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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문학통사|정연휘 편저|740쪽|사전식|하드카바|칼라화보166쪽|본문하이크림지|1,000부|
수록문인;생존57명,작고10명=67명|값 150,000원|삼척문학통사발간위 · 도서출판海歌 2011.12.15.刊
『三陟文學通史』
정연휘 鄭然輝 Jung youn Hwi
근영,집앞에서,촬영 김도현 박사
1. 약력
ㆍ44.7.25. 삼척시 노곡면 여삼리 93에서 부鄭錫和 모金間爛 사이 3남 2녀,셋째로 출생
ㆍ52~ 58 삼척노곡초등학교 입학, 졸업. 편도8km×2를 걸어서 6년 동안 다녔다.
ㆍ58~ 61 삼척시 남양동 276으로 이사, 삼척중학교 입학, 졸업 3학년때 4.19 맞음
ㆍ61~ 64 삼척공업고등학교 응용학과 입학, 졸업. 1학년때 5.16겪음
ㆍ64~ 66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입학, 졸업. 재학 때 김동리, 서정주, 박목월,
김구용,손소희 선생에 공부
ㆍ64.4. 1. 김익하, 최홍걸, 이종한 등과 ‘불모지문학회’ 인생 처음 동인 활동
ㆍ66.1.10. 삼척 처음 ‘제1회불모지문학의 밤’ 시낭송회 개최
ㆍ68.4.21~27. 삼척 처음 ‘김익하 정연휘 시화전’ 개최, 태백다방,송정 청파다방
ㆍ69. 6. 24. 삼척문학회, 현 두타문학회 창립 주도
ㆍ70 .4. 26.『三陟詩壇』현『頭陀文學』 창간 주간
ㆍ75.10.12. 康福順과 결혼
ㆍ77. 5. 8. 첫째 惠潤. 80.10.16. 둘째 娜美. 83.5.28. 셋째 日敎 출생
ㆍ78.7.18.~2004.6.30. 관동자동차운전전문학원 교무과장 입사,學監으로 정년퇴임
ㆍ84.10.20. ‘제1회동안이승휴전국학생백일장’ 대회창출, 2011년 28회째
ㆍ88.6. 24. ‘제2회 삼척시문화상’ 예술부문 수상
ㆍ88. 7. 1. 서정주 발행 月刊『文學精神』誌에 김윤성 시인 추천 등단
ㆍ88.10.22. 김일기,박재문 교수, 홍태의, 김규영 한학자, 김명하 사장, 박종화 시인,김명숙
서예가와 ‘三陟鄕土文化硏究會’ 창립.삼척사서 집대성『척주집陟州集』등 간행
ㆍ90.10. 1.『悉直文化』실직문화 창간 주간
ㆍ90.12. 1. 삼척문화원 이사에서 부원장 취임
ㆍ91.12.30. ‘삼척예총’ 이 있기전, 삼척문화예술단체협의회 초대회장
ㆍ92. 2. 29. 1시집『해문밖에서』혜화당 간행
ㆍ94. 1 . 1.『삼척시지三陟市誌』집필위원, 5.10. 삼척시국제화추진위원
ㆍ95. 9. 23. 三陟藝總(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삼척지부) 초대회장
ㆍ95. 10.23. ‘제1회삼척종합예술제’ 창출
ㆍ95. 11.1. 2시집『솔숲에는 바다가』혜화당 간행
ㆍ98. 7 .7. ‘도서출판海歌’ 설립 발행인
ㆍ00. 7. 31.삼척문인협회 4대회장 취임
ㆍ01.12. 1. 3시집『눈속에 새 한 마리』도서출판海歌 간행
ㆍ01.12.31. ‘제11회 관동문학상’ 본상 수상
ㆍ02.12.23. ‘2002 강원예술상’ 수상
ㆍ03. 1.10. 삼척문학통사발간위원장, 동안이승휴사상선양회 이사
ㆍ11.12.15. 정연휘 편저 삼척문학사전 『三陟文學通史』간행,
ㆍ11. 이후.『4시집『바람이 불어오는 곳』시선집『정신의 길따라』 역사문
화기행『詩보다짧은 이야기』시인의 발걸음『길따라 자연따라』 예간
2. 작품
묵시록ㆍ1 외9편
― 겨울 꽃밭에는
겨울 꽃밭에는
마음 아파 입다문 꽃들이
어둠처럼 수묵 빛으로 말라
바람이 불 때마다
거부의 손짓을 보낸다.
꽃은 떠나가고
꽃핀 자리에 꽃의 영혼이 매달려
묵시의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겨울 꽃밭에는
어둡고 단단한 뿌리에
핏줄같이 따뜻한 물이 살아서
한 시대 저리고 아픈 엄동을 견딘다.
오늘은 내 삶의 빈 자리
아주 조용하고 낮은 자세로
발 시린 아침이
겨울 꽃밭에 내린다.
산간수록
― 물 밑 근대사를 만남이다
청산에 들면, 청산 골짜기
개울물 밑에 피난 와 살아가는
옹기종기 모여 입 다물고 살아가는
근세사를 만남이다
맑은 산간수에 얼굴 담그면
물 밑 순백의 한 권 책을 만나고
순백의 책장을 넘기면
백 년 전후 세상 안팎
활자화 못한 숨은 역사가 보이나니
참혹산 근세사의 정곡을 만남이다
물 밑 근세사를 깔고
가부좌한 산간수 맑은 얼굴
돌돌돌 청아한 웃음소리 이면裏面
한정 없는 곡소리 들림이다
시린 가슴으로 더 시리게 젖어오는
내 심혼에 녹아드는
백 년 전후 세상 안팎 근세사는
손 흔들어 보이고 말문을 열음이다
- 역사는 바로 잡아 자리 매김
무언으로 오는 무언의 저항
청산에 들면 청산 골짜기
개울물 물 밑에 피난 와 살아가는
참혹한 근세사를 만남이다
산간수 맑은 얼굴 이면을 읽음이다
마이산, 북소리
전라全裸의 암수 마이산이다
얇디 얇은 운무雲霧옷을 어깨에 걸치고
수줍은 미소로 맞는다
탑사塔寺에서 원시시대를 옆에 끼고
마이산 샅길 천황문을 오른다
정상에 서니 둥둥둥
뼛속까지 파고드는 천고天鼓북소리
지천을 이은 가냘픈 허리의 키 큰 나무
음각 암벽에 양각으로 키 자란
이파리 실핏줄이 북소리에 하르르 떨린다
내 온 몸 파장으로 물어오는 하늘 목소리
너, 흔들리며 살아 온 이승 삶은 무엇이뇨
너, 별을 보는 마음으로 사느뇨
너, 흔들림을 분해하라, 둥둥둥 천고북소리
원시시대를 옆에 끼고, 수줍음 타는
암수 마이산 샅길 천황문을 내린다
옷을 적시는 여기는 이승인가
천고정天鼓亭에서 천고를 친다
등굽지 않은 스님 말씀따라
세가지 약속, 세가지 꿈, 세가지 번뇌를 친다
둥둥둥, 내 자신이 주인이다
지천을 울리는 마이산 천고 북소리
감나무가 있는 텃밭에는ㆍ2
― 땀에 젖은 아버지 어머니
밀레의 만종晩鐘같은
감나무가 있는 텃밭에는
내 열일곱 살 안팎, 이랑마다
학창시절이 살아 있는
아버지 어머니 노동의 수고로움이
은혜로 푸르게 출렁이는 곳이다.
텃밭 이랑 이랑마다 학자금이
보리, 조, 콩, 팥, 철따라
참깨, 분추, 무우, 배추로 영글고,
땀에 젖은 어머니 허리 굽혀
거기 철따라 밭을 매시고,
아버지 땀 닦을 틈 없이
거기 철따라 거름을 주시고,
쉰 살 안팎 그 시절 아버지 나이 되어도
감나무가 있는 텃밭
아버지 어머니 등 뒤에는
열일곱 살 안팎 까까머리 검은 교복을 입고
푸른 하늘과 녹색의 텃밭을
번갈아 보는 내가 거기 서 있다.
죽서루에 오르면
― 오십천ㆍ2
낭낭히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죽서루에 오르면
아주 먼 옛날, 민족자존의 소리
샘물소리 솔바람소리에 섞이어
고려 때의 소리가 들린다.
구름에 허리 가린
두타산頭陀山 천은사天恩寺로부터
오십천五十川 강줄기 따라 묻어 오는
낭낭한 글 읽는 소리
뼈속까지 깨끗한 선비
이승휴李承休 선생이
제왕운기帝王韻紀 글 읽는 소리.
아주 먼 옛날, 자존의 소리.
죽서루에 오르면
고려 때의 소리가 들린다.
고봉암 가는 길ㆍ2
― 金源右 <눈꽃산의 은자> 수필 속 산행
산문에 드니 산이 맘 속에 걸어 들어온다
솔바람 숲향기 별천지 원시림이
내 안에서 깔깔거리며 웃는다.
산은 내 안에 있고 산에도 있다
원만한 산길 <눈꽃산의 은자>
수필 속 산을 오른다.
청연암 선방 덧문은 열리지 않고
‘목소리가 들리어 얼른 나왔네요
어머 그 새 눈이 많이 내렸네요.’
해맑은 동안의 비구니 스님 목소리는
선방 앞 대숲에 묻어있다 무언으로 들리고
수정색 물방울 흰 드레스를 입은
크고 작은 눈꽃나무 휘늘어진 터널
수필 속 겨울 풍경은
신록으로 옷갈아 입은 나무 줄기에 잠들고
산빛 하늘빛 건강한 웃음소리
가파른 길 땀흘려 오른 산행
산마루 건너쪽 뭉긋한 산중턱
피안인가 차안인가 고봉암은 거기 있고,
그 아래턱 늙은 돌배나무가 있는 샘터 가에
독가촌 검버섯 돋은 너와집이 거기 있고
노란 옥수수 막걸리와 갓김치
무욕의 노인장을 만날 수 있으랴
참선삼매 젊은 수좌를 만날 수 있으랴
솔바람 숲향기 별천지 원시림이
내안에서 깔깔거리며 웃는데
앞 바다 아득한 수평선 너머
선명히 보이는 울릉도 산봉우리.
삼척사투리ㆍ1
― 오십천 10. 봉황산이 하는 말씀 1
우타하와1), 야이야 우타했으면 좋겠소, 가심알이2) 3기래와, 오십천이 심들 때 대가빠리3) 싸매고 정신 바짝 채리고 심바꾸4) 삽시데이, 저 아꾸운 물을 막굴러 내싸마5) 죽을 지경이 잖소. 이 땅에서 수억만 년을 동거한 내싸마 스물스물 푸른 청춘 아이와, 오십천은 내 몸 씨서 주고 해풍은 내몸 따까6) 주었는데, 인제 오십천은 가심이 마이7) 아프고, 고뱅이가 시궁거려서8) 오래 걷지 못하는 거, 야이야 니 알제. 살멘사 눈깔이 시구와서9) 어대 보겠두와10) 얼르11) 어른들이 정신 좀 채리고 단도리해야12) 좋겠소, 오십천에 문제가 있사도 문청13) 있우와. 가마 있지 말고 인제 정데이14) 잘 지캐났다가 냉중에15) 물러 줍시데이.
.........................................................
1) 어떻게 하나 2) 가슴이 아프다 3) 머리
4) 힘껏 5) 나는 6) 닦다 7) 많이
8) 무릎이 아파서 9) 살면서 눈알이 아파서
10) 보겠어요 11) 빨리 12) 챙겨야지
13) 많이 14) 똑바로 15) 나중에
아내
― 강복순 님
들뜬 목소리로 당신을 불러
앞치마에 젖은 마음 닦으며
환한 미소로 다가오는
나의 본향
실내 가득 은은한 난향蘭香
창밖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겨울 난향에 설레이는 가슴
맞잡은 따슨 손, 손금을 타고
내 가슴으로 전류처럼 오는 당신의 사랑
항상 내 곁에 있는 당신의 고운 눈망울
내 눈目은 자주 젖는다.
여름 바다에서
― 金益河 詞白께
나이쯤 잊은 채 파도타기를 한다
맹방리1) 바다에서
키를 넘는 파도를 뛰어 넘으며
정신의 싱싱한 젊음으로
반백의 친구와 파도타기를 한다
동심이 여름을 먹었다
살갗의 세포를 뚫고
혈관에 정신에 짜릿짜릿
차갑게 파고드는 싱그러운 우정.
파도타기를 한다
겹겹이 찰랑찰랑
더러 감당키 어렵게
밀려왔던 생애,
나이 쯤 잊은 채
싱싱한 정신의 젊음으로
파도머리를 뛰어 넘으며
여름 바다에서 파도등을 탄다
................................................
1) 삼척시 근덕면 맹방리 맹방해수욕장
해일주의보
바다는 일어서서 산행을 한다
잠든 야밤에 도적같이
해변 상가 지붕 위를 걸어서
두타산頭陀山 산정에 따개비 붙이려
바다는 산행을 한다
바다를 텃밭으로 살아가는
추암 마실 할아버지 말씀이
윙윙윙 고막을 울린다
-옛날 아주 옛날 조수가 일어나
두타산에 바다 따개비가 붙었다
밤비 내리는 날 소리 없이
적막으로, 해안 도시의 고층 건물을 밟고
부풀어 부풀어 바다는 산행을 한다
강진으로 일본 열도가 주저앉던 날
동해안 해일주의보 내리던 날
옛날 아주 옛날 두타산에
바다 따개비 붙었다는
전설이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산행을 하고 있다
3. 작품해설
채수영蔡洙永 (시인´문학평론가)
살아있는 정서의 편린들
Ⅰ. 시와 감수성
예술의 속성은 인간의 정서를 자유상태로 해방시키는 일면과, 긴장의 세계로 묶어버리는 모순된 성질을 갖는다. 시 또한 이런 패턴을 유지하면서 독특한 위상을 간직한다. 인간의 생활은 점차 현대화라는 조직의 틀 속에서 감수성의 제한, 즉 삭막한 과학만을 강요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와 비례하여 인간의 정서는 일정한 틀속을 벗어나려는 본능적 자유의 속성을 가질 때, 달리 위안의 방도가 없기 때문에 음악과 미술 혹은 문학이라는 예술세계로의 문을 두드린다. 그렇더라도 예술세계는 인간의 감수성을 아무런 구속없이 풀어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긴장의 틀?이라는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게 구속해 버리는 경향을 갖는다. 시에 있어서 ?긴장의 틀?은 감수성의 이완이 아니라 감수성의 구속 즉 미감의 질서 속에서 편한 감정, 아늑한 정서라는 위안을 받을 수 있을만큼 행복을 제공하는 소임이 있다. 좋은 시 한편은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고, 용기와 신념을 배가하는 신비한 힘을 주기도 한다. 여기에 예술의 위대성은 곧 인간을 깨우치는 교훈적 능력까지도 공유한다는 의미가 된다. 시인은 인간 정서를 해방시키는 존재이다. 현대문명의 특징인 논리와 과학의 이성으로부터 편함을 제공해 주는 것은 詩 이외에서 찾을 수 없다. 여기에 시인의 존재는 귀중한 의미를 함축하게 된다. 그가 쓴 몇 편의 시가 설사 주목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시인은 그의 전 영혼을 투척하여 미감을 확보하려는 성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에 귀중한 존재로 남는다. 한사람의 시인앞에 경건한 의미가 덧붙여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Ⅱ. 정서의 편린들
1) 시인이라는 자긍 시인은 세상의 악착함을 살고 견디어 내기에 너무 여린 사람들이다. 여기엔 시인이 갖는 공통적 조건 - 즉 아름다움과 깨끗함, 그리고 현실을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만이 시와 대면할 수 있다는 자격조건 때문이다. 아름다움과 깨끗함과 순수함과 정의를 앞세워 현실을 안락하게 살아갈 방도가 없지만, 오히려 낙오자처럼 신음하고, 괴로워하면서 혼탁한 현실을 정화하는 임무를 가질 때, 시인의 존재는 의미를 갖게 된다. 들풀처럼 살아 온 세상, 시력 삼십여 년 살아온 날의 내 정신의 피어리드이다. 마음이 아플 때마다 신앙 같은 시정신으로 맑은 영혼을 일으켜 세워, 상처난 가슴을 시어로 꿰매고 시의 약으로 아픈 영혼을 치유하였다. ― ?책머리에? ‘들풀처럼 살아온’에서 시인의 삶의 모습이 보이고, 그런 와중에서 詩라는 맑은 물을 퍼올리기 위해 30여년의 신산한 고통의 삶을 견디어 왔다는 말이다. 결국 들풀의 이미지와 ‘상처난 가슴’의 비유에서 시로써 시인의 생활과 영혼을 떠받치는 기둥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했다는 고백이다. 이런 현상을 그의 작품으로 점검한다.
언어의 베틀에서
2) 산과 바다 인간이 존재하고 있는 공간은 산과 바다라는 두 개의 구분으로 마련된 어느 곳에 살고 있을 뿐이다. 이른바 평지는 바다로 가는 시초의 길일 수 있으며, 또 산으로 가는 최초의 길이 될 수도 있다. 물과 흙이라는 두가지 성분을 주원료로 하여 삶의 근거지를 마련하고 존재의 양태를 유지해 간다. 정연휘의 시엔 두가지 이질성이 혼합하여 근원을 형성하는 정신질감을 갖고 있다.
내 얼굴 내 표정이다
정연휘는 산으로부터 그 몸과 정신의 뿌리를 마련한다. 내 얼굴이 곧 산의 얼굴이고, 그 얼굴의 변화인 표정이 산의 표정과 같다. 닮으려는 同化의 생각은 곧 산과 인간이 하나로 조화하려는 發心으로부터 가능하다. ?我의 절대경은 無心의 마음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다. 이런 일체一體의 자연관은 동양사상의 진수를 이루는 부분으로 전통적 사상의 맥락과 함께 한다. 고?금을 통해 자연과 인간을 변함없는 모습으로 관찰한 시인의 생각은 살아있는 산의 모습에서 시인의 삶을 건져올리는 여유가 있다. 건강한 산의 변화가 곧 시인의 넉넉한 마음으로 투영되면서 산의 의미는 인간에게 증폭되는 의미를 대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혼탁한 세상 깔고 앉아
어떤 특정한 대상에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선 대상과 내가 합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무심이 되었을 때 ?있음?을 깨달을 수 있고, 의미를 만날 수 있게 된다.
매일 저녁 애기를 잉태하고 늘 푸르디 푸른 영혼
늘 푸른 청춘이다.
<海門밖에서?2>엔 창조가 마련되었고, <海門밖에서?6>은 푸른 청춘의 모습으로 확대된다. 바다와 산은 변함이 없음으로 인간에게 커다란 교훈을 준다. 다만 변화를 의식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요 인간의 시선의 차이일 뿐 산과 바다는 그 자체로 항상 같은 모습을 갖는다. 지혜로운 사람이 좋아하는 바다는 푸름 속에 변화의 의미가 들어있고, 山에선 변화의 다양성이 계절따라 나타난다. 변화에 반응하는 마음은 인간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교훈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항상 넉넉한 산과 바다에서 위안을 갖는다. 바다에서 창조를 만나고, 또 청춘의 푸름을 바라보는 시인의 뇌리속엔 그만큼 넉넉한 자연을 시인의 정신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세계의 만남을 이룩하고 있다. 시인에게 발명이란 없다. 오로지 있었던 자연 속에서 호흡하고 살아가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나가는 발아픈 사람이다. 정연휘의 소망하고 바라는 산과 바다에서 생명의 원초적 중심을 형성하여 시인의 정신줄기를 뿌리로 간직하고 하늘을 향하여 노래하는 양상이다.
3) 사랑과 이별 시인에게 사랑이란 원초적이다. 비단 남녀의 사랑만이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애정의 눈은 새롭게 살아나는 생명체와의 만남이기 때문에 신선하고 확연한 감동을 만나게 한다. 또한 사랑은 새롭게 살아나는 깨달음이라는 데서 가장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여기에 사랑의 힘과 에너지는 보다 큰 의미의 광장을 마련하게 된다.
내가 너를 부르므로 투명한 마음을 읽으며 너는 너를 허물고
사랑은 A와 B가 결합하는데 AB이거나 BA가 아니라 전혀 다른 C로 변모되는데서 서로 다른 속성이 하나로 결합하는 화학반응이다. 다시 말해서 유사한 것으로 결합하는 속성이 아니라 전혀 다른 것을 변모하는 이질적 성질을 가질 때 신선하고 깨끗한 사랑이 된다. ‘내’와 ‘너’로부터 서로를 허물 수 있을 때 투명한 마음을 조건으로 새로운 의미는 잉태될 수 있다. 그러나 정 시인의 시엔 천의무봉의 매끈함보다는 오히려 투박한 사랑이라는데서 아쉬움도 남는다. 어떻든 빈 과 빈 것끼리의 만남에서 충만된 것을 바라는 양상이 정연휘의 사랑에 대한 생각으로 보인다.
오늘은 빈 바다이다
어제의 바다는 오늘도 바다다. 그러나 시인의 의식속에 바다는 눈으로의 바다가 아니다. 먼 길 떠나버린 바다는 알 수 없는 여인의 체취이거나 미지의 사물일 것이지만, ‘피멍’이라는 아픔과 더불어 흐름에 살리워 부재의 공간을 만들었다. 없다는 것에 대한 아픔은 새로운 잉태를 예비하는 고통일 뿐이다. 창조란 껍질이 찢어져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연휘의 가슴에 박힌 바다는 항상 생명의 숨소리가 되어 다양한 음성으로 살아나기 때문에 즐거움과 신음, 만남과 이별이 혼재하고 있는 그런 공간이다.
4) 잡초와 민중 신라 鄕歌중에 <獻花歌>와 <海歌詞>엔 水路부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남편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길에 절벽에 핀 철쭉꽃을 꺽어달라는 수로부인의 <헌화가>와 동해용에게 끌려갔다 돌아온 <해가사>는 꽃과 용이 공통점이라는 데서 신라사회를 살필 수 있는 좋은 설화이다. 꽃은 용과 같은 어원이다. 철쭉꽃은 색채가 붉은 기미<Redish)색으로 임금(용)이 입었던 자주색 옷과 같은 범주에 든다. 즉 절벽위의 철쭉꽃은 곧 높은 신분의 용(권력자)으로 수로부인과의 사랑을 알게 하는 내용으로 신라사회의 성개방 풍토를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신라사회가 성개방의 사회였다는 것은 여러 원인이 있지만, 영토확장정책(나는 삼국통일이 아니라 영토확장으로 본다. 신라의 삼국통일이란 말은 민족사의 커다란 모순이다)즉 인구다산정책의 지향 사회였다.
철쭉꽃이 웃고 있었다.
요석공주와 원효대사와의 사랑, 도화녀와 왕과의 사랑, 선덕여왕의 성개방 유희, 김유신의 여동생과 김춘추와의 사랑 등등은 신라사회가 상층에서 평민에 이르기까기 성개방 풍조를 이루었다. 이는 삼국중 가장 작은 인구를 가진 바, 백제와 고구려와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의 유일한 대안은 많은 인구를 가짐으로 싸움의 계책을 마련하는 길 이외에 다른 현실적인 생존의 방도가 없었다. 여기에 성개방에 따른 인구다산정책의 근거가 있고, 이도 부족하여 당나라까지 끌여들여(외세를 끌어들인 사대의 출발이다) 백제를 망하게 하고, 고구려를 망하게 함으로 오늘의 우리 영토를 축소한 결과를 어떻게 민족의 통일이라 말할 수 있는가? 이로하여 백제의 문화와 발해국의 역사를 모르는 오늘의 사정은 신라의 통일이라는 말과 전혀 상관이 없는가? 그대답은 아니다라는 데 있다. <헌화가>와 <해가사>는 그런 신라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단서의 노래가 된다.
일행이 임해정에서 쉬는
<해가사>의 내용이다. 계책없는 지도자 순정공이 위기에 처했을 때 백성들이 모여들어 막대로 땅을 치며 노래를 부르니 해룡(권력자)이 수로부인을 내어 놓았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하고 있다.
겨울 들판에는 맑은 정신의 마른 잡초의 영혼이
<묵시록?2>는 설정식의 <잡초>에 가깝다. 그러나 정연휘의 잡초속엔 저리고 아픈 겨울의 고통 속에서 꿈을 키우는 인내가 깃들어 있다. 더불어 잡초와 잡초의 엉킴에서 서로의 체온을 나누노라면 사랑이라는 구원의 의미를 만날 수 있게 될 때, 커다란 희망과 꿈을 만나게 된다. 겨울 공간에서 꿈을 키우는 것은 잡초(민중)들의 삶이다. ‘짓밟고 짓뭉개일수록 / 빳빳이 고개 치켜들고 / 흔들리며 일어서는 마른 들풀들’ <묵시록?3>의 삶이야 말로 가난과 고독, 아픔과 회한의 늪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백성들 승리의 모습일 것이다. 정시인의 詩(시)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 <묵시록>연작시라면, 그에 담겨진 사상의 신선함이자 즐거움의 맥락이다.
Ⅲ. 마무리
시인은 빈 손으로 허공을 휘저으며 장미꽃을 만들어내는 마술사이다. 그러나 그가 땅에 뿌리를 박지 않았다면 그 꽃은 시들어 버린 그림에 불과하다. 현실을 고통과 눈물로 살아가는 사람만이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는 존재 -정연휘는 삶의 충실을 뿌리로 삼고, 산과 바다가 그의 가슴에 담겨진다. 산은 그의 몸을 이루는 중추가 되고, 바다는 그의 육체에 생명의 소리가 되어 푸르게 출렁인다. 그의 시에 사랑과 이별은 없음이라는 부재에서 있음이라는 의미를 만들기 위해 통합된 이미지로 정신의 갈등을 이루면서 새로운 변용을 감행한다. 비록 명징한 이미지의 감동적 결합은 아닐지라도 그의 시는 살아있음의 싱싱함을 추구하는 건강이 있다.
4.교우기
山井 김익하 (작가)
논픽션 詩人 鄭然輝의 序設
1. 그대는 연휘然輝를 아는가.
내가,피부색이 거무데데하고 넙데데하게 큰 얼굴, 또 아무리 화급한 상황이 벌어져도 뛰어다니는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을 만큼, 오직 한쪽 손에 책을 든 채 북극곰처럼 어슬렁거리며 걷는 스타일인 연휘형을 만난지 이제 어언 40년에 가깝다.
‘5월은 약동의 계절이다. 고궁이나 유원지엔 꽃이 활짝 피어 상춘객을 흡수하고, 산으로 들로는 젊은이들이 풀냄새 나는 자연 속에 마음껏 활개를 치며 태양 볕을 쪼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5월의 하늘에는 신이 쓴 글씨와 같은 솜구름들이 편지처럼 떠갈 때, 당신의 파란 말씀은 고독의 샘물이 번지는 연한 젊음의 가슴 위에 새겨집니다.’로 끝을 맺는 수필 ?5월의 대화?는 행간마다 연휘형만이 표출할 수 있는 서정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고, 8월 16일 X시에서 발송한 서간문 ?창문을 열다?에서는 펜팔 하던 익명의 H에게 다음과 같이 하소연하기도 한다.
그 무렵 불모지동인들은 방학 때면 귀향하여 제공하는 연휘형의 문학정보에 때로는 막연한 기대감에 설레기도 했고, 김동리, 서정주, 박목월, 김구용 선생님들의 강의내용을 알려줄 때는 부럽다 못해 야코가 팍 죽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렇게 전해지는 대 선배문인들의 이야기에 우리들은 대리 만족을 하면서 우체국 옆 ‘학사주점’막걸리 집에서 노가리를 구어 놓고 노벨 문학상 수상 축하파티나 하듯 화려하게 막걸리를 마셔대곤 했다.
1967년 9월 21일 내가 군복무를 마치는 계기로 연휘형과 나는, 삼척문학사에서 그를 부르면 나를 연상할 만큼 교류의 전기轉機를 맞게 되었는데, 1976년 내가 서울로 이사할 때까지 10년간은 서로 맨살을 비비며 고운 정, 미운 정 쌓으며 가장 지근거리에서 살아왔다. 존재라는 게 유한한 것과 무한한 것으로 나눈다면 이 10년간 이야기는 무한한 것이어서 해도해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을 만큼 쌓이고 쌓여 있다.
몸 전체로 물비늘 반짝이는
석양빛 속에
얼굴 없는 바다
,
1969년 6월 24일 기 해체된 동예東藝,불모지不毛地,영시零時문학회 회원이 주축으로 삼척문학회가 연휘형이 근무하던 삼척문화원에서 결성되고, 현재 두타문학頭陀文學의 원조인 삼척문학회 창간호인 <삼척시단>이 1970년 4월 26일에 태어났다. 이 산실 복판에 역시 연휘형이 서있었던 것이다.
연휘형의 내무대신은 ‘내 눈目을 자주 적시는 -아내- 제3시집 수록’ 면서도 태백산에서 ‘수줍게 윤엽潤葉을 따주던 순아 -태백산?1- 제1시집 수록’ 인 강복순康福順씨다. 몸집이 아담해 큰 편이 아니지만 강단이 있고 언뜻 유약해 보이나 잘 익은 율무알처럼 야무지게 당차다. 과묵한 성품의 소유자인데 언제나 나에게 말을 걸때면 입을 활짝 벌려 볼우물을 만들고 눈가장자리 가득 소리없는 웃음, 연휘형의 표현으로 ‘지순한 미소 -미인폭포?1 -제3시집 수록’ 부터 먼저 건넨다. 목소리는 부드럽고 울림이 커 감정전달이 명쾌하여 듣는 이에게 편안함을 준다. 또 연휘형이 주관하는 행사에 철저히 뒷바라지를 하고, 한 때 힘든 이딸리앙베이커리를 운영하여 기쁜 일보다 언짢은 일들이 많았을 터인데도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고 늘 흔들림 없이 사람을 맞아준다. 연휘형은 도계읍 심포리에 있는 미인폭포에 놀러 갔다가 태백 황지黃地에서 유람 온 그녀를 보았는데, 보는 순간 웬 선녀인가 싶어 정신이 아뜩했다나. 그 순간부터 위대한 시인이 된 뒤 여자 곁으로 다가가겠다던 굳은 결심을 풍피(화투)처럼 내던지고 시 창작보다 연서작성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나 뭐나. 그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연휘형의 시詩들 가운데 <미인폭포>라 언급된 부분은 모두 자신의 아내에 대한 헌시獻詩라 해도 결코 억지는 아니다.
1982년 12월 연휘형은 두타문학회 정기총회에서 고故 김영준金榮俊 4대 회장의 뒤를 이어 제 5대 두타문학회장에 피임됐다. 또 하나의 삼척문학사에 남을 문학이벤트가 태동할 전기가 마련된 셈이었다. 더군다나 2대회장(김영준 회장)에서 3대 회장(김형화 회장)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말 못할 사정이 많았던 터라 5대 회장의 각오는 남달랐다. 그러나 이미 네 명의 동인(정일남鄭一南, 김익하金益河, 김진광金振光, 권유權瑜)들이 중앙문단에 데뷔했지만 두타문학회는 또 다른 노쇠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빠져나간 회원의 뒤를 이을 참신한 젊은 문학도들이 충원되지 않아 활기를 잃고 상당한 권태기, 또는 피로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두타문학회는 어찌하던 그런 암울한 상황을 타개하여야할 정점에 와있었고, 그 집도執刀의 중책이 회장인 연휘형에게 맡겨져 있었다.
1983년 상경한 연휘형은 쌍용빌딩 18층 라운지에서 그 빌딩 7층에 근무하고 있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오란 주스를 한 모금 마신 연휘형은 안부 끝에다 두타문학회의 작금의 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소위 나도 회원으로 있지만 1976년에 상경하여 서울생활에 허둥대느라 두타문학회 내부 사정에는 까막눈이나 진배없었다. 우리들은 많은 얘기를 했다. 대화의 핵심은 두타문학의 활성화인데 그 방법을 놓고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우리는 두 갈래로 정리했다. 기존 회원들의 문학활동은 시화전, 시낭송회, 회지발간으로도 충분하며 그것의 활성화는 회장단과 회원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가능하다. 그렇다면 <새로운 피, 수혈>인데 재능 있는 신인들을 찾아내기 위해선 백일장을 하여야 한다. 그렇다 그걸 추진하자. 이렇게 해서 삼척문학사에 또 하나의 획이 그어지게 되었다.
2. 그대는 연휘然輝의 시詩를 아는가.
연휘형은 두타문학회가 활성화되고 또 어려운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았던 삼척문화원을 떠나 관동자동차운전전문학원으로 직장을 옮기자 주변은 점차 안정이 되었지만, 오로지 혼자 해결해야할 과제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침체되어 있는 자신의 시작詩作에 대한 뜀박질을 하여야 했던 것이다. 이미 오랫적에 시詩에서 떠나 소설小說쪽으로 작업을 옮긴 내가 보기에도 안타깝다는 생각이 연휘형을 삼척에서 만날 때마다 들었던 게다. 분명 어떤 전기가 필요했다.
겨울 꽃밭에는
꽃은 떠나가고
겨울 꽃밭에는
오늘은 내 삶의 빈자리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올린 선자選者는 이렇게 추천 이유를 밝혔다.
‘정연휘의 고전적 스타일의 작품들은 얼핏보아 안이한 시작 태도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추천하게 된 것은, 정면으로 도전하는 그의 진지한 태도가 오히려 더 호감을 일으켜 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한 행 한 행 ?어보면 고풍스러운데, 언어의 감각은 농밀한 데가 있다’
당선 통보를 받고 소감을 쓸 때의, 연휘형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그의 당선소감을 읽어보면 그 때의 심경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아득한 수평선 같은 시詩의 길이었다. 심해深海의 신비를 건져 올리는 작업은 탐구와 환희 그리고 절망과 미련과 격랑이었다. 빛나는 시, 좋은 시를 쓰고자 하면 할수록 어렵게만 여겨지는 시라는 세계, 주기적으로 몸살을 앓으며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시에의 길을 멈추지 않고 걸어 왔다. 뛰리라, 날으리라. 땀 흘리며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서 뛰고 날으리라. 상처받기 쉬운 여린 마음, 고집 하나로 시라는 믿음 하나로 견디어 온 나의 삶 나의 꿈, 내 분신을 빚는 창조작업에 열중하리라’
늦깎이로 문단에 등단하기 일주일전 연휘형은 ?제2회삼척시문화상? 예술부문상을 수상했다. 제1회는 김영준 선배가 받은 상이기도 한데, 삼척사회에 문화예술부문으로 기여한 연휘형의 헌신에 비하면 오히려 늦은 감이 있었다. 수상하고도 삼척향토문화연구회 창립, 삼척사서三陟史書 ?척주지陟州誌? 발행. ?실직문화? 창간, 등 삼척문화원 이사와 부원장의 직책을 오가며 많은 일을 했기에 상값은 톡톡히 한 셈이다.
1992년 2월 29일 연휘형의 첫 시집詩集이 서울 혜화당에서 상재上梓되었다. 등단한 지 4년째 되는 해였다. ‘金益河님, ‘不毛地’ 同人시절과 ‘頭陀文學’, 한 時代를 함께한 詩의 路程에 감사드립니다.’ 이런 저자 사인을 넣어 우송되어 온 첫 시집 ?해문海門밖에서?에는 74수의 시가 나름대로의 사연을 담고 실려 있었다. 이제 나이 쉰 줄에 매달려 있는데 시집을 펴는 순간 정말 엉뚱하게도 이런 시 한 구절이 먼저 눈앞에 나가와 걸렸다.
귀밑머리 하얀 파도
이 시집을 펼쳐보면 연휘형의 초창기 시와는 많이 달라진 시어와 시를 만나게 된다. 전체가 그런 게 아니라 묵시록?示錄항으로 묶어 놓은 시들이 대체로 그렇다는 얘기다. 특히 눈에 띄는 ‘잡초’ 와 ‘들풀’ 이란 시어다. 이 시어들을 연휘형의 동류同流의 시에서 혼용 사용하여 그 진의는 나로선 잘 알 수 없지만 분명 거느리고 있는 이미지를 달리 한다. 민중서관 편찬 국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지도 않은 들풀은 잘 아시다시피 산야에 자생하는 모든 풀을 지칭하는 어휘이지만, 잡초는 분명 ‘마음이 아리더라도 너무 웃자라서 꽃의 향과 복을 짓누르기 때문에 뽑아내야할 -잡초를 뽑으며- 제1시집 수록’ 풀이고, 저절로 나서 자라는 이 여러 가지 풀은 인간이 경작하거나 재배하는 풀들의 성장을 위하여 뽑혀져할 풀인 것이다. 연휘형의 시를 늘 보아온 독자에게는 낯설기만한 이 시어들 둘 가운데 나의 관심은 당연히 ‘잡초’쪽인 것이다. 왜냐하면 잡초라면 쓰잘데없이 버려져야 하는데 연휘형의 잡초는 모든 고통과 아픔을 거쳐 희망으로 재생하는 잡초기 때문이다.
겨울 들판에는 맑은 정신의
마른 잡초의 영혼이
매운 바람 온 몸으로 불어오는
겨울 들판에는 맑은 정신의
그 잡초에 대해 제1시집의 시 해설을 한 시인 평로가인 채수영은 ‘잡초와 잡초의 엉킴에서 서로의 체온을 나누노라면 사랑이라는 구원의 의미를 만날 수 있게 될 때, 커다란 희망과 꿈을 만나게 된다’ 고 전제한 다음 ‘가난과 고통, 아픔과 희한의 늪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백성들의 승리의 모습일거라’ 분석한 다음 ‘정연휘의 시에 가장 극명성은 잡초사상이라’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어딘가 미흡하기만 하다. 비밀의 문을 열 열쇠를 찾기 위해 제1집 책머리에 실린 연휘형의 고백을 인용해 보자.
‘들풀(잡초)처럼 살아온 세상. 시력詩歷 삼십여 년 살아온 날의 내 정신의 피어리드이다. 마음이 아플 때마다 신앙 같은 시정신으로 맑은 영혼 일으켜 세워, 상처난 가슴을 시어로 꿰매고 시의 약으로 아픈 영혼을 치유하였다.’
그렇다. 아웃사이드에 무명하게 존재하고 있는 잡초, 분명 나름대로 학명學名이 있을 테지만 우주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하다해서 잡초로 통칭될 수 밖에 없는 존재. 더구나 마른 잡초란 이미 생명의 줄을 놓고 소명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거, 그러나 시인 정연휘는 그렇게 마른 잡초에 끈질기게 애정을 보내다 못해 그 잡초에서 이미 떠나간 ‘마른 영혼을 불러모아 / 저희들끼리 몸 비비며’ 몽환적으로 환생하기를 바라는데, 현실적으로 불가한 그 행위가 엉뚱하게도 ‘미진하게 나마 사랑이 남아있는 질긴 뿌리에서’ 탄생하기를 염원한다. 아니 수세적인 자세로 염원하는 게 아니라 ‘내밀히 예리한 꿈의 날을 세워’ 보다 공격적인 자세로 희원希願한다. 그 희망의 끝은 마른 잡초에서 사랑으로 화해한 영혼들이 질긴 뿌리로 환생하여 이룩한 ‘녹색으로 출렁이는 들판’ 에서 다시 태어난 잡초가 잡초로서가 아니라 제 학명을 바로 찾아 나름대로의 의미를 내재하고 생존하는데 닿아 있으리라.
제1집 시집에서 연휘형의 또 하나의 작업은 삼척 인근에 산재해 있는 역사물 내지 민속물에 묻힌 사연들을 끊임없이 찾아내어 우리들 앞에 게시하는 일이다. 「수로부인1,2」「해랑신당」 「꿈에서1~5로 시작하여 제3집에 수록한 「죽서루에 오르면」「서시序詩」「김이사부의 말씀」「독도1」로 이어지는 이 작업의 의미는 무엇인가. 언뜻 보기에는 안이한 소재 선택이랄 수도 있겠으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 여부를 떠나 현대사에 떠밀려 점점 더 피폐해져 오늘의 삼척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소멸해 가는 그것들을 연휘형은 손끝이 아리도록 붙잡고 있는 시정신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주 그것들을 거명하여 삼척사람들에게 반복학습 시킴으로써 역사물 내지 민속물의 수명을 연장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연휘형은 오늘도 ‘수로부인과 바다 바위에 앉아 술을 마시고, 오십천 벼랑 위 죽서루에서 송강과 술을 마신다. -꿈에서?5-제1집 수록’ 연휘형의 제2시집은 1995년 11월 1일에 역시 혜화당에서 혜화당시나무 23번째로 간행되었는데, 71수의 시가 실려있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웠다. 비운 마음의 자리에 시의 꽃을 피우는 작업으로 채운 -제2시집 책머리에’ 작품 가운데 한편의 작품이 유독 눈길을 끈다. 60쪽과 61쪽에 실려있는「해일주의보?」다.
바다는 일어서서 산행을 한다
월간문학 통권 제388호에 실렸던 이 작품은 재경삼척문우회인 삼우회의 합평회에서도 대상에 올랐는데 시인 이성교 선생님은 삼척에서 정연휘만이 쓸 수 있는 대단히 좋은 시라고 평하셨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 작품이 나에게 신선하게 다가온 연유는 연휘형의 전형적인 시의 기법이 아니란 데에 있었다. 사물을 보고 그것을 해석하여 형상화하는데, 연휘형은 지금껏 평이한 문체로 그것을 도입해 왔었다. 그런데 이 시는 완전히 그 틀을 달리했다. 그러기에 독자의 긴장을 요구하며 읽어나가기를 강요한다. 그로서는 대단한 반란이다. 제발 이런 반란을 연휘형의 시에서 자주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뒤에서 무거운 짐을 밀어주는 지인에게
제2시집 50쪽에 -金益河 詞兄에게-란 부제가 붙어있는 ?여름 바다에서?는 역시 월간문학 통권 388호에 실렸던 시로, 연휘형의 특유의 천진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나이를 잊은 채 파도타기를 한다 맹방리 바닷가에서
20년전쯤 여름이면 나는 가솔을 이끌고 서울에서 하척下陟하여 곧장 맹방해수욕장에다 텐트를 치곤 했는데, 그 일을 마치기도 전에 안내방송으로 나를 불러 찾아가 보면 연휘형 내외에 아예 텐트를 가져와 기다리고 있기 예사였다. 직장에 전화 한 통으로 이내 들통이 나버린 게다. 이 시는 그 무렵을 소재로 삼았는데, 이미 언급했듯 연휘형의 천진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연휘형의 천진성은 시 외적인 상황에서 곧잘 드러난다. 때로는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와
연휘형은 최근 또 하나의 영역 구축에 나섰다. 끝으로 시인 윤강로는 제2집의 시 작품해설에서 시인으로서 연휘형의 장도長途를 명쾌하게 명시해 주었는데 연휘형이 그 걸 잘 음미하길 바라며, 시인으로서 더욱 정진하기를 기원하고 제3집의 시집 상재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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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의 문학세계
정연휘
산과 바다를 가슴에 담아
지금은 먼 먼 기억- 사십 년이 지나고 또 몇 년이 흘러갔지만, 내 영혼에 각인된, 영상으로 남아있는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60년대 전반기인 65년 3월 꽃샘 바람을 타고 온 낭보, 동인지 발간을 위해 원고를 보내달라는 소식이었다. 콧등이 시큰, 핑 눈물이 망막을 가리는 감동적인 사건이었다. 그렇게 ‘불모지문학회’는 ?불모지? 제1집을 발간하여 세상볕을 쐬었다.
4?6배판 47쪽인 프린트판이었다. 그때 나는 서울 성북동에서 하숙생활을 하는 대학생이었다. 김익하 최홍걸이 혈기 왕성한 문학청년으로 내 영혼에 투영되었다.
?불모지? 동인지 사건은 내 인생과 문학에 빛깔이 다른 정서의 세계들이 하머니를 이뤄 삼두마차-김익하 최홍걸 정연휘-가 만나 출발하는 새로운 전환의 기점이었다. 우정을 밑에 깔고 때론 견제하고 때론 격려하며 열린 정신으로 빛깔이 다른 정서가 빛깔이 다른 정서를 보완 수용해 갔다. 훗날 삼척문단 형성 주축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필연이든 우연이든 서로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면서 인생과 문학을 바로 세워주는 계기마련의 장이었고, 문학의 진수렁에 깊이 빠져드는 촉매역할을 하였다.
중3때 첫 인연
내 문학의 동기는 중3 때, 박장현 담임선생님의 국어시간이 그렇게 좋았다. 어렴풋이 안개 속에 보이지도 않는 문학의 실체를 찾는 원초적 출발점이었다. 거기에 이름이 기억되지 않는 작문 선생님의 일기검사 때 말미에 적어놓은 ‘한 편의 그림을 보듯한 구체적이고 유연한 문장이 좋다’라는 글이 보태어져 신명이 났다.
거기에다 중3 졸업 무렵 교지가 발간된다고 시한 편을 내고, 공업계 고등학교로 같은 시내에서 진학을 하였다. 얼마 후에 교지를 받아 펼치니 신선한 잉크냄새에 윤기나는 활자체로 인쇄된 <푸른 하늘>이라는 나의 시가 춤을 추고 있었다. 내 문학의 동기였다. 대학에서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받게 되었다. 혼자 습작 위주에서 쏟아지는 이론에 부닥뜨려 괴리로 싫증도 느꼈다.
우리시대의 60년대 대학에서의 문학수업 중의 하나가 학우들 앞에 나가 흑판에 분필로 자작시를 써 놓고, 8도의 예비문인들의 합평이 벌어지곤 하였다. 마무리는 담당교수님이 하시곤 하였다.
거부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아롱 아롱 꿈 많은 가시내
할닥 숨 가쁘게
시야 가득 채워오는
흉하지 않는 두툼한 입술
우람한 산을 안으면
원시림으로
미끄러져 오는 무게
옹동그라이 수축으로
받아들이는 宮門
산여울, 물 흐르는 소리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늘을 보는 마음으로
전신에 퍼지는 온새미로
아, 아프지 않는
개방19세
촉촉이 비가 내렸음.
―「첫사랑 - 개방19세」
대학 때 수업시간에 발표한 시이다. 박목월 선생님이 주목, 시간을 할애하여 말씀을 주신 작품이었다.그리고 김구용, 서정주, 함동선, 선생님들의 시론과 시창작 수업, 김동리, 손소희, 이범선 선생님들의 소설창작론 등 수업을 받았다.
여름방학 숙제로 단편소설 1편씩 써 오라는 김동리 선생님의 말씀이 내렸다. 선굴암에서 일주일 칩거하여 ?온새미로 훈?이라는 72매짜리 단편을 써서 개학 후 재출하였다. 김동리 선생님 시간에 선생님은 입을 쩝쩝 다시며 정 군의 작품은 중편 소재이니 다시 추고하여 갖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도서출판 집현전 사장인 소설가 유광선의 작품과 함께 다루며 두 사람 다 다시 추고하여 갖고 오라 하였다. 나는 시 쪽으로 마음을 굳혔기에 추고작업은 하지 않았다. 유광선은 그날 다룬 작품이 11월 대학신문에 전재되고 이듬해 그 작품으로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었다. 임홍재 시인, 윤금초 시조시인, 임영조 시인 등이 학창을 함께 하였다.
대학 졸업후 귀향, 삼척문단 밀알로
66년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전선에서 뛰어야 했다. 그때는 초급대만 나와도 초등학교 교사발령을 받을 수 있었지만, 삼척문화원에 미련이 더 많아 첫발을 디뎠다. 지방문화예술과의 만남이 시작되었고, 청춘의 고뇌와 갈등을 가장 많이 한 문화원 시절이었다. 나보다는 여럿을, 그리고 베품의 정신이 길러진 값진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때 마음이 열렸고 문화예술에 관심있는 선?후배들과 교감이 이뤄지기도 하였다. 또한 내 문학의 긴 방황기이기도 하였다. 과신과 오만이라는 자신의 함정에도 빠져보고, 겸허하게 내 자신의 작품세계를 곱씹어 보기도 하고, 다독하고, 열린 세계를 향해 부단히 노력도 하고 좌절도 하였다.
좌절의 긴 방황은 치열한 프로근성 없이, 아마추어 정신으로 문학을 좋아했음을, 그래서 많은 연륜을 치열한 프로근성 없이 손실함이 마음 아팠다.
69년 6월, 해체된 문학동인회 동인들이 한데어울려 삼두마차와 김영준 정일남 박종철 등과 내 근무처 문화원에서 현 <두타문학회> 전신인 <삼척문학회> 창립을 보았다. <불모지> 해체 4년 만에 암울한 땅에 문학의 씨를 심었다.
70년 4월 『두타문학』 전신인『삼척시단』을 창간하여 2011년 11월 『두타문학』 34집 전과정을 편집 주간직을 맡았다. 지금 되돌아 보면 없음에서 있음으로 창출한 열정은 삼척문단의 밀알의 역할을 하였다. 50년 전 암울한 땅에 뿌린 문학의 씨앗은 옥토로 토양이 바뀌고, 두타나무의 성목에서 문단에 38명의 시인과 작가를 배출하였다.
삼두마차 김익하는 80년 4월에 『현대문학』지에 소설로 등단하고, 86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최홍걸이 시인으로 등단, 아마추어 근성에서 프로근성으로 의식을 전환, 치열하게 시와 싸웠다. 88년 7월에 서정주 선생님이 발행하는 『문학정신』지에 김윤성 시인의 추천 시인으로 나도 등단하게 되었다.
겨울 꽃밭에는
마음 아파 입 다문 꽃들이
어둠처럼 水墨 빛으로 말라
바람이 불 때마다
거부의 손짓을 보낸다.
꽃은 떠나가고
꽃 핀 자리에 꽃의 영혼이 매달려
默示의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겨울 꽃밭에는
어둡고 단단한 뿌리에
핏줄같이 따뜻한 물이 살아서
한 시대 저리고 아픈 엄동을 견딘다.
오늘은 내 삶의 빈 자리
아주 조용하고 낮은 자세로
발 시린 아침이
겨울 꽃밭에 내린다.
―「默示錄」
신인추천 시부문 당선작품이다. 이외에도 『새벽낚시』 등 3편이 있다.
“정연휘의 고전적인 스타일의 작품들은 얼핏 보아 안이한 시작 태도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추천을 하게 된 것은, 정면으로 도전하는 그의 진실한 태도가 오히려 더 호감을 일으켜 주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한 행, 한 행 훑어보면 고풍스러운데 언어의 감각은 매우 농밀한 데가 있다. 현재 위치에 만족하지 말고 한번 크게 어떤 전환을 꾀해주기 바란다.”
김윤성 선생님의 추천의 말이다.
“아득한 수평선 같은 시의 길이었다. 심해의 신비를 건져올리는 작업은 탐구와 환희, 그리고 절망과 미련과 격랑이었다. 빛나는 시, 좋은 시를 쓰고자 하면 할수록 어렵게만 여겨지는 시라는 세계, 주기적으로 몸살을 앓으며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시에의 길을 멈추지 않고 걸어왔다.
뛰리라. 날으리라. 땀 흘리며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서 뛰고 날으리라. 상처받기 쉬운 여린 마음, 고집 하나로 시라는 믿음 하나로 견디어 온 나의 삶 나의 꿈. 내 분신을 빚는 창조작업에 열중하리라. 추천하여 주신 김윤성 선생님, 항상 격려하여 주신 정일남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이 당선의 기쁨을 두타문학회 동인들과 나누고 싶다.” 나의 시 당선소감이다.
92년 2월에 『海門밖에서』 혜화당 간행으로 첫 시집을 상재하였다.
언어의 배틀에서
하나의 생명을
불어 넣는
시의 꼭지를
따는 사람이다
<시인?1>의 시이다. 시인을 한마디로 정의 한다는 것은 무의미하고 또 가능하지도 않는 일이지만, 시인의 첫째 임무는 언어라는 재료로 인간의 영혼을 향하는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다. 시는 감정의 절약이기에 시인은 언어를 버림으로 시를 얻고, 시인은 의미를 생산하는 사람이다. 나의 시관은 시는 나의 분신이기에 하나의 생명이 있는 것으로 생명을 넣어줌이다.
“시인은 빈 손으로 허공을 휘저으며 장미꽃을 만들어 내는 마술사이다. 그러나 그가 땅에 뿌리를 박지 않았다면 그 꽃은 시들어 버리고 그림에 불과하다. 현실을 고통과 눈물로만 살아가는 사람만이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는 존재- 정연휘는 삶의 충실을 뿌리로 삼고 산과 바다가 그의 가슴에 담겨진다. 산은 그의 몸을 이루는 중추가 되고, 바다는 그의 육체에 생명의 소리가 되어 푸르게 출렁인다.”
시인 채수영 교수의 말이다.
내가 너를 부르므로
너는 내게로 왔다
투명한 마음을 읽으며
너는 너를 허물고
나는 나를 허물고
― 「사랑3」
오늘은 빈 바다이다
내밀하게 피멍든 바다는
먼길 떠나고 없었다
…
바다는
피멍든 바다는
먼 길 떠나고 없었다
―「이별1」
사랑은 만남이다. 새롭게 살아나는 신선하고 확연한 감동으로서의 만남이기에 신선한 충격이다. 그리고 사랑에는 이별이 따른다. 모여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 흩어진다. 또 흩어진 것은 새로운 것으로 변화한다. 사랑도 궁극적으로 어느 지점에서 흩어지는 이별을 맛보게 된다.
나의 가슴에 박힌 산과 바다는 항상 생명의 소리가 되어 다양한 음성으로 살아나기 때문에 즐거움과 신음, 만남과 이별이 존재하는 그런 공간이다.
제2시집은 『솔숲에는 바다가』 95년 11월 혜화당에서 간행하였다.
청산에 들면, 청산 골짜기
개울물 물 밑에 피난와 살아가는
옹기종기 모여 입 다물고 살아가는
근세사를 만남이다.
맑은 산간수에 얼굴 담그면
물 밑 순백의 한 권 책을 만나고
순백의 책장을 넘기면
백년 전후 세상 안팎
활자화 못한, 숨은 역사가 보이나니
참혹한 근세사의 정곡을 만남이다.
― 「山間水錄」
“이 시는 비극적인 역사와 자연을 배합한 소탈한 표현 이면에는 의식이 가미된, 정현휘 시인의 맑은 심안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세계의 복원을 느끼게 된다. 이 시에서 정연휘 시인의 시가 단순한 복고풍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시인 윤강로의 말이다.
전라의 암수 마이산이다
얇디 얇은 운무옷을 어깨에 걸치고
수줍은 미소로 맞는다
탑사塔寺에서 원시시대를 옆에 끼고
마이산 샅길 천황문을 오른다
정상에 서니 둥둥둥
뼛속까지 파고드는 천고天鼓북소리.
지천을 이은 가냘픈 허리의 키 큰 나무
음각 암벽에 양각으로 키 자란
이파리 실핏줄이 북소리에 하르르 떨린다
내 온 몸 파장으로 물어오는 하늘 목소리
너, 흔들이며 살아 온 이승 삶은 무엇이뇨
너, 별을 보는 마음으로 사느뇨
너, 흔들림을 분해하라. 둥둥둥 천고북소리
―「마이산 북소리」
“정연휘의 시는 초탈의식의 삶과 자아를 주축으로 하고 있다. 현실 속에서 깨어지다가 뒹구는 의식의 안간힘, 그 자체로 세상을 내다보고 있다. 그래서, 정연휘의 시는 평범하게 스며드는 친밀감을 준다. 누구나 겪는 존재적 아픔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대담하게 버린자의 신선한 복고풍으로 다가온다. 정연휘의 시는 사물관 보다는 인생관을 내세우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포괄적이고 대범하다….(중략)”
윤강로 시인이 나의 시집 『솔숲에는 바다가』 시 해설에서 한 말이다.
나의 시 창작 작업은 머리글에서 언급했듯이 오십 년이 더 지나갔다.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은 갔고 가고, 인생 또한 그렇게 갔고 가고 있다. 무얼했나, 나의 흔적은 무엇인가, 시는 무엇이고, 인생의 궁극적 참삶은 무엇인가, 때로는 강돌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이름없는 풀꽃과도 교감하면서, 시 정신 하나로 아픈 세상을 견뎌왔다.
몇 권의 시집을 상재하고 또 앞으로도 몇 권의 시집을 상재할 예정이다. 삼척의 젖줄인 오십천을 주제로 한 연작시를 쓰고 있다. 가장 향토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기에, 동양적인 의식, 동양적인 정신에서 환경생태학 측면과 생명 그 자체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강원의 문인으로, 삼척의 문인으로 동안거사 이승휴의 『제왕운기』 민족자존의 정신을 이어받아 ?삼척 현대문학사?를 집대성, 우리시대를 정리하는 작업이 우리시대의 책무 중의 하나이다. ?두타문학 40년사?에서 발전하여 『삼척문학통사三陟文學通史』가 그것이다. 99년도 ?두타문학 40년사? 간행을 위해 넷째주 금요일 늦은 7시에 모임을 갖는 ?두타시낭송회?와 『月刊 頭陀詩』 발간에 두타문학회 동인들과 함께 심혈을 기울였었지만, 원고가 모이지 않아 미발간이었다. 후에 『三陟文學通史』로 발전한다.
문학은 내 정신의 고독한 창조작업의 결실이다. 삼척은 내 고향이고, ?두타문학?은 내 정신의 고향이다. 고향을 위해 시를 위해, 죽서루?오십천?두타산?삼척 앞바다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영혼을 노래하는 작업에 나는 전력투구하리라.
6-1시인앨범 (사진 원본)
6-2 시인앨범 (사진 키워서 보기)
고교학창에서 59세까지
1. 고3시절, 19살 1963.12.20.
2. 문화원 사무국장 시절, 29살
1937년
3. 결혼하던 해, 31살 1975년
4. 59세때 죽서루에서 164회
두타시낭송회 후 2003.05.25.
5. 김동리, 손소희 부부 선생님과 유광선 등 학우들과 서라벌예대 캠퍼스에서,
앞줄 왼쪽 첫번째 손소희 선생님 옆이 필자, 세사람 건너 김동리 선생님
6. 서정주 선생님과 21살 1965년 캠퍼스에서 임영조 등 학우들과 함께,
왼쪽 두 번째가 필자, 한사람 건너 서정주 선생님
7. 삼척죽서루에서, 31살 1975.10.20. 제2회 두타시낭송회 때, 젊은 날의 김형화 시인, 유병규 시인,
작가 김익하, 작가 권 유, 정연휘 시인
8. 김춘수 시인과 함께, 37살 1981.3. 옆은 김영준 시인
9. 구상具常(68세) 선생님과 함께, 43살때 1987.10.01. 초청강연회 후
10. 2002 문협전국대표문인대회 11.03. 함양 쪽 지리산에서 신세훈 문협이사장, 춘천 이무상 시인,
서울 김년균 시인 등과
11. 첫시집 『海門 ?에서』출판기념회, 48살 1992.04.17.
시계방향으로 앞줄 홍태의, 김규영 한학자, 작가 김익하, 수필가 김원우, 아내 강복순 님, 정연휘 시인,
엄성기 동시인, 홍광균 작가, 뒷줄 작가 박문구, 김진광 시인, 오순덕 국장, 장영철 동시인, 문화원장
김영준 시인, 박재문 교수, 박광섭 의원, 박종화 시인, 이길광 소장, 박창수 시인, 김태수 시인, 최홍걸
시인, 박성규 시인, 조영수 시인, 이경국 시인, 정연광 사장
12. 관동문학상 본상 수상, 57살 2001.12.31. 호텔현대경포대에서, 김찬윤 시인, 조영수 시인,
신봉승 선생님, 정연휘 시인, 엄창섭 시인, 전규집 수필가, 김소정 시인
13. 기관장들과「2회 예술인의 밤」 축하자리. 김일동 시장, 정연길 교육장, 장을병 국회의원, 정연휘
예총회장, 이원훈 시의장, mbc 이양길 사장, 김병훈 경찰서장과 함께,삼척문화원 3층 사랑방에서
14.15. 연애시절, 30살 1974년+결혼시절 50살
1994년 죽서루 뒤 오십천 강뚝에서+‘제11회
동안이승휴백일장’ 대회장인 죽서루마당에서
16. 부모님과 형제자매, 29살 1973.3.28. 아버지 진갑연 때, 앞줄 부모님과 동교, 승교, 지숙, 은숙이 조카들
, 뒷줄 미혼시절의 아내, 동생 연옥, 춘옥 누님, 진금연 형수님, 연기 형님, 최성순 매형, 필자, 박만화 매제
, 동생 연국이
17. 경주 보문단지에서 67세 아버지와 3살 맏딸 혜윤이와 1980.05.17. 36살때
18. 아이들 어린시절, 40살 1984.05.08. 나미 4살, 일교 1살, 혜윤 7살 때 생일날에
19. 삼척비치조각공원에서. 왼편으로 부터 아내 강복순, 둘째 나미, 첫째 혜윤, 필자, 막내 일교
가족 모두가 2002.02.12.
20. 최홍걸 시인과 아내와 2003.04.26. 안성 김유신 시인의 수목원 청류재 꽃잔치에서
첫댓글 사진으로 보는 오십천도 넘 멋있네요.. 좋은 시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