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대로 그렇게 (휘버스)(Fevers)
내 사랑하는 그대여 정말 가려나
내 가슴 속에 외로움 남겨 둔채로
내 사랑하는 그대여 정말 가려나
내 가슴속에 서글픔 남겨둔 채로
떨어지는 저 꽃잎은 봄이면 피지만
내 사랑 그대 떠나면 언제 오려나
날아가는 저 철새도 봄이면 오지만
내 사랑 그대 떠나면 언제 오려나
그대로 그렇게 떠나간다면
난 정말 어찌하라고
그대로 그렇게 떠나간다면
난 정말 울어버릴 걸
오! 그대여 한마디만 해주고 떠나요
지금까지 나를 정말 사랑했다고
오! 그대여 이 한마디 잊지는 말아요
나는 오직 그대만을 사랑한다는 것.
........ 간 주 .......
그대로 그렇게 떠나간다면
난 정말 어찌하라고
그대로 그렇게 떠나간다면
난 정말 울어버릴 걸
오! 그대여 한마디만 해주고 떠나요
지금까지 나를 정말 사랑했다고
오! 그대여 이 한마디 잊지는 말아요
나는 오직 그대만을 사랑한다는 것.
오! 그대여 한마디만 해주고 떠나요
지금까지 나를 정말 사랑했다고
오! 그대여 이 한마디 잊지는 말아요
나는 오직 그대만을 사랑한다는 것.
■ 정원찬 작사. 정원찬 작곡
■ 휘버스(Fevers) : 1978년 이명훈(보컬). 문장곤(베이스). 정원찬(키보드). 송용섭(드럼). 김흥수(기타) 등으로 결성된 그룹 사운드이다. 1978년 TBC 라디오(동양 방송)에서 주최한 제1회 TBC 해변 가요제에서 그대로 그렇게(1978) 노래로 인기상을 수상한 바 있다. 활동 당시에는 영어를 금기시 하던 때라서, “Fevers” 그룹이라고 표기하면, 안 되었다. 그래서, 한글로 휘버스 혹은 열기들 이라고 불렀다. 그 당시, 가수 구창모가 속했던 “Black Tetra”는 "열대어"로 불렀고, 가수 배철수가 속했던 “Run Way”는 활주로 등으로 불렸다. ★ 대학교 동아리로 구성된 밴드로 이명훈을 중심으로 활동을 해오다가 멤버들의 군대 입대로 문제로 해체가 되었다. 이후 이명훈은 솔로로 활동하며 사랑을 받았다. 보컬 이명훈의 바이브레이션 가득한 여린 목소리가 대중 감성에 딱 들어 맞았기 때문에 큰 인기를 끌었다. ★ 1977년 09월 처음 개최된 “MBC 대학 가요제”에 자극받아서 1978년 출발된 제1회 “TBC 해변 가요제”는 2회부터는 'TBC 젊은이 가요제'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1980년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으로 TBC가 KBS에 통합되면서 '국풍 81 젊은이 가요제'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 그 당시, 아마추어 밴드들은 자기 멤버들 집에서 겨울 솜이불로 창문을 틀어막고 연주하다가 이웃 주민들의 신고에 의해 ‘고성방가 수면 방해죄’로 파출소에 끌려가는 수난의 연속이다. 휘버스 멤버들도 그룹 밴드 시절에 이 과정을 거쳤다. ★ 그 당시, 그룹 사운드들이 발표한 독집 앨범 중에서 ‘휘버스’ 음반을 최고로 인정해 주었다. 그 이유는 수록된 곡이 히트를 많이 한 것도 있지만. 레코드판 음반 녹음 수준이 최고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레코드판 음반 녹음은 대부분 조잡한 음향 시설에서 돈 많이 들이지 않고 대충 만들어 내 놓아도 수십만장 팔리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휘버스’ 음반을 제작한 서라벌 레코드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서라벌 레코드 사장님은 녹음하기 직전 멤버들에게 짜장면을 사주면서 “너희는 음악인이지만, 나는 장사꾼이다. 그러나, 나는 음악을 파는 장사꾼이지, 음반을 파는 장사꾼은 아니다‘ 라고 하면서 한강 녹음 스튜디오에 롤랜드 스트링 키보드(Roland String Keyboard)를 갖다 놨다. 기존의 녹음실에 있던 키보드가 풍금 소리 정도 낸다고 하면, 이 장치는 현악기, 관악기 소리까지 내면서 사운드를 풍부하게 만드는 최고의 키보드 장치였다. 그 덕분에, 휘버스 독집 앨범은 최고의 명반 대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