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지역의 수필문학 정착과 확산에 기여
영동수필문학회의 역사는 수필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영동지역에 수필문학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정착하게 되었으며, 수필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하여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며 발전해 왔는지 그 여정을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다. 영동수필문학회는 영동지역에 수필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수필가들과 수필전문 문학단체로서의 발전을 고민하고 방안을 제시하며 실천한 회원들의 노력 덕분에 오늘의 위상을 구축하게 되었다.
1. 태동기 ― 영동지역 수필문학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출발(2002~2004)
영동수필문학회의 공식적인 출발은 2002년이다. 중앙문단에서 활동하던 박종철 수필가는 2001년에 강릉에 정착하면서 영동지역이 수필문학의 불모지임을 인식한다. 박종철 수필가는 관동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문예창작을 지도하던 엄창섭 시인과 강릉여성회관(現 강릉시평생학습관)에서 문예창작을 지도하던 남진원 시인을 만나 영동지역에 수필문학을 정착하기 위한 취지를 밝히고 도움을 요청하여, 당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던 수필가들을 소개받았다. 이외에도 당시 지역에서 활동하던 문인들로부터 수필가들을 소개받아, 2002년 3월 14일 초당 고향산천식당에서 7명의 수필가가 발기인대회를 열고, 문학회 명칭을 영동수필문학회로 정했다. 같은 해 4월 18일에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삼척산업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였던 임종수 수필가를 회장으로 추대했으나 4월 23일에 작고했다. 이에 6월 13일에 임시총회를 열고 박종철 수필가가 2대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박종철 수필가는 2007년까지 2~4대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격월간으로 열리는 정기월례회의에서 회원 2명의 작품을 합평하고, 문학기행을 정례화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영동지역에 수필의 씨앗을 뿌리는 계기가 되었다.
박종철 수필가는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필가들과 출향 수필가들을 신입회원으로 영입하는 한편, 영동수필창작교실을 개설하여 2002년 4월 3일에 용강동 문화의 집에서 첫 강의를 시작한다. 이러한 노력 결과 2004년에 창간호를 발간하고 2004년 10월 29일에 강릉여성회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 시기는 영동수필문학회가 수필의 불모지였던 영동지역에 씨앗을 뿌리고, 수필전문단체로서 기초를 다진 시기로 명명할 수 있다.
2. 정착기 ― 조직 안정과 수필문학의 저변 확산(2005~2010)
창간호를 발간한 이후 영동수필문학회는 본격적인 정착기에 들어선다. 2002년에 개설된 수필창작교실은 박종철 수필가가 재능기부로 무료강의를 해왔는데, 2006년에 강릉시여성회관 문예창작 강사로 위촉되면서 수강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되었다. 문예창작 수강생들이 중앙지를 통해 등단함으로써 영동수필문학회 회원이 점차 증가하였고, 2005년 1월 18일에 영동수필문학회 다음카페를 개설하여 온라인에서도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였다. 또한, 해마다 문학기행을 추진하여 선대 문인들의 자취를 둘러봄으로써 문학적 소양을 쌓는 기회도 제공하였다.
2008년 제7차 정기총회에서 정영식 수필가가 5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정영식 수필가는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기업체로부터 출판지원금을 후원받아 문학회의 재정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업적을 남겼다. 2009년부터는 강릉시 문화예술진흥공단으로부터 출판비를 지원받으면서 동인지를 안정적으로 발간하게 되었다. 동인지는 강원지역의 문인들에게 무료로 배포함으로써 더는 영동지역이 수필문학의 불모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는 한편, 영동수필문학회의 위상을 높였다. 이 시기는 영동수필문학회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수필문학의 저변 확산에 기여한 시기로 명명할 수 있다.
3. 도약기 ― 수필의 질적 성장과 중앙문단과의 교류(2011~2014)
2011년은 영동수필문학회가 수필의 질적 성장을 도모하는 한편, 중앙문단과 활발하게 교류한 시기이다. 오랫동안 공직생활을 했고 강릉사투리보존회 회장이기도 한 조남환 수필가가 6~7대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영동수필문학회는 외연 확장에 주안점을 두었다. 출판기념회와 더불어 진행하던 수필문학 세미나는 중앙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저명인사인 윤재천 수필가, 김우종 수필가 등을 강사로 초빙하여 수준 높은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하였다. 당시 영동수필문학회의 세미나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면서 지역 문인들이 다수 참석함으로써 문인들이 교류하는 장이 되었다. 또한, 다수 회원이 문학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개인 수필집을 발간하는 회원도 증가하였다. 이 시기는 회원들 스스로 수필의 질적 성장을 위해 노력하여 문학상 수상이라는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으며, 중앙문단과 지역 문인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도약의 시기로 명명할 수 있다.
4. 성숙기 ― 내실과 새로운 변화 모색(2015년 이후)
2015~2018년까지 8~9대 회장직을 수행한 김학순 수필가는 내실을 꾀하는 한편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였다. 출판기념회와 더불어 개최해오던 수필문학 세미나를 11회로 막을 내리고, 2017년부터는 「수필, 나는 이렇게 쓴다」는 주제로 회원들이 자신의 수필창작법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회원들만 참석하는 소박한 출판기념회를 지향하였다.
2019~2022년까지 10~11대 회장직을 수행한 최현숙 수필가는 코로나 19로 인해 문학 행사 추진이 어려운 실정이었으나, 우수 작품을 창작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2019년에 수필창작교실 합평회를 7차례 열었으며, 회원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연회비를 감액하는 등 내실을 꾀하였다.
2023년에 12대 회장으로 선출된 이근현 수필가는 수필의 질적 성장을 위해 월례회의 때 수필합평회를 진행하는 한편, 회원 간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는데, 다수의 회원이 찬조금을 기부하여 문학회 재정에 도움을 주었다.
2025년에 13대 회장으로 선출된 정연기 수필가는 회원 간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한편, 지역 문학단체와의 교류와 수필의 질적 성장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등 영동수필문학회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근래 들어서 문학회마다 회원들의 고령화가 문학회 존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에, 최현숙 수필가와 최남미 수필가는 회원감소 문제의 해결과 수필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현숙 수필가는 2017년 강릉시립도서관에서 자서전쓰기 강의를 시작으로, 2020년부터 강릉노인복지관과 책문화센터에서도 자서전쓰기 강의를 하면서 수강생들이 수필창작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게 지도하고 있다. 최남미 수필가는 2020년에 행복한 모루도서관에서 수필창작 강의를 시작했고, 2023년부터 가톨릭관동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수필창작을 강의하며 수강생들이 수필가로 등단하여 문단 활동을 하도록 조력하는 한편, 중앙문단과도 교류하면서 소통하고 있다.
5. 영동수필문학회 24년의 의미
영동수필문학회는 2025년에 『영동수필』제22집을 발간하였다. 수필의 불모지였던 영동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청년기를 맞이한 영동수필문학회는 수필의 저변확대, 수필의 질적 성장, 중앙 및 지역 문학인들과의 교류 등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성장하고 있다. 다수 회원이 권위 있는 문학상 수상의 쾌거를 이루었으며, 출판지원금 사업에도 선정되어 우수한 수필집을 출간하고 있다. 이는 영동지역에서 수필문학이 확장과 성장을 계속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며, 영동수필문학회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