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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 The Favourite >
- 격렬하면서도 왠지 일그러진 불안스럼으로 그려낸
'정삼각형 형태의 무상함', 그 뒤틀린 프레임을 완벽하게
구축한 미학의 향연
- 퍼셀,비발디, 헨델과 바흐로 이어지는 바로크음악의
정결한 성찬,
그리고 현대음악가 올리비에 메시앙, 뤽 페라리와
안나 메레디트에 이르는 뒤틀림적 불협화음과의
풍자적인 조화 -
18세기 초 영국,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군주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 분)
의 궁정에서 여왕의 가까운 친구이자 말벗으로 있던
사라 제닝스 처칠(레이첼 와이즈 분),
그녀에게 먼 사촌뻘로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인
애비게일 힐(엠마 스톤 분)이 일자리를 찾아 오지요.
그렇게...
영화 <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 는 혼 파이프의
장중한 선율로 흐르는 '헨델의 콘체르토 그로소 B플랫
장조, HWV 325-1 라르고'와 함께 그 막을 열어갑니다.
영화는 여덟 개의 의미심장한 표제를 가진 섹션으로
나뉘어지며, 솔직하고도 혼란스레 웃기는 그 이야기를
풀어가지요.
' 1. 진흙창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요
2. 큰 혼란에 빠져 실수할 뻔 했어요
3. 사소한 장애(Hitch)
4. 아름다운 의상(Setting in)
5. 초콜릿 목욕에 빠져 잠들까 걱정돼요
6. 나는 좋으니까 , 그건 그대로 남겨 둬(Leave it)!
7. 감염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Stop Infection)
8. 당신의 눈을 찌르는 꿈을 꾸었어요 '
당시 스페인 왕위계승 건으로 프랑스와의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영국 귀족사회는,
주전론을 주장하던 휘그당과 화친을 주장하던
토리당으로 양분돼 격론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연회를 흐뭇하게 즐기다가도 돌연 역정을 내거나
진노하는 식의 자기파괴적으로 행동하는 앤 여왕
(재위기간 1702~1714)...
유약하기 그지없는 그녀는 매우 우스꽝스럽고
히스테릭하면서도 단순히 종잡을 수 없는 광인으로
명쾌하게 규정할 수 만은 없는, 사뭇 복잡미묘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앤은 여섯살 아이처럼 응석을 부리며 총신 사라에게
휘둘리다가도 결정적 순간에는 '내가 군주다'라는 명제를
결코 내려 놓지 않지요.
만만히 보여 마음 놓게 했다가 상대가 선을 넘으면
늦기 전에 제동을 겁니다.
정신적으로도 , 육체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한 여왕 앤을
오랫동안 보좌하며 그녀 대신 실질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동시에,
남편을 전장에 보내고 여왕과 육체적 연인 관계를
맺으면서까지 정치적 신념과 가문의 이익 실현을
위해 매진하는 권력자 사라,
그리고, 그 곁에 퇴락한 신분을 청산하고 제 자리에
오르기 위해 여왕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발광하는
욕망의 하녀(엠마 스톤 분)가 자리하지요.
이처럼, <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 에서
세 여성이 벌이는 감정의 줄다리기 암투는 '치졸하고,
치열하며, 치밀한' 권력 다툼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영화가 자못 독특하다는 인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이 마음을 주고 따라갈 캐릭터가 고정돼 있지
않는다는 데에 있지요.
여왕과 사라, 애비게일은 모두가 절실하고도
얼마간은 이기적인 이유로 상대방을 이용합니다.
절대적 권력을 지닌 여왕 앤은 죽 끓듯 하는 변덕을
내뿜을 뿐, 정작 국정에 이렇다 할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채, 사라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조력자 사라는 어릴 적 앤 여왕을 구해준 것을
계기로 궁전에 들어와 여왕과 우정을 나누며,
다름 아닌 '비선 실세'로 사실상 권력의 최정점에서
군림하고 있지요.
그녀의 당면한 과제는, 프랑스와의 전쟁을 계속하여
군사령관인 남편 말버로 공작(마크 게티스 분)에 힘을
실어주는 것입니다.
사라는 확고한 정치 철학과 추진력을 지닌 한편,
여왕을 자기 방식으로 사랑하는, 어쩌면 세 여성 중
가장 성숙한 캐릭터이지요.
'폐하는 특별한 분이십니다'라는 대사는 사뭇
진정성있게 울립니다.
단, 사라는 여왕의 능력을 불신하지요.
영화 초반,
앤 여왕이 사라에게 자신의 예쁜 토끼들을 좀 보라고
넌지시 부탁하는데,
그녀는 '사랑에도 한계가 있다'며 그럴 수 없다고
딱부러지게 거부합니다만...
사라는 사랑에서와는 달리 애국심에선 한계가 없는
인물입니다.
문제는 앤 여왕이 사라가 그 반대의 사람이길
원한다는 데에 있지요.
앤과 사라의 공통점은 약자에게 약하다는 것입니다.
애비게일은 그 점을 이용해 여왕의 내실로 절묘하게
파고 들지요.
도박 빚에 팔리며, 겁탈당하고, 수시로 내밀쳐져
창녀촌을 비롯한 진흙탕에 굴렀던 그녀는 정치에
개입할 만큼 한가로운 처지가 아닙니다.
이토록 막다른 지옥의 시궁창까지 떨어져 보았던
애비게일은, 여왕이 원하는 언사와 행동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채리지요.
앤의 질환을 완화시킬 약초를 캐오고, 아픈 다리를
주무르면서 의도적으로 그녀를 유혹하는데다,
여왕의 자식과도 같은 토끼들을 귀여워하면서
그녀의 아픔에 눈물을 머금는 애비게일의 처신은
실상 전부 치밀하게 계획된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제각기 다른 욕망이 계속해서 서늘하게 부딪치는
가운데 사라는 앤에게 "갠 독사같은 애에요!"라며
애비게일을 당장 궁에서 내쫓으라고 거듭 간청해
보지만,
강자의 유희인 파워 게임을 은근히 즐기는 여왕은
'질투하느냐'며 오히려 그녀를 전속 하녀로
불러들이지요.
보수 야당인 토리당을 이끄는 로버트(니콜라스 홀트 분),
그는 여왕과 관련된 비밀 정보를 내놓으라는 요구에
호락호락하지 않는 애비게일을 협박 반, 회유 반으로
몰아부치며 충고합니다.
" 호의는 늘 바람처럼 바뀌지! "
그녀는 이를 내치며 절박하게 대꾸하지요.
" 나는 누구의 편도 아닌, 바로 내 편일 뿐입니다.
혹여 당신네 당의 이익과 내 이익이 일치할 수는
있겠지만요! "
장 중 비올라 연주로 맥박 고동처럼 조용히 이어지며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뤽 페라리의 전위적인 음악
'Didascalies' 는
질투, 위선과 음모로 가득찬 극의 분위기를 기묘하게
장식해주는 압권의 울림으로 스며오지요.
왕실에 처음 들어오기 전, 애비게일은 그만 마차에서
내밀쳐져 배설물이 흩뿌려진 진창에 얼굴을 처박고
맙니다.
자신과 먼 친척지간이지만, 이제는 계급과 처지가
너무도 달라져버린 사라를 처음 만나는 상황에서,
악취를 풍기는 진흙으로 뒤범벅된 에비게일은
"저 파리들은 네 친구니?"라며 비아냥거리는
모욕적 언사를 듣지요.
냉철한 사라 역시 에비게일의 계략에 넘어가
독이 든 차를 마신 채 말을 타고 달려가다가 삶에서
처음으로 곤두박질치며 큰 부상을 입게 됩니다.
이처럼 애비게일이 마차에서, 사라는 말에서 떨어지는
각 장면은 그들의 인생 전체가 붕괴되는 순간과
겹쳐지며, 그 ‘추락’의 이미지가 갖는 의미에 대해
반추케 하지요.
결국 새뮤얼 매섬(조 알윈 분)과의 정략 결혼으로
귀족 지위를 마침내 회복한 애비게일은 외칩니다.
“ 이젠 아무도 나를 건드릴 수 없어! ”
아르투르 슈나벨의 연주로 등장하는 슈베르트
최후의 깊고 맑은 서정성어린 피아노 소나타 '21번
B플랫, D.960 중 2악장 안단테 소스테누토'...
영원한 마침음의 여운을 남기는 이 곡은 막장의
절정으로 치닫는 사라와 애비게일의 고통스런
격전과 추락을 그 음울한 선율로 대변해 줍니다.
토리당의 총수 로버트 할리와 손을 잡으며,
사라 쪽 세력이었던 휘그당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하는 애비게일.
결국 그녀의 계략대로 사라는 남편 말보로 공작과
함께 국외로 추방당하고 말지요.
이처럼, 영화의 본류는 '권력과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모아집니다.
가늠할 수 없는 변덕을 국정에서도 가감없이 흩뿌리곤
해대는 여왕 앤에게 사라의 조언과 협박도 때론 통하지
않을 때가 있지요.
앤도 스코틀랜드와 통합된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의
첫 수장으로서 '절대 권력'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파워를 휘두르고 싶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녀의 곁에서 나라를 위한 조언이라는 미명
하에 '실질 권력'을 휘두르는 사라 대신 직접 말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나타난 애비게일이란 존재는
앤 여왕으로선 특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극 중 애비게일은 욕망의 화신으로 그려지지요.
귀족에서 천민으로 신분이 굴러떨어진 후 이를
되찾으려는 그녀의 절실한 욕망은 그 누구도
주체할 수 없습니다.
앤은 명실상부한 권력을 휘두르고자 애비게일을
이용하지만,
그녀 역시 사라를 대신해 '실질적인 권력자'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것이지요.
여왕 앤과 사라는 서로 연모하는 사이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어릴 때 여왕의 자리에 올라 우울함과
회한, 슬픔만 남은 앤에게 사라는 연민의 상대이자
절실하게 필요한 인물이죠.
그렇다고 앤에 대한 사라의 사랑이 권력을 위한 수단
같은 일방적 감정으로만 치환될 순 없습니다.
군사령관으로서 멀리 떠나 늘 죽음을 옆에 두고
사는 말버로 공작을 남편으로 둔 사라에게도 앤 여왕은
유일무이하게 모든 걸 나눌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이죠.
결국 사라에게도 역시 사랑은 필수의 요건일터,
이렇듯 서로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의 관계인 앤과
사라 사이에 애비게일이 끼어듭니다만, 그녀에게는
사랑이 아니라 권력이 최우선입니다.
애비게일은 앤 여왕과 사라 둘 사이를 권력 요소로
흔들고는 이후에 사랑을 이용해 다가가는 것이지요.
물론 오직 권력을 향한 욕망으로 점철된 '거짓 사랑'
이라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입니다만,
극 중 사라는 여왕인 앤에게 '화장한 얼굴이 오소리를
닮아 보인다'며 아닌 건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온 인생을 담보할 만큼 처절한 욕망의 화신들로,
여왕 앤과 사라, 또한 애비게일은 셋 다 표면적이고도
메타포적 상처를 지니고 있으며, 이 상처는 그들의
행위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지요.
냉혹하기 그지없는 사라가 가문을 몰락시킨 애비게일의
아버지를 비웃으며 그녀에게 주선한 직책이라곤
고작 왕실의 부엌 허드레일을 맡을 하녀였던지라,
애비게일은 처음부터 호된 신고식 격인 바닥 청소를
당합니다.
아무도 그녀에게 바닥을 닦는 위험한 양잿물인데도
(일부러) 말해주지 않았고, 급기야 장갑을 끼지 않았던
애비게일은 손에 심한 화상을 입게 되지요.
이런 손의 상처는 애비게일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한 채, 평생을 무시당하며 비천한
하녀로만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불안감을 가중시킵니다.
중증의 통풍에 시달리며 거동이 불편한 앤 여왕에게
극심한 통증을 주는 다리의 상처는,
그녀가 왕실 업무 하나 스스로 결정하거나 자신의
뜻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현실을 더욱 강하게 각인시켜
주지요.
그럼에도 상대를 누르고 싶은 권력욕과 상처받기
싫은 소녀의 면모를 동시에 지니고 있던 앤 여왕은
아이러니하게도 애비게일과 이 상처를 통해 만나게
됩니다.
애비게일이 자신의 쓰라린 상처에 바르던 약초를
앤에게 발라주면서 둘 사이의 인연은 극적으로
맺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반면 사라의 상처는 여왕과의 사이에서 균열을
일으키는 시발점이 됩니다.
사라는 애비게일의 모략으로 얼굴에 큰 흉터를
입습니다만, 이 상흔은 앤이 사라를 거부하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지요.
영화는 귀족들이 한가하게도 거위 경주와 토마토
던지기 유희를 즐기는 모습과 함께 ,
거위를 던져 총으로 쏘는 사냥을 통해 이들의
모순투성이 행동을 건져 올립니다.
아울러 사냥은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권력의 실체 역시 은유적으로 드러내 주지요.
애비게일이 총을 쏴서 거위를 맞췄을 때 그 피가
사라에게 튀는 시퀀스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장면은 사라의 권력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애비게일의 위상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한편, 여왕 앤의 방에 있는 열일곱 마리의 토끼는
그녀가 잃은 아이들의 분신으로 발현되지요.
앤은 토끼 한 마리, 한 마리에 이름을 붙여주고
마치 친자식처럼 기릅니다.
'토끼'는 자식을 모두 잃으며 후대를 이어가지 못한
앤의 아쉬움과 절망감, 그로 인해 권력의 세습을
이어가지 못한 마지막 왕이라는 부담을 기형적인
형태로 떠안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달빛어린 물결처럼 미려한 비가적 선율로 흐르는
W.F.바흐의 하프시코드 협주곡 'a단조 45 -3 알레그로'
와 'D장조 41-2 안단테' 는,
자식들을 먼저 가슴에 묻고 홀로 남겨진 앤 여왕의
비극적 운명과 비감어린 외로움을 오롯이 대변해주고
있지요.
사라가 권력을 쥐었을 때는 우리에 갇혀 있던 토끼...
헌데 그 권력의 중추가 애비게일로 넘어간 순간,
토끼들은 우리 밖으로 나와 방 안을 마냥 돌아다니죠.
20세기 음악가 안나 메레디트의 'Songs for the M8'
중 2악장과 5악장, 리케티 콰르텟이 발하는 이 기묘한
불협화음은 란티모스 감독 특유의 '불편함에의 탐닉'을
교묘하게 담아내며,
앤과 사라, 앤과 애비게일 사이의 권력 구조를
에둘러 조명해주고 있습니다.
여왕과 사라 사이에는 끈끈한 유대감이라는 게
있었지요.
둘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고
사라는 앤을 조종하는 법을 압니다.
두 사람은 왕과 귀족이란 계층적 서열의 관계이지만,
같은 추억과 업무를 공유하기에 동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죠.
하지만 애비게일은 다릅니다.
그녀의 아슬아슬한 권력의 위상은 위태롭게
흔들릴 뿐더러,
창녀촌으로 팔려 나갔던 하층민의 삶을
경험하면서 어쩔 수 없이 몸에 새겨진 저급한
생각과 행동들이 완벽한 유대감을 방해하죠.
우리를 나온 토끼들은 자유자재로 번식할 수 있을 터,
이는 곧 권력의 재생산을 의미하지요.
애비게일은 이처럼 치고 올라오는 권력들을 사라처럼
통제하기 힘들 것이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가 그리했던 것처럼, 누군가 또 그녀의 권좌에
도전할 것이란 걸 말이지요.
'당신은 나와의 싸움에서 졌어’라며,
자신을 조롱하는 애비게일에게 사라는 말합니다.
"너와 나는 게임의 목적이 달랐어! "
수려한 영상미를 자연스레 살려주는 영국을 대표하는
음악가 헨리 퍼셀의 '트럼펫 소나타 D장조 중 아다지오'
에 이어,
트레버 피노크가 이끄는 잉글리쉬 콘서트의 오보에
연주로 수정처럼 맑고 깨끗하게 풀리는 헨델의
'수상음악 모음곡 1번, HWV 348 중 2악장 아다지오',
그리고 비발디의 '비올라 다모레 협주곡 a단조,
RV. 397 -1 알레그로'와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RV. 277, Il Favorito 중 안단테' 두 곡은,
영화 중반부터 서서히 그 발톱을 드러내는 애비게일의
진면목을 경쾌하고도 조금은 조심스러운 톤으로
담아내며,
음악의 제목 'Il Favorito'과 어울리는 영화
<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 메인 테마 곡처럼
아우러지지요.
이토록 앤 여왕의 침소에 이르기까지,
궁전 내부의 복도는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습니다.
어느 것이 문인지 잘 드러나지 않는 왕실 안,
내밀한 바로 그곳에서 여왕의 마음을 차지하기 위한,
한창인 프랑스와의 전쟁마저 좌지우지할 두 여자의
일대 각축전, 이른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장' 이
강렬하게 벌어졌던 게지요.
그럼에도 '여왕의 총애(The Favourite)를 향한 그 마음'
을 뺐고 뺏으려는 사라와 애비게일의 레이스는
'권력과 계급을 향한 비극적 욕망’ 하나만으로
간단하게 수렴되지는 않습니다.
란티모스가 조금씩 핀트가 어긋난 디테일로 현실감을
교란하며 역사를 새로이 다듬고 또한 편집한
<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 의 시대적 상황은
바로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으로,
토리당과 휘그당의 의원들은 전황의 다급함과 국민의
빈곤에 대해 목소리를 드높이며 논쟁을 벌이지요.
그러나 영화에서 전쟁은 ‘소문’으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정작 독점적 부의 전시장이자 전장터는 궁정의 실내
일진데, 가장자리가 볼록하게 휘어지는 짧은 초점의
이미지는 상류층의 소우주를 어항처럼 보이게 하지요.
그들은 수많은 군인과 국민들의 생사여탈권을 손에
쥐고 있지만, 흡사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제 몸을
담근 물속에서 헤엄칠 뿐으로,
반면에 당파를 초월해 거위 달리기 시합과 과일 던지기
무료함을 달래는 귀족들의 시간은 유독 슬로 모션으로
재현함으로써 현실과 턱없이 유리된 생활 감각을
짓궂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카메라는 러닝타임 대부분을 앤 여왕의
궁정 실내에서 머무르지요.
빠른 휩팬의 감각적인 구사, 광각렌즈와 어안렌즈를
거침없이 활용한 화면은 등장 인물들을 내리누르고
있는 천장을 교묘하게 프레임에 담습니다.
이처럼 감독의 전매특허인 로우 앵글 숏을 통해 창출된
'공간 왜곡'의 영상은,
어디로 가든 테두리 위쪽에 드리워져 더욱 화려하고
위압적으로 보여지는 천장과,
대조적으로 사물에 압도적으로 포위된 채 이전투구를
벌이는 권력자들의 왜소함을 그로테스크하게 잡아내는
게지요.
파이프 오르간의 장엄한 사운드로 그 빛을 발하는,
올리비에 메시앙의 '그리스도의 탄생
(La Nativite du Seigneur)' 중 7곡 '고통 받아들이는
예수(Jesus accepte la Souffrance)' ,
그리고,
18세기 초 바로크 시대, 바로크 음악의 아버지인
바흐의 곡들인
'파스토랄레 F장조 BWV 590 -3 아리아 '에서부터
'판타지아 c단조, BWV 562.' 와 '전주곡과 푸가 g단조,
BWV 542 Great 1곡, Praeludium(판타지)' 는,
높은 천정과 바닥을 포함한 웅장하고도 광활한 궁정
공간과 그것을 채운 왕실과 귀족의 넘쳐나는 소유물을
큰 틀 안에 ‘우그러뜨려’ 눌러 담는 화면과 잘
어우러지며,
왕실의 층고높은 권위와 이에 대비되는 군상들의
찌그러진 왜소함을 온전하게 빚어내고 있습니다.
질투와 기만, 거짓말과 모략 등 날이 바짝 선 감정들로
속을 채운,
곧 끊어질 듯 팽팽하게 조율된 현(絃)같은 사라와
애비게일의 사랑과 권력을 향한 갈망을 완벽하게
구현하며,
치정극의 서사에 감히 다른 누구도 끼어들 틈 없는
긴장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게지요.
의도적으로 코드화된 칼라와 무늬로만 구분되는
샌디 포웰의 시대착오적 의상 또한,
엄격했던 당시의 사회적 관습을 경멸하는 동시에
바로크 양식의 올곧은 무대장치와도 어긋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영화는 권태로운 오후, 여왕의 침실에서
그 막을 내리지요.
책을 읽던 애비게일이 여왕으로선 자식과도 같은
토끼 위에 무례하게도 발을 얹고 무심토록 잔인한
태도로 짓누르자,
이를 알아차린 여왕은 불편한 몸을 끌고 도망치려는 듯
문쪽으로 향하다가 애비게일이 다가오자 그녀의 머리를
잡고(토끼에게 애비게일이 그랬듯) 내리 눌러댑니다.
'나는 언제나 너를 밟을 수 있어'라는 듯, 안간힘을 다해
무언의 경고를 던지는 게지요.
애비게일은 하기 싫다는 표정을 만면에 지으며
억지로 다가가 무릎을 꿇은 채, 마치 섹스행위처럼
앤의 다리를 주무르는데,
이는 창녀로 살았던 과거를 그토록 증오하며 잊고
싶어했던 애비게일이 귀족의 신분을 갖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의 수렁에서 자신을 완전히 빼내오지
못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여왕 앤의 표정 역시 무엇인가에 쫓기는 악몽을 꾼,
마치 넋나간 사람처럼 괴로워 보이지요.
그리고 장면은 서서히 전환되며,
앤과 애비게일의 클로즈 업이 오버랩되고 스크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늘어나는 토끼들로 꽉 채워집니다.
세 여자의 덧없는 권력을 향한 야망을 무연스레
은유하는 듯,
어느덧,
엔딩 크레딧의 정적은 청아한 하프시코드 반주에
얹혀지는 엘톤 존의 찬가 'Skyline Pigeon'으로
고요히 스러져 가지요.
" 이만 나를 손에서 놓아주어요
여기서 멀리 떠날 수 있도록
푸른 들판과 나무와 산줄기를 넘어서
꽃들과 숲속의 샘을 지나서
하늘을 가로질러 고향에 돌아갈 수 있도록
- - - - - - - - -
지평선을 향해 날고 싶어요
오래 전, 먼 곳에 남겨두고 온
나의 꿈을 향하여..."
- 李 忠 植 -
1.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The Favourite)
예고편
https://youtu.be/yq8Vv7RrVLo
https://youtu.be/RsaVUDGuVso
https://youtu.be/bLumLZIEQyY
2. <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 > OST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sOvTHb-mlS4lKG4BqHzFGkUjV4OGknqR
첫댓글 와아~
대단합니다.
영화 장면 장면 완벽한 해설은 물론
배경음악까지 완벽하게..
영화를 다시 봐야할듯 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