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후기 - <태극기 휘날리며>의 모든 것
영화는 봐야겠는데 혼자 가긴 뭣하고, 무조건 인터넷으로 예매 해놓고 집사람을 꼬셨다,
무지 재미있는 영화라고......
다른 집은 여자가 남자더러 영화 보여 달라고 조른다는데 우리 집은 내가 같이 가 달라고 통사정을 해야한다.
젊은 시절엔 혼자서도 곧잘 다녔는데 나이가 드니 그것도 눈치가 보인다.
이 영화에 대해선 지난번 실미도 후기에도 잠시 언급이 있었지만
그 배경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 와선 우리영화도 그 스케일이 점점 커 지고 있다.
제작비 100억이 넘는 작품이 심심찮게 나온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100억이 넘었다고 화제가 되더니 불행하게도 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애니 영화 <원더풀 데이즈>가 120억, <실미도>가 약100억.
그러더니 <태극기 휘날리며>에 와선 순수제작비만 147억.
홍보비등 총 제작비는 물경 170억.
국방부의 장비 협조 요청이 거절되어 몇 10억이 더 들었단다.
우리 군이 보유한 장비만 빌려주었어도 몇 십억이란 제작비가 절감되었을 텐데.............
거절 이유는 영화 중에 우리국군이 다소 부정적으로 묘사된 부분이 있었다나.
미국에선 전쟁영화를 만들 때 미 국방성이나 백악관 등이 아낌없는 협조를 한다고 하니
너무 대조적이다.
최근 우리영화계는 묘하게 강씨 성 가진 두 감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큰 일을 내고 있다.
강우석 감독이 <실미도>로 영화판의 모든 기록들을 갈아치우더니 그에 뒤질세라 강제규
감독이 <태극기....>로 과히 경천동지 할 만한 큰 일을 내고 있다.
몇 년 전(99년) <쉬리>로 우리 영화계의 새 지평을 열더니 드디어 이번 <태극기......>로
우리 영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예고하며 온갖 화제를 뿌리고 있다.
총 제작비 170억 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의 투입.
몇 년에 걸친 제작 기간.
2만 5000명의 엑스트라.
개봉관 수 440곳 (종전 기록 : 반지제왕3의 415곳).
국내 최초로 해외 게스트만을 위한 월드 프리미어 (시사회).
일본과 미국에서의 직배계획.
앞으로의 총 수출 예상액 약 1000억 원.
실미도가 총 관객 1000만을 돌파할 것을 예상하는데 아마 <태극기....>는 실미도 보다도
훨씬 웃돌 것이란 예측.
이제 영화를 따라 가보자.
6,25때의 유골 발굴 현장을 찾아 다니는 70중반의 노인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1950년의 서울 종로거리, 철저한 고증을 거쳤는지 그때의 거리풍경과 풍물들이 완벽해
보인다.
형 진태, 동생 진석, 언어장애의 어머니, 형의 약혼자 영신,
영신의 어린 세 동생. 가난하나 행복한 생활을 한다.
형 진태는 머리 영리한 동생 진석을 뒷바라지하는데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희생한다.
그러나 6,25전쟁이 터지고 이들의 평화와 행복은 무참히 깨어지고 만다.
피난길의 대구역.
진석은 학도병으로 차출되고 형 진태는 진석을 학도병의 대열에서 빼 낼려고 열차 안에서 군인들과 난투극을 벌이다 결국 둘다 전장터로 간다.
이 대구역 장면을 찍기위해 제작진은 전국을 몇 차례나 돌다 가까스로 전라도 곡성 역에서 찍었다 한다.
장기간 로케를 해야하기 때문에 지금은 쓰지 않는 역과 선로를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증기 기관차도 몇 억을 들여 새로 제작했단다.
다시 카메라를 따라 가보자.
두밀령 고지 전투, 낙동강 방어선 전투, 평양 시가지 전투,
그리고 압록강 퇴각 전투등.
끝없는 전투로 이어진다.
그 속에 두 형제의 갈등.
형은 죽음의 전장에서 동생을 빼내기 위해 죽음을 각오한 공을 새우고 그 과정에서 휴머니티의 상실과 전쟁에 동화되어 간다.
그런 형을 동생 진석은 못 견뎌한다.
147억이란 제작비는 이 전투 장면에서 그 위용을 발휘한다.
장쾌한 스케일과 리얼한 전투 장면은 외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각 전투 장면은 매캐한 화약 내음이 실제 느껴지는 듯 하며 빗발치는 총탄과 포탄이 내 가슴에 박혀들 듯 실감난다.
폭격 당한 전투기가 참호로 내려 꽂혀 산산조각이 나고 머리가 터지거나 살점이 떨어져 공중으로 튀고 팔다리가 뚝뚝 잘려 나가는 장면은 너무나 리얼하다.
핸들링 촬영 기법으로 몹시 흔들리는 화면은 긴박하고 다이내믹함이 훨씬 돋보이게 한다.
아마 이렇게 리얼하고 다이내믹한 전투 장면은 외화에서도 보지 못한 것 같다.
다만 조금은 산만하고 좀더 정제되지 못하고 치밀하지 못했든 카메라 앵글과 전투 신들은 세련미가 좀 떨어지는 듯하다.
물밀 듯이 몰려오는 중공군의 인해전술 장면과 1.4 후퇴 때 인산인해의 피난민 행렬의 몹신은 반지의 제왕중의 전투 장면을 연상케 한다.
후퇴 중 가족의 소식이 궁금해 잠시 들린 서울에서 치명적 불행이 찾아온다.
영신과의 반가운 재회도 잠시, 진석의 눈앞에서 영신이 빨갱이 부역자로 몰려 우익 청년단으로부터 처형 직전에 몰린다. 진석을 찾아온 진태도 합류하여 청년단과 무참한 살륙전이 벌어지고 이 와중에 영신은 총을 맞고 숨진다.
진석은 포로들과 함께 창고에 갇히고 진태의 필사적 사정에도 불구하고 대대장은 창고에 불을 질러라고 명령하고 그로 인해 진석이 죽은 걸로 오해하고 국군에 대한 증오심에 진태는 인민군의 선봉이 된다.
형이 돌아오게 하기 위해 찾아간 때의 전쟁 막바지의 전투 장면은 리얼의 극치다.
그리고 형제의 상봉, 형의 부상, 다시 이별,
이 장면에서는 모두들 코끝이 찡 했을 것이다.
특히 이 전투 때의 장동건의 연기는 가슴이 서늘할 정도로 치열하고 리얼하다.
눈을 허옇케 부럽 뜬 광기 어린 연기는 보는 이를 전율케 한다.
이러한 전투 장면의 재현을 위해 배우들과 스탭들은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싶다.
스토리는 아직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상세한 서술은 생략한다.
극장을 나오면서 온갖 감회가 교차한다.
우리 영화가 언제 이렇게 컸지?
<벤허>를 만든 월리암 와일러 감독은 그 영화의 시사회를 보며
"오! 하느님, 이것이 정녕 제가 만든 영화이옵니까"하고 감동했다 한다.
아마 강제규 감독도 그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방화 점유율 50% 상회, 이것은 우연히 만들어진 기록이 아니야!
이런 작품을 만들어 내니 우리 영화를 볼 수밖에.......
화면 가득 압도하는 영상미,
가슴 섬득한 리얼리티,
헐리우드를 무색케 하는 촬영 및 효과 기술.
이제 굳이 외화를 봐야할 이유가 없어진 것 같다.
그리고 또 한가지.
한국 근대사의 가장 큰 불행인 이 전쟁의 아픔을 교과서적으로 으름풋이 알고 있는 전후 세대에게 그 전쟁의 실체를 생생하게 느끼게 했다는 점이다.
실제의 6.25는 이 영화 속의 주인공들 보다 훨씬 더 비참하고 참담했다.
우리민족이 겪은 비극은 이루 헤아릴수가 없다.
이데올로기의 충돌,
강국간의 세력다툼,
그 속에서 오늘의 형제가 내일의 적이 되고 피비린내 나는 동족간의 살육,
영문도 모르고 부역자로 몰려 얼마나 많은 순박한 양민들이 억울하게 죽어 갔는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전쟁 고아들이 생기고 조국의 산하는 온통 잿더미로 변하고..........
종전 후엔 수많은 이산가족,
한반도는 허리가 잘리고,
끝없이 남파되는 간첩,
멋모르고 '빨갱이로 몰리고, 연좌제의 족쇄.
그 과정에서 실미도 사건도 생기고 지금도 정치판에선 친북이니 좌익이니 주사파니
사상논쟁이 끝이 없고 또 얼마나 많은 지식인들과 민주 인사들이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죽음을 당했는지................
아직까지 북에선 핵무기를 볼모로한 벼랑 끝 전술로 우리의 평화와 안전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 보자.
이 영화를 보고, 머잖아 우리의 문화 상품도 세계 시장에서 각광을 받을 때도 머지 않았다는 고무적인 기대를 해 본다.
그러나 다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카메라는 줄곧 두 형제를 쫓아 전쟁의 흐름만을 따라간다.
그러한 스토리 라인이 너무 단조롭다.
어떠한 복선도 없고 반전도 없고 스토리의 긴장감도 없다.
아날로그적 포맷이라고나 할까?
또 하나 강제규 감독의 전작, 쉬리도 그랬지만 영화의 패턴이 어쩐지 헐리우드 영화를 쫓아 가는 듯한 느낌이다.
창조는 모방에서부터.......... 라는 말이 있듯이 머잖아 헐리우드를 뛰어 넘는 우리만의 참신함과 독특함이 가미된 훌륭한 영화를 만나기를 소망한다.
끝으로 너무도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렇게 오래지 않은 과거에 어마어마한 비극을 겪은 우리의 역사를 상기하여 지금의 평화는 어쩌면 한시적 일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잃지 말고 나라의 장래를, 즉, 우리의 미래를 염려하고 걱정하는 원숙함도 이 영화에서 배우고 깨달았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