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할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구도자('나'라는 개인)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야 할 곳이 아무데도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 모든 영적 행로는 자취를 감춘다. 기술이나 방법을 쓴다고 하는 것은 ‘해탈’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데 기인하는 것이다. 이미 이곳에 있는데 ‘그것’을 향해 움직여 가야 한다는 것과 영적 기술을 발휘할 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존재하기를 연습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연습해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습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것 또한 쓸데없는 일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도 똑같이 쓸데없는 짓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도 또 하나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권할 수가 없다. 지금 이곳에 있도록 노력하라는 것, 평범하게 되라는 것이나 존재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것도 권할 수가 없다. 나는 당신을 향상시키는 데나 ‘그것’을 위해 더 잘 준비를 시킬 생각도 없다. 당신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은 하나의 유령일 뿐이며, 당신의 진짜 존재인 “당신”은 이미 ‘그것’이기 때문이다.
“깨달은 사람”이라는 말부터 성립되지 않는 것이, ‘해탈’이나 ‘깨달음’이 이뤄지려면 먼저 그 인물이 사라져야 하는 것 아닌가?
과거, 미래뿐만 아니라 “현재”라는 것도 없는 것이야. “지금”이라는 것도 없는 것이야.
인생이라는 것도 없어. 아무것도 없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의식('그것')뿐이야. 그리고 그게 바로 당신이지.
We just look at "what is here," and see behind this "where am I in what is here".
What we are from this perspective is pure awareness. We are the light that allows perceptions to come up and disappear again.
그저 "여기에 무엇이 있는가"를 보고, 그 너머 "여기에 존재하는 것들 속에서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낼 뿐입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본성은 순수한 알아차림입니다. 현상들이 나타나게 하고 다시 사라지게 하는 빛이 바로 우리인 것입니다.
시간으로도 공간으로도 경계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있고 어디에나 있는 것이지요. 누구고 아무것도 여기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거듭 말합니다. 누구도 아무것도 여기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것’이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전파될 수 있겠습니까?
초월적 경험이니, 집단명상의 에너지니, 영적 통찰력이니, 절정의 경험이니, 개인적 성장이니, 평화의 느낌이니, 사랑의 감각이니, 하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 모두 다 대단히 신나거나 재미있는 것일 수 있지만, 내가 책과 강연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스승 안에도 사는 인물이 없고 구도자 안에도 사는 인물이 없어요. 그런데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까?
출처 :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This Is It : The Nature Of Oneness)", 얀 케르쇼트(Jan Kerssc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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