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의 향수>가 국민애창가요가 되기까지.... |
넓은 벌판과 그 벌판 동쪽 끝으로 흐르는 옛이야기가 얽혀 있는
실개천이 있는 곳이요 실개천은 물장구치며 놀기도 하고
고기잡이도 하던 곳이요 그 곳은 또한 어린아이들이
잠자리와 메뚜기를 잡으려고 뛰어다닐 때
얼룩백이 황소가 울음을 울며 지나던 곳이다.
시적 화자는 봄의 시골 모습인 벌판 실개천과 황소를 그리워하고 있다.
질화로의 재가 식어지면, 문틈으로 찬 바람소리가 들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던 방이다.
계절로 보면 겨울이다. 질화로가 있는 겨울은 여러 가지를 연상시켜 준다.
질화로에 밤을 구워 먹으면서 옛날 이야기를 듣던 구수한 고향을
떠오르게 한다. 겨울에 즐기던 연날리기 불놀이 윷놀이 등을 그리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며 동시에 늙으신 아버지에 대한 관심과 걱정은
떨어져 있는 가족에 대한 애정의 표시이기도 하다.
고향의 흙 속에서 자란 온정이 감도는 마음, 그리운 파란 하늘,
화살놀이를 하면서 뛰놀던 풀섶 등을 그리워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들이다. 맑고 깨끗한 품성을 길러준
고향의 소박한 모습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고향에 있는 어린 누이와 아내를 그리워하고 있다.
시골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여인들의 모습이다.
궂은 일에 온갖 고생을 참고 지내던 조강지처의 모습과
어린 시절을 고향에서 함께 보낸 누이를 그리워하면서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도
그리워 하고 있다. 하늘에 있는 별, 서리 까마귀 우짖고 지나가는 지붕과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구수한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은
가정의 단란을 떠올린다.
이 시는 정지용의 초기시의 하나로서 고향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을 주정적(主情的)으로 노래했다.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공간은 당시의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농촌이며, 누구에게나 강력한 정서적 호소력을 지니고 있는
고향의 정경이다.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보편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이 시는 모두 다섯 부분으로 나뉘는데 각 부분마다 고향의 모습을
회상하는 연이 먼저 나오고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라는
독백이 이어짐으로써 간절한 그리움을 반복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① 이미지에 통일성을 이루기 위한 연과 연을 연결하는 유대(紐帶)가 되고
있고 한 연의 종결이나 발단을 전개시키는 구실을 하고 있다.
② 작품의 공간 구조와 시간 구조를 규정하면서
작품에 생명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그리고 고향을 죽어도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1.3.5연은 포근함과 아름다운 꿈이 서려 있는 고향의 모습이다.
2.4연은 가난하고 고단한 삶의 모습이 담긴 고향을 보여 준다.
또한 이 시에 동원된 시어들은 실개천과 얼룩백이 황소, 질화로,
짚베개, 서리 까마귀 등 전통적이며 토속적인 어휘들이다.
정지용은 휘문보통고등학교 학생시절, 문우회의 학예부장이 되어
교지 ‘휘문’ 창간호를 발간하게 된다. 여기에 아시아 최초의 수상자이며
당시 인도는 물론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놓은 신화적 인물인
타고르의 노벨상 수상작 번역을 처음으로 시도한 이가 바로 정지용이다.
89년 10월 3일, 시인 정지용 흉상제막기념공연이 있던 날,
호암아트홀에서 그 잊혀져간 고향의 옛 모습을 온 국민 앞에 상기시켜
그것은 이동원, 박인수의 노래 ‘향수’ 그날 정지용의 시를 가사로 하여
이동원의 다정한 목소리와 깨끗한 테너 박인수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향수'는 온 국민의 가슴에 깊이 파고 들었다.
우리들의 가슴에 새겨진 고향의 정경을 오붓하게 담아낸
정지용의 시 ‘향수'는 대중위에 도도하게 군림하던 국립오페라단원
테너 박인수를 대중 속으로 끌어내어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이때부터 정지용의 시 향수는 더 이상 암송의 대상이 아니라
예전에도 그랬건만 시인 정지용은 이 노래로 인하여
국민 시인의 자리를 다시 확고히 다지게 되었으며
그 잊혀져 가던 고향의 정경은 이 노래로 인하여
KBS의 박광희, 신광철 PD가 작곡가 김희갑에게 부탁하여 탄생 했다.
‘향수’의 작곡을 맡은 김희갑은 작곡을 위하여
이들 두 사람의 음역과 음색을 연구하고 분석하느라
8개월 동안 각고의 노력을 다 했다는 후문이다.
그것도 그럴 진데 시인 정지용은 이 시를 쓰기 위해
동경유학시절 작품이니 절절한 타향살이 서러움 타령도 있을법 한데
그런 말초적 감정은 절제된 채, 따뜻하게 고향을 그려낸
정지용의 언어적 미술은 단순한 천재성에만 기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향수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의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우 늙은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섬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지고 이삭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짓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