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산 언덕에 단양 월촌우씨 세거지라는 돌 표지석
월곡역사공원 (月谷歷史公園)
낙동서원 (洛東書院) 월곡역사박물관.
위치 :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880,
대구광역시 달서구 송현로7길 32 (상인동).
낙동서원 (洛東書院)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있는 단양우씨 의병장 우배선 등 5분의
위패을 모신 서원으로 처음에는 덕동 서원(德洞書院)이라 하였으며,
대원군 때에 철폐되었다가 1965년에 다시 건립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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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정문
향양당에서 밖으로 나오는 협문(좁은문)이다
숙청문
서원 내의 북동편의 계현사당으로 들어가는 내 삼문인 숙청문
계현사 전경
다섯 현인 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계현사
정문인 진덕문
월곡역사박물관은
임진왜란 때 24세의 백면선생으로 의병을 일으켜 대구 성주지방 제일의
의병부대로 많은 전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 1등에 녹훈된 월곡 우배선 선생의 업
적을 기리기 위해 우씨 종중에서 세워 2002년 5월 개관하였다.
월곡역사박물관에는
단양 우씨 월촌 종중 소장품, 각종 생활용품과 농기구 등을 전시하고 있는데
1층 전시실 농경시대생활관에는 우씨 문중에서 수집한 500여 점의 각종 생활용품과
농기구들이 전시되어 있고 2층 전시실은 월곡공자료실과 역대선조자료실, 장서실,
현대자료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월곡공자료실에는 우배선의 유품인 <화원우배선의병진군공책 및
관련자료(보물 제1334호)> 등과한 선조의 교지 홍패 등
유품 4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고합니다
월곡 우배선 장군상
우배선(1592∼1620)은 성주 화원현 월촌리에서 출생,
조선중기의 의병장·문신으로 1592년 왜구의 침입 소식을 듣고 의병을 일으켜
쌍산역 달성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습니다.
공원 안내소및 문화 해설사의 집
공원 안의 빗돌은 , 의병장월곡우배선선생창의유적비,
월촌마을 연혁비, 월곡우배선태지비,
순국지사월해우병기추모비’등이 더 있다.
성균관 부관장 공적비
한국독립운동파리장서비
장지산
소나무가 많은 작은 장지산에는 월곡 선생이 타고 다니던 말의 무
덤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월곡 역사 공원
고층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공원엔 노송이 몇 그루 남아서 오랜 마을이 있었음을
짐작케 할뿐, 도심의 큰 공원을 방불케 하는데,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정자와 사당,
서원, 유적비, 공적비 등이 다양하게 들어서 있다.
대나무숲길
열락당 종중회관
둴곡정사
월곡 마을
첨백당(瞻栢堂)
대구 동구평광동(坪廣洞)에
집성촌을 이루어 사는 세거조(世居祖)는 우익신(禹翊臣)이라는 분인데,
이 동리에는 문화재 건물로 첨백당(瞻栢堂) 평광동(坪廣洞)에 있는
조선시대의 사묘(祠廟) 재실로 1984년 7월 25일
대구광역시문화재자료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역동서원 (易東書院)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조선전기 우탁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1570년(선조 3)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우탁(禹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84년(숙종 10)에 ‘역동(易東)’이라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69년 복원하였다.
탄로가(嘆老歌)인 시조 2수와 몇 편의 시가 전하고 있다.
『한 손에 가시를 들고』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春山(춘산)에 눈 녹인 바람』
춘산에 눈 녹인 바람 건 듯 불고 간데없다
적은덧 빌어다가 머리 위에 불리고져
귀 밑에 해묵은 서리를 녹여 볼가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