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 비추어 본 역사 이야기 4
님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아-정읍사와 정읍 행상인 처
정읍사(邑詞)
정읍 행상인 처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대를 드대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가논대 졈그랄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현대말로 풀이
달아 높이 좀 돋아서
멀리멀리 비추어다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저자에 가 계신가요?
아, 진 곳을 디딜까 두렵습니다.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 사람에게다 마음을 놓고 계시는지
아, 나의 가는 곳에 날이 저물까
혹시 불행이 닥쳐올까 두렵습니다.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지은이와 유래
이 노래는 우리말로 씌어져 지금까지 전해오는 가요(歌謠)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어떤 장사꾼 안해가 장사하러 갔다가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못해 망부석에 올라가, 남편이 돌아오는 길을 보며 지어 부른 노래라고 합니다.
남편이 혹시 밤길을 가다가 해를 입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녹아있는 이 노래는 백제시대에서부터 전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왔습니다. 그러다가 고려시대에 궁중에서 북을 치며 춤을 추는 무고정재(舞鼓呈才)에서 노래로 불렀고, 조선시대에까지도 이어져서 한글로도 기록되었습니다.
조선 중종 때에 정읍사가 음란한 노래라고 하여 궁중 음악에서 부르지 않게 되기도 하였지만, 그 뒤에 나온 책들에 이 노래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다시 불러서 그 뒤에까지 이어진 것 같습니다.
<고려사>와 〈동국여지승람〉에 정읍사가 지어진 배경이 기록되어있고, <악학궤범〉에는 가사와 함께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지 씌어있습니다.
-이 노래에 담긴 의미
백제는 무역을 많이 하는 나라였습니다. 백제를 세운 온조와 비류도 장사꾼 자손입니다. 어머니인 소서노와 외할아버지인 연타발은 졸본부여에서 큰 무역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몽도 소서노와 연타발이 많은 재산을 털어 뒤에서 밀어주었기 때문에 고구려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가 통일 전쟁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버지인 여불위가 장사로 모은 엄청난 돈으로 뒷받침 해 주었기 때문인 것처럼 주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온조와 비류가 강을 끼고 나라를 세운 것은 너무도 당연한 선택입니다. 처음에 도읍을 정한 하북위례성(육방토성)은 임진강 동남쪽에 붙여 세웠고, 이어서 옮겨 와 세운 하남위례성(풍납토성)도 한강남쪽에 붙여서 세웠습니다. 바닷가에 도시를 세우면 다른 나라로 나가기가 편하지만, 나쁜 점이 더 많습니다. 요즘은 방파제를 높이 세울 수 있으니까 바닷가에 항구를 건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바다에서 밀려오는 거센 파도를 그대로 맞아야 하므로 배나 항구 시설이 견뎌내지 못합니다. 그리고 적이 배로 쳐들어오면 넓은 바다에서보다 좁은 강에서 막기가 더 쉽습니다. 그래서 강을 거슬러 올라가 내륙 안쪽에 자리 잡았습니다.
백제가 고구려 장수왕에게 밀려서 남쪽으로 내려갔을 때도 금강 남쪽에 있는 웅진에다 수도를 세웠습니다. 배를 타고 장사를 쉽게 다니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부여로 다시 옮겨간 것도 부여가 웅진보다 더 금강 하류여서 배가 다니기 편했기 때문입니다. 고려시대에 예성강 벽란도에 무역항을 건설했던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백제 사람들은 강을 통해서 바다로 나가고 내륙 깊숙이 장삿길을 열었습니다. 그 길을 따라서 영토 확장도 했습니다. 백제가 만주 요서지방과 중국 산둥반도를 차지하고 일본에 문화를 전해주어서 아스카문화를 꽃 피우게 한 것도 무역을 활발하게 하면서 이룰 수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장사를 하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장사하는 무리인 상단입니다. 요즘 말로하면 무역회사가 될 수도 있고, 장사꾼 모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자기 배에다 물건을 싣고 다니기도 했겠지만, 요즘처럼 다른 사람 배를 빌려 타고 갈 수도 있습니다. 신라 때 장보고는 중국으로 가는 정기항로를 열기도 했습니다. 정기항로라는 말은 정해진 날짜에 오고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청해진에서 달마다 15일에 중국으로 가는 배가 출발하고, 20일에는 일본으로 가는 배가 출발하는 식입니다. 그것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신라로 오는 배가 떠나는 날이 정해져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 배에 물건을 싣고 가는 사람이 장보고 뿐 일 리가 없습니다. 신라에서 중국이나 일본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배 삯을 내고 물건을 싣고 가서 판 다음, 다시 신라에서 팔 물건을 사서 싣고 돌아올 것입니다. 지금도 인천항에서 중국으로 오고가는 배를 타고 중국에서 물건을 사서 싣고 들어와서는 우리나라에 파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에 배로 실어 보낸 물건을 받아서 팔 사람이 있다면 직접 가지 않고 물건만 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수출을 할 때 직접 사람이 가져가지 않고 배나 비행기로 물건만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커다란 배에 가득 실은 컨테이너들은 모두 나라와 나라사이에 사고파는 물건들이 들어있습니다. 그 배들은 사고파는 물건들을 정확한 곳에 실어다 주는 일을 합니다.
장보고가 중국에 무역기지인 신라방을 스물세 개나 세웠다고 하는데, 장보고 혼자서 갑자기 다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미 이 노래가 지어진 백제시대에도 중국과 요서지방, 그리고 일본과 활발하게 오고 갔을 테니까 무역도 발달했을 것입니다.
장보고는 그것을 더 발전시켰을 것입니다 .장보고가 정기항로를 열었다는 것은 무역이 아주 발전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고갈 물건이 많으니 날짜를 정해서 가면 가는 사람이나 물건을 보내는 사람들이 쉽고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몇 월 몇 일에 가면, 몇 월 몇 일에 돌아온다는 기약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노래는 이렇게 장사를 다니는 남편이 돌아와야 하는 날이 되어도 소식이 없자, 기다림으로 안타까운 부인이 남편을 걱정하며 부른 노래입니다. 남편이 진 곳을 디뎌서 다치지나 않는지,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뺏기지나 않았는지. 불행한 일이라도 당한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노래 뒤에는 세계로 뻗어가던 무역국가 백제가 숨어있습니다
그리고 이 노래 뒤에는 세계로 뻗어가던 무역국가 백제가 숨어있습니다
신라계인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쓸 때 신라를 높이기 위하여 백제에다가 멸망국가 이미지를 너무 강하게 씌운 바람에 우리 인식에 백제는 멸망이미지가 강하게 남은 것이랍니다 하지만 백제는 활발한 해상무역으로 문화를 전파한 문화 강국입니다 일본이 자랑하는 고대문화인 아스카문화도 백제사람 왕인과 아직기 등이 전한 백제문화를 받아들여서 꽃 피운 것입니다. 일본사람들이 벌이는 왔쇼이 마쯔리라는 축제도 `백제사람들이 왔다` 라는 뜻에서 `왔소!`를 딴 것입니다
일본인들이 축제를 벌일 때 왓쇼이왓쇼이 하고 구령을 붙이는 것도 바로 백제사람들이 자기들에게 문화를 전하러 주러 왔다는 말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정읍사는 그런 백제 사람들과 백제 역사가 담겨 있는 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