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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맑음
이틀치 숙식비용으로 3300루피 지불하고 8시에 길을 나서다. 좀 가다보면 만나는, 길을 수선한다고 기부금을 받는 영감님은 몇 년째 똑같은 자세로.. 아니 이번에는 부인을 동반하고 앉아 계신다. 길을 수선하기는 하는가? 더워서 윗옷을 벗으니 여름 산행차림이다. 4월의 쿰부 산행은 3800미터까지는 운행 중에는 여름복장이 적절할 듯. 쉴 때는 방풍의를 껴입는다.
탱보체에 오후 1시 도착. 예상보다 빨리 왔다. 다시 디보체로.. 디보체의 Revendel lodge는 방이 꽉 찼단다. 그래? 그럼 컨디션도 좋은데 팡보체까지 가자. 총바는 오케이라고는 하지만 썩 내키는 표정은 아니다. 이내 힘드는지 뒤쳐진다. 내가 괜히 무리수를 두었나? 포터 생각은 안하고 내 생각만 했구나. 후회가 밀려온다. 나도 갑자기 힘들어진다. 초르텐이 있는 곳에서 육포를 총바와 나누어 먹고 다시 힘을 내다.
3시경 팡보체 도착. 새로 지은 Everest view lodge는 역시 방이 다 찼단다. 시즌에 좀 괜찮은 롯지들은 일찍 방이 찬다. Om Kailash hotel로 잡았다. 남향 방을 주니 괜찮다.
롯지에는 캐나다에서 온 가족이 있다. 남편 Rick은 53세이고 부인과 26세, 24세인 두 딸과 같이 EBC까지 갔다가 하산 중이다. 또 스위스에서 온 아버지 (50대 초반, 이름은 피터)와 18세 된 아들도 있다. 우리는 난로를 사이에 두고 여러 이야기를 했다. 나이가 드니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도 줄어드는지 서로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우리 셋 모두 젊었을 때는 돈이 없어 여행을 못 다녔는데 이제는 시간이 없다는데 동의하다.
(길 고친다고 기부해달라는 안내문이 갈수록 커진다)
4월 6일, 맑음
창밖으로 보이는 아침햇살에 빛나는 설산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기 어렵다. 명상도 잘 된다. 더하고 싶을 때 멈추라 했겠다. 어제는 예정보다 많이 왔으므로 오늘 오전에는 아마다블람 베이스캠프(4600미터)에 사이드 트립을 다녀오기로 했다.
페리체쪽으로 동네를 벗어나자 마자 오른쪽 아래 계곡으로 내려가 계곡을 건넌다. 급경사 오르막을 지나면 이내 완만하고 넓은 야크초지가 나타난다. 타보체 피크가 왼쪽으로 멋있게 솟았다. 아마다블람은 가까이 갈수록 엄청나다. 와, 저기를 어떻게 올라가지? 오른쪽 사면으로 올라 우측 능선을 타고 오르는게 그나마 제일 낫겠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수백미터 수직 벽으로 보인다. 두 시간 반 만에 베이스캠프 입구에 도착. 와.. 저렇게 멋질 수가. 평평한 초지가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중앙을 계류가 흐른다. 사방은 설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베이스캠프에만 있어도 행복할 것 같다. BC에서 정상은 정동쪽이다. 저기 오르고 싶다. 근데 오를 수 있을까? 10년 아니 5년만 젊었어도..
돌아오는 길에 맞은편에서 혼자 걸어오는 사람을 만나다. 트레커냐고 물으니 아마다블람 등반 왔단다. 체코에서 왔고 13명 등반팀이란다. 부럽다. 바쁜지 지나치려는 사람을 붙잡고 나이를 묻다. 65세란다. 뭐라고요? 그럼 당신이 저길 올라가겠다는거요?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I am trying.”하고 답한다. 용기가 생긴다. 서양사람이니 만 나이로 대답했을 터. 내게도 아직 6년 남았다. 얏호! 지금부터 열심히 훈련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희망을 품고 가볍게 내려오다.
롯지에 귀환하니 12시 반이다. 점심 후 1시 반 딩보체로 출발. 오전에 고도 600미터를 올랐다 내려와서인지 몸이 무겁다. 4시에 딩보체 도착. 근데 방이 없다. 총바가 추천한 쿰부리조트, 내가 전에 묵었던 peak38 view 롯지, 그리고 아리조나 호텔 모두 다 찼다. valley view lodge에 방이 있어 들어가다. 자리가 눅눅하다. 시트가 눅눅한건지 원래 방에 습기가 많은지 모르겠다. 그동안 꺼내지 않았던 침낭을 풀어 들어가니 훨씬 낫다.
(팡보체의 아침)
(아마다블람 베이스캠프 가는길에 왼쪽 뒤로 보이는 Taboche의 위용)
(사진 아래쪽 갈색 평평한 공간이 아마다블람 베이스캠프)
(베이스캠프로 바쁘게 걸어가는 65세 클라이머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4월 7일, 맑음
오늘은 추쿵까지만 간다. 8시 출발. 10시 좀 넘어 추쿵의 추쿵리조트에 도착. 지난 번에도 이 집에 묵었는데 밝고 넓은 남향 방이 맘에 든다. 실수로 넘어지다. 3패스 트레킹 온 영국 트레커와 이야기하며 뒷걸음으로 식당으로 들어가다 턱이 진 곳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지다. 다행히 난로 모서리에 엉덩방아를 찧어 히프만 아팠기 망정이지 무거운 놋쇠난로에 머리라도 찧었다면 클라이밍이고 뭐고 대형사고 날 뻔 했다. 밖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다들 뛰어오고 괜찮다고 해도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신기하게도 다친 데가 없다. 그저 감사할 따름.
오후 내내 클라이밍 가이드를 기다리다. 저녁을 먹은 후에야 지렐이라는 이름의 클라이밍 가이드가 나타나다. 일정은 내가 원하는대로 하이캠프로 먼저 가서 출발하는 것으로 해주겠단다. 그리고 자기말고 다른 가이드가 내게 붙는단다. 자기는 3명의 클라이머와 함께 11일 새벽 베이스캠프에서 바로 출발할 것이라고.. 원래는 나도 그 3명과 같이 묶을 예정이었는데 내가 반드시 하이캠프를 쳐야 한다고 하니까 팀을 쪼개고 새 가이드를 붙인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나는 전용가이드와 단 둘이 등반하는 것이다. 등반회사 입장에서는 하이캠프 치는 것을 싫어한다. 클라이머 텐트, 키친텐트를 모두 올려야 할 뿐 아니라 키친스텦까지 동행해야 하므로 비용이 더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하이캠프에서 자는 것을 훈련의 일부로 생각하므로 양보할 수 없었다.
4월 8일, 맑음
어제 푹 쉬어서인지 컨디션이 좋다. 오늘은 고소적응일. 추쿵리까지만 다녀온다. 8시 20분 추쿵리로 출발. 천천히 오른다. 숨이 가빠지더라도 마음은 몸에 맡겨버리자. 숨 쉬는 것을 컨트롤하려 하지 말고 몸 움직임에 따라 맡겨버리자. 10시 40분 추쿵리 안부에 도착. GPS는 여기가 5360미터라고 가리킨다. 여기는 추쿵리가 아니고 진짜 추쿵리는 여기서 오른쪽 능선을 따라 로체 쪽으로 더 가야 한다. 일단 왼쪽 언덕으로 가다. 여기는 딱 5400미터 측정되어 나온다. 돌탑에 작은 돌을 올리고 전면의 임자체를 바라보며 간절히 빌다. 다시 안부로 내려와 총바와 함께 pack lunch (하나에 무려 천 루피 짜리다. 흑..)를 먹다. 야크치즈가 맛있다. 먹고 나니 기운이 난다. 11시30분 산보 삼아 추쿵리 쪽으로 발을 옮기다. 끝까지 갈 생각은 없었는데 별로 힘든줄 모르고 올랐다. 12시 30분 추쿵리 도착. GPS는 5550미터라고 정확히 찍는다. 여기서 보이는 로체는 악! 소리날 정도로 가깝다. 임자체도 전위봉 뒤의 정상이 잘 보인다. 정상에 서 있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
하산은 일사천리. 돌아와서 해물탕면을 끓여먹고 장비를 점검하다. 빙벽화에 크램폰이 잘 맞는지 다시 체크. 총바는 빙벽화와 크램폰이 모두 최신이라고 자기 것처럼 좋아한다. 충직한 친구다. 아까 내 방풍의보고 부러워하던데 끝나고 헤어질 때 줘야겠다. 7-8년 정도 입었는데 새 주인을 찾아주는 것도 좋겠다. 방에 들어와서 안전벨트, 확보줄, 주마도 다시 점검. 그리고 BC로 가져갈 짐과 롯지에 맡길 짐들을 분리해서 싸놓다. 준비는 끝났다. 집에 전화를 못해서 좀 걱정이 된다. 집에 무슨 일 생기면 내게 연락할 방법이 없을텐데..
(추쿵의 아침)
(추쿵리 왼쪽 언덕에서 본 임자체 정상)
(추쿵리에서 내려다 본 추쿵 방향쪽. )
(전면의 임자체 뒤 오른쪽에 솟은 것이 마칼루 봉)
(추쿵리조트 메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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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추쿵리조트에 묵으셨군요. 그집 귀연 초리(그때 사진오리셨죠?)를 만나 쾌활했던 모습이 떠오르는군요.
잘 봤습니다. 대단하십니다. 훨씬 더 젊은 언감생심... - -;
('팡보체의 아침' 사진은 '딩보체의 아침'으로 정정하셔야겠네요. ^^ 토시 하나 차이지만...)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 다시 확인해봤는데 6일 오전 6시 30분에 찍은 '팡보체의 아침'이 맞는 것 같은데요....? ^^
아, 그렇군요. 제가 잘못 봤습니다. 오른쪽 언덕이 낭가르창 올라가는 언덕으로 보았는데 완전 헛짚었네요. 괜히 주제넘게 나서서리... (딩보체에서 찍은 사진을 다시 봤더니 전혀 아니네요. 죄송합니다. ㅠㅠ)
제가 갔었던 그 정경들을 다시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런데 봄인데 산에 눈이 제가 갔던 11월보다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네 제가봐도 이번 봄에 눈이 많은것 같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