 집안에 뿌리면 병을 막고 아이를 못 낳는 사람은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믿었다.
전북 지역의 무동놀이의 경우는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연결한다든지 거북놀이의 경우 장수를 비는 등 민속 신앙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공동체의 보존과 결속은 일광놀이나 도둑잽이 등에서 나타나는데, 이 놀이는 앞치배를 아군으로 잡색을 적군이나 첩자로 가상하여 적군을 잡는 일종의 군사놀이로써 당시의 공동체 의식을 확인하기 위한 놀이였다. 이 놀이는 전쟁시 농군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의식의 근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풍물굿판안에 담겨 있는 극놀이적 형태인 잡색은 구체적인 이야기 구조를 통해 풍물굿판을 보다 더 풍성하고 구체화 시킬 수 있는데, 이것은 잡색의 배역이 시대의 정형적인 인물들(예를 들어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보는 노동자, 학생, 정치인, 자본가 등)로 구성될 수 있고, 그 내용도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삶의 내용(예를 들어 환경문제, 물가문제, 비리문제, 교육문제 등)을 주제로 우리 삶의 막힌 부분을 풀어 내어 단순히 놀이 행위로 만이 아니라 그 안에 삶의 내용과 세계관을 담으므로써 건강함과 희망을 새롭게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