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간지주는 절의 행사를 알리는 깃발을 다는 게양대(단단한 버팀기둥)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지주는 원래 일주문이 있었던 자리에 있었던 것을 이 자리로 옮겼다고 하는데 높이는 2.88미터이다. 대체로 당간지주 돌기둥의 지상노출부분의 높이는 2~5미터가량이고 지하로 매설된 부분도 그 정도 길이여서 돌기둥 전체의 길이는 대략 4~7미터가 된다고 한다. 불국사 지주의 경우에는 지주높이 3분의 1이 땅속에 있다고 하니 전체길이는 대략 5미터 정도 일 것이다. 이는 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인데 국보나 보물로 지정이 되지 않았는데 이는 지주가 서로 짝이 틀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양대는 당간이라고 하는데 20미터 정도 높이로 세운다. 당간은 통상 쇠로 만들어 용접하여 연결 사용했는데 멀리서 보면 대나무 같이 보인다. 이러한 쇠로 만든 당간은 충남 공주의 갑사에 가면 볼 수 있다. 당간은 저자에 있는 대중들과의 약속을 나타내는데 예를 들면 적색깃발은 법회를,
백색깃발은 고승의 법문을 나타냈다고 한다.
불국사석조는 현재 대웅전 올라가는 길목, 즉 동회랑 입구에 음료수대(옥로수)로 이용되고 있으며 관광객이 물을 먹는 곳이기도 하다.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수조의 형상이 원형인 백제시대의 석조와 달리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형상인 직사각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내·외면에 조각이 있는 점과 다른 직사각형의 석조와는 달리 모서리를 둥글게 한 것이 특이하다. 특히 내부 바닥면의 화려한 연화문 조각은 통일신라시대 불교미술의 뛰어난 조형의식과 높은 예술수준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인정된다.
백제시대의 석조는 수조부분 형상이 원형이고 통일신라시대 및 그 이후의 석조는 대부분 직사각형인데 불국사석조의 형상도 기본은 직사각형을 이루며 네모서리와 장변의 중앙부에서는 안쪽으로 둥글게 모접기하여 유려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석조의 규격은 길이 262cm, 폭 131cm, 높이 52cm이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차 좁아져 입면상으로는 사다리꼴 형상을 이루고 있으며 다른 석조에 비해 내·외면에 조식이 있다는 점에서 특이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외부 면에는 중앙부와 상부에 가로로 도드라진 띠를 돌리고 중앙부의 돌림띠 아래로는 장변에 각 6개, 단변에 각 3개씩 모두 18개의 8괄호형 안상(길이 32cm, 높이 7cm)을 조각하였으며, 내부 면에는 바닥 중앙부에 타원형의 커다란 자방형상을 조식하고 이를 중심으로 장변의 좌·우 바닥 면과 측면벽으로 연결하여 단청의 머리초 수법의 연화문을 조각하여 매우 특이한 수법으로 화려하게 조식하였다. 이는 석조에 물을 채우면 연꽃이 피어오르는 듯한 모습을 구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석조의 바닥 중앙에는 지름 약 3.5cm의 출수구가 있다. 이와 같이 불국사석조는 일반적인 직사각 형태에 비해 각 모서리를 모접기하여 유려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고, 외부면의 돌림띠와 안상조식 및 내부면의 자방과 연화문 조식수법에 있어서도 독특함과 화려함이 돋보여 신라인의 뛰어난 조형의식과 예술수준을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보물로서의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곳에는 1973년 복원공사 당시 미복원지에서 출토된 석재유물을 전시 또는 야적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중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석조물은 불국사 미술관 뒷편의 계단 위에 있는 3개의 석조물이다. 이석조물은 신라당시 화장실의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고 있다. 이 돌들은 무설전과 극락전 앞 궁녀들이 사용했던 임시 건물에서 복원시 출토된 것으로 소변기는 구멍만 뚫린 것, 또 가운데가 갈라진 것은 수세식으로 추정해본다. 가운데로 물이 흐르므로 화장지가 필요 없이 즉석 조치가 가능한 설계라고 본다. 한편 여기서 화장실의 또 하나 다른 용도를 상고해 볼 때 안압지에 가보게 되면 연못조성시 그 물의 흐름과 양을 조절한 배수장치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조성된 연대가 비슷하고(674년) 불국사 앞의 구품연지가 있었으므로 그 물을 조절한 배수 장치가 아니었나 하는 설을 제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