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5회 향기통신< 슬픔이 슬픔을 치유하다>
건축허가 면적 이외의 땅이 파헤쳐진 곳이 있다.
그 땅에 식물을 심어 자연 녹지를 만들어 놓아야. 건축 허가가 난다.
어차피 꽃밭을 만들 곳이라 집에 있는 식물들을 옮겨심었다.
팔월 염천에 식물들을 심고 물 주느라 여러 날 고생을 했다.
8월 23일 피부과에 간 동생 기다리는 동안 장을 보는데 ,
에어컨 바람이 송곳으로 찌르듯 해서 길바닥에 나 앉아 있었다.
감기 몸살이겠거니 삼일을 죽게 아프고 월요일 오전 병원 가려고 집을 나섰다.
아는 병원 가기도 힘들어 가까운 내과로 갔다.
과로로 신우염이 왔다고 소견서 써줄 테니 큰 병원 가서 일주일 누워 있으라 했다.
작은 집 근처 의료원으로 가는데 어찌나 춥고 떨리던지 ,
동생이 차안에 있던 양단 이불보자기를 가져와 촌스러운걸 덮어쓰고 병원을 누볐다.
보호자가 없어도 되는 간호병동에 입원 했다.
91.세 신경외과 환자, 83세 장출혈 환자, 71세 천식환자 65세 당뇨환자가 있는 다인실이었다.
그날 밤부터 잠을 못 잤다.
옆 침상의 천식환자 기관지 확장기 돌리는 소리, 산소호흡기 소리, 여장부 당뇨환자가 큰 대자로 누워 코고는소리
다음 날 아침에 장출혈 할머니가 어제밤에 6.25 터진 줄 알았다 해서 한 바탕 웃었다.
" 엄-마 ! 나왔어. 담당 의사야. 밤에 잘 잤어? 만세 불러 봐. 다리 들어봐. 옳지, 잘 한다."
신경외과 과장은 할머니 환자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회진 끝나고 할머니를 꼭 안아 주고 간다. 바지는 노랑 ,오렌지 비비드 컬러로 갈아입고 온다.
91세 할머니는 간현 00식당 친정 어머니.
입원하기 전까지 밥해드시고 밭메고 잔디 깎고 살림을 다하셨단다.
천성이 부지런헤서 가만 누워계시질 않는다.
응급벨을 눌러 간호사 도움을 받으시라 해도 혼자 움직여서 환자들이 화장실 출입을 돋는다.
"아들 왔구나! 갑자기 할머니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웃음소리가 났다.
말레이시아로 골프치러 간 아들을 눈빠지게 기다렸다 했다.
간호사가 아들이 온 김에 일반 병실로 옮기시라 했다.
한량 아들이 언성을 높혔다.
일반병실로 가면 와이프가 붙어있아야 하는데(옷장사를 한다고) 하루 천만원이 손해가 난다는 것이다.
"입원할 때도 니들이 다인실 없다고 해서 내가 황원장한테 전화해서 들어왔어. 그따위로 하면 성지병원으로 옮기는 수가 있어!"
구경하자니 열불이 난다.
한량아들 과거사를 할머니한테 들어 알고 있는데 어디서 갑질인가 싶어 간호사를 거들었다.
16살에 정신대소집 피해 충청도서 시집 온 할머니는 밭뙈기하나 없는 집 살림을 일구셨단다.
아들이 사는 서울집에 가보니 하꼬방에 다름없어 몸만 내려 오라하고 아파트며 가구까지 장만 해주셨단다.
밭 2780평 팔아서.
그 뒤로 사업 미천으로 논밭이 남의 손에 넘어갔단다.
집과 밭은 기업도시로 수용 되면서 토지 보상 받았는데 노빌리티 타워 아파트를 사주고 땅을 조금 사놓으셨단다.
"할머니 맏 딸과 막내 딸은 뭘 주셨어요?
"출가외인인데 뭘 줘?"
"할머니 여태 막내 딸 집에 사시잖아요.?"(막내 딸은 41에 혼자 되어서 식당일로 자식 키우느라 암 수술을 두번 했단다)
"우리 아들이 높은 사람들하고 골프를 치는데 돈 벌 일이 생겼데, 그런데 땅이 안 팔려........."
아이고 맙소사!
자기 어머니 손가락 발가락을 보면 특실로 모셔도 부족하다 싶을 텐데.
장출혈 할머니는 56에 혼자 되어 6남매를 거두셨다.
작년에 병원에서 미끄러져서 발목에 쇠막대를 두 대나 박았다고 하신다.
혈관이 망가져 혈관주사도 맞기 어려운 상황.
이 집 아들내외는 병실에 들어올 때 인사도 없고 어머니와 말도 안 섞는다.
며느리는 빽을 어깨에 매고 팔짱을 낀 채 멀찌기 떨어져 있다가 소리 소문없이 사라졌다.
병실 사람들이 강 건너 불구경 하고 갔다 수근댔다.
공열이 수차례 오르내리고 항생제가 안 맞아 속이 메스꺼웠다. 죽으로 연명 .
며칠을 씼지 못해 끕끕했다. 이럴 때 여자 형제 없는게 아쉽다.
남동생한테 머리 좀 감겨달라했다. 샤워는 사촌 올케 손을 빌릴까 했더니 영신엄마도 과로로 병이 났단다.
서울에 있는 애들한테 알릴 수도 없고 (입원수속할 때 아들하고 톡을 했는데 아프단 말을 안 했다)
나는 시어머니 친정 부모님 남편 병수발로 보호자 침대서 새우잠을 많이 잤다.
그 고생은 아이들한테 안 시키겠다고 작정을 했다.
다행히 야간근무하는 네팔 간호사 도움으로 샤워도 했다.
나는 오후 회진 끝나고 길건너 사촌 언니 조카가 하는 한의원으로 갔다.
단전을 다 덮을 정도로 큰 왕뜸을 45분이나 쐰다. 저녁 식사 시간 전에 자리로 복귀.
"엄마 나야. 빤스장사"
너스레를 떨며 병실로 들어 온 여자는 당이 올라 뭘 먹어야한다며 장출혈 할머니가 남긴 점심을 싹 비웠다.
'인생 별 거 있나. 속상하면 찐하게 한 잔 꺾고 (입으로 소주병 따는 소리 )
노래방 가서 춤추고 노래부르고 ( 강남 스타일 춤을 춘다) 퍼저자면 돼지.
나처럼 인생 즐겁게 살지 속으로 끙끙 앓으면 병 생겨 "
천식 아줌마한테 훈계도 하고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돼
아모르 파티를 부르며 할머니들을 들었다 놓더니 빤스 4만원어치 팔고갔다.
남편 병간호로 못 온다던 간현 할머니 큰 딸이 왔다.
"우리 딸은 돈 벌어 본 적이 없어. 만날 그림 그려 전시회 하고 외국 여행만 다녀."
교양있는 그녀가 조용조용 어머니를 다독이고 갔다.
다음날 아침 간현 할머니가 손으로 바닥을 짚고 침대에서 내려 왔다 . 엉금엉금 기어가는 걸 당뇨 아줌마가 체포.
대접으로 하나 되게 수면제를 사모았다가 털어넣었다는 당뇨 아줌마는
내가 죽도 힘겹게 먹는 걸 보고 위세척 후에 체하는 법이 없다고 위세척을 해보라고 농담을 했다.
사교적이고 배려 잘 하는 그녀가 우울증 환자였다는게 믿어지지 않았다.
소란스런 병실을 나와 어린이 도서실에서 책 읽기
당뇨아줌마 퇴원하고 58세 평창댁이 들어왔는데 목디스트 착추 디스크 수술에 다리에 보정기까지 찻다.
그녀가 톡으로 사진보내는 걸 가르쳐 달라고 했다.
글자를 몰라 한글학교에 다니다 왔다기에 그림책을 빌려다 주었다.
월요일 퇴원이 토요일로 당겨졌다.
저녁 먹고 바로 병실을 나와 산책을 하다가 미용실 발견.
긴머리를 단발 보브 스타일로 잘랐다.
평창 댁에게 이것 저것 가르치다 바느질 수업까지.
슬픔이 슬픔을 치유하다
간호병동 침대에 소설책들이 드러누웠다.
병자랑을 하다 살아온 세월을 무용담처럼 쏱아놓는다.
내 손톱밑의 가시가 더 아프다지만
때로는 남의 슬픔이 내 슬픔을 치유한다
첫댓글 이젠 아프지마세요 ~ 걱정하다가 좀 웃다가 ... 돌아갑니다 ^^
아, 인생이란 무엇인가! 한편의 드라마를 봅니다.
내 지인은 요양병원 12년 운영하면서 보았던 것, 들었던 것을
시로 쓴 시집(바람의 순례)을 작년에 발간했어요.
창작지원금 5백만원을 받았지요.
위의 글을 보니 자식들이 모두 대동소이, 참 슬픈 일입니다.
생생한 병상일기
축은하다
어푸더가
때로는 웃음발사를 하게하는 현장을 봅니다
제 지인 중에 문병갔다가 환자의 알생을 듣고 와서 자기 삶처럼 글을 써서 큰 상을 받았다는 소리를 자랑스럽게 해서
그건 남의 인생을 훔친 거 아녀요?
그로부터 나는 그녀와 말을 섞지 않았다
간격유지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