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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구복에서 ASA교육울 첨가하시고 카리브해에서 출항하여 한국으로 돌아오신다고 합니다.
여행동안의 항해일지를 세계일주를 준비하는 무한도전호에게 좋은 자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항로 (900마일)
윤 선장님!
3월말 A.S.A. School 에 참가해서 세일링에 대해 배웠던 문성만 입니다.
먼저 2번 메일을 보냈었는데 준비 하느라고 바쁘셨는지 무 연락이 없더군요.
파나마에서 만날것을 기대 했지만
반대로 방향을 택하셨으니 만나기가 쉽지 않을것으로 생각 됩니다.
세일링에 꿈을 접지 못해 4월부터 준비 8월에 구입하고 말았습니다.
2002 Beneteau Oceania 361 로
길이 11.1 미터, 넓이 3.83 미터, 깊이 1.53 미터, 높이 15.5 미터
서베이어를 고용하여 배를 인스팩션한 후 구입 했습니다.
캐리비안 에 있는 St. Martin 이라는 나라에서 긴 항해에 필요한
솔라 파넬 대, 배터리 3개(전부5개), 레이더는 20-30년 경험자들의 필요 없다는 말에 붙이지 않았고
나머지는 거의 붙였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경험한 캐리비안 에서의 세일링을 간략하게 적을테니
윤 선장님의 웹 페이지에 올려 주십시오.
바로 올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면 다음부터 바로 올리겠습니다.
9월 25일 금요일
오전 7시 45분 드디어 Oyster Pond Marina를 출발 두려움반 설레임반을 갖고 첫 항해에 나섯다.
경험이라고는 윤 선장님 학교에서 배운것이 전부,
동기도 두 분이 계셨는데 지금이나마 인사드린다.
두 분 모두 좋은분 이셨는데 첫날이라 그런지 바다는 너무 조용 했다.
바람이 없을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배운바가 없다.
조금은 가야겠고 엔진이라도 사용 하자.
하루전 중국집에서 산 닭고기를 먹었는데 상했는지 너무 속이 좋지 않았다.
항로는 챠트 플로토로 지도에서 St. Matin에서 파나마 운하까지 막대자로 일직선.
9월 26일 토요일
오전에 돌고래 떼가 축하를 해 주었다.
약 30-40분 주위를 돌며 놀다 사라지고
오후 3시경 미국 네셔날 가드 비행기가 배를 확인후 돌아감.
무엇보다 예상치 못했던것은 세일링을 하면서 파도에 너무 흔들려
식사준비를 해서 먹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2틀동안 먹은것이 없으니 너무 힘들다.
저녁이 되자 파도가 높아지고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9월 27일 일요일
항해 3일째 육지와는 멀어지고 파도는 점점 더 높아 진다.
신기하게 날치가 콕핏으로 날아 들었다.
제노아 와 메인 세일의 이용법을 알만하니
바다는 매번 다른 방향으로 다가 오는것 같다.
너무 힘이 드니 머리에 아무 생각이 없다.
9월 28일 월요일
집채 만한 파도 책이나 잡지에서 많이 보았지만
직접 경험 하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파도가 배를 들어 올리면 사방이 하늘이고
내려오면 빵 소리가 나면서 사방이 바닷물 벽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언제부터인가
살기 위해 세일링을 하는 자신을 발견 했다.
9월 29일 화요일
파도는 여전하고 바람은 매섭다.
메인은 2단 축범 제노아는 앞이 바람에 돌아가지 않게 아주 조금.
언제나 폭풍은 끝나는 것인가
진짜 바다에 내리고 싶다.
잠이라도 자면 덜 힘들텐데
9월 30일 수요일
아무리 생각해도 더 이상은 무리다.
콜롬비아와 베네쥬엘라 국경 쪽으로 배를 돌렸다.
아직도 17-25 놋트 바람과 거센 파도는 치지만
조금이라도 육지에 가까이 가야 한다는 일념하에 열심히 달렸다.
먹은것은 매일 감자칩과 비스켓
저녁 7시쯤 콜롬비아 북동쪽 끝에 있는 포트에 도착 했다.
지피에스 상에는 분명히 포트가 있는데 찾을수가 없다.
할 수 없이 다음날 아침까지 바다위에 떠 있었다.
해류가 강해서 엔진을 걸고 2000 rpm 으로 놓으니
제자리에 있는것 같았다.
10월 1일 목요일
아침 6시 30분쯤 날이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포트는 있는데 집이 약 10채 되려나
조그마한 고기배나 들어 갈수있는 정도 이다.
언제인가 잡지를 읽은적이 있는데
콜롬비아 에서는 기지쪽이 안전하단다
지피에스상에 공군 기지가 30 마일 밖에 있었다.
군 기지 근방에 가니 기지와 주변에
약 300-400명 사는 마을이 있었다.
몇 일 동안 바다와 싸우느라 힘도 없고
그냥 마을 앞에 엥커링을하고 잠을 잘려고하니
원주민이 와 말은 통하지 않지만 따라 오란다.
따라 갔더니 랍스터 어장을 벗어나 바로 마을 앞 전혀 파도가 없는곳에
엥커링을 할수 있었다.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기려나.
자자 너무 피로 하다.
10월 2일 금요일
화창하고 햇살 가득한 아침을 오랜만에 시작한다.
원주민이 들어오는 도중 그물을 찢었다고 들고와
랍스터 3마리를 10불에 사고 그물값으로 5불과 맥주3갠 지불.
이곳은 메일 하루 세 번 15노트 이상의 바람이 부는것 같다.
동네를 구경하고 싶었지만 비자가 없어 내릴수가 없었다.
원래 5시간 이상 있으면 클리어 란스 인을 해야 하지만
관공소가 하나도 없는 관계로 할 필요가 없었다.
하루 종일 개짖는 소리가 가득하고 너무 조용하고 깨끗한 마을
하루 더 쉬었다가 내일가자.
10월 3일 토요일
닭 노래 소리에 새벽 4시 30분 경에 잠이 깨었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 간 것 같이 너무 정겹다.
떠나는 날이 장날 인지 다시 바람과 파도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점은 이제는 배를 믿고 있다는것이다.
배가 뒤집어 질것같이 기울어도 절대 안전 하고
더욱더 즐길 수 있는 것이 항해 요트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요트가 조금만 기울어도
축범을 하여 평행되게 맞추었는데
지금은 세일들을 잘 이용하여
기울더라도 빠른 속도를 얻을 수 있었다.
10월 4일 일요일
이곳 남미에서는 영어는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포트를 불러도 대답이 없다.
이른 새벽 이상한 동네 앞에 있었다.
엥커링을 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는데
이전 한국의 중량교 판자촌은 호텔 수준이다.
죄수들인지 마을 옆 염전에서는
전부 똑같은 옷을 입고 내쪽을 보고 있었다.
빠삐용 영화는 왜 생각 나는지.
얼른 배를 돌려 나오는데 뒤따라 올까 땀이 난다.
그냥 계속 가야 할것 같다.
12시 쯤 왼편으로 구름위에 산 또 그 위에 구름 위에 산
또 구름위에 산, 해발 몇 미터 인지는 모르지만 진짜 높은 산이다.
갑자기 약한 바람이 이곳 저곳에서 불어 오더니
배가 움직이지를 않는다.
바다는 마치 거울과 같고 바람은 전혀 없고
한 두시간 지났을까 지피에스는 여전히 같은 장소를 가르친다.
아마 이것이 무풍지대 인가 보다.
바람을 기다리다 할 수 없이 엔진을 걸었다.
한 7시간 엔진으로 주행 했을까
앞에 로얄 카리비안 러브 보우트가 보인다.
이제 만을 건너 한 40 마일만 더 가면 발랑낄라 라는 도시가 나온다.
옆쪽으로 조그마한 항구가 나타나 계속 포트 콘트롤러를 불렀지만
응답이 없다.
너무 어두워 항구에는 들어 갈수 없어 계속 가기로 결정 했다.
지금까지의 가장 중요한 경험은
무조건 오후 3-4시가 되면 근방에
항구가 없으면 엥커링을 하는것이 가장 좋은것 같다.
어두워지면 계속 항해하는 방법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것 같다.
10월 5일 월요일
새벽에 조금 바람이 불다 오전에 또 무풍 진짜 힘들다.
어제도 엔진으로 10시간은 주행 했는데
오늘도 오전 6시부터 시동을 걸었다.
진짜 바람이 없으면 배는 움직일수가 없다.
계속 엔진으로 주행
카타헤나(Cartajena)시 앞까지 왔으나 주변이 너무 어두웠다
역시 항구 콘트롤은 무응답.
너무 몸과 마음이 피로하니
부이 불빛을 잘못 보아 얇은곳으로 들어가 바닥이 걸렸다.
10미터에서 갑자기 얇아지니 방법이 없었다.
십년 감수 했으나 재수좋게 나올수 있었다.
역시 4시 이전에 목적지에 닿을수 없으면 그 자리에서 엥커링을 할것.
깊이 20 미터 지점에 엥커링을 하니
카타헤나 도시의 야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얼른 자고 내일 아침 부두로 들어가야겠다.
10월 6일 화요일
아침 6시 30분에 출발 카타헤나 항구로 기수를 돌렸다.
바로 눈앞에 도시가 있었지만
3시 30분이 되어서야 마리나에 도착 했다.
들어오는 도중 이곳을 세일링 하는 프랑스인을 만나
채널 68을 이용 쟌을 찾으면 된다고 한다.
쟌을 찾아 슬립을 얻어 무사히 항구에 도착.
이제 좀 안심이 된다.
이곳에서 7년 경험의 호세를 만났다.
말은 별로 통하지 않았지만 오늘 많은 도움을 받았다.
모든 요티들은 서로에게 친절 했고,
이곳 마리나에 정박한 요티중에
세계일주를 한 요티들이 10명 이상 이었다.
경력은 보통 18년에서 20년 많은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요티들의 말을 들어 보니 여러 나라를 다니며
세계 일주로 하는것은 누구나가 할수 있는 것으로
그렇게 세계일주를 한 사람은 수를 셀수 없으며
넌스탑 세계일주를 진짜로 치고 있었고
모든 요티들은 서로가 알고 있는 지식은 공유 하기를 바랬다.
저녁에는 콜롬비아인 호세와 올드 타운에 식사를하러 갔는데
400년 됐다는 도시안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분위기에 흠뻑 젖어 들었다.
식사중 고전 춤을 여럿이서 추는데 정말 강렬하고 멋있었다.
역시 남미 인가 보다.
여자들도 모두 늘씬하고 아름다운것 같다.
너무 피로하여 식사후 바로 배로 돌아옴.
10월 7일
오늘은 쉬면서 전기 기술자와 엔진 기술자를 만났다.
엔진 기술자 엘비스는 금요일
전기 기술자 독일인은 다음주 화요일 약속을 잡았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너무 용감 했던것 같다.
항해 도중 느꼈던 부족한 기기나 고칠 것,
모든것을 이곳에서 하고 떠나야겠다.
오후에는 하드웨어 가게에서 수도 호스를 사서 돌아왔다.
가는 도중 한국차 기아와 현대차가 너무 많아 기분이 좋았다.
한국에 있는 느낌 이랄까.
이곳 사람들은 기아차를 일본, 독일, 미국차 보다 위에 놓고 있었다.
수입품은 비싸고 이곳에서 나는것은 한국에 비해 월등히 싸다.
에이전트를 통해 비자와 클리어렌스 인을 신청.
수수료 $75.00, 60일 간의 체류를 허가 받았다.
10월 8일 목요일
5시 50분 부두 노동자들의 소리에 잠이 깨었다.
이곳에서 1-2주 머무르며 장거리 항해에 필요한 빠진
모든 장비와 필요한 것을 사야겠다.
이곳 사람들은 오전 10-12시, 오후2-6시가 가게 여는 시간이고
토요일 일요일은 아무것도 할수 없다.
멋진 사진도 올리고 싶었지만
찍을수가 없었고 할수 있는 여유가 없어서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다음 항해 부터는 조금이라도 사진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장거리 세일에 중요한것은 모든 장비 계기는
콧핏 세일러 앞에 위치 해야 하는것 같다.
예를 들어 지금 캐빈안에 지피에스와 챠트 플로터 레디오가 들어 있는데
이것을 전부 콧핏을 옮길 생각이다.
백업이 있는데 이곳에서 레이 마린 레이다,
챠트 플러터, 레디오, 디지털 사운드 모듈을 더 백업으로 붙일 예정.
다져는 이곳에서는 필요가 없어 붙이지 않았으나
(이곳의 거의 모든배는 없음) 나중을 위하여 붙이기로함.
비미니도 뒤에까지 완전하게 덮을수 있게 오더 함.
약 2주 소요 예상.
사실 이곳에서 항해를 해 보니 레이다의 필요성은 느껴지지 않는다.
저녁에 볼 수 있는 불빛 거리는 얼마 인지 모르나
30나티컬 마일은 족히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10월 9일 금요일
오늘은 이곳에 한국의 동대문 시장 같은 굉장히 큰 재래 시장을 찾았다.
원하는것은 무엇이던 있었는데
너무 주변이 냄새가 나고 더러워 오래 있을 수 가 없었다.
잡화 시장, 과일 시장, 채소 시장, 생선 시장, 옷 시장 ...
빨리 밖으로 나가려고 빠른 걸음으로 어시장을 지나 가는데
상인 하나가 갈치 한 마리 $1,000 을 외친다
US $1,00 = Columbia $2,000.00
갈치찜을 너무 먹고 싶었으나 날씨가 너무 덥고 냄새 때문에
어쩔수가 없었다.
10월 10일 토요일
아침 일찍 엔진 머캐닉이 왔다.
이곳 카타헤나(Cartajena)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인데
이곳 마리나 캡틴 쟌의 소개로 엔진을 손 보게 되었다.
3시간 정도 일 했지만 기계를 갖이고 오지 않는 관계로
화요일 다시 마지막 손을 보기로 함.
이번 세일링에서 엔진의 필요성을 느낀 관계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확실히 엔진을 손보기로 작심.
윤 선장님 좋은 항해 되시고
혹시 파나마에서 한국까지 함께
장거리 항해 원하시는 분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조언이나 회원 여러분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으로 메일 보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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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호....무모한 도전!!
생짜로써 덤비는 무모한 도전이 진정한 도전인 것 같습니다.
다 알고 덤비는 것은 기술이고 기교이지만
모르고 덤비는 것은 실수투성일지라도 아름답고 호기심이 어립니다.
재작년 글일지라도
새삼스럽게 느끼는 바가 있어 댓글을 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