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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산 수도암
수도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인
청암사의 부속 암자로 수도산 (일명 불령산) 정상 1.080m 부근에 있다.
불지 사찰 수도암 한번 꼭 와보고 싶었던 천년 고찰이다.
얼마나 좋은 곳이기에
그 옛날 도선국사는 수도암에 처음와서 7일 동안 춤을 추었고
시대를 달리해 수많은 선객들이 이곳에 와서 공부를 하고싶어 하는지.....
오래전 부터 수도암의 명성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시절인연으로 이제서야 수도암을 찾은 것이다...
수도암 은 가야산 상왕봉을 마주보고 있다.
넓은 경내 왼쪽으로 청룡이 길고 힘차게 뻗어 감싸 돌고 우측으로는 백호가 웅장하게 내려와
대적광전 앞에 묘한 봉우리를 만들어 지켜주는데 정면에는
가야산 상완봉(연화봉)이 마치 물속에서 연꽃이 피어오르는 듯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연화봉 앞에는 한일자(一) 모양으로 길게 뻗은 일자봉이 받치고 있는데.
연화봉은 공덕을, 일자봉은 평등한 이치를 나타내어 지혜와 덕이 수도암에서 현출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수도암은 공부하는 수좌들에게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수행 정진처이며 불자 들에게는 영험있는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1649년에 벽암각성이 중창했으며
동학농민운동 당시 암자의 일부가 소실된 것을 1849년(광무3) 포응이 다시 이룩했고
6·25전쟁 때 빨치산 소탕 작전으로 일부 건물을 제외하고 불타버렸다고 한다.
1960년대 말에는 대적광전·약사전·정각암·요사채 등 4동의 건물에서 3, 4명의 승려가 수도하고 있었는데,
현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이 1969년 해인사에서
이곳 수도암에 와서 크게 중수하여 20여 동이 넘는 큰 가람으로 변모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적광전·약광전·수도선원·관음전·나한전·노전·정각·서전·낙가전 등이 있었다.
수도암 대적광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이 계단을 올라가면 수도암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수도암 대적광전 앞 정면에 보이는 가야산 정상
연꽃처럼 생긴 가야산 봉우리를 보고 있으면 모든 잡념을 잠재우고 한소식 한 느낌이다.
신라말 도선국사가 이곳 수도암에 처음 와서
저 가야산 상왕봉을 보고 너무 기쁜 나머지 7일 동안 춤을 덩실덩실 추었듯이.....
나는 생각없이 한참동안 연꽃처럼 생긴 가야산 봉우리를 보고 있으니 모든 번뇌 망상 다 소멸되는 것 같다.
수도암 수도선원
수도암은 포교위주의 일반사찰 과 달리
수도선원에서 공부하는 선객들 중심의 사찰이다.
한때 지리산 칠불암과 백양사 운문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삼대선원으로 손꼽힐 만큼 이름난 수행처였다고 한다.
전국의 이름난 선원 중에
수도암 처럼 공부하기 좋은 명당터에 지어진 선방이 많은데...
나는 명성이 높은 선방있는 곳을 찾아 갈때마다 늘 느끼는 아쉬움은
출가한 스님들만 이렇게 좋은 곳에서 공부 할 수 있게하고
일반 속가 제가자 들은 제도적으로 공부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것은 너무 잘못된 것이고...
한국 불교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중에서 가장 잘못된 큰 문제중 하나 이기에 참 아쉽고 답답하다.
신라, 고려, 조선시대를 지나 현대까지
시대를 달리해
수 만은 운수납자 들이 수도를 한 수도암에서눈푸른 선객들이 공부해서 불도를 깨친 관련 자료는 보지 못했지만...
분명한것은 근세 및 현대 한국불교를 이끄셨던
기라성 같은 큰스님들이 수행 정진을 하였던 불지 사찰이다.
특히 한국불교의 중흥조이신 경허스님,
조계종 종정을 지내셨고 상원사에서 좌탈입망(座脫入亡)하신 한암스님,
통도사 방장으로 전국에 선풍을 날린 극락암 경봉스님.
판사출신 스님으로 선기가 높았던 효봉스님.
송광사 조계총림 방장을 지내셨던 구산스님,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하고 직지사 조실로 계셨던 관응스님,
현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 등 여러 대덕 큰스님들이 수행 정진한 수도암 이다.
한암스님(1876~1951년)은 23세 때 수도암에서
경허스님이 일러주신 금강경(金剛經)의
무릇 모양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니
모양을 모양 아닌 것으로 보게 되면 바로 진리를 볼 것이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이란 사구게로 인해 개오(開悟)하였다. 하며
송광사 조계총림 방장 구산스님(1901~1983)께서는
이곳 수도암 에서 일주일간 선채로 용맹정진 하면서 두 번째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현재 송광사 조계총림 방장이신 보성스님께서는 이곳 수도암에서 행자생활을 하셨고
수 많은 선객들이 시대를 달리해 불도를 깨친 수도암은 불연(佛緣) 깊은 불지(佛地) 사찰임이 분명하다.
해방 전에 효봉(曉峰)스님과 구산(九山)스님이 이곳 수도암에서 공부 했으며
6. 25사변 전에 우봉스님이 와서 상좌인 상호스님에게 원주를 보게 하다가 1961년까지 주지를.....
다음 법희스님(61~62) 우룡스님(62~64) 등각스님(65~67) 다음으로
해인사에 주석 하던 현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69~87) 께서. 1969년 이곳 수도암에 오시고 난후
당시 법당, 약사전, 정각, 선방 겸 요사 이렇게 4동만으로 3,4명 스님이 수도하고 있든 수도암에
대 불사가 이루어져 오늘날 같은 20동 가까운 대가람과 함께
20리가 넘는 오솔길을 지세를 이용해 진입로를 닦아 차가 들어올 수 있게 하였다.
종정 법전스님 이후 지금까지 상좌이신 원인스님이 선원장 겸 주지로 주석하고 있다고 한다.
대적광전(大寂光殿) 앞에있는 삼층석탑
수도암은 절터가 마치 옥녀(玉女)가 베를 짜는 모습의
명당 터라 하여 베틀의 기둥을 상징하는 뜻으로 두 탑을 세웠다고 한다.
대적광전 안에서 본 가야산 정상 봉우리
약광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
탑의 기단 처마가 5단 으로 조성 되어있는 것으로 볼때 통일 신라시대의 탑으로 보인다,
대적광전 앞의 탑과 같은 탑으로
이 3층 석탑처마가 오단으로 조성된 것을 확인 하면서
수도암은 신라말 고려초의 도선국사가 처음 이곳을 발견해 창건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 통일신라 시대부터 있었던 수도암 이라는 것을 불탑이 분명하게 증명 하고 있다.
자료와 약광전앞 돌기둥에 도선국사가 창건 했다는 비석이 있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
도선이 이곳에 오기전 부터 있었던 수도암에, 도선이 와서 약광전을 새로 조성한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세벽예불때 인상깊게 들려오든
원인스님 께서 직접 번역하신 천수경의 한 구절...
백겁천겁 지은죄업 한생각에 없어져서 마른풀을 태우듯이 흔적조차 없어지다
죄의실체 본래없어 마음따라 일어나니 그마음이 사라지면 죄업또한 사라지네
죄도업도 없어지고 마음까지 비웠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참다운 참회라네
나는 수겁생에 지어온죄 모두 참회하고,
부모에게 몸받기전 무엇이 참 나 인가! 라고 수없이 내게 의문을 던진다.
수도암 대적광전 석조비로자나불 보물 제307호
이 부처님이 자주 방광을 한다고 하는데...
멀리 해인사에 까지 방광을 비추기도 하면서 자주 방광을 하시기에 수도산을 불령산 이라고도 한다.
지금도 방광을 하는지 목위 부터 얼굴 부위는
천년 하고도 수백년의 세월이 더 지낮는데도 색이 변하지 않고 최근에 조성한것 처럼 깨끗하다.
중심 전각인 대적광전(大寂光殿)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로 1969년에 지었진 전각이다.
창건 당시 조성되어 보물 제307호로 지정된 위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봉안하였다.
이 수도암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9세기경에 경남 거창군 가북면 북석리에서 제작되었다고 전한다.
당시 이 불상의 운반에 고심하고 있을 때
한 노승이 나타나 불상을 등에 업고 이 절까지 운반했는데,
절에 다 와서 칡덩굴에 걸려 넘어지자
산신령을 불러 크게 꾸짖고 칡덩굴을 모두 없애게 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이 절 근처에는 칡덩굴이 없다는 설화가 전한다.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경주의 석굴암 불상보다 80cm 작은 큰 불상이다.
높이 251㎝의 통일신라시대 석조불상으로 1963년 보물 제307호로 지정되었다.
위엄 있는 상호, 당당한 어깨 그리고 거대한 체구 등은
통일신라시대의 거작불상(巨作佛像) 양식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민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얼굴은 네모나며 풍만하고, 긴 눈·작은 입·평평한 콧잔등에서 위엄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옷주름은 느슨하고 뚜렸하게 표현되었다.
손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데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였으며 단정하고 강인한 느낌을 준다. 거구의 불상이면서도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특이한 손모양과 함께 당시 시대양식의 반영인 것 같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불상과 같은 재질의 돌로 만들었다.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래쪽 대좌는 연꽃을 엎어놓은 모양을 하고 있는 복련과 반원형에 가까운
연꽃이 두 줄로 교차되어 있는 양련을 팔정도를 상징하는 팔각기둥으로 연결하고 있는데
팔각기둥 전면에는 세 마리의 사자상과 용머리가 새겨져 있는 것이 독특한 특징이다.
전체적으로 정체되고 균형잡힌 모습을 나타내는,
안전감 있는 통일 신라시대 만든 작품으로 추정된다.
석불 좌상은 경주남산에 있는 불상들 처럼 노천에 모셔진 석불은 가끔 볼 수 있지만
수도암처럼 전각(殿閣) 안에 석조비로자나불 좌상을 모시고 있는 것은 보기 드문 경우이다.
법당앞 삼층석탑은 이 절터가 마치 옥녀(玉女)가 베를 짜는 모습의
명당 터라 하여 베틀의 기둥을 상징하는 뜻으로 두 탑을 세웠다고 한다.
숫기와 5개로 연꽃모양을 만들어 놓은 것은 천숫물을 붓는 곳이다.
여느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특이한 모양이다.
천숫물이란 절에서 발우공양을 할 적에 밥과 반찬을 올리기 전에
먼저 받아 놓는 맑은 물로 공양전후에 발우를 씻는데 사용하는 물로써.
공양이 끝나면 대중의 천숫물을 모두 모아 아귀에게 베푼다.
아귀란 귀신이 자꾸 사람을 잡아먹자 부처님께서 그 벌로
아귀의 목구멍은 바늘구멍만 하게 만들어 놓고
몸은 수미산만 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아귀는 항상 배고픔에 허덕이지만
무엇이든 먹기만 하면 모두 불로 변하여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고,
다만, 스님들이 공양하고 남은 천숫물만 받아먹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천숫물에는 고춧가루 하나, 밥 티끌 하나라도 들어가게 되면
아귀는 바늘구멍만 한 목에 걸려 굶어죽기 때문에
천숫물은 청산(靑山)과 백운(白雲)이 비치도록 맑아야 한다고 한다.
수도암 약사여래불 보물 제296호
약광전 석불좌상은
금오산 약사사(藥師寺), 직지사 삼성암(三聖庵)에 있는 약사여래좌상과 함께
방광(放光)을 했다고 하여 삼형제 불상으로 부르며,
한 석불이 하품을 하면 다른 두 석불은 따라서 재채기를 한다는 전설이 전한다.
수도암 약광전에 모셔져 있는 높이 1.54m의 고려시대 석불좌상이다
머리 부분에 금속으로 된 보관(寶冠)을 장식했던 흔적이 있는데
석불좌상에 금속으로 된 보관을 만들어 씌운 예는 아주 특이한 예라 할 수 있다.
석불좌상도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같은 형태의 대좌위에 봉안하였는데
나무로 만든 불단(佛壇)이 있기는 하지만 비켜서 보면 대좌(臺座)를 자세하게 볼 수 있다.
머리에 원통형의 관(冠)을 쓰고 있어서 보살상처럼 보이지만,
광배와 대좌가 있고 신체 각 부분의 표현으로 보아 여래상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얼굴은 단아한 모습인데 마모가 심해 세부수법을 자세하게 확인하기 어렵다.
양 어깨에 걸쳐져 있는 옷의 주름은 도식적이고,
손모양은 두 손을 무릎 위에 나란히 모아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에는 연꽃무늬·덩쿨무늬·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4각형으로
윗부분에는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을, 아랫부분에는 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을 조각하였다.
도식적으로 처리된 옷주름, 형식적인 광배와 대좌의 표현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생각된다.
若人欲了知 약인욕요지 만약 진리를 요달해 아는 사람 이라면
三世一切佛 삼세일체불 과거 현재 미래 삼세의 모든 부처님은
應觀法界性 응관법계성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조하고. [비추어 보고]
一切唯心造 일체유심조 일체 모든 것은 마음으로 지음을 안다.
一切唯心造 일체유심조 일체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것이다...... ☆
보면 볼수록 신비롭게 연꽃처럼 보이는 가야산 상왕봉
그래서 인지 이곳 수도암에서는 연화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수도산 정상으로 가는 산행길 입구...
수도암이 해발 1.080m 지점에 있어
조금만 올라가도 광활하게 펼쳐진 주변의 산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ㅎ
이 장관을 조망하는 기분 그 장괘한 청량감을 알랑강 모리겠네....ㅎ
면적이 좁아 건너편에서 찍은 수도산 정상
정상에 올라 사방을 보면................
경남북 전남북 충남일대 산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도산(修道山·1317m)은
가야산 북서쪽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의 경계에 우뚝 솟은 명산으로
소백산맥의 수도지맥 중심에 있는 맏형이며. 불령산 선령산이라고도 불리운다.
속리산까지 급하게 내려온 백두대간은
추풍령에서 한숨을 돌려 황악산과 삼도봉을 지나 덕유산에 다다를 무렵
대덕산에서 가야산 국립공원 방향으로 웅장한 곁가지를 친. 수도지맥은
수도산(1.317m). 흰대미산(1.018m), 단지봉(1.327m), 좌일곡령(1.258m), 두리봉(1.133m) 등
고산들이 웅장한 줄기를 이루면서 가야산까지 뻗어 달린. 바로 이곳이 수도지맥이다.
동쪽으로는 단지봉(1.357m)을 지나 목통령을 거처 가야산 국립공원
서쪽에는 덕유산 국립공원이 있어
정상에 서면 경남북, 전남북 충남일대의 산군들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한눈에 시야에 들어오는 조망은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 장괘함은 수도산 정상에 서본 사람만이 느끼고 알수 있는 그야 말로 하늘아래 일망무제의 장관이다
동서남북 사방 어디를 보아도,
아름다운 산봉우리 들이 파도처럼 일렁이며 뻗어내린 산줄기와 봉우리 들이
끊어 질듯 이어지면서 조화를 이루어 만들어 내는 그 화려하고 수려한 경관......
내 눈을 즐겁게 하는 호사로움은 말이 필요없다... 저멀리 끝없이 펼쳐진 장괘한 산군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수도산은 불가와 인연이 깊은 산이다.
수도산 수도암에 신비스러운 부처의 영기가 있다 해서 불령산(佛靈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수도암 대적광전 비로자나불 부처님 얼굴에서 자주 방광을 하고,
방광한 빛이 가야산에 있는 해인사 비로자나불 불상에 빛을 비추는 방광을 하였다고 한다
불령산은 신라말 고려초 선승인 도선 국사가 수도암을 새로지은후
수도하는 선승들이 많이 나왓다 해서
수도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수도암이 있어서 수도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하기도 한다.
수도산 정상에서 본 가야산....
하늘구름 발아래 머물고
우주천지 숨소리 들리는
참 나 찾아 가는 길...
망망한 하늘아래
一望無際 산들이 펼쳐진 길
간 곳마다 꽃피고 새울든 그 곳이 어디인가?
밤 하늘 별들이 쏟아지면
애달픈 그리움이 은하수처럼 흐르는 곳...
텅빈 하늘까지 뻗어간 그 길은 어디였던가?
가슴에 남아 잊지 못하는
그 것이 무엇 인가...
별 보고 참 나 찾아 가는 길........ 2011. 9 .15 청담
6월 말경 2박 3일 동안...
마음편히 지낼수 있게 배려 해주신
원인스님과 대중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성불 하십시요... _()_
첫댓글 수도암 역사를 상세하게 설명해주셨고 깔끔하게찍은 사진도 올려주신 거사님 올려주신 글 도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요....
수도암에대한 글과 너무좋은사진 들을 보여주셨어 감사합니다..._()_
멀리 보이는 가야산의,아름다운 전경들 ...마음이 열리며,멋진 장관에 마음이 숙연해지는 하루입니다. 청산은 말이 없건만 어찌하여 인간사는 고난의 연속인지...오늘 하루를 참회하며.....
청담 거사님 감사합니다.
수도암의 주변 모습들 아름다웠네요...아!..어서 그모습 다시 보고파 달려가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