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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ango 스크랩 탱고의 역사
東昊 추천 0 조회 17 16.12.03 21:4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02.11.06

<탱고의 쇠락과 부흥>
1930년대 군부가 정권을 잡으면서 탱고는 약간 쇠퇴하였다. 탱고가 노동계층(working class)을 대변하고 있다는 군부의 판단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바이올리니스트 후안 다리엔소(Juan D'Arienzo)의 악단은 1930년대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해 탱고의 쇠퇴가 일시적 현상임을 예고하였다.

1940년대 정치적 자유가 어느 정도 회복되면서 탱고는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고 1946년 페론이 집권하여 민족주의와 popular culture를 고양시키면서 탱고는 제2의 황금기를 구가한다. 다리엔소를 비롯해 Osvaldo Pugliese, 엑또르 바렐라(Hector Varela), 아니발 뜨로일로 등이 이때 그들의 음악세계를 본격적으로 개척하고 펼쳐나간다.

뜨로일로는 반도네온 연주가들 중에서도 가장 생동감 있고 파워풀하며 깊은 맛을 주면서도 동시에 부드러운 연주를 했다. 이 시대에는 반도네온이 '고전적'이고 '귀족적'인 악기로 인식되고 있었다.

1940년대 후반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각 동네마다 10여팀의 아마추어 탱고 악단이 있을 정도로 탱고가 인기를 끌었다. 이 시기에 탱고는 더 이상 노동 계층의 점유물이 아니라 중산층과 지식인층이 즐기며 자랑스러워하는 문화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또 한가지 특징적인 것은 과거 이민자들의 향수를 달래주던 탱고가 이제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사라진 옛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대한 향수어린 시각을 담게 되었다.

1950년대 이후 탱고는 페론의 실각과 록큰롤의 도래로 암흑시대를 맞는다. 연이어 집권한 군부 정권들이 탱고를 다시 가상의 적 내지 잠재적 적으로 간주하고, 탱고를 추러 모이는 사람들까지 사찰의 눈길에서 피하기 힘들 정도로 집회의 자유가 사라진 현실에서 탱고 바는 하나, 둘 문을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여파로 예전처럼 대규모 악단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다. 더구나 1960년대 세계를 휩쓴 록큰롤의 인기로 그 당시 아르헨티나의 젊은 층들은 탱고를 잊기 시작했다.



<피아졸라의 혁신과 탱고의 부흥>
역사의 장으로 영원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탱고를 망각의 늪에서 건져낸 이가 아스토르 피아졸라(1921-1992)였다. 탱고 혁신파인 뜨로일로 악단에서 세컨드 반도네온을 연주한 경험은 아마도 훗날 피아졸라가 탱고의 혁신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파리로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러 가면서 이국 땅에서 오히려 탱고에 대한 소명의식을 느끼고 서구 음악을 더 폭넓게 대하면서 새로운 탱고의 골격을 완성했다. 클래식 음악과 탱고와 재즈가 결합된 새로운 탱고를 콘서트로 격상시키고자 했던 것이 피아졸라의 이상이었다.

1970년대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또다른 혁신도 이루어졌다. 탱고와 락의 결합이었다. 리또 네비아(Litto Nebbia)가 그 중심에 있었다. 탱고 록 연주에는 전자 기타와 synthesuzers도 이용되었으며 전통적인 탱고의 우수를 록 형식에 담았다.

탱고가 부흥하고 새로운 실험이 계속되면서 탱고 전통파도 다시금 힘을 얻었다. 그 중심에는 가수 로베르또 고예네체(Roberto Goyeneche, 1926-1994)와 Osvaldo Pugliese(1905-1995)가 있었다. 가르델 풍의 노래를 계승한 고예네체는 뜨로일로 악단에서 싱어로 활동하기도 했지만(1955-1964) 주로 솔로로 활동하면서 여러 악단과 함께 공연을 했다. Osvaldo Pugliese는 탱고가 낳은 가장 훌륭한 피아니스트였으며 활발한 후진 양성을 통해 탱고의 계승에도 힘썼다. 탱고의 황금기를 구가한 전설적인 거장들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전설적인 거장의 시대는 갔지만 한때 탱고를 잊었던 아르헨티나의 젊은 층들은 피아졸라 이후 차츰 탱고의 매력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최근 우리를 비롯한 서구 사람들에게는 탱고포에버 같은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대규모 쇼단이 크게 어필했다. 하지만 사실 요즘의 아르헨티나에서는 대규모 악단 내지 공연단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전통적인 악기 편성을 한 6중주단마저 운영하기 힘든 실정이다. 그러나 이것이 탱고의 쇠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르델의 죽음으로 다시금 세계음악의 변방으로 떨어진 경험도 있지만 피아졸라가 또 다시 탱고를 세계화시키면서 이미 탱고는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화산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참고>
- http://www.troilo.com.ar/ (뜨로일로 추모 사이트)

<그림>
1. 후안 다리엔조와 그의 악단
2. 아스토르 피아졸라
3. 로베르또 고예네체
4. Osvaldo Pugli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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