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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길 스크랩 강릉시 바우길탐방 1구간(선자령)
돌고래(문송여) 추천 0 조회 84 12.02.15 11:3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바우길 1구간 선자령 풍차길

 

  백두산 장군봉(2,744m)에서 험준한 산줄기를 지나면서 절경을 만들고 있는

백두대간(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도상거리 1,625km 이며 남쪽 구간인 향로봉에서 지리산 까지 도상거리 690km를 이르는 산줄기를 이르는 용어로써 실제거리는 남쪽만 약 1,200km로 추정함)의 축을 이루고 있는 대관령은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분기점인 고갯길일 뿐만아니라 생활방식과 기후변화가 대조적이다.

 

바우의 의미?

   바우란 바위를 뜻하는 말로 정감어린 강원도 사람을 친근하게 부를때 감자바우라고 한다.

강원도는 산악지형으로 감자를 많이 재배하고 또 감자를 주식으로 하는 특성 때문에 붙여진 아름다운 이름이고 시골사람 이라는 뜻도 있다.

가장 자연친화적인 곳, 또는 가장 친화적인 곳에 사는 순수한 사람 이라는 뜻을 내포 하기도 한다.

바우(BAU)는 바빌로니아 신화에 나오는 여신으로 손으로 한 번 어루만지기만 하여도 죽을 병을 낫게 하는 아주 위대 하고도 건강한 여신을 뜻하기도 한다.

 

바우길 길잡이 솟대.

   솟대는 마을 공동체 신앙의 하나로 음력 정월 대보름에 동제(洞祭)를 올릴 때 마을의 안녕과 수호, 풍농, 풍어를 기원하기 위하여 마을 입구에 세우며 마을신의 하나로 숭배 하였다고 한다. 솟대 위의 새는 대부분이 오리라고 불리며 일부 지방에서는 까마귀, 기러기, 갈매기, 따오기, 까치등 물을 상징하는 물새들을 형상화 한다고 한다.

바우길 길라잡이를 상징하는 솟대는 이 길을 걷는 많은 탐방객들의 안전산행과 풍요로운 정신건강의 향상과 체력증진을 위하여 상징물로 삼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 관 령

   교통의 요충지이자 영동지방을 넘어 오는 관문인 대관령(해발 865m)은 “고개가 험하고 데굴데굴 크게 구르는 고개” 라는 뜻에서 대굴령 이라고 도 불리웠고 “영서 지방에서 넘어 오는 큰 관문”이라 하여 대관령 이라고도 했다.

 

   삼국사기에는 大嶺柵, 고려사에는 大峴, 四遊錄(매월당 詩), 신증동국여지승람, 성소부부고(허균 지음)에는 大嶺으로, 승보문헌비고, 임영지에는 大關嶺이라 각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府 서쪽 45리에 있으며 풍수지리학적으로 볼 때 대관령은 이 州(현재의 강릉)의 진산(강릉의 안산은 모산봉이며 주산은 화부산)이다.

 

   長白山에서 산맥이 구불구불 남쪽으로 뻗어 내리면서 동해와 인접한 곳이 몇 곳인지는 모르나 이 嶺이 가장 높고 산허리에서 아래로 뻗은 길이 아흔아홉 구비인데 서쪽으로는 서울과 통하는 길이 있다.

   府治(성산면 금산리에 있는 장안성(명주성)이었다) 에서 50리 거리이며 大嶺이라 부르기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영서지방의 대륙 편서풍과 영동지방의 습기 많은 바닷바람이 부딪쳐 우리나라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지역이기도 하다.

   생활방식도 판이하게 달라서 영서지방은 고랭지 채소인 밭농사가 생활의 터전을 이루고 있지만 영동지방은 바다에 인접하여 풍족한 어족과 대관령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풍부하여 비옥한 땅에 논 농사를 주업으로 생활하고 있다.

 

 

   기후 또한 대조적이어서 오죽했으면 “영서 날씨가 추워 옷을 껴입고 영동에 갔다가 쪄 죽고, 영동에서 덥다고 헐렁한 차림으로 영서에 갔다가 얼어 죽기 십상이다”라는 우스갯 소리도 있다.

지형 또한 東高西低형으로 동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아름다운 계곡과 울창한 산림, 풍부한 水量을 수혜 받고 있지만 서쪽으로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밭농사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수천 만 년전 지표면이 침식작용을 받아 급속히 융기하여 발생한 대관령과 선자령 일대는 개마고원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위평탄면 지형이다.

   대관령휴게소에서 선자령으로 오르는 선자령 풍차길은 대관령 능선을 따라 설치된 53개의 풍차가 돌아가고 있는데 여기에서 생산되는 전력으로 5만가구가 사용할 수 있으며 거대한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에 압도 당하기도 하지만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감탄과 즐거움으로 시간마저 잊고 자연에 심취하다 보면 정상에 이른다.

 

   시원한 동해바다가 발아래서 손짓하고 2018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발왕산과 알펜시아에서는 성공적인 대회 개최를 위하여 한창 공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거센 바람으로 인하여 나무의 성장에 큰 영향을 끼쳐 고목을 찾아보기는 어려운 곳이기도 하지만 나무는 대부분 동쪽으로 휘어져 있다.

 

   대관령은 계절에 따라 각기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봄에는 계곡과 초원에 만발한 야생화, 여름에는 짙푸른 녹음과 대관령 목장일대의 광활한 진초록 초원 풍광, 가을엔 높푸른 하늘과 어울린 억새의 흩날림, 그리고 겨울엔 은백의 세계가 백의를 갈아 입고 우리를 반기는 곳이기도 하다.

  

양 떼 목 장

   양떼목장은 대관령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백두대간의 웅장함과 목장산책로의 아기자기 함은 유럽 알프스의 산록과 흡사한 목가적 풍경으로 떠오르면서도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주는 남다른 감흥은 알프스의 아름다움으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대자연의 품속에 동화되어 잔잔한 감동과 추억을 간직해 주는 소중한 공간이기도하다.

 

   어린이들에게는 양에게 건초주기와 털 깎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익한 자연 체험학습장이고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하면 정겨운 데이트 코스이며 중장년에게는 인고의 시간과 지나 온 세월을 추억하게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5월 하순경이면 철쭉의 파노라마를, 가을이면 억세의 향연을, 그리고 고산식물인 복수초와 너도바람꽃과 같은 야생화를 감상할 수 있다.

 

선자령(仙子嶺)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곤신봉 남쪽과 대관령 북쪽에 있는 고개로써 대관령에 길이 생기기 전에는 이 곳으로 다녔다고 한다.

   해발 1,157m 고도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급경사가 거의 없이 완만한 능선길로 이어져 있어 걷기가 수월할 뿐만아니라 시원한 동해바다와 광활한 푸른 초원으로 덮여 있고 겨울에는 아름다운 눈꽃 길로 명명되어 있어 많은 등산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선자령은 “계곡이 아름다워 신선들이 아들들을 데리고 내려와 목욕을 하고 하늘로 올라가는 곳”이라고도 하고 仙子란 “신선이나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를 뜻하므로 이 곳 능선의 굴곡이 아름답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특히 겨울엔 전국 각지에서 설경을 감상하러 몰려드는 등산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여기에 바우길의 유명세까지 더하여 주말이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많은 등산객들이 등산을 마치고 시원하고 푸른 동해 바닷가를 찾는 것이 필수 코스가 되었으며 깨끗하고 싱싱한 생선회를 먹기 위하여 찾는 동해 안의 횟집에서는 사계절 호황을 누리기도 한다.

 

국 사 성 황 당

  성황사에는 풍작과 풍어의 신 범일국사를 모셨고 그 옆 산신각에는 산신이 김유신 장군을 현현(顯現)하기 때문에 삼국시대의 명장 김유신장군을 모셨다.

 

   범일국사는 826년에 당나라에 가서 불법의 도를 깨우치고 돌아와 구정면 학산리에 굴산사를 창건하고 열반 후에는 대관령성황당에 모셨다고 하는데 이 神이 화를 내면 반드시 영동지방에 홍수, 폭풍, 가뭄, 질병등 갖가지 재앙이 따랐다고 한다.

  

   이리하여 매년 4월1일이면 제물과 술을 올리고 4월15일에 무당과 봉화군 관청의 노비 수백 명이 제사를 올린 뒤에 굿놀이를 하고 신이 들린 생나무 신목을 꺾어 강릉시 홍제동에 있는 여성황당에 잠시 모신다.

   그리고 음력 5월5일 단오 전날 다시 신목을 모시고 남대천 백사장에서 풍년제와 민속놀이인 관노가면극 놀이를 하고 단오제가 끝난 뒤 신목을 태워버리는 풍속이 자리 잡았다고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13호인 강릉단오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국사성황당은 지금도 음력 4월 보름이면 산신제를 지낸다. 예전엔 태평소, 국, 장고, 꽹과리, 징, 제금을 든 창우(광대)들이 무악을 울리고 호장과 도사령들 뒤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아흔아홉 구비를 올라 이곳까지 와서 제를 올렸다.

   대관령 국사성황에 여성황을 모시게 된 내력이 있는데 강릉에 살고 있는 정씨에게 과년한 딸이 있었다.

 

   하루는 꿈에 대관령 산신이 나타나 “내가 이 집에 장가오겠노라”고 청했지만 정씨는 사람 아닌 성황을 사위로 삼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어느 날 정씨의 딸이 노랑저고리에 남치마로 곱게 단장하고 툇마루에 앉아 있는데 산신이 보낸 호랑이가 딸을 업고 와 대관령 국사성황은 아내로 삼았다.

 

   딸을 잃은 정씨는 호랑이가 물어 간 사실을 알고 부리나케 대관령 국사성황을 찾아 갔지만 딸은 성황과 함께 서 있었는데 벌써 죽어 혼이 없고 육신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성황이 처녀를 데려와 혼배한 날이 4월15일이기에 매년 이날 대관령 국사성황께 제사하고 모셔다가 여성황사에서 두 분을 함께 제사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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