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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8월 6일
세 시간 반을 자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유체이탈 체험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15분쯤 읽었을 때 졸음이 와서 어머니의 거실을 상상히기로 했다. 어머니의 거실을 택한 건 그곳이 내가 잘 알고 있는 곳이어서다. 그 방에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 만든, 금속제 재떨이, 나무로 만든 문 버팀쇠, 바다를 그린 수채화 등이 있다. 나는 그 방을 상상하면서 천천히 내가 만든 그 물건들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방안을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가구와 내가 만든 물건들을 바라보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 물건들에 정신을 집중하자 그 방이 훨씬 더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그 물건들을 하나씩 차례로 들여다보며 만지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는 그 방의 모습과 느낌에 몰입하면서 서서히 잠으로 빠져들었다.
잠시 후 몸이 격렬하게 흔들리며 우르릉 소리가 나는 바람에 깼다. 마치 제트기 엔진 속에 들어간 것처럼 몸과 정신이 격렬하게 흔들리며 산산조각이 날 것만 같았다. 격렬한 진동과 소음에 깜짝 놀라 나는 얼른 내 몸으로 들어갔다. 눈을 뜨자 온몸에 감각이 하나도 없었다. 저린 듯한 느낌이 온몸에 퍼졌다. 그리고 몇 분 뒤 정상적인 감각이 천천히 돌아왔다. 그 격렬한 진동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침대에 누워 이 진동과 소음이 도대체 뭐고 왜 일어났는지 생각해 봤다. 몸의 감각이 아닌 건 분명하다. 내 비물질 몸과 관련된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내 의식이 물질 몸에서 비물질 몸으로 옮겨가던 과정이 아닐까? 아니면 유체이탈 체험을 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진동성 변환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정말 무서운 체험이다. 그렇더라도 이 이상한 진동이 뭔지는 반드시 알아내야겠다. 분명 어떤 논리적인 설명이 있을 것이다.
그 다음주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과 내 유체이탈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11시 무렵, 어머니의 거실을 상상하다가 문득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격렬한 진동과 소음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내가 반은 몸 안에 반은 몸 밖에 있었다. 맨 먼저 느낀 것은 두려움이었다. 무서웠다. 나는 얼른 몸 안으로 들어갔다. 눈을 뜨자 전처럼 몸이 저리고 아무 감각이 없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정상적인 감각이 돌아왔다. 나는 얼른 일어나 앉아 그 격렬한 진동과 소음에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지금도 그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친 것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 "도대체 그게 뭐지?"
곰곰이 생각해본 끝에, 나는 내가 아직 그런 체험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는 걸 깨달았다. 몸과 정신의 분리가 일어나려는 순간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낀 것이다.
그 뒤 이틀 밤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사흘 째 되던 날 밤, 드디어 몸이 마비되면서 격렬하게 흔들리는 이상한 느낌이 목덜미에서 온몸으로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두려움을 이기려고 애써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 나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겁에 질린 나는 본능적으로 내 몸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자 격렬한 진동이 서서히 잠잠해졌다. 몸의 감각이 돌아오고 나니,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 무척 아쉬웠다. 그래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내 물질 몸이 아닌 다른 생각에 정신을 집중하려고 애쓰면서, 그 진동이 다시 일어나게끔 목덜미에서 시작된 그 격렬한 진동을 되새기고 있었다.
15분쯤 뒤, 서서히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다시 잠든 상태와 깬 상태 사이를 오락가락할 때 그 진동이 다시 시작되었다. 진동은 목덜미에서 시작되어 서서히 온몸으로 퍼졌다. 그러자 마치 고주파처럼 온몸이 격렬하게 진동했다. 이번에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마음의 준비만 되어 있으면 그 격렬한 진동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자 두려움이 훨씬 덜했다. 온몸이 진동하며 윙윙거렸다. 갑자기 몸에 활력이 넘치면서 새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몸이 공중으로 떠오른다고 생각하자 정말로 몸이 위로 떠올랐다. 내 몸은 완전히 무중력 상태에 잇었다. 처음으로 나는 그 이상한 느낌을 기분 좋게 즐길 수 있었다. 나는 천장으로 떠올라 손으로 천장을 만졌다. 놀랍게도 내 손에 만져진 것은 천장의 에너지 틀이었다. 뿌연 안개 같은 분자구조 속에 손을 집어넣자 천장의 진동 에너지가 느껴졌다. 천장에서 손을 빼 보니, 내 팔이 은하수처럼 수많은 빛의 점으로 이루어져 파랗고 하얗게 반짝이고 있었다. 호기심이 든 나는 다른 손을 뻗어 그 팔을 잡아보았다. 놀랍게도 내 팔은 틀림없는 실체였다. 나는 내 팔을 바라보며 그 은은한 빛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었다. 내 팔이 수많은 별로 이루어진 우주같아 보였다. 뭐라고 설명하기가 좀 어렵지만, 내가 그 우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우주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내 몸 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흥분 속에 눈을 뜨자, 온몸이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이 곧 사라졌다.
1972년 10월 4일
점점 졸린 상태가 되면서 10-15분 동안 "이제 나는 몸 밖에 있다." 라고 조용히 되뇐다. 잠에 빠져들면서 되도록 강한 확신을 가지려고 애쓴다.
그러면 거의 동시에 격렬한 진동과 전류처럼 윙윙거리는 소리가 온몸에 퍼지면서 정신이 번쩍 든다.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는다. "나는 빛으로 보호받고 있어." 라고 되뇌며 두려움을 진정시킨다. 그 빛에 둘러싸인 나를 상상하자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진다. 공중으로 떠오르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공중으로 떠오르면서 내 몸에서 빠져나온다. 새털처럼 가볍게 서서히 위로 올라간다. 내 몸 위로 떠올랐을 때 진동과 소음이 매우 약해진 것이 느껴진다. 마음이 편안해지자 눈을 뜬다. 불과 50센티미터 앞에 천장이 있다. 내가 그렇게 높이 떠올랐다는 것에 깜짝 놀라 침대에 누워 있는 내 몸을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내 몸으로 돌아간다. 순식간에 몸의 감각이 돌아오면서 다시 그 이상한 진동이 느껴진다.
침대에 누운 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몸에 대한 생각 때문에 몸으로 돌아온 것 같다. 내 몸을 바라보는 건 가능한 일이다. 첫 번째 유체이탈 체험에서 분명히 내 몸을 보았기 때문이다. 다만 몸을 바라보려면 정신적 감정적으로 몸과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 더 중요하게는, 아예 몸에 대한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조금만 몸에 대해 생각해도 그 즉시 몸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공중으로 떠올랐을 때 몸을 뒤집는 생각을 했어야 했다. 그랬으면 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몸을 바라볼 수 있었을 텐데.
1972년 10월 12일
세 시간 반 동안 자고 3시 15분에 일어나 거실의 소파로 간다. 40분쯤 책을 읽다가 졸음이 와서 색다른 상상을 하기 시작한다. 헬륨을 채운 밝은 오렌지색 풍선이 된 나를 상상한다. 풍선이 점점 커지면서 내 몸이 점점 가벼워진다. 되도록 오래 상상에 몰두하려고 애쓴다. 스르르 잠이 들면서 온몸에 격렬한 진동과 소음이 퍼지는 걸 느낀다. 몸에서 빠져나올 준비가 된 것이다. 공중으로 떠오르는 모습을 상상한다. 몸에서 빠져나와 천장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자 진동과 소음이 급격히 줄어든다. 나는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 천장을 만져본다. 하지만 내 손은 천장을 만지는 것이 아니라 천장의 진동 물질 속으로 들어간다. 손으로 천장을 휘젓자 약간의 저항이 느껴진다. 나는 천천히 위로 계속 올라가면서 단열재와 서까래와 다락방을 통과한다. 계속해서 지붕을 통과하여 집 꼭대기로 올라간다. 형용할 수 없는 흥분을 느낀다.
똑바로 서는 것을 생각하자 몸이 똑바로 서면서 지붕 꼭대기에 선다. 주위를 돌아보자 텔레비전 안테나와 굴뚝이 선명하게 보인다. 한밤중인데도 하늘과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눈부신 빛으로 환히 보인다.
지붕 곡대기에 서 있으니 문득 하늘을 날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나는 두 팔을 벌리고 지붕에서 밑으로 미끄러지듯 내려가 뒷마당 위를 난다. 땅에서 1미터 높이까지 천천히 내려가본다. 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 듯하더니 계속 밑으로 내려간다. 잔디밭이 코앞에까지 다가왔을 때 '통제' 해보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쿠우 소리를 내며 나는 잔디밭에 거꾸로 처박힌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몸으로 돌아와 있다. 육체적 감각이 돌아오고 나자 왜 갑자기 통제력을 잃었는지 생각해본다. 왜 갑자기 무거워졌을까?
1972년 11월 2일
격렬한 진동과 소음에 눈을 뜬다. 심신이 산산조각날 것만 같다. 처음에는 그 격렬한 진동에 겁이 났지만, 천천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몸에서 빠져나오는 생각에 정신을 집중한다. 잠시 후 나는 내 몸에서 빠져나와 1미터 위로 떠오른다.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자마자 진동과 소음이 잠잠해지고 마음도 차분해진다. 방문 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생각하자 저절로 그곳으로 둥둥 떠가는 것 같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자유가 느껴진다. 이번엔 하늘을 날기로 마음먹고 지붕을 통해 날아오르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자 그 즉시 내 몸이 마치 로켓처럼 천장으로 수직 이동해서 지붕을 통과한다. 오라, 바로 이것이로구나! 내 생각이 바로 추진력인 것이다. 나는 두 팔을 벌리고 수백 미터를 수평으로 비행한다. 밑으로는 우리 동네의 건물들과 도로가 선명하게 보인다. 볼티모어의 하늘 위로 점점 더 높이 날아오르는데 뭔가가 나를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이 점점 강해지자, 나는 내 몸을 생각한다. 그러자 그 즉시 내 몸으로 돌아간다. 눈을 뜨자, 몸에 감각이 없다.
거의 1년 동안,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좌절감을 느낄 때쯤, 문득 나는 내가 필요 이상으로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 날 오후 유체이탈 실험을 하다가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제 통제한다!" 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 즉시 분석적인 사고력이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나는 침대 옆에 서 있었는데 눈이 많이 맑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초점이 잘 안 맞는 것 같았다. 나는 "선명하게!" 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 즉시 초점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몸과 마음에 활력이 넘치는 것 같았다. 신기했다. 처음으로 완벽한 통제와 균형을 이룬 느낌이었다. 내 자의식은 완전했다. 육체적 의식 상태에 있을 때보다 의식이 더 맑았다. 모든 생각이 수정처럼 투명하고 살아 움직였다.
문득 나는 통제의 비결은 별다른 것이 아니라, 유체이탈 직후 나 자신에게 완전한 의식적 통제를 요구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또한 나는 생각을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나 자신에게 어떤 요구를 할 때에는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한번은 유체이탈 직후 "완전히 깨어 있는 의식을 요구한다." 고 소리쳤더니 곧바로 물질 몸으로 들어가버렸다. 내 정신에서 통제를 맡고 있는 부분이 내 생각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다시 말해, '깨어 있는' 이라는 말을 육체적으로 깨어 있는 상태로 해석해버린 것이다. 몇 달 동안 여러 가지 표현을 실험한 뒤, 나는 이미 유체이탈 체험을 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나 자신에게 '통제' 를 생각하도록 명령해왔음을 깨달았다. 몸에서 빠져나와 공중으로 떠오를 때마다 저절로 나 자신에게 그런 명령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1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나서야 마침내 나는 올바른 방법을 찾았다.
이 기간 동안 나는 연필 실험을 계속했다. 놀랍게도 내 비물질 몸의 진동주파수(밀도)에 따라 연필 또는 방 전체가 내 눈에 보이거나 안 보이는 것 같았다. 점차 나는 내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물질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개닫게 되었다. 유체이탈 상태에서 내 눈에 보인 것은 비물질이었다. 점차 모든 것이 들어맞기 시작했다. 마침내 나는 왜 비물질 사물과 물질 사물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일르테면 비물질 벽은 흔히 그 색깔이 달랐다. 가구와 카펫의 모양과 무늬도 달랐다. 그리 큰 차이는 아니었지만 눈으로 구별할 수 있었다.
내 일상적인 물질 환경을 보려면, 내 내부 진동주파수가 비교적 낮아야 했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맑은 의식을 요구하는 행위 자체가 내 비물질 몸의 내부 주파수를 자동적으로 증가시킨다는 사실도 알았다.
나는 좀더 사실적인 실험을 하기 위해 내가 유체이탈 직후 자주 지나가는 장소 세 곳을 골라 각각 연필을 놓아두었다. 이를테면 침대 옆을 지나갈 때 연필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내 행동이 좀 이상하게 보였을 것 같다. 한번은 어머니가 왜 사방에 연필을 늘어놓았냐고 물은 적도 있었다. 그럴 때 뭐라고 설명해야 어머니가 이해하실 수 있었을까?
몇 주 뒤, 마침내 나는 유체이탈 직후 그 연필들 중 하나에 의식을 집중하는 데 성공했다. 침대 옆으로 가면서 서랍장 가장자리에 놓여 있는 연필에 의식을 집중했다. 처음에는 초점이 안 맞는 것처럼 시야가 흐렸다. 그래서 "선명하게!" 라고 소리쳤더니 곧바로 초점이 맞았고, 바로 내 앞에 있는 연필이 확실히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연필이 안개처럼 뿌연 입체 형태로 보였다. 좀더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만져보자, 손가락이 연필이라는 물질을 통과하면서 미약한 진동을 느꼈다. 실망한 나는 다시 만져보았지만 결과는 여전히 같았다. 의식을 집중하고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내 비물질 몸의 밀도가 연필의 밀도보다 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나는 밀도가 더 높아야 해." 라고 외쳤다. 그러자 몸이 흔들리며 곧바로 물질 몸으로 들어가버렸다. 육체 감각이 돌아오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는 내 요구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유체이탈 상태에서 나 자신에게 하는 모든 요구는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깜박 잊었던 것이다. 미묘한 표현을 쓰면 안 된다. 모든 요구는 매우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나는 이 연필을 움직이고 싶다" 고 했다면 훨씬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몇 년 뒤, 나는 촛불을 가지고 자기최면을 걸어보았다. 유체이탈 직후 촛불 옆에 서서 촛불을 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즉시 촛불은 꺼졌다. 하지만 물질 몸으로 돌아와 눈을 떴을 때, 그 물질 촛불은 아직 타고 있었다. 그 이유가 뭘까를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물질계와 가장 가까운 평행 차원에서 촛불을 껐어야 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차원은 비교적 밀도 높은 에너지로 이루어진 물질계의 복제판이다.
이 간단한 실험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유체이탈 상태에서 마주치는 환경과 사물이 물질계와는 별개로 존재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흔히 생각하듯이 유체이탈자가 다른 시각에서 물질계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계와는 별개이지만 대등한 에너지 차원에서 상호작용하는 것 같다.
1973년 6월 21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소파로 간다. 15분쯤 책을 읽다가 졸음이 와서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기로 한다. 종이에다 유체이탈과 관련된 확신을 쓰기 시작한다. "이제 나는 몸 밖에 있다." 라고 쓰고 소리내어 되뇐다. 50번쯤 쓰자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잠이 들면서도 계속 되뇐다.
온몸이 마비되면서 진동하는 느낌에 깜짝 놀라 깬다. 침착하게 대응하려고 애쓰며 몸이 위로 떠오르는 느낌에 의식을 집중한다. 잠시 후 몸에서 빠져나와 위로 올라간다. 내 몸 옆에 서 있다가 창문으로 걸어간다. 눈의 초점이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선명하게 볼 것을 요구한다. 그다지 좋아지는 것 같지 않아서 다시 요구한다. 이번에는 보다 강경하게 "선명하게!" 하고 요구한다. 그러자 그 즉시 의식이 맑아진다. 몸이 가볍고 활력이 엄친다. 이제 완전히 깨어 있는 것 같아서 날아보기로 한다. 두 팔을 벌리고 살짝 뛰어올라 천장과 지붕을 통해 날아오른다. 우리 동네 위 수백 미터 상공에 이르자, 팔을 조금 돌려 수평비행을 한다. 정말 기분이 좋다. 케이턴스빌 상공을 날면서 완벽한 자유를 맛본다. 밤인데도 눈부신 빛으로 사방이 환히 보인다. 내 밑의 집들과 거리가 크리스마스 정원처럼 보인다. 갑자기 뭔가가 뒤에서 나를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무의식적으로 내 몸을 생각한다. 그러자 그 즉시 몸이 흔들리며 물질 몸으로 돌아가버린다. 온몸이 저리는 느낌이 들면서 깨어난다.
1973년 7월 3일
격렬한 진동과 소음이 느껴진다. 마치 몸과 정신이 제트기 엔진 속으로 들어간 것 같다. 처음에는 격렬한 진동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서서히 나 자신을 진정시키며 몸에서 빠져나와 공중으로 떠오르는 생각에 의식을 집중한다. 그러자 그 즉시 몸에서 빠져나와 천장으로 떠오른다. 몸에서 빠져나오자 그 우르릉거리는 소음이 잠잠해진다. 내 몸 위 1미터 지점에 이르렀을 때 진동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차분해진다. 내가 무중력 상태가 되어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방문 쪽으로 이동하는 생각에 의식을 집중하자 저절로 그곳으로 움직인다.
생각을 집중하며 거실을 생각하자 곧바로 거실로 둥둥 떠간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수월하고 자연스럽다. 내려선다고 생각하자 거실에 내려서서 주위를 돌아본다. 벽이 흰색이 아니라 연노랑이고 몇몇 가구가 물질 형체와 약간 다른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이 눈에 익다. 이를테면, 사자 머리가 새겨진 골동품 흔들의자는 그대로지만 작은 커피용 탁자는 다르게 보인다. 물질 탁자는 현대적 디자인인데 비물질 탁자는 18세기 골동품처럼 보인다.
주위를 둘러보면서 나는 물질계의 안개처럼 뿌연 벽의 윤곽을 꿰뚫어볼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거실 벽에 초점을 맞추자 그 형체와 물질이 점점 희미해지더니 서서히 사라져버린다. 내 앞에는 전혀 새로운 환경이 펼쳐져 있다. 드넓은 초원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다. 몇걸음 앞으로 나아가 그 새로운 영역에 들어간다. 나에게서 20미터쯤 떨어진 곳에 웬 사내가 서 있다. 나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지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잠시 동안 나는 그가 서 있는 쪽을 응시한다. 머리가 검고 수염을 짧게 기르고 있으며 무릎까지 내려오는 가운 같은 자주색 옷을 입고 있다. 내가 쳐다보는 걸 알고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미소를 짓는다. 매우 혼란스럽고 놀랍다. 이제 어떻게 하지? 가서 저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야 하나, 피해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자마자 물질 몸으로 돌아가버린다.
침대에 누운 채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첫 번째 유체이탈 체험 중에 만난 그 사람인 것 같다. 그의 모습을 돌이켜볼수록 그 사람은 그냥 지나가는 비물질 거주자가 아니라는확신이 들었다. 그는 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게 다가와 이야기를 나눌 생각은 없었던 것 같고, 내게 다가오면 내가 놀랄까봐 그냥 그대로 서 있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누가 거기 서 있는 걸 본 것만 해도 매우 놀라운 일이다.
요 며칠 동안 나는 그 사내에 대한 궁금증에 사로잡혔다. 도대체 그 사람의 의도와 목적이 뭘까? 내 진전상황을 지켜보는 길잡이 같은 존재가 아닐까? 나처럼 유체이탈을 체험하는 사람들은 다 누군가 그들의 진전상황을 지켜보고 있을까? 그 사람은 방해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사실 그는 내=띄지 않으려고 나와는 좀 다른 진동주파수 차원에서 내 유체이탈 체험을 지켜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만일 내가 의식을 집중할 때 진동주파수를 높였더라면 내 일상적인 물질 환경 너머의 세계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번 체험을 첫 번째 체험과 비교해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라면 이번에는 내 통제력과 시력이 그때보다 나았다는 것이다.
1973년 7월 9일
낮 12시쯤 낮잠을 자기로 한다. 잠이 들면서 어머니의 거실을 상상한다. 온몸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 퍼진다. 이 느낌을 음미하며 나는 가뿐하게 몸에서 빠져나온다. 흥분에 휩싸여 침대 발치로 이동한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바로 위층에 사는 젊은 여자를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그러자 그 즉시 몸이 위로 떠올라 손과 어깨가 천장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천장을 통과할 수가 없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천장에 낀 채 옴짝달싹도 할 수 없다. 두려워진 나는 큰 소리로 외친다. "밑으로!" 그러자 그 즉시 몸이 밑으로 내려간다.
안도감을 느끼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방문으로 걸어가 방문을 통과한다. 좀 얼얼한 느낌이 들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다. 방문은 뿌연 안개 같은 형상이다. 평상시처럼 거실을 지나 현관문으로 걸어가는데, 문득 오른쪽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남자 목소리가 똑똑히 들린다.
"윌리."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웬 사내가 소파에 앉아 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데 왠지 낯이 익다.
"반갑다, 윌리."
목소리가 귀에 익다. 맞아, 힐턴 삼촌!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그저 그를 빤히 쳐다보기만 한다.
"놀랐지?"
그는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천장을 통과하기가 좀 어려웠단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묻는다. "힐턴 삼촌?"
"그래, 나다."
나는 그를 유심히 살펴본다. 삼촌은 돌아가실 때보다 20년쯤 젊어보이고 훨씬 더 날씬한 것 같다.
눈이 둥그래진 내 모습이 재미있는지 삼촌은 계속 싱글벙글 웃는다. "윌리, 나도 너만큼 놀랐어."
갑자기 삼촌의 목소리가 진지해진다. "윌리, 도대체 이런 걸 어떻게 배웠냐?"
나는 얼떨결에 대답한다. "그냥 해봤는데 되던데요."
"이런 걸 할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 다들 깜짝 놀랐다." 삼촌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린다.
이럴 수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왠지 문득 날고 싶은 충동이 든다.
"힐턴 삼촌, 저 이제 가봐야겠어요."
삼촌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현관문을 통과하자 드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다(참고로, 내 물질 환경은 아파트 단지다.) 나는 두 팔을 위로 쳐든다. 날고 싶은 충동이 나를 로켓처럼 쏘아 올린다. 나는 두 팔을 벌리고 수평으로 날며 비행을 통제하는 법을 실험한다. 주위를 둘러보자 40번 도로가 똑똑히 내려다보인다. 40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몇백 미터 날아가보기로 한다. 이 흥분, 이 해방감! 아래를 내려다보자 도로와 집들과 동네 구석구석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런데 엘리콧 시 상공을 지날 때 갑자기 뭔가 목덜미를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어서 내 몸을 생각한다. 그러자 그 즉시 내 물질 몸으로 돌아온다. 잠깜 온몸이 저린 듯한 느낌이 들다가 곧 사라진다.
육체적 감각을 되찾자마자 나는 어머니의 옛 앨범을 꺼내 허둥지둥 돌아가신 삼촌 사진을 찾는다. 마침내 20대 때 찍은 삼촌 사진을 발견한다. 30년이나 된 그 낡은 사진은 바로 조금 전 내가 만난 그 사람의 모습이다.
이 일을 돌이켜보니 몇 가지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첫째, 우리는 죽은 뒤에도 계속 존재한다. 물론 이것은 내가 처음 유체이탈 체험을 했을 때 안 것이지만, 죽은 사람을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더 확실해졌다. 절대로 내가 착각한 것이 아니다. 조금 전 나와 이야기를 나눈 그 사람은 틀림없는 삼촌이었다.
둘째, 삼촌이 그렇게 젊어보인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20대 후반으로 보였다. 너무 젊어보여서 처음에는 삼촌을 알아보지 못했다. 삼촌 특유의 목소리와 나를 '윌리' 라고 부르는 것으로 그가 삼촌이라는 걸 알았다. 나를 윌리라고 부른 사람은 돌아가신 삼촌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윌리엄 또는 빌이라고 불렀다.
돌아가실 때 삼촌은 쉰 넷이었고 상당히 뚱뚱했다. 하지만 아까 본 삼촌은 젊고 날씬하고 건강해보였다. 우리가 죽어서 물질 몸을 버릴 때에도, 자신에 대한 생각이 우리 에너지체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는 걸까? 비물질 에너지는 생각에 반응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이미 내 체험으로 확인된 바 있다. 그러니 우리 생각과 자의식이 우리의 개인적 에너지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아무래도 우리는 자기 자화상과 가장 잘 맞는 비물질 형상을 취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몸을 떠날 때 어떤 모습일까? 내 물질 몸과 똑같은 모습일까? 내 자화상을 의도적으로 바꾸면 모습이 달라질까? 좀 이상하긴 하지만, 우리의 비물질 형상도 물질 몸처럼 임시 수단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만일 유체이탈 상태에서 내 비물질 몸의 형상을 바꾸는 데 생각을 집중하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몇 주 동안 나는 돌아가신 삼촌과의 만남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삼촌은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몸에서 빠져나오는 내 능력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내가 거실로 들어오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내가 천장을 통과하지 못했던 것도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다시 말해, 나도 모르게 거실로 끌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 누가 삼촌 옆에 앉아 있었던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다른 사람의 존재를 느꼈다. 분명히 나는 어떤 여자의 흐릿한 윤곽을 보았다.
유체이탈 체험을 하는 데 드는 시간의 3분의 1쯤을 구벅꾸벅 졸다 보면, 문득 똑바로 일어나 앉거나 위로 떠오르거나 옆으로 굴러 몸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 몸에서 빠져나올 때의 느낌은 늘 빗스했다.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에너지 또는 고주파 진동이 온몸에 퍼졌다. 나는 진동이 절정에 이를 때 의식적으로 똑바로 일어나 앉거나 옆으로 굴러 몸에서 빠져나왔다. 똑바로 일어나 앉는 방법이 더 좋았다. 옆으로 굴러 몸에서 빠져나오면 뒤죽박죽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똑바로 일어나 앉은 다음 한걸음 옆으로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이 방법을 쓰면 내 비물질 에너지체를 의식적으로 통제하기가 더 쉬웠다. 걸을 때의 신체 동작이 몸을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작용을 하는 것 같았다.
1973년 9월 14일
졸음이 온다. 늘 하듯이 "이제 나는 몸 밖에 있다" 고 되뇌며 어머니의 거실에 있는 물건들을 상상한다. 15분쯤 뒤 잠이 든다.
머리 가까이에서 들리는 총소리에 깜짝 놀라 깬다. 몸에 감각이 하나도 없다. 걷잡을 수 없는 에너지의 흐름이 거센 물살처럼 온몸을 휘돈다. 나는 겁을 먹고 본능적으로 내 물질 몸을 생각한다. 그러자 온몸이 마구 흔들리며 물질 몸으로 들어간다. 도대체 그 총소리는 어디서 난 걸까? 사방을 둘러본다. 그러다가 육체적 감각이 돌아오고 나서야 내 대응에 문제가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 총소리는 물질 몸에서 분리될 때 몸 속에서 난 소리였을 것이다. 분리되는 지점이 머리 부위였던 것이다.
우리는 일곱 군데 에너지 기점을 통해 물질 몸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론이 있다. 뻥 터지는 소리는 송과선(松果腺)이나 그 주변에서 분리가 이루어질 때 나는 소리라고 한다. 지금은 이이론을 입증할 증거가 없지만, 아까 그 총소리는 실밴 멀둔과 폴 트위첼이 말한 그 소리와 매우 비슷한 것 같다.
유체이탈과 관련된 감각과 소리에 대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머지않아 그런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런 연구로 많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으므로 당연히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연구를 계속하면 아직 신비에 싸여 있는 의식의 본질과 근원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낼 수 있으리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1973년 10월 25일
"이제 나는 몸 밖에 있다" 고 되뇌자 점점 더 긴장이 풀리며 나른해진다. 문득 눈을 떠보니 내가 맑은 정신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내 방을 둘러보고 있다. 온몸에 진동을 느끼며 몸에서 빠져나와 벽을 통과하고 새로운 환경으로 들어간다. 보도 같은 작은 길을 걷고 있는데 사방이 확 트인 공간이다. 멀리 무선 송신탑이 우뚝 서 있다. 그곳에 가보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들자 나 자신에게 말한다. "저 탑으로 가야겠다." 그러자 그 즉시 그 탑에 다가간다. 낡은 금속제 쓰레기통 수십 개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 그것들을 헤치며 큰 소리로 묻는다. "이건 도대체 뭐지?" 그러자 머릿속에 선명한 이미지들이 잇달아 떠오른다. 이것들이 내 내면에서 비롯됐는지 외부에서 비롯됐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주 좋아. 이제 너는 이해하기 시작한 거야. 생각에 반응하는 더 고차원적인 진동 영역에 들어선 거야. 주변 환경에 대한 지각은 네 마음에 의해 이루어지는 거야. 네가 가지고 있는 판단 기준에 따라 환경을 해석하는 거야."
기쁘다.
처음으로 명백한 사실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 길은 내 삶이 나아가야 할 바이다. 그리고 이 쓰레기통들은 내 전진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두려움, 한계, 집착 따위의. 앞으로 나아가 내 영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쓰레기통들을 노려본다. 낡고 찌그러진 쓰레기통들. 희열과 만족감을 느끼며 쓰레기통들을 길에서 치우기 시작한다. 장애물을 치우자 온몸이 에너지로 충만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성큼성큼 송신탑으로 걸어간다. 어느 새 바로 옆에 와 있다. 출입구를 찾아보지만 아무리 봐도 없다. 탑 둘레를 도는데 갑자기 뭔가가 세게 끌어당기는 느낌이 든다.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 물질 몸을 생각하자마자 몸으로 들어와 있다. 눈을 뜬다. 오줌이 마렵다. 그랬군……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은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 그 무선 송신탑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커진다. 도대체 그건 뭐였을까? 왜 문이 안 보였을까? 짐작이 가는 바가 있긴 하지만 확실치가 않다. 그리고 내가 받은 그 이미지들은 도대체 뭘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머릿속에 아주 선명히 떠올랐다. 그건 말이 아니라 그림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이번 체험이 전과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들어간 환경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었다. 그건 내가 평소에 체험하는 물질적인 것처럼 보이는 화나경과는 별개의 또다른 비물질 세계였다. 그리고 그 환경은 내 생각에 곧바로 반응하는 것 같았다. 느낌이 달랐다. 몸이 더 가볍고 활기찬 것 같았다. 뭔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1973년 11월 12일
몸이 약간 떨리며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더니 홀연 화려하게 장식된 성당 안 높다란 설교단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거리낌 없이 설교단으로 가는 계단을 오른다. 설교를 하려는데 밑을 내려다보니 아무도 없다. 당황한 내가 곧바로 몸으로 돌아와 보니, 침대에 일어나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한다. 정신은 말짱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정말 이상하군. 앉아서 유체이탈을 한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문득 나는 내가 물질 몸 안에 있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 물질 몸은 침대에 드러누워 자고 있다. 이럴 수가! 성당에서의 체험은 전혀 다른 에너지체 안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제야 알겠다. 두 비물질 몸의 느낌이 서로 전혀 다르다는 것을. 지금 내가 들어 있는 이 에너지체는 훨씬 더 밀도가 높다. 두 번째 에너지체의 가벼움과 비교하면 물질 몸과 거의 같다.
그후 일주일 동안 실패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성공했다. 5시간 자고 오전 6시에 일어나 소파로 갔다. 15분쯤 책을 읽다가 졸음이 와서, "이제 나는 몸 밖에 있다." 라는 유체이탈의 확신을 되뇌기 시작했다. 40-50번 되뇌었을 때 잠이 들었다.
잠이 들자마자 진동을 느끼고 물질 몸에서 빠져나와 방문을 향해 몇 걸음 걸어갔다. 평소처럼 곧바로 방문을 통과하지 않고 이번에는 나 자신에게 두 번째 에너지체로 옮겨갈 것을 요구했다. "나는 더 고차원의 몸으로 옮겨간다." 그러자 힘찬 에너지 흐름이 느껴지며 전혀 새로운 환경으로 들어갔다. 오, 이 기쁨! 이 흥분!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활력이 넘치고 몸이 새털처럼 가벼웠다. 수많은 가능성이 떠올랐다. 습관적으로 선명할 것을 요구하자 정신이 맑아졌다. 처음으로 나는 의식이 뭘 뜻하는지 완전히 깨달았다. 내 모든 생각은 여느 때 보다 빠르고 역동적이었다. 정확히 묘사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굉장히 대범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려움도 한계도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육체적 의식 상태란 것은 몽롱한 꿈처럼 둔한 지각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첫 번째 비물질 몸은 물질 몸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1974년 3월 12일
정오쯤 "이제 나는 몸 밖에 있다" 고 되뇌며 서서히 잠이 든다. 잠시 후 진동을 느끼면서 자고 있는 내 물질 몸에서 빠져나와 침대 발치로 간다. "선명하게!" 라고 외치자 시야가 밝아진다. 정신을 집중하며 침대 끝에 서서 큰 소리로 외친다.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그 즉시 빠른 속도로 내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진공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 느낌이 너무 강렬해 "정지!" 라고 외친다. 그러자 그 즉시 격렬한 운동이 멈춘다. 나는 새로운 환경에 들어와 있다. 공원처럼 경치가 아름다운 야외다. 시야가 흐리다. "선명하게!" 라고 외치자 시각과 생각이 맑아진다. 몸이 훨씬 더 가볍고 활력이 느껴진다.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침착하려고 애쓰며 내 몸을 만져본다. 형체는 평소의 비물질 몸과 비슷한데 첫 번째 에너지체보다 가볍고 활기차다. 성공한 것이다.
흥분을 가라앉히며 큰 소리로 외친다. "다음 단계로 이동한다." 그러자 그 즉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안쪽으로 빨려 들어간다. 몸을 통제할 수가 없다. 두려움이 생긴다. 몇 초 뒤 격렬한 운동이 갑자기 멈춘다. 이제 나는 또다른 낯선 환경에 들어와 있다. 주위 사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 강렬한 에너지가 나를 휩싸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주위를 둘러본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개를 돌릴 필요가 없다. 생각을 조종하기만 하면 어디든지 볼 수 있다. 사방을 동시에 볼 수도 있다. 내 몸을 내려다보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형체가 없는 것이다. 나는 360도 사방팔방을 자유자재로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졌다. 온몸에 활력이 넘치고 뭐든 다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순수 에너지와 무조건적인 사랑의 바다에 잠겨 있다.
나는 한참 동안(몇 시간쯤 되는 것 같다) 순수한 생명의 빛의 바다를 둥둥 떠다니며 이루 말할 수 없이 편안한 느낌을 즐긴다. 물질 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되도록 오랫동안 정신을 집중하려고 애쓴다. 마침내 몸으로 돌아와 시계를 본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몸에서 떠나 있었던 시간은 40분도 채 안 되었다.
1982년 10월 2일
엔진소리 같은 소음을 들으며 유체이탈을 시도한다. 방문쪽으로 걸어가 습관적으로 "선명하게!" 라고 외친다. 그러자 시야가 밝아진다. 문을 통과해 거실로 간다. 아직도 초점이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좀더 강력히 "선명하게!" 하고 요구한다. 이제 정신이 맑아지면서 초점이 잘 맞는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외친다. "현재의 내 모습을 봐야겠다!" 그러자 그 즉시 내 내면으로 빨려 들어가는 강렬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는 우주 공간에 떠 있는 것처럼 몸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앞을 내다보자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형체가 보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게 바로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내 비물질 몸이라는 걸 알겠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에너지와 빛으로 이루어진 이 형체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이건 수많은 빛의 점으로 이루어진 에너지체처럼 보인다.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고 있고 일정한 외형을 가지고 있는 것도 같다. 이 빛의 형체는 알몸이며 내 물질 형체와 똑같이 생겼다. 안정된 형체로 보이지만 에너지가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걸 알 수 있다. 푸르스름한 별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리고 그 별들은 안정되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내 몸을 이루고 있는 빛과 에너지가 바다의 파도처럼 출렁거리는 것 같다.
그 빛의 몸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문득 내가 지금 다른 몸 안에 들어와 있다는 걸 깨닫는다. 하지만 어떤 형체나 물질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아무 형체도 없는 시각(viewpoint) 같은 존재다. 내 새로운 존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데 갑자기 빠른 속도의 운동이 느껴지더니 이내 내 물질 몸으로 돌아간다.
가만히 누운 채 조금 전의 체험을 돌이켜본다. 그렇다! 나는 여러 개의 에너지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조금 전의 그 몸은 내 두 번째 비물질 몸보다도 더 가벼웠다(밀도가 더 낮았다.) 우리는 육체적 몸과 영적 몸을 가지고 잇다는 전통적인 생각이 너무나 단순하다는 걸 알겠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존재다. 우주에 여러 개의 비물질 에너지 차원이 있듯이, 우리도 여러 개의 에너지체 또는 표현 수단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의 비물질 몸은 도대체 몇 개나 될까? 우주의 각 차원마다 하나씩 있고, 물질 몸이 첫 번째 비물질(영적) 몸과 연결되어 있듯이 이것들도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닐까?
1983년 10월 17일
온몸이 진동하며 마비되는 이상한 느낌이 든다. 나는 진동 단계에 있음을 알아채고 내 물질 몸에서 빠져나오는 느낌에 정신을 집중한다. 잠시 후 나는 몸에서 빠져나와 미끄러지듯 방문으로 이동한다. 눈을 뜬 채 방문으로 들어간다. 방문의 진동 에너지가 느껴진다. 방문은 에테르 틀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방문을 지나 똑바로 서는 걸 생각하자, 곧바로 거실이 나타난다. 나는 소파 옆에 서서 방안을 둘러본다. 문득 작은 형체가 나를 따라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가만히 살펴보니 우리 집 비글 강아지 맥그리거다. 유체이탈 상태에서 동물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꼬리를 치며 나를 올려다보는 녀석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녀석의 눈이 반짝거린다. 그런데 잘 살펴보니 거미줄 같은 가느다란 실이 녀석의 몸에서 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저게 뭐지? 허리를 숙여 그 가느다란 실을 만져본다. 그러자 그 즉시 강아지가 사라져버린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깜짝 놀란 나는 곧바로 물질 몸으로 돌아간다.
온몸이 저린 듯한 느낌이 곧 사라지더니, 강아지가 침대 위에서 뛰어다니는 것이 느껴진다. 가만히 누운 채 조금 전 일을 돌이켜본다. 새삼 우리가 우리 자신과 이 세상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는가 실감이 난다. 난생 처음 현실 세계를 체험한 순진한 아이가 된 듯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얼마나 오만한가. 우리가 누구이고, 왜 이렇게 존재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우리는 우리가 세상을 지배하는 지적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우리가 보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 유체이탈 탐험이 우리 존재에 관한 수많은 수수께끼들을 풀어줄 수 있으리라 나는 확신한다.
제2장 몸 밖에서의 만남
1985년 2월 21일
진동 상태에 들어가면서 거센 에너지 흐름을 느낀다. 내면 깊은 곳에서 에너지가 발산되는 느낌은 언제나 좋다. 진동에 정신을 집중하자 에너지 파동이 느껴지면서 누가 내 몸을 어루만지는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만, 점점 익숙해지면서 기분이 좋다. 에너지 파동이 리드미컬하게 강해졌다 약해졌다 하면서 몸이 점점 가벼워진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물질 몸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만,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진동 변화가 계속되도록 내버려둔다. 누가 나를 어루만지는 듯한 미묘한 느낌이 발끝에서 위로 올라온다. 내 진동주파수가 새로운 에너지 등급 또는 주파수로 바뀌는 것 같다. 사람들이 옆에서 내게 일종의 '에너지 투사' 를 하는 것 같다. 약 20분 동안 에너지가 내 비물질 몸을 순환한다. 몸과 마음이 에너지 파동과 공명하는 것 같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일체감이 느껴진다. 에너지 파동이 서서히 잠잠해지자 육체적 감각이 돌아온다.
여러 가지 의문이 든다. 이게 뭐지? 목적은? 어떤 존재가 나를 만지는 걸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 뒤로 몇 시간 동안 몸이 매우 가볍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온몸이 더 높고 미세한 주파수로 진동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비물질 존재의 진동주파수가 바뀌는 걸 체험한 것 같다. 비물질 탐험을 더 발전시키려면 이런 에너지 조정이 필요한 걸까?
누구와도 대화를 나눈 건 아니지만, 이 과정은 내 개인의 발전에 필수적인 에너지 조정임에 틀림없다는 느낌이 든다. 이 에너지 변화의 느낌은 평소 물질 몸에서 분리될 때 체험하는 진동 변화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에너지 손이 나를 만질 때, 나는 어떤 강력한 목표 의식을 느꼈다. 한두 명 정도가 내게 그런 일을 한 것 같다. 그들은 마치 지압사처럼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만질 때마다 내 비물질 몸의 특정 부위의 진동주파수가 바뀌고, 내 내면 깊은 곳의 에너지 파동이 공명하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좀 두려웠지만 기분 좋은 체험이었다. 그런 체험을 또 하게 될 것이다.
1986년 12월 5일
약 15분 동안 침대에 드러누워 거실을 상상하며 "이제 나는 몸 밖에 있다" 고 되뇐다. 잠이 든 뒤 진동을 느끼면서 옆으로 굴러 몸에서 빠져나온다. 방바닥에 떨어져 눈을 뜬다.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인다. 몸이 몹시 무겁고 혼란스럽다. 앞으로 몇 미터 기어가면서 큰 소리로 "나는 새털처럼 가볍다." 라고 외친다. 그러자 그 즉시 내면 에너지가 발산되면서 몸이 가벼워진다. 일어서서 앞으로 걸어가지만 시야가 여전히 흐리다. 그래서 다시 한번 "선명하게!" 하고 요구한다. 즉시 초점이 맞으며 시야가 밝아진다.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 벽을 통과한다. 밝은 녹색 환경이 나타난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이 확 트인 초원이다. 급작스런 환경 변화에 좀 당황한 나는 반사적으로 "여기가 어디지?" 하고 외친다. 문득 누가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선명한 그림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까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가벼워질 것을 요구하고 또 선명해질 것을 요구했을 때 당신의 진동주파수가 높아진 겁니다. 당신은 지금 물질계와 아주 가까운 고주파 환경에 들어와 있습니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생생한 것에 깜짝 놀란다. 형용하기 어렵지만, 그 이미지들은 말이 아니라 생각의 시각적 표현이다. 그리고 이것은 말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정확한 의사소통 방식이다.
아무튼 나는 그 메시지가 무슨 뜻인지 이해한다. 도대체 누가 보낸 메시지일까?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바로 내 앞에서 누군가가 발산하는 에너지가 느껴지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궁금한 마음에 "누구시죠?" 하고 외친다.
또다시 머릿속에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나는 당신의 진전을 지켜보고 있는 오랜 친구입니다."
그 이미지들이 주는 느낌이 다정하고 친근해, 나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단호하게 "당신을 보고 싶어요."
라고 요구한다.
윤곽이 흐릿한 형체가 나타난다. 투명한 홀로그램이 점점 더 짙어진다. 검은 머리에 짧은 수염, 가운 같은 자주색 옷을 입고, 키는 175 센티미터쯤에, 환한 미소를 띠고 있다. 그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구체적 형체를 드러내는 것에 나는 깜짝 놀란다. 그는 내 마음을 읽듯이 내 긴장을 풀어주는 이미지를 보낸다. "두려워할 것 없어요. 우린 오랜 친구니까요." 나는 그의 우호적인 태도에 긴장을 푼다.
그는 자기를 빤히 쳐다보는 내 모습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내 생각을 읽고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의문에 대답하는 것 같다. "나도 당신하고 똑같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물질 몸이 없다는 것뿐이에요. 우리는 오래 전부터 친구였습니다. 그 동안 내면 세계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했죠. 두 번째 차원 너머의 영역도 함께 탐험하고…… 당신은 또다시 밀도 높은 영역을 탐험하고 있군요. 물질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것 같아요. 나는 안 그런데……"
내 머릿속에 의문이 떠오르자 그는 잠깐 이야기를 멈춘다.
"나는 당신의 인도자 중 하나입니다. 당신 삶의 측면들마다 당신을 돕는 사람들이 있죠. 저마다 해당 영역의 전문가로서 당신을 돕는 겁니다. 당신과 나는 내면 탐험을 즐기기 때문에, 그 분야에서 내가 당신을 돕고 있죠. 당신 판단이 맞아요. 개개인의 자연스러운 발전 과정에 인도자가 끼어들어선 안됩니다. 누가 도움을 청하지 않는 한 우리는 눈앞에 나타나지 않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누가 도움을 청하더라도 행동을 취하기 전에 상황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예측해야 합니다."
머릿속에 온갖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은 내 생각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것 같다. 그는 생각 이미지로 내 의문을 풀어주면서 이야기를 계속한다.
"유체이탈 또는 임사(臨死) 체험을 하는 사람은 그 체험을 하는 동안 인도자가 따라다닙니다. 언제든지 도움받을 수 있지만, 그 사람이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두려워할 건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곧 자신의 현실을 만든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아직 많습니다. 당신도 알고 있듯이 이건 즉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초보자는 흔히 당황하게 되죠. 물질 몸에 거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생각을 잘 통제하지 못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잠깐 중단되었다가 계속된다. "당신이 터득한 대로, 생각을 통제하고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주의 내면 깊이 들어갈수록 더 그렇죠. 당신의 통제력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당신에겐 극복해야 할 두려움이 있습니다. 내가 당신 앞에 나타났을 때에도 당신은 두려움을 느꼈죠. 그때 전 당신이 당신의 에너지장 안에서 심적 동요를 일으키며 물질 몸으로 되돌아가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할 때 자유를 얻게 된다는 걸 잊지 마세요. 머잖아 당신은 두려움에 대처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체험하게 될 겁니다. 모든 체험에는 저마다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장애물은 실은 장애물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그 순간 나는 물질 몸으로 되돌아가 눈을 뜬다. 내가 뭔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게 뭔지는 도무지 짐작이 안 간다. 왠지 이 사람한테서 선의가 느껴지며 친구라는 느낌이 든다. 그의 도움으로 미지의 세계를 맞이할 준비가 되는 듯하다. 그가 마지막에 보낸 이미지들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진다. "모든 장애물은 실은 장애물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하지만 그가 내 과거를 설명하고 있는 건지, 내가 맞게 될 미래를 준비하도록 돕는 건지는 알 수가 없다.
이 체험을 곰곰이 돌이켜보니, 내 비물질의 친구가 폴 트위첼의 책에 나오는 그 인도자와 비슷한 점이 있다는 걸 알겠다. 이 둘은 서로 닮기는 했지만 똑같은 것 같지는 않다. 그 동안 내가 만난 몇몇 유체이탈 탐험가들도 그와 비슷하게 생긴 비물질 인도자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비물질 인도자 또는 그 사건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념이 유체이탈 상태에서의 체험에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닐까 싶다.
1987년 1월 3일
진동을 느끼며 몸에서 빠져나온다. 내 방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방안 환경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똑같지는 않다. 나무로 된 부분과 벽이 내 물질 집과 다르다. 방문으로 이동해 문을 통과하자 새로운 환경이 나타난다. 그리곤 한 여자가 내게 다가오는데, 왠지 아는 사람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키가 크고, 치렁치렁한 갈색 머리에, 눈이 유난히 반짝인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와 미소를 짓는다. "보고 싶었어요."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한다. "나도 보고 싶었어."
그녀가 내게 입을 맞추며 손을 잡는다. 갑자기 우리는 또다른 환경에 들어와 있다. 경치가 아름다운 공원 같은 곳이다. 우리는 수정처럼 맑은 청록색 연못가에 나란히 서 있다. 나무, 풀밭, 연못 등 주변의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그 여자를 바라보자 격렬한 사랑의 감정이 안에서 우러나온다.
그녀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손을 잡는다. "당신은 여행을 너무 많이 해요. 이제 여기 있어줘요."
나는 그녀를 끌어안는다. "여기 이렇게 있잖아."
그녀의 얼굴과 몸이 수많은 빛의 점처럼 반짝인다. 우리는 입을 맞춘다. 거센 에너지가 밀려든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며 순수한 에너지와 기쁨이 넘친다. 우리의 생각들이 천 가지 미묘한 방식으로 맞닿아 합쳐진다. 그녀와 하나가 되면서 그녀의 마음 속에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이루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황홀한 느낌이다. 처음으로 완전한 존재가 된 느낌이 든다.
나는 마음속으로 외친다. "오,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그 순간 나는 세차게 흔들리며 물질 몸으로 돌아간다. 내 모든 것이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미세한 차원에서 진동하는 것 같다. 물질 몸의 느낌도 다르다.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맑고 가벼우며 활력이 넘친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내 몸과 마음 구석구석을 힘차게 흐르는 에너지를 즐긴다. 이 기분 좋은 느낌이 몇 분 동안 계속된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이 황홀한 느낌을 즐긴다.
그 뒤 몇 주 동안 나는 이 체험의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건 내면 세계에서의 섹스였을까, 아니면 내 의식적 정신이 더 높은 차원의 나 자신과 결합한 것이었을까? 그 답을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1988년 10월 15일
잠이 들기 시작하면서 "이제 나는 몸 밖에 있다" 라는 유체이탈의 확신을 되뇐다. 잠시 후 몸에서 빠져나와 침대 발치로 이동한다. 습관적으로 "선명하게!" 라고 외친다. 그러자 즉시 의식이 맑아진다. 무의식적으로 탐험에 대해 생각하자,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것이 느껴지더니 아름다운 공원 같은 정원에 서 있다. 정신을 집중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여남은 사람들이 자전거와 롤로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정원의 크기는 축구장만하다. 큰 나무들과 높이가 2.5 미터쯤 되는 돌담이 있다. 유모차를 밀고 가는 여자와 공을 주고받는 두 사내아이도 보인다. 평화롭고 행복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특히 유모차가 눈길을 끈다. 유체이탈 상태에서 아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갑자기 열두어 살쯤 되어보이는 빨강머리 여자아이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내게 다가와 빙그레 웃으며 묻는다. "여기 처음 왔죠?" 라고.
"그런 것 같구나."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비 피할 곳을 찾는다. 지난 15년 동안 유체이탈 상태에서 날씨가 바뀌는 건 본 적이 없다. 나는 깜짝 놀란다.
여자아이가 나를 쳐다보며 나무 및을 가리킨다. "빨리 저리로 가요."
이슬비가 너무나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빗물이 얼굴을 흘러내리는 느낌을 즐기면서, 이것도 일종의 교감 환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비를 멈추는 데 정신을 집중해본다. 여자아이가 미친 사람 쳐다보듯 나를 빤히 쳐다본다.
"뭐 해요?"
"비를 멈추고 있는 거야."
그 즉시 비가 멈춘다. 여자아이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묻는다. "아저씨 여행자예요?"
문득 뭐가 등뒤에서 끌어당기는 느낌이 약하게 든다. 가야 한다.
"이제 가 봐야겠다."
여자아이가 크게 실망한 표정으로 묻는다. "또 올 거예요?"
여자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나는 물질 몸으로 돌아간다. 온몸이 저린 듯한 느낌이 곧 사라지며 육체적 감각이 돌아온다.
눈을 뜬 뒤에도 그 여자아이의 얼굴이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있고, 왠지 보고 싶다. 아는 아이인 것 같은데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에 없다. 분명히 나와 무슨 관계가 있을 텐데……
실망감이 든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우연의 일치 같은 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여행자예요?" 라고 묻던 그 아이의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1989년 9월 16일
잠이 들기 시작하면서 30-40번쯤 유체이탈의 확신을 되뇐다. "이제 나는 몸 밖에 있다." 라고. 잠이 드는 순간까지 이 자기확언을 되뇌며 의식적 생각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문득 미세한 진동과 빠른 움직임을 느끼며 깬다. 잠시 후 고층 주차빌딩 안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멀리 올라가고 내려가는 경사로가 보인다. 주위를 둘러보자 이상한 광경이 눈길을 끈다. 번쩍이는 새 자동차가 흙더미 속에 만쯤 묻혀 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멋진 새 차에다 이런 짓을 했을까? 왠지 자동차 안을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창문과 문을 뒤덮은 흙을 치우기 시작한다. 열심히 흙을 치우다가 문득 이게 쉬운 일이 아닌 듯 싶다. 하지만 계속 흙을 치운다. 마침내 창문 하나가 나타나 안을 들여다본다. 놀랍게도 내 눈에 보이는 건 평범한 자동차 내부가 아니다. 눈부신 하얀 빛이 차안에 가득 차 있다. 빛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내가 이 빛과 내면으로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문을 열어봐야겠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흙을 치우기 시작한다. 이윽고 또다른 창문이 나타난다.
그때 홀연 왠 차가 내 옆에 멈추어 선다. 젊은 사내가 타고 있는데, 그 사람과도 잘 아는 사이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을 건다.
"할 말이 많네요."
나는 깜짝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차로 걸어간다.
"좀 도와주실래요?"
내가 도움을 청하자 그는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해방시켜야 해요."
그 순간 나는 물질 몸으로 돌아온다. 그의 말이 머릿속에 울려 퍼지고 그 체험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육체적 감각이 돌아온다.
난 새삼, 내 정신이 현재의 내 물질 관념과 상징과 이미지를 바탕으로 내 유체이탈 체험을 해석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좀더 고차원의 내 일부가 현재의 내 이해 수준에 알맞은 방식으로 내 체험을 조정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 체험의 꿈 같은 이미지는 이해가 되지만 과연 그럴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 체험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나는 지금 내 내면 에너지 자아, 즉 영혼을 해방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자동차를 뒤덮은 흙은 그동안 쌓인 온갖 부정적인 쓰레기를 나타낸다. 내가 제거하려고 애쓰는, 집착, 두려움, 한계 따위의 부정적인 속성과 감정들을 말이다. 이것들이 내 영혼의 빛이 빛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다. 만일 내가 그 형상이 나타내는 진정한 에너지원(源)을 봐야겠다고 요구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제야 유체이탈 상태에서 마주치는 많은 형상들이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임을 처음으로 완전히 이해하겠다. 그것들은 내가 이해하기 쉽도록 여러 가지 형상을 취한 것이었다. 우리 정신은 순수 에너지가 아닌 형상에 반응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내 고차원적인 정신 또는 영혼이 내게 내가 알아야 할 것을 가르치기 위해 그런 외형적 형상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분명하다.
이제 나는 형상 뒤의 실체를 볼 준비가 된 것 같다. 다음 번에는 내가 지각하는 모든 형상 뒤에 있는 진정한 순수 에너지를 봐야겠다고 요구해야지.
1990년 1월 24일
진동을 느끼며 물질 몸에서 빠져나온다. 잠시 후 나는 방문 앞에 서 있다. 습관적으로 선명함과 인도를 요구한다.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격렬한 느낌이 들면서, 잠시 후 커다란 석조 건물 입구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 건물의 크기와 모양은 전에 본 것들과 전혀 다르다. 건물이 아스라이 수평선까지 뻗어 있으며 굉장히 오래돼 보인다. 그리고 내 앞에는 높이가 5미터쯤 되는, 놋쇠와 나무로 된 육중한 문이 있다. 문을 지나자 수없이 많은 복도로 연결된 넓은 홀이 나온다. 홀을 지나 가장 가까이에 있는 복도로 들어간다. 사방에 큰 방들이 있고, 방마다 생김새가 똑같은 물건들이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니 물건들이 조금씩 다르다. 똑같은 물건의 발전 또는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또다른 방에는 수백 개의 장난감이 들어 있는데, 이것들 또한 조금씩 생김새가 다르다.
사물에는 별 관심이 없는 나는 다시 긴 복도를 계속 걸어간다. 그러자 쓰이지 않는 곳 같은 텅 빈 공간이 나온다. 양쪽으로 여닫는 문 앞에는 목재들이 쌓여 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목재들을 치우고 문을 연다. 이 방은 무스느 기관실이거나 동력실 같은 곳이다. 엄청나게 큰 엔진이 바로 내 앞에 있다. 건물 3층 높이에 축구장 만하다. 어리둥절해진 나는 "도대체 이건 뭐야?" 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 그러자 선명한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것이 당신 눈에 보이는 형상들 뒤에 있는 힘의 근원입니다. 당신의 정신은 이해할 수 있는 개념들로 그것을 생각해보려 하고 있습니다만, 진정한 힘은 형상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거대한 엔진이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강력한 순수 에너지가 사방으로 발산되는 것이 느껴진다. 정신을 집중하자 빛의 파장들이 하나의 근원에서 뻗어나오는 것이 보인다.
그 눈부신 빛을 쳐다보고 있으니 눈이 멀 것만 같다. 내 일부가 고개를 돌리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내 외면을 이루고 있는 여러 겹의 껍질이 타 들어가는 것만 같다. 케케묵은 관념, 믿음, 가정, 결론 따위가 그 강렬한 빛에 타 없어지는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른다. "도대체 이게 뭐야?" 그러자 그 즉시 내가 그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오, 마침내 내가 보다 큰 내 일부와 하나가 된 것이다! 문득 나 자신이 바로 내 삶의 엔진임을 깨닫는다. 내가 바로 내 안의 창조력인 것이다. 나는 지금 나 자신과 분리되어 있다. 잠시 동안 나는 그 빛과 하나가 된다. 전에는 체험한 적이 없는 마음의 평화와 일체감도 느낀다. 어떤 현실이라도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닫는다. 내 창조력은 무한하다.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생각들과 믿음들로 나 자신을 제한했다는 걸 이제 알겠다. 내 모든 한계와 두려움과 기대를 버려야겠다. 형용할 수 없는 힘이 솟는 걸 느끼며 나는 "이 순간을 잊지 않을거야." 라고 외친다.
그 순간 물질 몸으로 돌아온다.
육체적 감각을 되찾으면서 이 체험을 돌이켜본다.
모든 것이 자세히 기억나면서 이별의 아쉬움이 느껴진다. 그 황홀한 일체감……
나는 보다 큰 내 일부를 체험한 것이다. 그것을 고차원 자아라 하는지, 창조 정신이라 하는지, 아니면 영혼이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 비밀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내 일부라는 것뿐이다.
그 거대한 건물이 일종의 박물관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형체 또는 앞으로 생겨날 모든 사물의 살아 있는 기록 같은. 내 정신은 그 형체들을 현재의 내 물질 환경과 연관시켜 해석했다는 걸 알겠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중요한 건 우리 눈에 보이는 형체들이 아니라 그 형체들이 뭘 나타내느냐라는 걸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이 깨달음은 분명 매우 중요한 발전이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물질 세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
1990년 2월 6일
아무 기술도 쓰지 않고 잠이 들었는데 새벽 1시쯤 진동 단계에서 깼다. 물질 몸 안에서 얼른 일어나 앉아 주위를 둘러보자, 앗! 침대 옆에서 왠 사내가 내 일기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는 내가 일어나 앉는 걸 보고 얼른 뒤로 물러선다. 나는 화가 나서 "당신 누구야?" 하고 고함을 지른다.
갑자기 내가 나타난 것에 깜짝 놀란 그는 침대에서 뒷걸음질친다. 뚱뚱하고, 수염이 텁수룩하고, 머리가 짧고, 키는 170센티미터쯤 되는 중년 사내다. 계속 뒷걸음질치는 그에게 나는 더 큰 소리로 "당신 도대체 누구야?" 라고 외친다. 분노와 두려움에 휩싸인 나는 마침내 버럭 소리를 질러버린다. "당장 꺼져! 꺼지란 말야!"
사내가 돌아서서 도망치자마자 나는 몸으로 돌아온다. 물질 몸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계속 고함을 지른다. 웅얼거리는 소리에 아내가 깬다. 깜짝 놀란 나는 얼른 일어나 앉아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그러다가 이윽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조금 전의 일을 돌이켜본다.
내 반응이 좀 지나쳤는지도 모르지만, 낯선 사내가 내 방에 있다는 사실이 본능적인 방어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그 사내가 도대체 누굴까 하는 생각에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누군지 모르겠다. 그 사내는 내 일기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나를 감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보다 그 사내가 더 놀란 것 같다. 이런저런 가능성을 생각해보다가 그 사내가 첫 번째 내면 에너지 차원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이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 유체이탈 체험에 호기심을 품고 내가 무슨 이야기를 쓰고 있는지 확인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르고 있지만 다른 차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방문하는 걸까? 그렇다면 얼마나 자주 찾아올까? 우리가 말하는 프라이버시는 결국 아무 의미도 없는 걸까? 아무튼 이 체험은 내가 지금 이해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잇는 것 같다.
1991년 3월 14일
진동을 느끼며 방문으로 간다. 습관적으로 "선명하게!" 하고 외친다. 의식이 아주 맑다. 다시 큰 소리로 "안으로 들어간다." 라고 외친다. 그러자 몇 초 동안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격렬한 움직임이 느껴지더니 갑자기 멈춘다.
나는 신비로운 물 같은 빛에 잠겨 있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편하다. 완전한 사랑의 포근함이 나를 감싼다.
정신을 집중하자 모든 의문이 뚜렷해지고 간단명료한 요구가 떠오른다. "내 삶을 봐야겠다." 그러자 그 즉시 선명한 그림들이 나타난다. 입체적인 영상들이 줄지어 펼쳐진다. 수백, 수천, 수만 개의 그림들이 뚜렷이 보인다. 모두 다 내 모습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겠다. 그 중 하나에 초점을 맞춰본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그림이다. 나는 꼬마다. 치마 같은 옷을 입고 샌들을 신고 있다. 바닥과 벽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이천 년 전의 내 모습이다. 놀랍지는 않다. 그게 나라는 걸 그냥 알겠다. 오래 전에 잊혀진 사건에 대한 기억처럼 이 찰나의 순간은 휙 지나가버린다. 초점을 바꾸어 다른 그림들을 본다. 모두 다 내 삶이다. 지상에서의 삶, 우주의 비물질 영역에서의 삶.
이런 여러 가지 삶을 바라보고 있자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마다의 사건, 저마다의 삶이 다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저마다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조각 그림 맞추기처럼 그림들이 저마다의 자리를 잡으며 하나의 온전한 그림을 이룬다. 오늘날의 나를 이루는 데 이 모든 그림, 모든 체험이 저마다의 역할을 한 것이다.
문득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그림들이 지니고 있는 심오한 의미와 지혜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승리와 패배, 수많은 내 결점과 약간의 장점. 나는 지금 수천 년에 걸쳐 이루어진 나의 진화를 보고 있는 것이다. 각각의 삶은 하나의 단계였다. 성장 체험이었다. 바로 앞의 삶을 바탕으로 한걸음 더 발전한 삶이었다.
고난과 역경의 필요성을 이해하니, 뛸 듯이 기쁘다. 모든 고난이 다 내 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깨달음의 계기였다. 그 놀라운 지혜를 알겠다. 나는 학생이자 교사이고, 내 삶의 작가이자 감독이고 배우다. 내면의 깨달음이 나를 사로잡는다. 뭔가를 완벽하게 알고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이론과 추측은 아무 의미도 없다. 이제야 진리를 알겠다.
물질 삶은 영혼을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혹독한 수련장이라는 것을.
나는 무아지경에 빠져 눈앞에 펼쳐지는 내 삶을 바라본다. 수많은 세월과 체험이 오늘날의 나를 이루었다.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영원한 존재이기에, 시간은 아무 의미도 없다. 나는 영혼이기에. 순수한 의식이기에, 변화를 추적하기 위한 시간 같은 인위적인 장치는 필요치 않다. 나는 영혼이기에 늙지도 퇴화하지도 않는다. 점점 더 많은 지식과 체험을 가질 뿐이다. 물질에 대한 탐구는 내 지식에 보탬이 되었다. 물질 여행은 내 시야를 넓혀주고 삶에 대한 내 이해를 높여주었다. 육체를 통한 체험은 내게 성장과 발전의 기회를 주었다. 사랑과 겸손과 인내와 의지 등 내 내면 특성을 표현할 기회를 주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간결하고 명백하다. 체험이 지혜를 만드는 것이다. 시간은 아무 상관없다.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는 모든 체험에 대한 영원한 기록이 저장되어 있다. 모든 사건, 모든 순간이 우리의 잠재의식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내 삶의 그림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물질적인 사건들이 전체의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나는 서로 다른 수많은 형체 속에 살았다. 수많은 세계에서 살았다.
그 목적을 깨닫자 나는 깊이 공감한다. 물질과 비물질 영역을 포함한 우주 전체가 영혼을 발전시키기 위한 수련장인 것이다. 수련장 안의 수련장, 차원 안의 차원이 똑똑히 보인다. 모두 다 상호작용하는 학습 환경이다. 우주의 모든 에너지 차원이 저마다 특정 목적을 가지고 있어, 저마다 성장과 진화를 위한 고난과 기회를 만들어준다.
목적과 질서에 대한 인식이 뚜렷해진다. 나는 지금 영겁에 걸쳐 진행되는 의식의 진화를, 나의 진화를 보고 있는 것이다.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속에서 우러나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주변의 모든 걸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물질 몸으로 돌아온다. 사랑과 깨달음의 포근하고 흡족한 느낌이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진다. 처음으로 나는 존재의 목적과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1991년 4월 12일
진동 상태에 들어가자마자 방문으로 이동하는 데 정신을 집중한다. 시야가 좀 흐려서 큰소리로 "선명하게!" 라고 외친다. 곧바로 시야가 밝아진다. 방문을 통과해 앞으로 계속 걸어간다. 문득 집 안을 돌아다니지 말고 내면을 탐험하기로 하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나는 안으로 들어간다." 라고 외친다. 그러자 바로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격렬한 움직임이 몇 초 동안 계속된다. 마치 진공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다. 갑자기 격렬한 움직임이 멈춘다. 이제 나는 바다가 바라보이는 집 앞에 서 있다. 집은 두께 30센티미터, 높이 3미터쯤 되는 나무 기둥들 위에 얹혀져 있다.
아직도 시야가 좀 흐려서 다시 한번 선명하기를 요구한다. 즉시 초점이 잘 맞는다. 집안으로 들어가는 걸 생각하자 그 즉시 집안에 들어가 있다. 주위를 둘러보자 모든 것이 낯익다. 마음도 편하다. 왠비 여기가 내 비물질 집이라는 확신이 든다.
바다를 향한 벽은 유리로 만들어져 있다. 유리벽으로 다가가자 네 귀퉁이가 플라스틱처럼 휘어진다. 과거의 사물들로 채워진 미래의 집이라고나 할까? 가구, 공예품, 카펫 등이 골동품처럼 보인다. 주위를 둘러보자 바다를 향하고 있는, 사자머리 장식이 새겨진 내 흔들의자가 뚜렷이 보인다. 아무리 봐도 여기는 내 미래의 집인 것 같다. 물질적 미래인지 사후의 미래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현실인 것만은 분명하다.
아주 편한 마음으로 유리벽으로 걸어가 바다를 바라본다. 참으로 아름다운 바다 소리다.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아니라 노래처럼 리드미컬한 화음이다. 이건 무슨 멜로디일까 하는 마음에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듣는다. 그러다가 본능적으로 문을 열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널따란 발코니로 나간다. 바다의 노래는 사람을 홀릴 만큼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멜로디가 내 몸과 마음 속 깊이 울려 퍼지는 것 같다. 뭐라 형용하기는 어렵지만, 바다가 사랑을 발산하는 것 같다. 그 아름다운 노래의 진동이 나를 어루만지는 것 같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나는 변화무쌍한 바다의 빛깔에 넋을 잃는다. 전에는 이런 걸 본 적이 없다. 출렁거리며 반짝이는 여러 가지 빛깔이 합쳐져 끝없는 빛깔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낸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수많은 빛깔이 서로 섞여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빛의 합창을 이루는 것 같다.
나는 바다의 진동과 노래에 도취되어 있다. 마음이 너무나 편안하다. 내 모든 것이 바다의 아름다운 노래와 공명하는 것 같다. 바다와 하나가 되고 싶은 충동조차 느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바다에 빠져죽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 갑자기 내 우유부단함이 두드러지면서 내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모든 두려움을 다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다. 이 깨달음을 분석하려 하자 물질 몸으로 돌아가버린다. 온몸이 저린 듯한 느낌이 곧 사라진 다음, 조금 전의 체험을 곰곰이 돌이켜본다.
잘 생각해보니 그 집에 간 게 두 번째다. 첫 번째는 몇몇 사람들과 어떤 모임에 참석했을 때였다. 오랫동안 산 집처럼 느껴지는 집이다. 혹시 내가 태어난 곳이 아닐까? 빛깔과 음악의 바다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바다로 나타난 게 아닐까? 의식의 바다일까? 신에 대한 내 해석일까? 둘 다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 잘 모르지만 해답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1992년 10월 24일
"이제 나는 몸 밖에 있다" 라는 유체이탈의 확언을 5-10번쯤 되뇐다. 잠이 들면서 더 강한 확신을 가지려고 애쓴다. 격렬한 진동이 온 몸에 퍼지는 걸 느끼며 깬다. 정신이 들자마자 방문으로 이동하는 데 생각을 집중한다. 잠시 후 물질 몸에서 빠져나와 방문으로 둥둥 떠간다. 즐거운 마음으로 방문을 통과해 거실로 간다. 주위를 둘러 본다. 나는 지금 첫 번째 에너지체(밀도가 가장 높은)에 들어와 있다. 문득 강한 탐구욕을 느끼고 큰 소리로 외친다. "더 보고 싶다." 라고. 그러자 그 즉시 빠른 속도의 운동이 나를 안쪽으로 끌어당긴다. 진공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잠시 후 새로운 환경 속에 내가 있다. 강렬한 빛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눈이 멀 것만 같다. 본능적으로 그 빛을 가리려 하다가 지금 내 몸은 형체가 없다는 걸 깨닫는다. 나는 팔도 다리도 없는 에너지일 뿐이다. 나는 아무 형체도 없다는 걸 스스로 주지시킨다. 나는 외형적 형체가 없는 빛과 같은 존재이고, 내 시각은 무한하다.
사방에서 순수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빛의 발산만 있을 뿐 형체는 하나도 없다. 나는 순수한 백색광선 기둥처럼 보이는 것으로 끌려간다. 그 빛에 다가가자 강렬한 방사력이 느껴진다. 멈추어 서서 그 빛에 적응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너무 강력한 에너지에 내 외면이 타 들어가는 것 같다. 내 생가과 두려움과 관념 등의 내 외면 자아가 그 빛에 타 없어지는 것 같다. 처음에는 나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온갖 생각으로 자신을 둘러싸보지만, 그 생각들조차 그 강렬한 빛에 타 없어지고 잇음을 깨닫는다. 당황한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빛에 나를 내맡긴다. 그 순간 그 빛이 따뜻한 액체처럼 내 몸과 마음에 스며든다. 나는 빛으로 채워진다. 내 모든 부분이 새로운 주파수로 진동하는 것 같다. 나는 긴장을 풀고 내 몸 구석구석을 흐르는 순수 에너지의 기분 좋은 느낌을 즐긴다.
문득,바로 내 앞에 뭔가 매우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마음속으로 느낀다. 그 빛의 기둥 안에 뭔가 다른 게 또 있다. 하지만 이제는 두렵지 않다. 오히려 그 빛이 뭔지 알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낀다. 가까이 다가가 안을 들여다본다. 그 순수 에너지와 힘은 말로는 형용할 수가 없다. 마치 빛의 파장을 내뿜는 작열하는 태양 옆에 서 있는 것만 같다. 왠지는 모르지만 안전하다는 걸 알게 된 나는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서 그 빛을 만진다. 거센 물살 같은 에너지가 내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홀연 나는 순수 지식의 바다에 들어가 있다. 내 과거와 현재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모든 것이 바로 지금 여기 존재한다. 모든 것이 너무나 간단명료하다. 처음으로 모든 것이 명백하다. 우리의 모든 것과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이미 여기 있다. 나는 우리가 자신을 우리의 근원에서 분리시켰다는 걸 처음으로 깨닫는다.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진정한 현실은 항상 여기 있는데, 우리가 눈을 뜨고 보기를 끈기 있게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는 언젠가는 없어질 물질적 형체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이다. 사랑의 감정이, 모든 것에 대한 깊은 애정이 나를 사로잡는다. 나는 우리 모두가 살아 있는 빛의 바다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우리가 따로따로 떨어져 있다고 느끼는 건 물질적 형체라는 밀도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내 정신과 능력도 또 하나의 임시 표현 수단에 지나지 않음을 이제 알겠다. 모든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 우리는 생각을 초월하고, 시간을 초월하고, 단순한 인과관계를 초월해 존재하는 것이다.
순수 앎의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든다. 내 정신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나는 기쁨에 겨워 무의식적으로 소리친다. "이 순간을 잊지 않을 거야!" 라고. 그 순간 나는 몸으로 돌아가 눈을 뜬다.
꼼짝도 할 수가 없다. 아직 몸과 정신이 완전히 결합되지 않았다. 서서히 온몸이 저리기 시작한다. 1분쯤 지나자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조금 전의 체험을 돌이켜본다. 그 빛의 기둥은 바로 나였다. 또다른 내 일부가 아니라 순수한 나, 내 본질이었다. 우리가 정말 그런 존재일까? 문득 고립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뭔가와 연결되어 있는 느낌이 든다. 나는 모든 걸 한꺼번에 깨닫게 되었다.
우리 인간은 우리가 체험하는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고 우리의 물질 관념에 따라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형체는 실은 다른 뭔가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아닐까? 형체와 물질을 초월해 존재하는 그 무엇. 너무나 순수하고 미묘해 우리 정신이 분류하고 해석할 수 없는 그무엇. 이것을 깨닫는 자체가 우리에게 큰 발전이 될 것이다. 모든 종교적 신념이란 것이 생명의 유한함에 대한 물질적 해석임을 깨닫기만 하면 여러 종교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도 사라질 것이다. 신은 우리의 개별 신학에는 관심이 없는 게 분명하다. 우리의 모든 물질적 신념은 일시적인 형체와 물질에 바탕을 두고 있고, 그러기에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으로 중요한 건 체험이다. 영적 체험. 우주 전체의 목적은 체험인 것 같다.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체험. 다른 건 있을 수가 없다. 개인적인 체험이 바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지혜에 이르는 길임이 분명하다.
1991년 4월 12일
진동을 느끼며 침대 발치로 이동한다. 시야가 좀 흐리고 초점이 잘 안 맞아서 선명할 것을 요구한다. 즉시 의식이 맑아지며 생각이 정연해진다. 기분이 좋다. "내 물질 뇌보다 훨씬 낫군."
문득 내 과거를 탐구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는 무의식적으로 외친다. "내 과거를 알아야겠다." 라고.
그 즉시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면서 낯선 환경에 들어와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모든 것이 파괴되어버린 페허 한가운데 있다. 밑을 내려다보자 길게 뻗은 도로 양쪽의 건물들이 모조리 파괴되어 있다. 잠시 동안 어리둥절해 있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내 상체가 전차의 출입구 뚜껑 밖으로 나와 있다. 나는 지금 다른 사람, 이 군인의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군인의 생각과 감정이 느껴진다.
불타는 건물들과 파편들을 둘러보며 나는 우쭐해진다. 내가 한 일이 매우 자랑스럽다. 나는 독일군 전차부대 지휘관이다. 왠지는 모르지만 여기가 어딘지 알겠다. 나와 내 부하들이 정복한 폴란드 바르샤바이다.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큰 사거리였던 곳에 전차가 멈추어 선다. 주변 전차들의 대포들이 불을 뿜자, 건물들이 무너진다. 기쁘다. 나는 전차의 어떤 장치를 붙잡고 오른쪽에 있는 전차에 명령을 내린다. 내 팔을 보니 검은 색 제복에 뿌연 먼지가 뒤덮여 있다.
그때 갑자기 진공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물질 몸으로 돌아간다. 온몸이 저리는 느낌이 들면서 물질 몸과 재결합된다.
정말 신기한 체험이다. 나는 관찰자가 아니라 참여자였다. 잠시 동안 나는 그 군인이 느끼는 걸 느꼈다. 내가 바로 그 군인이었다. 나 자신에게 실망스럽다. 내가 오만한 독일군 장교였다니…… 내가 전쟁을 몹시 싫어하고 제2차 세계대전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많은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독일군 전차부대 지휘관이 내 지난번 물질 삶이었다면, 그가 지금의 내게는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 걸까?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자신을 되도록 객관적으로 보려고 애쓰자 새로운 사실들을 깨닫게 된다. 지금의 나도 그 독일군 장교처럼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무자비한 건 아닐까? 사람들에게 지시하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내 지시에 복종하기를 기대하는 건 아닐까?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내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는지 궁금하다. 도대체 그 영향이 얼마나 클까? 스스로에 대해 알고자 하면 스스로에 대해 많은 걸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궁금하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삶을 살았을까? 그 전생들이 내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 그리고 그걸 알면 뭘 알 수 있을까?
1992년 12월 7일
진동 상태에 들어가 물질 몸에서 50 센티미터 가량 위로 떠오른다. 더 고주파수의 몸을 체험해야겠다는 생각에 큰 소리로 "나는 나의 더 높은 차원의 몸을 체험한다." 라고 외친다. 잠시 후 나는 새로운 형체로 공중에 떠 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몸에는 활력이 넘친다. 좀더 부드러운 내면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내면 에너지체로 옮겨간 것이다.
그런데 시야가 흐리고 초점이 잘 안 맞는다
. "선명하게!"
즉시 생각이 맑아진다. 몸이 날 듯 가볍고 활력이 넘친다. 그 순간 "다른 차원에 가고 싶다"는 내 목표가 떠오른다. 그러자 그 즉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캄캄한 공간 속을 휙휙 지나간다. 처음에는 그 속도에 두려움이 느껴지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새로운 느낌에 적응한다. 잠시 후 나는 공간 한가운데 떠 있다. 내 몸을 내려다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팔도 다리도 없다. 나는 공처럼 생긴 의식 에너지다. 왠지 전혀 놀랍지가 않다.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팔다리가 불필요한 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나는 천천히 제자리를 돌며 주위를 둘러본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수천 개쯤 되는 빛의 덩어리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것 같다. 빛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난생 처음 보는 이상한 형체가 눈길을 끈다. 안개처럼 뿌연 형체가 아스라이 뻗어 있다. 짙은 안개로 된 거대한 커튼 같은 것이 공간 한가운데 드리워져 있다. 선명할 것을 요구하자 그 안개 같은 형체가 더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한다.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형체가 끝없는 장막처럼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다.
문득 가까이에서 진동 에너지가 느껴진다. 형체도 물질도 없이 강렬하게 발산되는 에너지. 생생한 그림처럼 그 에너지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군데군데 끊기기는 하지만 그 의미는 말처럼 명료하게 전달된다.
"아름답죠?"
누가 말하는지 보려고 고개를 돌리자 강렬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 빛에 눈이 멀 것만 같아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서지만, 그 에너지체가 다시 내게 메시지를 보낸다.
"너무 눈부신가요? 조절할게요."
그 즉시 강렬한 빛이 수그러진다. 하지만 여전히 형체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빛뿐이다.
"당신도 보다시피 나는 형체가 없습니다. 형체는 불필요하죠. 당신들 인간 중에 여기까지, 이렇게 깊이까지 들어오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나는 그 강렬한 에너지에 압도되어 아무 대꾸도 할 수 없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에너지체가 내 마음을 읽고 또 다시 메시지를 보낸다.
"지금 당신 눈에 보이는 건 우주의 수많은 경이 중 하나일 뿐입니다. 저 끝없는 안개 장막은 우주의 여러 주파수를 구분하는 일종의 내면 막 중 하나죠. 여기는 우주의 내면입니다. 멀리 보이는 별들과 은하들은 우주의 껍질일 뿐입니다. 진정한 탐험의 열쇠는 에너지막을 뚫고 들어가는 겁니다. 근원을 향해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당신 내면의 에너지 주파수도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당신 내면의 빛과 일치하는 에너지 장벽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바로 우주 전체의 안정과 구조를 유지하는 장치입니다."
내 머릿속에 들어오는 그림들은 놀라울 만큼 생생하다. 내게 메시지를 보내는 이 존재는 저절로 내 생각을 아는 것 같다.
"모든 의식 에너지(영혼)는 그 진동주파수와 일치하는 에너지 주파수 안에 삽니다. 저 장막은 파장이 서로 다른 에너지들을 분리하는 장치입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모르겠다. 꼭 어려운 수학 수업을 듣는 아이가 돼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내 앞의 에너지체가 또다시 내 생각에 대꾸한다.
"당신은 여기 올 준비가 됐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온 겁니다. 누구나 있어야 할 곳에 있는 법이죠. 나도 당신 같은 때가 있었고, 당신도 언젠가 나처럼 될 겁니다. 우리는 다 함께 원대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나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이 우주에 살고 있는 다른 존재들과 비교할 때 나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의식의 진화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름 따위는 불필요하니까요.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걸 잘 기억하세요. 에너지막에 대한 인식과 탐구는 당신들 인간의 진화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니까요."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메시지의 속도에 약간 당황하며 설명을 요청한다.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럼, 에너지막의 목적은 뭐죠?"
"에너지막은 서로 다른 주파수의 에너지를 분리할 뿐입니다. 당신이 보고 있는 건 서로 다른 두 차원의 접점입니다. 에너지막은 각 차원이 존재하는 토대가 됩니다. 살아 있는 우주의 내부 세포벽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럴 수가……"
"아직 볼 게 많습니다. 당신의 탐험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무슨 뜻이죠?"
"곧 알게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머잖아 알게 될 거예요."
나는 세차게 흔들리며 물질 몸으로 돌아온다. 몸과 영혼이 잘 안 맞는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20초쯤 지나자 육체적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1993년 11월,
나는 급성폐렴에 걸려 꼬박 열흘 동안 침대 신세를 졌다.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먹지도 못하고 하루에 12시간씩 잠만 잤다. 그렇게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유체이탈 체험에서 뜻밖의 극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잠이 들기만 하면 내가 물질 몸 위 또는 가까이에 떠 있는 것이었다. 병이 진행되면서 유체이탈이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병세가 심화되면서 물질 몸과 비물질 몸의 연결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상태가 가장 악화되었을 때와 그 뒤의 며칠 동안 오히려 나는 난생 처음 맛보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저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하는데도 물질 몸이 잠들기만 하면 저절로 유체이탈이 이루어졌다. 물질 몸과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나는 내 물질 몸을 비물질 탐험을 위한 일종의 기준점 또는 집결지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일주일 넘게 자유자재로 물질 몸과 비물질 몸을 드나들게 되자 물질 몸이 거추장스럽지만 필요악으로 여겨진 것이다.
또한 이때 연속 유체이탈 체험을 많이 했다. 보통 두 번에서 다섯 번까지 저마다 다른 체험이 연속으로 이루어졌다. 유체이탈 시간은 짧게는 30초에서 길게는 몇 분까지 매우 짧았지만, 그 중 몇 번은 어떤 한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났다. 이를테면, 어느 날 오후 전생 퇴행에 관한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는데, 거의 즉시 진동이 느껴지면서 물질 몸 위에 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둥둥 떠다니며 문득 전생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자 그 즉시 빠른 속도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1993년 11월 29일
나는 어떤 성의 서역 위에 서 있다. 성벽 밑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며칠 동안 계속된 전투로 나는 지쳐 있다. 지긋지긋하다. 나는 중세 시대의 군인이다. 우리는 두 달이 넘도록 적에게 포위되어 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서로 싸우는 걸까?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난생 처음이다. 지난 5년 동안 나는 수많은 전투를 치르며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이제 신물이 난다. 지금 나를 지탱해주는 것은 자부심과 의무감뿐이다. 20년 동안 왕에게 충성을 바친 결과, 지금 내게 남은 건 칼 한 자루와 갑옷뿐이다. 주위를 둘러본다.
지금 이 상황이 놀라울 만큼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그저 관찰자가 아니다. 이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고통과 실망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 사람이 나처럼 느껴지지만, 내가 아닌 것도 안다. 무의미한 승리로 채워진 삶에 대한 고뇌와 혐오가 느껴진다. 이제는 의무와 명예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걸 알겠다.
삶에는 그 이상의 것이 있음을 알겠지만, 내가 아는 것이라곤 무기와 전술뿐이다. 갑자기 몸이 흔들리면서 등에 격렬한 통증과 압박감이 느껴지고, 의식이 희미해진다. 그 순간 온몸이 저리는 느낌이 든다. 물질 몸으로 돌아온 것이다. 다시 물질 몸 위에 떠 있는 것을 생각하자 즉시 물질 몸에서 빠져나온다. 정신이 놀랍도록 맑고, 생각이 정연하다. 조금 전 그 군인 체험의 의미에 대해 곰곰 생각해본다. 그러자 의식이 더욱 더 맑아지면서 빠른 속도로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잠시 후 나는 전혀 다른 환경에 와 있다.
나는 돌바닥에 앉아 있다. 사방에 까까머리 승려 수십 명이 앉아 참선을 하고 있다. 왠지는 모르지만 내가 승려라는 걸 알겠다. 그윽한 향냄새가 나고 종소리와 리드미컬한 영창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나를 포함해 40명쯤 되는 승려들이 제단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있다. 제단 한가운데에서는 엷은 향이 피어오르고, 열두 살쯤 된 까까머리 동자가 커다란 향로를 들고 영창을 하며 우리 둘레를 돌고 있다. 동자는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 것 같다. 내가 내 일부인 듯한 경구를 나지막이 읊조리며 몸을 앞뒤로 가볍게 흔드는 것이 느껴진다. 우리는 주황색 가사를 입고 있다. 내 손을 내려다보니 내 나이가 아주 많다는 걸 알겠다. 손과 손목이 가늘고 연약하다. 나는 모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내 삶에 만족하고 있다. 내 마음은 평화롭다.
그리고 이제 곧 내가 죽으리란 것도 알고 있다. 가벼운 움직임을 느끼며 나는 침대로 돌아온다. 물질 몸 안에 있긴 하지만 마치 몸 안에서 떠 있는 것처럼 몸과 잘 맞지 않은 상태다. 조금 전의 그 승려 체험의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데 또다시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몹시 춥다. 몸과 정신이 마비된 것처럼 아무 느낌도 없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내 친구들과 전우들의 얼어붙은 시체가 사방에 널려 있다. 땅이 얼어붙어 묻을 수가 없는 탓에 그냥 내버려져 있는 것이다. 내 전차도 얼어붙은 무덤이 되어 있다.
내 몸과 정신은 이전 자아의 부서진 빈 껍데기다. 나는 이미 삶의 의지를 잃어버렸다. 3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몰골이 흉한 병사 둘이 죽은 병사의 군화를 벗기는 것이 보인다. 내 옆에 쓰러져 있는 친구가 다 죽어가면서 뭐라고 중얼거린다.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아 귀를 갖다 대본다.
"제발 날 좀 죽여줘."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용기도 없고 몸을 움직일 힘도 없다.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나는 곧 죽을 것이다. 멀리서 폭발음이 들린다. 곧 소련군이 올 것이다. 두려움도 증오심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눈을 감고 무의식 상태에 빠진다.
의식이 현실을 창조한다는 것은 결코 억지가 아니다.
------------------- 제2부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