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초원의 나라 몽골은 한반도 크기의 7배다. 이곳은 울란바토르 북동쪽 80㎞에 위치한 테렐지 국립공원인데 기암괴석·야생화의 천국으로 불린다. 사실 이만한 초원풍경은 몽골에서 흔하게 볼 수 없다. 어딜 가나 허허벌판 평원이 펼쳐질 뿐이다. |
1000년 전 바람처럼 일어나 폭풍처럼 유럽과 아시아를 제패해버린 몽골. 땅에서 솟은 해가 땅으로 지는 광활한 초원의 나라. 말 위에서 태어나 말 위에서 삶을 마감한다는 유목민의 고향. 13세기말 몽골의 위대한 영웅 칭기즈칸(태무진:1162~1227)은 로마군이 400년 동안 점령한 영토보다 더 넓은 땅을 단 25년 만에 정복했다.
지축을 흔들던 말발굽은 태평양에서 지중해까지 8000㎞에 이르렀다. 몽골의 이름은 본디 '용감한(mongolia)'이란 뜻이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대립관계에 있던 중국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몽고(蒙古·몽매한 야만인)라고 폄하해 부르면서 변색됐다.
유아의 엉치뼈에 마치 천형처럼, 낙인처럼 찍혀있는 몽고반점(蒙古斑點)은 그네들이 우리의 '형제'임을 말해준다. 칭기즈칸은 예언했다. "내가 사라진 뒤에도 세상에는 위대한 이름이 남게 될 것이오."
▲ 테렐지 가는 길목에 있는 몽골의 위대한 영웅 칭기즈칸의 동상. 칭기즈칸은 전쟁터에 나가기 전 이곳 언덕에서 고향쪽을 바라보며 전의를 불태웠다. 실물로 보면 어마어마한 크기인데, 칭기즈칸의 고향과는 약 400㎞ 정도 떨어져있다고 한다. 유목민의 고향 몽골은 이동식 가옥인 게르(ger)에서 주로 숙식한다. 사진 가운데는 마지막 왕이 머물던 여름궁전. |
◆몽골의 심장, 울란바토르
몽골은 한반도 면적의 7배 크기인데, 인구는 300만 명(대구)에 불과하다. 몽골리안은 한국을 '솔롱궈(무지개의 나라)' 또는 어머니의 나라라고 부를 만큼 가깝게 여긴다. 수도 울란바토르는 '붉은 영웅'이라는 뜻으로 몽골인구의 38%가 이곳에 산다. 70년 동안 소련연방(USSR) 제도 영향아래 있었기에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이 러시아(서구스타일)풍이다. ‘콩밭 매는 김태희’ 스타일의 미녀들이 흔한 이유다.
지구상에서 바다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대륙으로 겨울이 길고 봄(5~6월)이 짧다. 겨울철 평균온도는 영하 20도, 여름의 최고온도는 33~38도. 고비사막의 한여름 최고기온은 40도까지 올라간다. '고비'란 몽골어로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이라는 의미다.
1년 중 외부활동이 가능한 시기는 5개월. 겨울이 길고 강수량이 적기 때문에 주민들 대부분이 감기를 달고 산다. 간혹 우기가 아닌데도 비가 쏟아지면 거리는 온통 물천지다. 배수시설이 안돼 있기 때문이다. 채소를 거의 먹지 않기에 ‘배둘레햄 뚱보’가 많다.
몽골에는 다른 나라에 없는 게 세가지가 있다. 일명 3무(無). 대머리가 없고 택시가 없으며 안경쓴 사람이 없다. 예로부터 ‘하트가이’라는 식물의 잎을 음식의 향신료로 사용했기 때문에 모발이 싱싱하다고 한다. 몽골인들 평균 시력은 4.0. 초록빛 초원에서 살다 보니 멀리 보는 시야를 타고났다. 일례로 어머니가 '저기 아버지 오신다'고 했는데 아버지가 다음 날 아침 게르에 도착하더라는 말도 있다.
울란바토르는 광활한 몽골에서 거의 유일하게 도시 형태를 갖추고 있다. 해발 1300m의 초원성 고원에 위치해 있으며 간단사원, 수흐바토르광장, 자이승전망대, 국립자연사박물관, 여름·겨울궁전 등이 주요 볼거리다. 수흐바토르광장 북서쪽에는 세계 3대 공룡박물관으로 불리는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위치한다.
몽골에서 볼 수 있는 동물, 식물, 곤충, 어류, 조류 등 약 2만점의 박제가 전시돼 있다. 자이승전망대는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해 지은 전망대다. 시내 외곽에 위치해 울란바토르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 여름·겨울궁전은 몽골의 마지막 왕이 20년간 생활했던 곳이다. 1914년 몽골에 병원을 열어 의술을 전한 이태준 선생 기념공원도 가볼 만하다.
넓은 영토와 많은 자원을 가진 자원부국이지만 경제성장이 더딘 편이고, 제조업은 거의 전무하다. 그래서 몽골 사람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황금 위에 앉은 거지'라는 표현을 써서 말하기도 한다. 농작물 재배가 어려울 만큼 척박하기 때문에 지방민들 대부분 유목생활을 한다.
이들은 풀 좋은 곳을 찾아 연평균 30회 이동한다. 울란바토르를 벗어나 평원을 달리다보면 도로 양편에 보이는 거라곤 소·말·양·염소 떼뿐이다. 몽골 인구가 300만 명인데 가축은 5000만 마리다.
이들의 삶은 도시를 잊었다. 절대 윽박지르거나 재촉하지 않는다. 바쁨이 없고 느림만 있으니 돈에도 미련이 없다. 겨울에 양고기 먹고 여름엔 양젖으로 만든 요구르트와 마유주(말의 젖을 발효시켜 만든 알코올음료)를 먹으니 돈이 필요 없다. 가끔 양하고 감자나 곡식을 바꾸어 먹을 뿐이다.
몽골인은 걸음마를 떼기 전에 먼저 말 타는 법부터 배우는데 이들의 승마 솜씨는 '반인반마(半人半馬)의 생명체'가 뛰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몽골의 술을 얘기할 때는 ‘아이락(Airag)’을 빼놓을 수 없다. 말젖을 가죽부대에 넣고 나무막대기로 밤새 휘저어 만든 음료다. 말젖을 발효해 만들어 영양가가 높고, 시큼한 맛이 난다. 우리나라 막걸리와 비슷하다. 맛은 밋밋해도 어느 순간 취기가 확 오르고 숙취도 심한 편이다. 1500m 고지대인 만큼 평지에서보다 훨씬 빨리 취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러시아풍 보드카인 ‘칭기즈칸’주가 소주를 즐기는 한국사람 입맛에는 맞다.
◆기암괴석·야생화의 천국 테렐지 국립공원
울란바토르 북동쪽 80㎞에 위치한 테렐지는 사방이 꽃천지인 국립휴양지다. 테렐지란 이곳에서 많이 자라는 식물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산·수목·기암괴석·협곡 등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수천 년의 풍화작용을 이겨낸 남근 바위, 거북 바위, 책 읽는 바위 등 '만물상'이라 할 정도로 갖가지 기암괴석들이 많다. 돌무더기 위에 오색 천조각을 걸쳐 놓은 '오보'(성황당)도 눈에 띈다.
호수 주변에는 몽골의 이동식 전통가옥인 게르(ger)가 있다. 가축에게 먹일 풀이 떨어지면 게르 캠프를 철수하여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는데 불과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한'이라 불리는 접이식 나무 골조에 양털 펠트를 여러 겹 입혀 만들었다. 중앙에는 난로가 있고 천장에는 연기가 빠지도록 구멍(터너)을 냈다.
항상 남쪽을 향하는 입구는 여행자들이 방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몽골 현악기인 마두금(馬頭琴·모린호르) 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오는 밤. 초원위로 쏟아져 내리는 별을 바라보며 전통음식인 '허르헉(양고기·감자·당근을 돌로 구워낸 요리)'을 먹으면 금상첨화다. 이곳에서는 승마체험도 인기다. 전문 승마가이드가 동행해 안전하다. 잘 훈련된 말을 타고 황야의 무법자가 된듯 푸른 초원을 질주하는 쾌감을 맛볼 수 있다.
글·사진/울란바토르(몽골)=나재필 논설위원 najepil@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