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일-3일:
유난히도 무더운 금년 여름. 인천공항은 폭염을 피해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로 분주합니다. 아시아나 항공 체크인 카운터에서 빠담풍님과 원정대님을 만납니다. 두 분은 부인들께서 환송나오셨군요. 원래는 에어 인디아를 이용하게 되어있으나 그들이 파업하는 바람에 아시아나로 옮겨주었습니다. 직항편으로 바꿔주는 바람에 오히려 잘 된 셈입니다.
3일 0시 2분 델리공항 착륙. 지금이 자정인데 바깥기온은 31도랍니다. 델리공항 신청사는 2년 전 처음 문열었을 때보다 많이 자리잡힌 모습입니다. 그때는 참 엉성했는데.. 밤이라선지 입국수속도 비교적 빠르게 마치고 우리는 예약해둔 crown premium plaza lounge로 갑니다. 국제선 exit문을 나서면 바로 왼쪽에 있습니다. 자정에 도착하여 새벽 5시 40분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하므로 공항밖 호텔보다는 공항내 라운지의 침대휴식시설이 나을 것 같아 예약했던 곳입니다. 그런데 예약해둔 nap suite이 없답니다. 기가 막혀 항의했더니 약 한 시간 반을 기다리면 방이 나온답니다. 어쩌겠습니까? 기다렸지요.
2시 5분이 되자 방이 한 개 나왔다며 날더러 먼저 들어가랍니다. 들어갔지요. 창문은 없고 침대, 샤워실, 세면대, 변기가 작은 공간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피곤해서 골아 떨어졌다 알람에 일어나니 4시 15분입니다. 나와보니 두 사람은 라운지에서 졸고 있습니다. 어찌된 영문인가요?
일행에게 물어보니 이제껏 방이 없다가 불과 30분 전에 방 나왔다고 들어가라 해서 거부하고 그냥 앉아있는 거랍니다. 그러니까 무려 3시간 반을 대기하도록 한 것입니다. 일행은 밤새 앉아있는데 나만 자고나온데 대한 미안한 마음까지 겹쳐 데스크에 앉아있는 직원에게 냅다 소리를 지릅니다.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냐고.. 원래 4시간 이용에 더블룸 3천루피, 싱글룸 2천루피 플러스 세금인데 눈을 부릅뜨고 따지는 기세에 눌렸는지 세금없이 1천루피만 내랍니다. 참 알 수 없는 엉성한 운영입니다.
5시45분 국내선은 예정대로 이륙. 비즈니스 좌석에도 모기가 돌아다닙니다. 날이 밝아지자 왼쪽으로 이마에 흰 눈을 쓰고 아래는 풀 한포기 안보이는 누런 황토의 인도 히말라야가 보입니다. 날카롭게 솟은 모습이 젊디 젊은 산입니다. 작년에 K2 트레킹 때 본 지형과 똑같습니다. 6시 55분 레 착륙. 사방이 황량한 갈색인데 군데군데 보드라운 녹색 숲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황량이란 단어와 아름다움이란 단어가 떠오릅니다. ‘황량함’과 ‘아름다움’은 어울리지 않는데 묘하게 ‘황량한 아름다움’이란 생각이 듭니다. 성수기인지라 좁은 터미널은 관광객으로 붐빕니다. 터미널 벽에 어느 고승의 초상화가 걸려있는게 이색적입니다.
에이전트 소남(Sonam)이 차를 가지고 마중나와 있습니다. 첫 인상이 순해 보입니다. (그러나 인상과 실제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Oriental guest house까지는 차로 10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푼숙이라는 젊은 여주인 (원래 주인의 딸입니다)이 맞아줍니다. 오리엔탈 게스트 하우스는 고급호텔은 아니지만 깨끗하고 분위기가 밝아 여행자로부터 높은 평점을 받은 곳입니다. 뜨거운 물도 잘 나옵니다. 무엇보다 싱그러운 채소가 가득 자라고 있는 푸른 정원과 뜰이 있어 집처럼 아늑한 느낌을 줍니다. 우리는 숙박과 조식, 석식을 주는 MAP 플랜으로 더블룸(하루 2300루피)과 싱글룸(1900루피, 1루피는 우리 돈 약 22원)을 얻었습니다.
오전에는 고소적응 차 쉽니다. 레는 해발고도 3500미터로 티벳의 라싸와 같은 고도입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고소증세가 오는 곳입니다. 어제 밤 잠을 설친터라 점심 때까지 자고 나니 괜찮습니다. 인천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고소적응 약(다이아목스 200mg 반 알, 아스피린프로텍트 한 알, 징코민 80mg 한 알씩을 하루 두 차례 복용)을 먹은 효과가 있는 듯 합니다.
일행과 같이 점심먹으러 시내로 나갑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시내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립니다. 햇빛은 따갑지만 습기가 없어 견딜만 합니다. 시내 중심에 들어서니 관광객과 택시 소음으로 여늬 도시와 다를 바 없습니다. 조용한 라다크를 기대했다면 leh에서는 실망할 듯.
(레의 중심가입니다)
현지인들이 가는 식당에 가니 가격이 헐합니다. 모모(찐만두)와 뚝바(수제비)가 80-90루피입니다. 원정대님은 한식체질인지라 잘 못 먹고 나와 바담풍님은 씩씩하게 잘 먹습니다. 생수는 1병에 20루피라 괜찮은 가격인데 반해 길가에 파는 살구는 1파운드에 50루피라 별로 싸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싱싱해서 2파운드를 삽니다. 은행에 들러 환전. 미화 1달러당 55원에 바꿉니다. 매니저가 자기네 SFDC 은행은 한국 돈도 받는다며 1루피에 25원이랍니다. 인천공항에서 1루피에 22원이니 국내에서 바꿔오는게 낫다는 생각입니다. 서점에 들러 라다크 트레킹 지도는 450루피, 마카벨리 가이드북은 400루피에 삽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오는 길에 레의 유명한 랜드마크 중 하나인 산티스투파에 오릅니다. 계단을 오르는데 숨이 찹니다. slow.. slow.. 마음을 비우고.. 주변과 하나되어 한계단씩 오르니어느덧 다 올랐습니다. 고도계는 3650미터를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레 시내와 그 너머 들판까지 한 눈에 다 들어옵니다. 저 멀리 남쪽으로 흰 눈을 이고있는 스톡 캉그리가 보입니다. 주변의 산군보다 높아 어디서나 보이는 위용당당한 모습이 멋집니다. 초록 숲에 싸인 레와 주변이 무척 평화로워 보입니다.
(레의 푸른 숲 뒤로 제일 높이 솟은 봉이 스톡 캉그리봉입니다)
(원정대님과 다정하게..?)
저녁에 소남이 찾아와서 내일 스케쥴을 논의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달라이라마가 내일부터 여기에서 법회를 한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도 있던 차에 달라이라마의 법회를 여기서 직접 볼 기회가 생겼다니 큰 행운입니다. 내일 오전에는 달라이라마 법회를 참관하고 오후에는 레 주변의 곰빠들을 둘러보기로 합니다. 오늘이 보름인지 밤에는 둥근 달이 떠오릅니다. 고산지대여서인지 맑고 깨끗한 달빛이 마음까지 씻어줍니다.
(옛 레 왕궁에 부속되었던 사원의 모습입니다.)
첫댓글 베낭 여행자들의 묵는 숙소가 대충 300~400루피인데... 초호화 여행을 하신 듯 합니다^^
네. 초호화는 아니고요... 보통 배낭여행자보다는 쬐금 편하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