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토요일은 집중행동의 날이었습니다. 행사시작은 오후 3시였지만 잠시 다른 일들을 마무리하고 조금 늦게 도착한 공사장 후문앞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섬이라는 고립된 공간과 멀찍이 떨어진 시골이라는 접근성의 한계는 여전히 사람이 아쉬운 모습이었습니다. 귀에 무전선을 연결한 사복경찰들은 다리에서 행사를 지켜보고 있고 전경들은 공사장 문앞에 도열하여 방어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적었지만, 경찰들의 무장은 언제나 막강합니다. 그 앞에 앉은 사람들의 모습들에서 울분을 담고 있을 지언정 누구하나 무기를 들거나 무장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꽃샘추위를 앞둔 강정의 토요일은 따뜻하지만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부는 맑은 날이었습니다. 구럼비가 깨어지며 동시에 부담과 걱정을 안을 수 밖에 없는 사람. 영화평론가 양윤모님.. 그는 이날 옥중 단식 32일째, 이 포스팅을 하는 날 37일째.. 지금 그의 몸은 얼마나 초췌해 있을까요? 생기를 잃은 피부에 뼈와 살만 남아 고통스러울 그를 상상한다는 것은 너무 괴로운 일입니다. 그를 보았던 것이 지난 가을 중덕삼거리에서였습니다. 한차례 극한의 옥중단식 투쟁을 벌이고 간신히 회복한 그의 모습은 걸음 하나하나가 가볍고 조심스러워 보였습니다. 말씀도 조용조용히 하실 수 밖에 없었고 피부는 영양과 수분부족의 스트레스를 받다가 다시금 회복한 상태여서 건강해보인다 말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예전 모습을 뉴스타파 7회 마지막에서 봅니다. 구럼비 바위에 모로 누워 행복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그의 얼굴은 약간의 고집스러움이 있고 건강하며 단단해보였습니다. 말에는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다시금 시간순으로 그를 그려봅니다. 그 극한의 변화가 너무도 마음이 아픕니다.
삼각대 위에 올려진 작은 캠코더, 아프리카 인터넷 방송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현장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잠시 행사장을 나와 동쪽 철조망으로 가 봅니다. 햇살은 아직은 바다의 한기를 느끼게 하는 봄빛입니다. 파도는 잔잔합니다.바다엔 해군함과 바지선, 그리고 해경 보트가 떠있습니다. 저 케이슨.. 임시투하이긴 하지만 결국 강정바다에 내려놓았더군요. 저게 바다로 완전히 수장되면 기술적으로 걷어 올릴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강정앞바다의 흉물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물이 빠지고 있는 구럼비의 곶부리에서는 발파를 위한 작업이 한창입니다. 암반에 구멍을 내기 위한 작업인 듯 보이는데 이날은 전국적인 시선과 관심을 의식한 듯 큰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아보였으나 소소한 작업들은 여전히 진행중에 있었습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줄곧 카메라 줌으로 당겨보며 관찰하였는데 물이 빠지면 곶부리 발파부터 진행시킬 듯 작업이 계속 진행되더군요. 해경보트는 갑자기 바다로 달리더니 어느시점에서 멈추고는 해안을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트윗에서 그러더군요. 강정에서의 싸움은 시시각각 춤사위를 펼치는 싸움이라고.. 그만큼 강정의 싸움은 흥겨움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습니다. 저들은 웃으며 강정노래에 맞추어 몸짓을 하지만 이 역시 기나긴 저항, 언제 끝날지 모를 싸움에 지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합니다. 국가인권위에서 내려와 인권침해상황을 점검하고 있었습니다. 얼마전부터 보이기 시작한 파란조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안이 되었죠. 사실 강정이란 남단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경찰과 공사인력들의 인권유린실태는 보일듯말듯 교묘하면서도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구럼비에 들어간 사람들을 연행하는 일 자체도 위법이었지만, 연행을 알게모르게 공사작업부들이 경찰과 함께 자행한 일도 그렇고, 가장 잘 알려진 유린실태는 물속에서 송강호박사를 폭행한 SSU대원들의 모습이었죠. 물속에서 폭행하고 물 위에서는 V자를 그려가며 희롱했었습니다. 4년전의 광화문 촛불항쟁때와 비교해보면 작은 시골마을에서 공권력의 위법과 인권유린은 상당히 노골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중앙이 아닌 거리가 한참 멀리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의 저항이라는 점, 그리고 저항의 규모가 상당히 작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욕을 조금 먹긴 했습니다. 기대에 한껏 부풀었던 마을주민들은 이들의 관망에 화를 냅니다.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문제제기를 하고 보호를 해 주길 바랬던 것이죠. 하지만, 이들의 역할은 중립적인 자세로 인권유린유무를 파악하고 필요하면 조언과 중재를 하는 것 뿐이니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죠. 답답하긴 매 한가지 입니다. 행사가 마무리되고 강정포구까지 행진이 시작됩니다. 길게 늘어선 대오가 그렇게 적지도 않은 사람들이네요. 기자들도 뛰고 사복들도 뛰고 모두가 분주해지는 시점입니다. 이날의 행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는데 마침 제 눈에 띄인 분은 고대녀로 알려진 김지윤씨였습니다. 김지윤씨는 강정에서 며칠을 함께하며 저항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이 분. 이 분은 연합뉴스 아나운서였는데 취재차였던가 봅니다. 행진의 중간에서 대본을 읽으며 방송녹화를 하던 차에 참여인원을 경찰추산 수로 읽다가 옆에 함께 걷던 마을 삼춘들에게 호되게 항의를 받았습니다. 실제 수보다 적게 말한 것이죠. 뒤에서 따라가던 저는 그 항의속에 난감해하던 이 아나운서의 모습이 조금은 안쓰러웠습니다. 그런데 더 답답한 것은, 그냥 살짝 뒤로 물러나 걸어도 될 것을 자신이 왜 그렇게 읽었는지 끝까지 삼춘들에게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도 답답한지 걸으면서 연신 머리를 쓸어올리며 납득을 시키려고 노력하다가 제풀에 못이겨 인상도 구기고.. 사실 그게 지금 강정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대화를 나누어 납득시킬만 한 한 내용은 아닐텐데 말입니다. (참고로 제주에서는 나이든 연배의 할머님, 아주머님에게도 삼춘이란 호칭을 붙입니다.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삼촌 역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남자어른이 아니죠.) 중덕 삼거리를 거쳐 포구로 행렬은 이어집니다. 하루 전이었던가요. 펜스를 부수고 들어갔던 자리가 나옵니다. 이 펜스를 거두고 들어간 분들 중에는 목사님과 신부님도 계셨죠. 지금 그 분들은 구속이 되었습니다. 성직자가 구속된 일은 문규현 신부님의 방북사건으로 구속이래 23년만의 일이라 합니다. 글쎄요. 이게 과연 성직자까지 구속해가면서 벌여가야 할 일일까요? 사람들의 행렬은 구럼비를 향합니다. 그 사이 테트라포트는 엄청난 양으로 불어나 있었습니다. 저곳은 한때 올레길이었고 낚시를 하려는 사람들이 주차하던 곳이었는데 말이죠. 경찰병력들은 완전무장한 인원들만 하더라도 집회 참가자들 수의 네다섯배는 많아보였습니다. 천천히 걸으며 행렬에서 뒤쳐졌는데 제 옆을 지나는 전경들은 아무리 지나가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으니깐요. 그런데 갑자기 포구쪽으로 병력들의 이동이 빨라지더니 멀리보이는 포구에서는 갑자기들 뛰기 시작합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구나 싶더군요. 카약을 이용한 구럼비 접근을 막기 위해 카약을 압수한 것입니다. 그것을 항의하고 저항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과의 충돌은 당연한 수순이었구요. 카약은 무장한 경찰들에게 빼앗겼습니다. 하지만, 카약을 압수하는 행위 자체가 위법이라며 사람들은 저항했습니다. 강정 앞바다에서 카약을 띄우는 일은 법적으로 전혀 문제될 일이 아니라 합니다. 카약을 빼앗기지 않으려 사람들은 카약위에 모여 앉고 눕습니다. 그 주변으로는 경찰들이 둘러쌉니다. 문정현 신부님도 카약에 머리를 베고 누워계십니다. 뒤돌아 본 강정포구 앞바다엔 해경과 해군 특수부대원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미 특수부대원들은 바다에 입수한 상태였습니다. 카약없이 사람들은 바다로 뛰어듭니다. 구럼비로 가기 위해서입니다. 3월이지만 초순의 겨울한기가 남은 바다는 아무리 남쪽 강정이라해도 차가울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바다로 뛰어들어가 구럼비로 향합니다. 이들을 막을 법적 명분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바다로 뛰어들때마다 해군 특수부대원들이 앞에서 가로막고 저지합니다. 송강호박사를 수중에서 괴롭히는 영상은 그나마의 효력을 발휘했던지 특수부대원은 항상 손을 물 위로 올리면서 괴롭히지 않는다는 표시를 하곤 합니다. 바다에서 구럼비를 향하는 이들을 직접 잡지도 않고 수영을 방해하며 접근을 차단합니다.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자 부대원들도 입수인원들이 늘어납니다. 포구에서는 사람들이 그 광경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하나 둘 늘어나는 사람들은 오로지 구럼비로만 향합니다. 하지만 가로막힙니다. 깃발을 든 스님 한분도 옷을 벗더니 바다로 뛰어들어 구럼비를 향하다 제지당하고 문신부님도 옷을 벗고 바다로 뛰어들려 하십니다. 하지만 말려봅니다. 문신부님은 한차례 심장발작을 일으켜 중환자실까지 들어갔던 분이십니다. 가까스로 말려냅니다. 포구에서 바라본 구럼비는 테트라포트도 많아졌고 철조망도 많아졌습니다. 침사작업을 위한 테트라포트도 많아졌습니다. 일차 발파작업이후 흙탕물이 바다로 쏟아지던 자리는 다행히 맑아졌지만, 구럼비 아래의 지하수가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발파 다음날, 지하수를 수조에 받아 농사용으로 쓰던 어느 부근 농장에서는 발파이후로 지하수 색깔이 갑자기 검게 변했다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기어이 구럼비에 들어가고 맙니다. 육로를 통해 들어가 철책 바깥에서 구럼비를 밟아봅니다.
멀리서 보려니 확인은 안돼지만 구럼비로 향하는 육로가 있는 듯 합니다. 사람들이 들어갔으니 이제 곧 경찰들이 들이닥치겠죠. 멀리서 관찰한 폭파지점으로 보이는 곳은 돌무더기와 흙더미가 쌓여있습니다.폭파 후 돌과 흙더미들을 쌓아둔 듯 한데, 다행히 구럼비 본바위쪽이 아닌 안쪽입니다. 하지만 저 곳도 여러 생명들이 어울려 살던 곳입니다. 그리고 구럼비의 일부입니다. 반대쪽에서 본 곶부리 부근의 천공작업은 계속 진행중이었습니다. 물이 빠져 드러난 곶부리.. 바닷물에 흠뻑 젖어있을 그 몸뚱아리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어 파괴하는지 돌먼지가 뿌옇게 올라옵니다. 3월의 꽃샘추위를 앞둔 날의 바다에서의 저항, 깨어지는 구럼비, 그리고 모인사람들의 절규와 응원.. 강정포구는 저항하는 이들이 표출하는 모든것의 한 덩어리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우리에게는 저항의 의지뿐,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저항, 그리고 그에 따르는 절규와 응원, 분노.. 결국엔 슬픔으로 귀결됩니다. 바다에 뛰어들어 열심히 저항하고 올라온 이에게 옷을 덮어주고는 끝내 끌어안아 눈물을 흘립니다. 이제 구럼비 위로는 경찰과 사람들이 뒤섞입니다. 이날은 함부로 연행을 하거나 제지하지 못합니다. 해상에서 구럼비로 들어서려는 이들은 끝내 오르지 못합니다. 해가 서서히 저물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해상에서의 저항을 응원하고 해경과 해군 특수부대원들의 제지를 바라보며 항의를 멈추지 않습니다. 사람이 그닥 많지 않습니다. 강정엔 물품도 필요하긴 하지만 결정적으로 사람이 부족합니다. 사람이 부족하다보니, 그리고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노령이다보니, 쉽게 저항하지도 못하고 쉽게 폭력에 노출되고 유린당합니다. 문득 물총새 한마리가 날아와 제가 선 아래 테트라포트에 앉아 해상의 저항을 바라보는 듯 합니다. 문득, 구럼비가 사라진 이곳에 물총새가 날아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총새는 지금 인간들이 벌이는 이 상황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지금 이 순간의 의미를 물총새는 알고 있을까요? 마치 알고 있다는 듯, 오랜시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바다쪽으로 다시 날아갑니다. 석양이 물들어가는 가운데 해상의 저항은 계속됩니다. 한라산은 여전히 분명한 자태로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해경은 결국 1차, 2차 경고를 하기 시작합니다.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할 수 있다지만, 이 강정포구에서는 카약을 띄우는 일도 헤엄을 치는 일도 모두 위법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저들은 그저 구럼비까지 헤엄쳐 오르려하는 것일 뿐, 공무를 방해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해상 저항의 압권은 단연 송강호 박사님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닿을 수 없었던 오탁방지막까지 기어이 다가갔습니다. 그것도 세 명의 부대원들이 제지하였는데도 말입니다. 부대원들은 물속에서 폭력을 쓸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으니 답답했을 것입니다. 종국에는 네 명이 달라붙어 제지를 하더군요. 부대원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참 재밌었습니다. 마치 자신이 맞은 것처럼 뒤로 넘어지는 헐리우드 액션을 종종 보여주더군요. 그러다 답답했는지 물속에서 잡아당기기도 했나 봅니다. 송강호 박사님이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항의표시를 합니다. 그렇게 해가 넘어가니, 저항도 마무리를 합니다. 내일이 있기 때문이죠. 저항은 질길수록 유리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기어이 카약을 바다에 띄우고 깃발을 흔들면서 이날의 저항을 마무리합니다. 포구를 내려오면서 바라본 석양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저 태양은 그저 자연 그대로일 뿐입니다. 때로는 자연 그대로를 놓아두려는 인간의 싸움을 아무렇지 않게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는 자연 그대로가 아쉽고 서운해지기도 합니다. 역시 집중행동의 날 마무리도 춤사위입니다. 저항은 지치지말고 질겨야하고 즐거워야 합니다. 압수당한 카약도 다시 되찾고, 물에 들어간 사람들은 몸을 추스리고, 사람들은 저항을 마무리합니다. 아무리 피곤하고 울분에 차도, 즐거움과 희망은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다음날 3월 11일 일요일은 아침부터 몰려온 꽃샘추위로 날이 무척 쌀쌀했습니다. 바람도 많이 불었구요. 다시 찾은 강정포구는 조용했습니다. 전경 일개부대가 주둔하고 있을 뿐, 사람들의 모습은 아주 뜸했습니다. 전날의 행사와 저항으로 많이 피곤하기도 했거니와 날도 무척 추웠으니까요. 포구 서쪽의 구럼비 옆 바위에 올라봅니다. 물이 빠진 멀리 보이는 바위엔 갈매기들이 바람을 맞으며 쉼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기와 더불어 무척이나 차갑고 맑게 보이는 바다.. 이곳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기름이 떠다니고 해저환경의 변화로 인한 백화현상과 부영양화에 의한 적응력있는 다른 해초들이 무성해질 것입니다. 해류는 변화할 것이고 변화된 해류는 바닷속 환경을 완벽하게 바꿔놓겠죠. 수억년의 시간을 적응하며 살아온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변화를 겪을 것입니다. 물이 빠진 바다, 곶부리 천공작업은 오늘도 계속됩니다. 천공장비가 하나 더 늘어나 있습니다. 물에 한번 잠겼다가 다시 드러나 흠뻑 젖은 자리에 돌먼지가 하얗게 덮여있습니다.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바닷물에까지 사람이 들어가 벌이는 작업은 무언가에 ?기는 듯 합니다. 매서운 바닷바람만이 존재하는 한적한 포구.. 함께 한 형님은 문득 사라져 갈 이곳을 아쉬워하며 기름이 떠다니고 콘크리트에 덮여버릴 구럼비와 강정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저역시, 한여름 아들내미의 넓은 이마를 들추며 지나가던 바닷바람, 매섭게 제 몸으로 들이쳐오는 하얀 포말을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저 아무것도 없던 구럼비의 모습을, 그리고 공권력과 자본이 철조망과 공사장비로 뒤덮어버린 구럼비의 모습을 그저 기억속의 모습으로만 담아두어야 하는 것일까요? 긴박했던 한 주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공권력과 자본이 의도하는 대로 흘러갔습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은 그저 관심을 가지고 저항을 바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나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강정이라는 반도 최남단의 마을은 사람들로 하여금 물리적 거리감에 발만 동동 구르게 만들뿐이었습니다. 찬성하는 이들은 갈등을 조장하는 이들의 지원하에 종북좌파, 빨갱이라는 이제는 시덥기까지 한 딱지를 붙여가며 저항하는 이들을 비난하기에 바쁩니다. 또는 나름의 생각으로 찬성을 한다지만 논리의 중심엔 결국 국가주의와 자본논리의 비인간적 한계를 드러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생각이 없습니다. 트윗에는 구럼비를 살리려는 움직임과 저항이 들불처럼 번지지만 이 역시 시야의 한계가 분명한 우리끼리의 이야기로 수렴됩니다. 그 중심에서 자본논리에 충실한 정부는 자본 그 자체인 기업의 욕구대로 움직여주며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에만 바쁩니다. 해군과 경찰로 구성된 공권력은 이를 비호하기에 바쁩니다. 얻어터지는 것은 힘없는 저항자들, 유린당하고 맞고 구속당하고 경제적 압박과 침탈을 통해 다치고 지치고 쓰러집니다. 싸움은 길어지고, 버티는 방법은 질기게 즐겁게 울분을 쌓되 표출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저항하는 것일뿐.. 하지만 한계와 지루함과 피로감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구럼비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가장 기본적이고 미약하지만, 가장 강력한 저항이라는 것.. 끝까지 그것을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임을 믿습니다. 폭압과 불의에 대한 인민의 저항은 언제나 끈질긴 기도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 구럼비는 깨어진 자신의 아픈 살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우리의 기도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
출처: 칼을 벼리다. 원문보기 글쓴이: 민욱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