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너드 라루. 1950년 당시 35세
그는 처음으로 선장직에 올라 배를 하나 공급받는다,
그 배의 이름은 메러디스 빅토리호.
건조한지 오 년 된 7600톤급의 그 배는 선원 십여 명을 태우고 물자를 공급하는 화물선이었다.
선장이 된 후 그에게 내려진 첫 명령은 센프란시스코에서 배를 몰아 일본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요코하마항에 정박한 후, 그는 연료를 가득 채운다
" 우리 배는 특명을 받고 있었고 특명 조항에는 ' 선장이 지시하거나 미국 정부 혹은 정부의 어느 부처,
위원회 부서가 지시하는 세계 어느 지역 어느 항구든지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12일의 항해 후 요코하마에 도착해 우리는 전투 장비를 실었습니다.
아직 가야 할 곳을 모른 채 우리는 항구를 떠났습니다.
명령서는 도쿄만을 떠난 후 개봉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도쿄 앞바다를 떠나 푸르고 검은 바다 위에서 우리는 밀봉이 된 명령서를 개봉했지요.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목적지: 동해 한반도 흥남
한국 전쟁의 상황이 대해 자세히 알지 목한 채 그는 흥남으로 떠나
1950년 12월 19일 흥남에 정박한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자신의 운명, 그리고 만사쳔여 명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
어쩌면 한국의 인물 지형을 바꾸어 놓는 운명을 만난다.
흥남 부두는 더 이상 발을 디딜 수 없을 만큼 피난민들이 몰려 있었다.
기온은 영하 이십 도(대체 영하 20도의 추위는 어떤 것일까?....)
'자동차 엔진이 얼어 터지는 추위라고 미군들은 당시를 기록했다.
그 사람들은 바람막이 하나 없이, 심지어 아이들을 업고 안고 바람이 몰아치는 부두에 서 있었다.
어떤 이들은 허리까지 차는 차가운 물 속까지 들어와 배에 태워 줄 것을 애원하고 있었다.
불과 10Km도 안 되는 곳에서 중공군이 포격을 가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빅토리아호는 퇴각하는 미국 해군에 연료를 공급했으니 이제 돌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레너드 라루 선장은 그럴 수 없었다
' 거기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살려 달라고 애타게 애원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쩌면 그는 그들을 그냥 버려두고 갈 수도 있었다.
이미 제2차 세계 대전을 겪고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사람이었다.
전략상 후퇴하는 미군이 빠른 퇴각을 종용했다.
중공군의 포는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 여기 있소' 하고 불을 환히 밝히고 사람들을 태우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게다가 그 바다는 기뢰밭이었다 화물선의 승선 정원은 열두 명이었다.
레너드 라루 선장은 그때 결심을 하고 명령을 내렸다.
" 사람들을 태우시오, 타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그떄는 난방이 전혀 되지 않았어요 그 배에 우리가 가진 무기라고는 선장님이 가진 권총 한 자루 뿐이었어요
일단 항구를 떠난다 해도 철저한 보안 떄문에 그 배는 어떠한 것과도 무전 교신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기뢰는 바다에 거미줄처럼 깔려 있고 우리에게는 기뢰를 탐지할 어떤 장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배 옆으로 그물망을 내렸습니다. 배가 흔들렸고 사다리도 흔들렸습니다.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파들과 아이들이 강풍에 흔들리는 사다리에 대롱거리면서 매달려 올라올 떄 우리는 차라리 눈을 감았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승선한 피난민들은 갑판으로부터 오 층 아래 깊이로 이동했어요,
말이 이동이지 운반되었던 겁니다,
우리는 그들을 커다란 판자에 태워 하물칸의 가장 밑으로 이동시켰어요
바닥만 있는 커다란 엘리베이터로 지하 오 층으로 갔다고 보면됩니다.
그리고 뚜껑이 덮였죠.
이제 모인 피난민들은 지하 사 층으로 이동되었고 다시 뚜껑이 덮였습니다.
그들의 머리 위로 뚜껑을 덮을 떄 모골이 송연했어요.
거기에는 화물용의 아주작은 환기통이 몇 개 있었을 뿐이었지요.
화장실도 없고 불빛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는...
1950년 12월 22일 저녁 아홉 시경에 시작된 승선을 밤새도록 진행되어 다음 날 동이 트고 다시 정오가 될 떄까지도
계속되었어요.
'이게 뭐지? 대체 이게 뭐야! 이 일이 끝날 수 있을까?"
신기하게도 더 태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어디선가 공간이 생겨나는 것 같았어요.
8천 톤에 이르는 강철로 이루어진 배가 마치 고무처럼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아직 부두에는 사람들이 있었죠. 애타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더는 실을 공간도 없었고 이제 더는 지체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선장님으로 부터 드디어 배를 출발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졌지요.
사다리를 걷어 올려야 하는 시간이 되었어요.
저는 그 후로도 가끔 악몽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남겨져 있던 그들의 얼굴이. 그애절한 눈빛이 그 꿈속을 둥둥 떠다녔어요.
미군 군함이 계속 포를 쏘아 대면서 철수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알려 주었어요.
네이팜탄이 흥남부두에 떨어지는 것도 우리는 보았죠. 해변에 있던 군인들은 떠나고 해변에 남아 있던 사람들도 사라졌죠,
그리고 나중에 항구 자체가 사라졌어요."
그리하여 배는 불빛 하나 밝히지 못하고 공해상으로 항해하기 시작한다. 생각할 수 있을 까?
불빛도 없고 , 식량도 없이 오직 별빛과 신의 가호만을 의지한 그 무모한 항해를,
그 무모한 항해를 지시한 선장을
키를 잡은 그가 느꼈을 어깨의 압박을,
그 검고 차가운 죽음 같은 바다 위로 떠가는 침묵의 항해를,
배는 드디어 공해로 빠져나갔다, 거우 숨을 돌렸을 때 레너드 라루 선장에가 선원이 다가와 물었다.
"선장님 이 배에 몇 명이 승선했는지 아십니까?
선장이 대답했다
" 글쎼, 아까 세었을 떄 만사천 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자 선원이 다시 말했다.
"아닙니다. 만사천한 명입니다. 방금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나중에 마리너스 수사가 된 레너드 라루 선장은 이 순간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 산모에게 모든 것을 공급하게. 우리가 가진 식량, 빵 그리고 뜨거운 물을, 그러데 의사가 있나? 어쩌지?
우리에게는 분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자 선원이 대답하였다.
" 선장님 한국인들은 나이 든 여자가 산부인과 의사보다 더 침착하게 아이를 받아내고 있어요.
그리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국 여인의 가슴에서 우유보다 더 풍성한 젖이 흘러나오고 있어요.
그리고...놀라지 마십시오, 네 명의 임산부가 지금 아이를 낳기 위해 대가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네이팜탄과 권총한 자루 말고 또 하나의 대결이 이 항해 중에 펼쳐졌다.
그것은 죽음 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그 항해 중에 새로운 다섯 생명이 태어났다.
배는 남쪽으로 사흘간 항해했다고 했다. 거제도에 도착해 뚜껑을 열었을 떄
그들은 모든 것을 각오 했다고 했다.
약탈, 식인 혹은 餓死(아사)와 凍死(동사) 전염병 혹은 살인.
그런데 놀랍게도 단 한 사람도 상하지 않았다. 그건 기적이었다.
그들이 하선 하는 데만 다시 이틀이 걸렸다.
한국인들은 그 힘겨운 상황에;서도 약한 이들에게 먼저 하선을 양보하였다.
"팔꿈치로 밀치는 사람 하나 없었다. 그들은 난민이 아니었다. 그들은 품위를 간직한 사람들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하선 한 후 레너드 라루 선장은 그날이 크리스마스이브인 것을 알았고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않았다,
"저는 떄떄로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그 작은 배가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태우고 어떻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그 많은 위험을 극복했는지를 .
그해 크리스마스에 한국의 검은 바다 위에서 하느님의 손길이
제 배의 키를 잡고 계섰다는 메시지가 저에게 전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