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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부 : 그림 리퍼 (Grim Reaper)/ 죽음의 사신.
민영이가 살인을 계획한 대상자는 최초 교통사고가 났을 때 자신의 1톤 트럭을 들이받았던 트레일러 운전자였다. 그는 분명히 전조등을 켜지 않았거나 또는 고장이 난 상태로 운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영이는 냉정하게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비가 오는 날 라이트도 켜지 않고 운전할 수 있을까? 정말 민영이 스스로 피곤한 탓에 라이트 불빛을 보지 못했을까? 몇 날 며칠을 고민해 봤다. 그러나 한번 죽여버리겠다고 마음먹은 악마의 심성은 민영이의 평상심을 되돌리지 못했다. 그 당시 상황이나 처지가 어떻든 그는 이미 두 다리를 잃어버렸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자괴감은 도덕적인 양심이나 인간애를 이미 초월해 버렸다. 날이 갈수록 트레일러 운전사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살의는 깊어갔다. 그리고 그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나갔다. 악마가 되어야 했다. 어설픈 살인 미수자로 평생을 어둡고 차가운 감방 따위에서 썩어서는 안 된다는 치밀함으로 악마보다 더한 잔인하게 무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민영이의 심정은 설령 살인죄로 낙인찍혀 감옥에 간다고 해도 자신을 그렇게 만든 운전자를 죽여버리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그 운전자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찾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보험회사에는 그 당시의 상황이나 진술 따위의 기록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장애인이 좋은 점이 있다면 관공서나 기관에 찾아갔을 때 생떼가 먹힌다는 사실이었다. 사고가 났을 당시의 경찰 조사관도 만나봤다. 그 조사관의 말로는 ‘빗길에서 나는 그저 일상적인 사고 중 하나.’ 정도로 취급해 버렸다. 경찰서에서는 조사 기록조차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보험 회사였고, 보험회사에서도 쉽게 자료를 볼 수는 없지만 어떻든 최초의 사고를 냈던 운전자의 인적 사항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는 부산에 살았다.
“거가 삼미통운이죠?”
“예. 누구를 바꿔 드릴까요?”
“김삼성이라고 기사 아자씨 거 있소?”
“예 김 기사님요? 근데 지금 지방 가셨는데, 무슨 일이죠?”
“아 친군디 연락한 지가 한참 되야브러가꼬 핸폰 번호를 몰라서 그라요. 여수 쪽에 짐이 쪼까 있는디 우쭈고 좀 날라 줄랑가 모르겄네?”
“저희한테 이야기하시면 다른 차를 보내드릴 수도 있는데.”
“아 이왕이믄 친구한티 줄라고 그라제.”
“김 기사님 차는 지입차가 돼서 화물은 저희가 관리를 하는데요.”
“이랬든가 저랬든가 나는 친구랑 통화를 먼저 해 보고 싶은께 전화번호나 갈차 줘 보쇼.”
“예 핸폰 번호가..... 010-xxxx=xxxx 입니다.”
“아 그라고 트레일러 번호가 우째되요.”
“예. 1224입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차거든요.”
“부산에는 언제 오요?”
“오늘은 안오시고, 내일 짐을 실으면 부산에는 모레 오전에 오시겠네요.”
“거 위치가 으찌케 되요. 모레 부산 갈 일도 있고 한디 함 가봐사 쓰겄네.”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 여직원의 말을 건성으로 쉽게 대꾸하고 전화를 끊었다. 민영이는 골똘히 생각했다. 이제 이틀의 시간이 있다. 그동안 민영이는 김삼성이라는 사람을 어떻게 죽여야 할지를 생각해 놔야 한다. 총을 구입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석궁은 구매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석궁으로는 사람을 죽이기가 쉽지 않다. 만약 정상인이라면 석궁으로도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석궁을 겨루기도 전에 먼저 죽을 수도 있다. 어설픈 계획이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다 컴퓨터로 갔다. 그리고 ‘사람 죽이는 법’이라고 인터넷에 검색해 봤다. 그러나 모두 장난스러운 대답밖에 없었다. 독극물로 살해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었다. 음료수 병이나 다른 마시는 용기에 독극물을 타서 운전 중에 마시게만 한다면 그 방법도 그렇게 나쁜 방법은 아닐 것 같았다. 독극물을 검색해 봤다. 종류가 다양하고 마셔 주기만 한다면 딱 좋은 살인 방법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약품들은 구입이 문제였다. 사람을 죽이기도 쉽지 않았다. 민영이는 답답한 심정에 컴퓨터 자판을 손으로 쾅쾅 내리쳤다. 그리고 그 순간 불현듯 자신의 노트북이 폭발한 사고를 생각해 냈다. ‘차가 폭발을 한다면?’ 그래 맞다 달리는 도중에 차가 폭발을 한다면 그건 살인이 아닌 사고사다. 그 누구도 민영이를 의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묻힐 수 있을 것이다. 또 죽지 않더라도 민영이 자신처럼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이 상해서 민영이처럼 고통받고 산다면 그것으로 충분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목발을 짚고 컴퓨터를 샀던 그 가게로 차를 몰고 갔다. 민영이를 기억하는 점원은 친절하게 민영이를 맞이했다.
“뭣좀 물어볼라고 그란디이..... ”
“전번에 그 컴퓨터가 문제가 생긴건 아니죠?”
“여작 새것인디 그것은 잘 돌아간께 괜찮고...... 거 믓이냐 못쓰는 헌 노트북 몇 개 있을까?.”
“뭐하시게요?”
“쓸데가 있어서 그란디이.”
“헌 거라도 아주 오래된 것뿐인데. 폐기 처분하려고 놔둔 게 몇 개 있긴 합니다. 밧데리 충전 안 되는 게 몇 개 있긴 한데……. 들고 다니지 않고 계속 전원을 연결해서 쓰면 쓸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모두 구형이라 속도가 느려서 사용하기는 불편하실 건데요.”
“안에 밧데리가 있기는 있어?”
“그럼요. 밧데리 없는 노트북은 없습니다.”
“그런게 몇 개나 있는디?”
“잠깐만요. 창고에 몇 개 있는데……. 몇 개나 필요하세요?”
“한 시개는 있어야 쓰겄는디?”
“그럼 잠깐 기다려 보세요. 가서 세 개가 되면 모두 가져오고 없으면 있는 데로 가져올게요. 잠깐만요.”
점원은 자리를 비우고 창고로 갔다. 민영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저것이 좀 따땃하믄 터진다고 했제?’ 혼자 중얼거리며 잠시 밧데리를 뜨겁게 달구는 방법을 생각해 봤다. 한여름은 아니지만, 저 밧데리가 기름통 위에서 폭탄처럼 터져만 준다면 그것처럼 좋은 완전범죄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얼핏 돋보기가 생각났다. ‘밧데리 위에 돋보기를 붙여 놓는다면?’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민영이는 온몸으로 희열을 느꼈다. 그래 맞다 돋보기가 밧데리를 폭발시켜 줄지도 모른다. 방안에 있는 멀쩡한 밧데리도 터졌다. 돋보기라면 뜨겁게 달궈줄 수 있을 것이다. 점원은 세 개의 노트북을 들고 왔다.
“딱 세 개 있네요. 모두 인터넷은 사용 가능합니다. 여기에 메모리 칩을 하나씩 달면 조금 빨라질 수 있는데……. 뭐 이런 기종은 그저 문서나 작성하고 교육용으로 쓰면 됩니다.”
싸게 준다는 점원의 그 소리에는 민영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카드를 내밀었다. 비싸도 사야 할 판이다. 악마의 스텝은 그렇게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나가고 있었다. 장애인이라는걸 알고 있는 그 점원은 친절하게 노트북 세 개를 차 뒤 트렁크에 실어 주었다. 민영이는 곧장 동네 문방구로 가서 여러 종류의 돋보기를 각각 3배수씩 샀다. 돋보기만 산게 아니었다. 흰색 스페레이와 강력본드, 그리고 서류를 보드에 걸어둘 때 사용하는 자석들을 한 뭉큼 샀다. 민영이의 머릿속에는 이미 노트북 밧데리를 열의 전도가 빠른 흰색으로 만들고 그리고 그 밧데리가 가장 빨리 뜨거워지도록 돋보기를 장치할 것과 그리고 밧데리에 자석을 붙여 달리는 트레일러의 기름통 위에서 떨어지지 않게 붙어 있게 할 설계도를 만들고 있었다. 도면을 그리지는 않았지만, 민영이의 머릿속은 그렇게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노트북의 밧데리를 분해해 본체에서 떼어 냈다. 그리고 밧데리 세 개에 모두 흰색 스프레이를 뿌려 흰색으로 만들었다. 맑은 날씨가 그러지 분무된 흰색의 페인트는 쉽게 말랐다. 그리고 접착제를 이용해 밧데리의 뒷면에 자석을 붙이기 시작했다. 순간접착제도 그 역할이 늦지 않았다. 밧데리 뒷면에 빼곡하게 붙여 놓은 자석은 시험삼아 붙여본 철재 대문에 쉽게 붙었고 오히려 한번 붙은 밧데리는 철재 대문에서 떼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문제는 돋보기였다. 돋보기의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 크기가 다른 여러 돋보기를 붙였다 떼었다 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 햇빛을 한점으로 집점한다는 것은 돋보기와 밧데리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 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근접한 집점을 만들어 밧데리의 중앙에 설치했다. 그 밧데리들은 이제 폭탄이 되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오후였지만 일부러 만들어 놓은 세 개의 폭탄을 햇빛이 가장 잘 받는 곳에 놔두었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떨어지는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리며 밧데리의 온도를 수시로 손으로 체크해 봤다. 뜨겁지는 않았지만, 한낮에 제대로 열을 받는다면 터져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다음 날은 해가 뜨는 오전부터 그 밧데리를 계속 해가 드는 마당의 한쪽에 내 놨다. 오후 두 시가 넘어서 네 시경에 손을 만졌을 때 온도는 좀 달랐다. 성냥을 그 위에 문지르면 불이라도 붙을 정도 온도였다. 세 개 중의 하나 정도는 마당에서 터져주기를 바랐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이제 트레일러의 기름통 위에 저 사제 폭탄을 설치하는 일만 남았다. 민영이는 지체하지 않고 부산으로 내려가 채비를 했다. 가방에 밧데리 폭탄 세 개와 그리고 양말 몇 개를 넣고 대문을 잠궜다. 대문을 나설 때 멀리서 교회 목사님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민영이 앞으로 왔다.
“병원에 갔다가 퇴원하셨다는 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바로 왔습니다.”
“퇴원은 풀새 했는디....... ”
“불편하시더라도 이제 교회에 다시 나오십쇼.”
“...... 살다 보믄....... 또 회개하러 갈 때가 안 생기것소? 또 답답하믄 갈 수도 있고..... 근디 지금은 심사가 복잡해서 좀 쉬고 싶은디......”
“어제 기도 중에 꼭 돌아오신다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 뭔 응답이라?”
“예. 어제 강민영씨를 위해 기도를 하는데 계시록의 한 구절이 계속 네 눈앞에 있었습니다.”
“........ ”
“절대 꿈은 아니었습니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해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하는 구절이 현수막처럼 계속 올라가서 저는 강민영씨가 다시 교회에 나올 것을 확신했습니다. 당장은 슬프거나 힘드실지 모르지만, 주께서 함께하심을 잊지 마십시오.”
“...... 그래요? 거 참...... 야튼 내가 어디 갈 일이 있응께 지금은 뭔 말을 못하겄고……. 댕겨 와서 그때나…….”
잘라서 말하는 민영이의 행색이나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가방을 본 목사는 민영이를 오래 잡아 두지는 않았다. 잘 다녀오라고 이야기하며 돌아서는 목사의 뒷모습을 민영이는 한동안 바라보았다. ‘빌어물.... 내가 뭔 공사를 하러 가는지도 모르고 재수 없게…….’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몸을 돌려 차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차의 트렁크를 열고 그 안에 가방을 던져 넣고 차 문을 닫았다. 몸이 성할 때는 저 정도의 가방은 언제나 운전석을 열고 팽개치듯 보조석에 가방을 던져 넣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작은 짐이라도 언제나 트렁크에 넣고 또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서 짐을 꺼내야 했다. 차의 시동을 걸고 습관처럼 차 안에 있는 백미러를 봤다. 차의 뒤편에는 언제 와 있었는지 민영이를 수발하는 할머니가 서 있었다. 손을 흔들지는 않았지만 무표정한 얼굴로 거울 속 민영이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뒤로하고 민영이는 부산을 향해 차의 오른쪽 핸들을 오토바이 속도를 내듯 끌어당겼다.
부산의 남구 감만동이라는 동네는 온통 트레일러의 집결지처럼 되어 있었다. 삼미통운이라는 회사는 배가 들어오는 컨테이너 전용선 부둣가 옆에 있었다. 삼미통운에서는 아직 김삼성이 운전하는 차 번호 1224라는 차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민영이는 삼미통운의 정문이 보이는 곳 건너편에서 그 차가 들어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러나 한밤중이 되어서도 그 차는 들어오지 않았다. 초조해 지지 시작했다. 차 안에 켜둔 라디오 에서는 9시 뉴스가 이미 끝이 난 시간이었다. 민영이는 다시 한번 삼미통운에 전화해 봤다. 이번에는 남자가 받았다.
“거 김삼성씨 여적 안 들어 왔소?”
“고마 퇴근한지 한참 되야쁬소. 와요?”
“차 들어온 것을 못봤는디 언제 퇴근 했는디라?”
“보소. 야드에 차들이 이빠이 차가 있는데 우에 여다가 주차를 하겄소? 큰 길가에 끌박아 놔삐고 낼 아침에 짐 실을 때 야드로 들어올낀께네 고마 만날라마 그때 오소.”
“차를 길가에 대 놓는다고요?”
“보소. 삼성이 차가 보고싶은교 아니마 삼성이를 만날라고 그라요?”
“...... 차 볼일이 뭐 있겄소만…….”
“차는 근방에 있을낑께네 알아서 하고, 고마 삼성이는 핸폰 해 보소.”
전화를 끊었다. 차라리 잘 된 일이다. 민영이는 천천히 차를 움직여 어두운 대로변에서 트레일러를 하나씩 관찰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차는 멀리 있지 않았다. 반대편에 스케니아(SCANIA) 트레일러가 번호판 1224를 달고 서 있었다. 차를 산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차는 새 차였다. 목적물을 발견한 민영이의 얼굴은 더욱 긴장한 표정이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기다리던 그 순간보다 더 호흡이 가빠지고 들숨 날숨이 깊어졌다. 유턴을 받으려면 멀리까지 돌아서 와야 했다. 차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유턴해도 상관없겠지만 불필요한 행동으로 오해를 살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일부러 먼 길을 돌아 제대로 된 신호를 받아 천천히 그 차가 있는 곳까지 왔다. 민영이의 차는 작은 소형차였다. 그 차는 짐이 실려 있지 않은 앙상한 뼈대만 있는 트레일러 뒤편에 주차할 수 있었다. 그렇게 주차해 놓고도 한참을 차 안에서 기다렸다.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민영이가 차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은 완전범죄를 위해 현장에 충실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처지가 불쌍하고 원통하기는 했지만 남을 죽인다는 범죄행위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갈등을 느끼고 있었다. 이미 잘려나가고 없는 다리지만 감각이 다시 살아난 듯 다리까지 바들바들 떨리는 느낌까지 받았다. 머리가 자연스럽게 해들에 박혔다. ‘정말 해야 할까?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도 새 차를 뽑아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을 하는 저놈은 정말 무죄한 놈일까?’ 민영이는 핸들에 처박은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혼자 중얼거려봤다. 그러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보조석에 있는 목발 두 개를 잡아 들었다. 그리고 차 문을 열고 뒤에 가방이 실려 있는 트렁크를 열고자 뒤로 걸어갔다. 주위는 대로변이기는 하지만 모두 트레일러나 긴 장축의 트럭들만 주차된 한적한 부둣가의 어둠뿐이었다. 트렁크를 열고 가방을 어깨에 멨다. 그리고 낮은 포복을 하듯 엉금엉금 트레일러의 뒤편에서 기름탱크가 있는 곳으로 기어갔다. 목발을 짚는 자신의 자세를 한껏 낮추었다. 민영이는 기름통위에 가방을 올려두고 가방의 지퍼를 열었다. 그리고 그중에 자신이 만든 사제폭탄 두 개를 꺼내어 햇빛이 잘 받을 수 있고 그리고 사람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곳에 가볍게 붙였다. ‘텅’하는 소리와 함께 밧데리에 붙어 있는 자석은 한껏 자력을 발휘해 붙어 주었다. 하나는 아예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기름통의 뒤편에 붙였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기름통의 뒷면 하단부에 붙였다. 만약에 기름통이 터지면 연쇄적으로 터질 수 있게 하나는 햇빛이 잘 받는 부분에 그리고 나머지 두 개는 기름통의 뒷면과 하단부에 붙여둔 것이다. 그리고 빠른 동작으로 가방을 어깨에 메고 차로 돌아왔다. 가방은 평소 같으면 트렁크에 넣어두고 타야 하지만 그 순간은 목발과 가방을 모두 운전석 옆 보조석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차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방향도 알지 못한 채 그 트레일러 부근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한참을 어두운 곳을 달려나왔다. 좀 밝은 곳이 나왔지만, 큰길을 따라 무작정 달렸다. 톨게이트가 나왔다. 그때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표지판을 봤다. ‘동서 고가도로’라고 써져 있었다. 톨게이트이기는 하지만 시외로 빠져나가는 고속도로 진입구는 아닌듯했다. 표를 뽑아내는 대신 동전을 투입하라는 방송 멘트가 흘러나왔다. 담배는 병원에 있을 때 끊어버렸다. 차 안에 있는 재떨이에는 항상 동전이 가득 들어 있었다. 민영이는 재떨이를 열어 동전을 몇 개 집어들고 그 투입구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또 한참을 달려갔다. 그리고 멀리서 또 톨게이트가 나왔다. 민영이는 천천히 톨게이트 입구 옆에 많은 차가 주차해 있는 한 모퉁이에 차를 세우고 길게 한숨을 내몰아 쉬었다. 조금 쉬었다 갈 생각으로 차의 시동을 꺼버렸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차 핸들에 얼굴을 파묻었다. ‘차를 돌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밧데리를 모두 떼어 낼까?’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서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제주도에서 불태웠던 그 독한 복수심이나 폭탄을 만들고 나서의 희열감 따위는 온데간데없고 온통 후회와 불안감만 민영이 전신을 감싸고 있었다. 또 한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그때 옆에서 유혹하듯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민하지 마! 이럴 때 내가 필요한 거 아니야?”
깜짝 놀란 민영이는 옆을 쳐다보며 혼비백산했다. 숨을 ‘헉-’들이마시며 입을 벌렸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몸을 돌려 운전석 차 문에 등을 기댄 채 앞을 바라보았다. 보조석에는 검은 옷을 입고 당당하게 앉아있는 한 노인이 있었다.
“놀랄 것 없어. 우리 초면도 아니잖아?”
“영감. 영감은 누구여? 누구여어?”
발악하듯 몸부림치며 손을 허공에 뿌렸다. 공포에 싸여 욕을 하며 큰소리로 반항했다.
“아 씹할, 누구냥께? 누구여어?”
“이런 이런...... 나를 못 알아봐? 언젠가 죽기 일보 직전에 살려준 은인인데도 벌써 나를 잊어버려? 이런 고얀 놈이 있나……. 쯧쯧쯧……. 불회문 앞에 있는 문지기 영감 기억 안 나?”
“........ ”
“언젠가 나와 내기를 하지 않았던가? 평생에 세 가지 소원을 다 말하면 나와 함께 불회문에 들어가기로. 자네는 살면서 두 가지 소원만 말하고 한가지 소원은 죽어도 말하지 않으면 자네가 이길 수 있다고 선선하게 내기에 응하지 않았느냐 말이야? 이래도 기억이 안 나?”
“........ ”
“자네는 그때 불회문 안으로 들어갔어야 했어. 자네가 누구 빽으로 그곳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 주었는지 모르지만, 자네는 진작 죽을 목숨이었는데 생명이 연장된 거야. 나는 불회문 안에서 인간을 빼올 능력은 없지만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친구들은 기어이 끌고 들어가지.”
“....... ”
“정신 차려 젊은이. 자네는 꿈 같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꿈은 아니야. 아직도 기억 안 나? 언제든지 필요하면 문지기 영감을 부르라고 했을 건데?”
“......... ”
그게 꿈이 아니었던가? 민영이는 병원에 있을 때 꾸었던 꿈을 기억해 냈다. 그 꿈은 너무나 생생해서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에도 가끔 생각나는 꿈이었다. 꿈처럼 사실이라면 정말 문지기 영감을 불러 교통사고 이전으로 돌아가는 소원을 말하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겨우 꿈을 생각해 냈을 때 문지기 영감의 말은 계속 되었다.
“소원을 들어줄 수는 있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소원은 곤란해. 없는 다리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거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영물을 불러 내는 건 좀 곤란해. 그러나 네놈 주위의 환경을 바꿔주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지. 넌 당장 오늘 설치한 폭탄이 폭발해야만 하는 절실함이 있을 거야. 왠지 알아? 만약에 폭탄이 터지지 않으면 넌 살인미수로 잡혀 들어갈 테니까. 네놈이 만든 폭탄은 온통 네놈 지문으로 가득 차서 내일 아침 기름을 넣을 때 당장 걸리고 말 걸? 세상일은 사소한 것도 모두 우리 손아귀에서 놀고 있어서 네놈을 불회문 앞으로 끌고 가기는 아주 쉬운즉 먹기니까. 나는 너처럼 특별히 누구의 보호를 받거나 특혜를 받는 사람에게 더 흥미가 있거든?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것도 많이 양보를 한 거야. 어때? 지금 소원 하나를 이야기하고 편안하게 남은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아? 소원 하나를 이야기해서 네놈이 설치한 저 트레일러를 박살을 내 줄까? 괜찮아. 소원을 하나쯤 썼다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어. 아직도 소원은 두 개나 남아있고 끝까지 소원을 이야기하지 않고도 평생을 그렇게 살 수 있으니까. 그 대신, 오늘 소원을 말하지 않으면 자네는 평생 교도소에 있어야 할지도 몰라. 결정은 온전히 자네의 몫이네.”
“.......... ”
“빨리 이야기해. 너무 고민할 필요는 없어.”
“영감……. 소원을 말하기 전에..... 솔찍허니..... 한나만 물어봅시다.”
“무엇이든지.”
“영감은 긍께 내 미래도 알고 있소?”
“흣흣흐...... 알고 있지. 그래서 내가 자네를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지.”
“글믄........ 내가 교도소에 갈 것 같소? 아니믄..... ”
“교도소 가는 게 겁나?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야. 좋다. 네놈의 미래는 네가 먼저 소원을 말하고 나면 이야기해 주지. 어때? 오늘 같은 날 내가 꼭 필요하지 않아?
“..... 씨발..... 깝깝하네....... 왜 지문 생각을 안해브렀으까이…….”
치밀하지 못한 자신을 한탄하는 중얼거림이었다.
“좀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지. 한여름이라도 네놈이 만든 밧데리가 터지기는 쉽지 않아. 그러나 꼭 터지게 해 달라고 나한테 부탁하면 저 폭탄은 정확하게 내일 오후에 터진다. 단, 네놈이 터지게 해 달라고, 그것이 첫 번째 소원이라고 말했을 때뿐이다. 뭐 물론 소원이라고 이야기했는데도 안 터졌으면 그거는 자네가 이긴 거니까 불회문에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안 터지믄 깜빵에 간담서요?”
“그거는 상식이니까. 빨리 결정해. 언제든 부르면 올 수는 있지만 자네 아니라도 지금 기다리는 손님이 많아. 나도 바쁘다는 이야기야.”
“..... 씨바꺼……. 한번 판을 벌렸응께..... 으짜겄소...... 터쟈주쇼. 아조 흔적도 없이, 그라고 꼭 지문 같은 거는 안 나오게 해 주셔야 쓰요이?”
“그거야 물론이지. 그럼 다음에 또 보세..... 나는 가네...... 그리고 자네의 미래? 자네는 절대 걱정하는 감방에는 가지 않을걸세. 핫 하 하........”
문지기 영감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여전히 보조석에는 가방과 그리고 목발 두 개만 있을 뿐이었다. 그 어디에도 문지기 영감은 없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자세를 잡고 똑바로 앞을 바라봤다. 수많은 차가 고속도로 입구에서 표를 뽑고 그리고 내 달리고 있었다.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이제 어쩔 수 없다. 다시 문지기 영감을 불러 소원을 취소한다면 민영이는 두 번째 소원을 말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민영이는 감옥에 가야 한다. 복잡한 상념이 머리를 휘감았다. ‘내가 잘하는 짓일까?’ ‘운전기사가 죽는다고 없어진 다리가 다시 붙는 것도 아닌데?’ 머리를 옆으로 흔들며 마른 입술을 혓바닥으로 쓸어내리며 쓸데없는 욕심이었다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모든 게 결정되고 후회만 남아 있었다. 병원에 있으면서도 부르지 않던 오랜 그의 말상대를 민영이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불렀다. ‘주여- 내가 왜? 으짜다 이라고 되브렀소. 차라리 사고 났을 때 걍 콱 죽여블제 그랬소.’ 민영이는 어깨까지 들먹이며 오랫동안 의식적으로 미워하며 대화를 막아버린 그 신을 다시 불렀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그때 그에게 들리는 천둥 같은 소리가 있었다.
“쯧쯧쯔...... 못난놈.”
분명히 옆에서 또렷하게 말하는 소리였다. 그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지기 영감이 앉았던 자리에는 또 다른 사람이 앉아서 처연하게 자기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영이는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곧추세우고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섰다가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집에서 김치도 가져다주고 자신을 수발해 주던 바로 김분례 할머니였다.
“할메? 할메가 여기는 웬일이여? 엉? 우쭈고 왔냐고오?”
째려보며 막말을 해대는 민영이를 할머니는 사정없이 ‘철썩’ 소리가 나게 뺨을 때려버렸다. 민영이는 뭐라고 한마디 하겠다며 앙탈을 부렸지만, 몸이며 입, 심지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할머니는 조용히 민영이의 눈을 바라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야, 이 썩을 놈아, 다리 두 짝 없는 것이 뭣이 대단하고 모진 목숨이라고 별것도 아닌 것에 생색을 냄서 니 목숨을 걸어? 이 애미 애비도 없이, 족보도 없이 싹수없이 큰 후레자식아. 니 세상 사람들이 우쭈고 사는지 내 이야기 한번 들어 볼래? 응?”
민영이는 여전히 눈만 끔벅이며 벌린 입조차 닫지 못하고 온몸이 굳은 채 할머니의 조용하고, 그러나 무거운 훈계를 들어야 했다. 민영이는 시선조차 다른 곳에 둘 수 없게 몸은 굳어 버렸다.
“야 이놈아. 두 다리 없고 거기다 눈까지 없어서 앞을 볼 수 없어도 누구 새끼인지도 모르는 지 뱃속에서 나온 새끼 하나 꼼꼼하게 키워볼라고 종이에 구멍 뽕뽕 뚫어감서 점자 책 맹글어서 파는 여자도 있고, 밥만 묵으믄 토해 싸서 배아지 옆에 구멍 뚫고 호스를 연결해서 거그다 밥을 갈아서 조구로 부어 넣어가며 삼서도 뱃속에 호스를 감추고 댕김서 노인대학 한문 갈챠주는 노인도 있다. 그뿐인 줄 알아? 두 팔이 없어도 밥 한 끼 배아지 터지게 묵고 잡아서 발로 먹을 갈고 입으로 붓을 물고 그 주둥이로 그림을 그려서 파는 총각도 있어. 이 빌어물놈아, 니가 앞을 못 봐? 내장이 주저앉아서 밥을 못 처먹기를 하냐고오? 왜? 니도 손까지 잘라내고 주둥이에 붓을 물고 그림 한번 그려 볼래? 썩을 새끼가 금방 뒈져가는 놈을 살려서 그래도 좀 편하게 살라고 돈도 몇 푼 쥐어 줬드만 뭐가 어쩌고 어째? 새끼가 줄줄이 셋이나 있고 즈 마누라까지 식당 꾸정물에 손 담그고 열심히 사는 사내새끼 하나를 확- 불에 꼬실라 죽이믄 그래 니는 없는 두 다리 쭉- 뻣고 잘도 잠이 오겄다. 어디 사내새끼가 할 짓이 없어서 지 인생을 남의 손에 맞겨? 이놈아 인생은 니가 하기 나름이여. 니 하기에 따라서 없는 다리도 생기는 거란 말이여. 언놈이 찰싹 달라붙어서 몇 가지 소원 들어준다고 퍼득거리믄 그게 신기해서 헬렐레하고 쳐다봄서, 그래 니 알아서 해라 그람서 니 목숨을 놈한티 맺겨블믄 그것이 니 인생이냐고오? 병-신 새끼 하는 꼬라지 하고는 쯧쯧쯧....... 니 앞에 별것이 나타나도 대가리 뻣뻣하게 쳐들고 아닌 것은 아니다, 내가 비록 몸은 이래도 찾아보믄 또 일도 있을 것이다. 내가 병신 돼서 살아본께 병신들 수발한다고 존일 하는 사람도 참 많구나, 나도 인자 나보다 더 험한 사람들도 좀 도와주고 살아야겄다, 뭐 이런 건설적인 생각을 하고 살아야제 뭣이 으째? 병신된것이 억울해서 그 꼬라지 만든 사람을 확- 불에 꼬실라서 죽여븐다고? 차말로 병신 육갑하고 자빠졌네. 내가 쉰소리 된소리 안한다. 니 놈 꼬라지 보기 싫어서 아조 떠나기는 한다만, 씰데없이 문지기 영감한티 소원 같은거 씹힐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마라. 알았어? 니가 세 가지 소원 중에 한 개는 이야기 했다고 한디, 소원 하나는 첨부터 없었던 걸로 해. 하나는 내가 써 묵을것인께 알았어? 말이 어렵냐? 니 소원은 원래 두 가지였어 그랑께 한 번만 문지기 영감 불러내서 말 씹히믄 니는 그 순간에 골로간다는 그 말이다. 알았어? 명심해 이 썩을 놈...... 쯧쯧쯧....... 저런 놈을 믓할라고 안 거두어 가고 살려 주셨는지…….”
장황하게 말을 마친 할머니는 눈만 껌뻑이고 있는 민영이의 뺨을 또 한 번 사정없이 ‘철썩’ 소리가 나게 때렸다. 민영이는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다.
“아자씨요. 아자씨요. 좀 인나 보소”
민영이가 차 안에서 일어난 것은 아침 햇살이 차 안을 훤하게 비추는 밝은 낮이었다. 전날 밤 고속도로 입구에서 차를 세워두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리고 문지기 영감과 할메와의 만남도 뚜렷하게 기억이 났다. 오래 잔 탓인지 허기지고 정신도 몽롱했다. 그러나 계속 옆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차 문을 두들기는 사람을 쳐다봤다. 차 밖에 있는 사내는 밖으로 나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허리를 세우고 목발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보소, 아자씨요. 차 다이아가 푹 주저 앉아가꼬 있그만 것도 모르고 잤능교.”
“예?”
“봐 보소. 왼쪽 앞 다이야.”
“어제는 썽썽 했는디?”
“것도 모르고 출발 했시마 이거는 고마 딱 파스 나는 장면이네. 아자씨 본께네 장애인 이그만 차 트렁크나 따 주소. 스페아 다이아 있으마 내가 퍼뜩 갈아줄라요. 차가 그케 오래 된기 아닌 것 같으이 뒤에 후다 열어보마 있을끼그만.”
“보험 불르믄 쓸 것인디이.”
“거 이 아자씨가야, 여가 어딘지나 아요?”
“........ ”
“여가 서부산 터미널 톨 게이트요. 이 아침에 보험브라마 온다케도 한 시간 넘어야 오요. 여가 지금 무쟈게 차가 밀리는 구간이라 오기도 쉽지 안타카이..... 우짤끼요. 여서 버티고 기다려 볼랑교 아니마 퍼뜩 다이아 교체 해가꼬 출발 할랑교. 다이아 터진 거는 운전 하는 사람들끼리 이바구는 해 주도, 아자씨가 몸만 성한 사람 같으마 내가 이케 해 줄 맘은 솔직하게 엄쏘. 시근없이 다이아 빵꼬 난 것도 모르고 퍼질러 자길래 알카준다는것이 목발 짚고 나오는거 보고 용심으로 해 줄라꼬 그라요.”
“아 차말로 언저녁때는 쌩쌩 했는디이.”
“퍼뜩 열쇠나 주소.”
그 사내는 시키지도 않는 선의를 베풀고 있었다. 아무나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사내는 트렁크를 열어 전동휠체어를 내리고 또 잡다하게 쌓여 있는 트렁크를 모두 비우다시피 하고서야 그 안에서 타이어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숙련된 솜씨로 터진 타이어를 교체했다. 그리고 꺼냈던 공구와 전동 타이어를 원래대로 트렁크에 실어 주며 제일 마지막에 터진 트렁크를 싣고 문을 닫았다. 땀을 흘리며 타이어를 교환하는 그 사내 옆에서 민영이는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두 다리가 없이 목발 두 개로 지탱하는 민영이의 가장 불편한 자세는 바닥에 물건이 떨어졌을 때 줍는 일이었다. 그가 도와주어야 할 일들은 모두 그런 일들뿐이었다. 작업이 다 끝나자 민영이는 그 사내 옆으로 걸어가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객지에서 이런 고마울데가 또 있겄소. 진짜 고맙소.”
“쪼깬한 다이야 하는 갈아주는 것이 별거겄소? 여서 봐서 그래도 다행이요. 파스 난 거 끌고 고속도로에서 털털거리고 가다가 발견했시마 욕 봤을낀디.”
“타이야가 큰거 적은거 있겄소? 적어도 심 들기는 마찬가지 였을것인디.”
“내는 큰 차 다이야만 갈아봐 논께 이래 쪼깬한거는 장난 같소.”
“아제 차는 큰거요?”
“저그 저 차가 내차요. 우리는 차에 바꾸가 둘씩 달렸어가 왠만하마 휴게소까지는 끌고 가삐요. 한 짝에 두 개씩 달려 있어가 한 개 터져가꼬는 까딱없이 가요.”
사내는 자신이 몰고 가는 차가 민영이의 소형차보다는 훨씬 크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해 댔다. 그리고 손짓으로 그 차를 가리켰다. 그 순간, 민영이는 그 차를 보고 숨도 쉬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 차는 어젯밤 자신이 사제 폭탄을 설치한 바로 그 트레일러였다. 분명히 차 번호가 1224, 크리스마스 이브 번호였다. ‘아뿔싸’ 쓰러지면서 바닥의 차가운 촉감을 느끼면서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기를 쓰고 목발에 의지해 일어났다. 놀란 트레일러의 주인은 민영이를 부축하며 급하게 물었다.
“괴안쏘? 우야다 그케 잡자기 자빠지는교. 야?”
“혹시...... 물 좀 있소?”
“여 쬐메만 있어 보소이, 내 차에 션한 물이 있그만.”
그 사내는 자신의 트레일러로 달려갔다. 그 뒤를 따라서 껑충거리며 민영이도 따라갔다. 운전사가 큰 차의 바퀴를 밟고 차 안으로 들어갈 때 민영이는 기름통이 있는 곳 까지 쉬지 않고 내 달렸다.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기름통 위에 있는 돋보기가 달린 밧데리였다. 그 밧데리가 왜 그렇게 크게 보였는지 몰랐다. 밧데리는 여전히 터지지 않고 기름통 위에 그대로 있었다. 다행이었다. 짧게 한숨을 내 쉴 때 운전사가 생수통 하나를 들고 옆으로 왔다. 그는 민영이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생수병의 뚜껑을 열어 민영이에게 주었다. 민영이는 태연한 척 그 물을 받아 천천히 몇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 차 주인을 향해 조용히 물었다.
“아제 차 기름통 위에 저것이 뭐요?”
손으로 가르키는 민영의 손끝을 따라 차 주인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기름통 앞으로 갔다. 그리고 돋보기가 붙어 있는 밧데리를 손으로 떼어냈다. 그리고 한참을 쳐다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이야기했다.
“하도 현장 같은 데를 많이 뎅기고 한께네 어서 붙었는갑소. 밑에 자석이 있어가 야무지게 붙어가있네.”
“기름통 주위에 또 붙었는가 봐 보제 그라요? 한번 봐 보쇼.”
한 번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법도 했지만, 그 차 주인은 기름통 주위에서 나머지 사제 폭탄 두 개를 모두 찾아냈다. 그리고 신기한 듯 차의 다른 부분도 세심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내 차를 한 바퀴 돌고 나서 아무것도 없다는 듯 민영이 앞으로 돌아왔다.
“한번 썩 함마로 다이야는 두들겨 봐도 생전에 기름통은 안 쳐다 본께네 이런기 붙어 있는지도 몰랐네. 거 희안하네....... 이기 오데서 붙었노?”
차 주인은 신기하다는 듯 밧데리 세 개를 들고 간이로 설치된 쓰레기통 앞으로 가서 모두 버렸다. 그리고 민영이에게 돌아와 이야기했다.
“내는 여수로 가요. 아자씨는 오데로 가요?”
“예. 저는……. 목포로 가는디...... 가다가 휴게소에서 한번 뵈께라? 내가 그냥 보내기가 너무 미안한께 그란디. 거서 식사나 하께라?”
“오데요? 지금 가가 퍼뜩 한 바리 더 할라카믄 우째도 그 공장 도착해가 거 식당 밥 무야 돼요. 내가 아자씨 하고 같이 속도 마출라카믄 오늘 일은 종 치요. 암소리 말고 천천히 내려 가이소. 거 본께네 몸이 많이 부실하그만...... 가다가 휴게소도 들리고 찬찬히 가쇼.”
“민영이는 손에 들고 있던 생수통을 손을 뻗어 내밀었다.”
“물은 아자씨 차에 두고 휴게소 갈 때까지 드이소. 내는 차에 생수통 이빠이 있어가 오데 가마 것부터 꽉꽉 채워가 뎅기요. 밤에는 라면도 끓이고 한께네 내는 물 많소. 그라마 편히 가입시다이. 내는 먼저가요. 다이야는 맨 위에 올려 놨으니까나 오데 도착하마 빵꼬 떼워가 차 트렁크 제일 밑바닥에 깔아주라고 하소. 내는 가요이.”
손을 흔들며 뒷모습을 보였다. 그는 한 번에 오를 수 없는 트레일러 앞바퀴의 중간 부분을 밟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탱크가 움직이듯 큰 소리의 시동 소리를 냈다. 그의 얼굴이 사이드미러를 통해 보였다. 흰 이빨을 내보이며 건강한 웃음을 민영이에게 날려 보냈다. 민영이도 손을 들어 그에게 잘 가라고 흔들어 주었다. 큰 차가 서서히 움직이며 앞으로 나갈 때까지 민영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차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그를 배웅했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차로 걸어갔다. 차 문을 열고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멀리 사라져간 트레일러를 따라가기라도 하듯 앞으로 차를 몰았다. 차 안에서 습관처럼 백미러를 쳐다봤다. 멀리서 밧데리를 버린 쓰레기통 옆에 검은 옷을 입은 불회문의 문지기 영감이 실망한 표정으로 떠나가는 민영이의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민영이는 그가 문지기 영감인지 알지 못하고 톨게이트 입구로 차를 몰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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