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살아 계실 때, 가장 좋아하시던 꽃은 배꽃.
출입이 어려우신데 배꽃이 너무 보고 싶으시다기에 출입문 바로 앞, 거실에 앉아서도 보실 수 있도록 배나무 두 그루를 심었었습니다. 바깥을 나가지 않아도 배꽃을 거실에서 쉽게 보실 수 있도록 출입문 바로 앞에 심어 놓은 겁니다.
'어머니는 배꽃을 보시면 왜 좋으실까?
백설처럼 흰 꽃잎이 좋으셨을까? 소복하게 탐스럽게 모여 피는 모습이 예쁘게 보이셨을까?'
거실에서 출입문으로 당겨 앉으신 의자에서 오랫동안 배꽃을 보시는 어머니 뒤에 서서 한 번은 긴 상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족 앨범에 있는 흑백사진 속-- 곱게 딴 머리로 단정히 카메라 렌즈를 보시던 어머니 어리실 때의 생생한 모습이 담긴 그 시간부터 어머니의 살아오신 날들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외갓집의 뒷마당에 3층 탑 높이만큼 높이 자라 거목이 된 돌배나무를 생각해 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는 외갓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시면서 뒷마당에 흐드러진 배나무에 핀 배꽃을 지금까지 마음에 두시고 그리워하면서, 사실은 어머니의 지나간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신 건 아닐까? 흰 꽃이야 벚꽃도 있고 백목련도 있지만 그런 꽃들은 눈에 두지도 않으시면서 배꽃만 좋아하신 이유가 그 배나무와 맞닿은 그 시절이 그리우신 건 아닐까? 그렇게 두루뭉술 나만의 해답인 양 어머니께 여쭈어보지도 않은 채, 홀로 그러려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천상의 주님께로 돌아가시고, 몇 해 동안은 두 그루의 배나무를 캐내지 못하고 현관을 출입할 때마다 불편을 감수하면서 지냈는데도 마음은 더 없이 편하고 좋았습니다. 어머니가 눈에 담으셨던 배나무, 어머니가 곱고도 그리운 시간을 담아 두셨던 배나무의 배꽃이 피는 봄이면 나도 어머니의 품을 그만큼 그리워 했으니까요. 그러다가 이태 전에 한 그루의 배나무는 다른 곳으로 옮겨심었지만 지금도 출입문에서 조금 비껴 선 한 그루의 배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서, 내 어머니처럼 늘어진 가지로 내가 들고 날 때마다 내 어깨를 툭 허니 치기도 합니다.
어머니는 화초를 참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화초를 얼마나 잘 기르셨는지 다 죽어가며 시들었던 이웃집 화초도 어머니의 손으로 오기만 하면 짙푸른 잎이 무성해지는 걸 한 두번 본 게 아닙니다.
그 중에 산수국과 나도 샤프란을 귀하게 여기고 자주 손질하며 아끼셨습니다.
아직도 생각하면 무지근해지는 11월, 장례를 마치고 그 첫해는 온통 정신이 없고 얼이 빠진 채 먹먹한 마음으로 지내느라 한 해 겨울을 지날 동안에도 어머니의 화초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봄이 불현듯 찾아왔을 때 어머니를 깨우듯, 만나듯, 찾아보듯 어머니의 화초를 기억해 냈습니다. 이미 화분은 바짝 말라서 모두 말라 죽고, 다 죽은 것 같아서 온몸이 떨리고 혼절할 듯 정신 없이 선불맞은 것처럼 화분을 단도리하며, 물을 주고, 그늘도 만들어 주면서 보살폈습니다. 이 꽃들 마저 잃고 나면 내게서 어머니 향취가 모두 사라져 버릴 것 같아 혼이 나갈 지경으로 애타게 보살피고, 아기 보듯 살폈더니 다행히 산수국도 간간이 눈을 틔우고 ‘나도 샤프란’ 꽃도 듬성듬성 잎이 올라왔습니다. 눈물이 나고 울음이 치솟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리고 올 해 또 다시 나도 샤프란이 이렇게 무성하게 꽃대를 올리고 있습니다.
여전히 어머니의 소식인 듯 이 아침이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워집니다. 흔들리는 바람도 좋습니다. 가까이 지저귀는 박새와 먼산의 뻐꾸기 소리도, 흔들리는 초록의 무성한 나뭇잎들도 다 좋습니다. 오늘 하루가 온통 다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중에 목련공원으로 그리운 어머니 아버지를 보러 훨훨 갈 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y9yOrteKhA&t=232s
8분이 지나고 끝으로 가면서 농사를 과일을 소개하는 중에 어머니의 화초, 배나무가 대추알만한 열매를 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