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적으로 우리의 본성을 가리켜 보이기 위해서는 사용되는 개념에 관해서 명확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앎(awareness)과 앎의 내용(content)이라는 두 가지 동시적인 측면과 더불어 ‘의식(Consciousness)’, 하나임(oneness), 전체(wholeness)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 두 가지 측면(앎과 앎의 내용)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즉 그것은 하나이다. 앎은 앎의 내용으로 현재 나타나는 모든 것을 알아차리거나 인식하는 것이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모든 것의 알아차림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알아차림과 내용물은 같은 것으로서 하나임이다. 앎 안에서 모든 것이 내용물로 나타난다. 어떤 것도 아닌 것(no-thing) 속에서 나타나는 모든 것(every-thing)인 것이다. 우리는 앎의 내용을 이미지(시각 이미지, 소리, 생각, 느낌, 감정 등등)라고 말할 수 있다.
보통 ‘의식’, 하나임의 앎의 측면을 간과할 수 있다. 앎의 내용, 드러난 이미지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특징(전통적으로 마야(maya, 환영)라고 부르는)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내용으로 나타나는 생각 이미지 중 하나로 첫째가는 “나”라는 생각이 있다. 이 “나”라는 생각은 신체 이미지와 결합하여 생겨나는데 인격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이 “내”가 사실이라고 간주될 때 모든 생각들은 “나의” 생각이 된다. 그리고 일련의 떠오르는 생각들(“나의” 생각으로 간주되는)은 정신적인 자아의식 또는 마음(mind, 불교에서 佛性과 우리의 본성으로 불리는 마음과는 다른 의미이다)으로 불린다.
이러한 생각들은 만화책에서 메시지가 기재된 말풍선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우리 본성의 앎의 측면을 간과하고 내용물에 초점을 맞추고 푹 빠져있을 때(다시 말해 인격(character, 배역)과 동일화 되었을 때) 생각 풍선의 메시지들은 실재하는 이야기로 보인다. 그러므로 그 내용물이 앎 속에서 현재 사실인 것처럼 떠오르더라도 생각 스토리에 푹 빠져 있는 것은 현존(presence) 으로부터 분리됨으로, 상상속의 과거와 미래로의 외연 확장으로, 인격(배역)의 스토리로 나타나게 된다. 기억과 기대, 과거와 미래는 사실 지금 떠오르는 생각에 불과한 것이다.
인격과 동일화될 때 전부와의, 겉보기에 다른 것으로 보이는 것과의 분리감이 생긴다. 특별한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는 느낌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분리감과 더불어 하나임인 우리 본성의 직관(intuition)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 차이가 삶이라는 연극에서 하나임을 추구하는 동기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원래 하나임 또는 전체만이 있을 뿐이다. 오로지 하나임의 내용적인 측면에만 집중하여 빠져있을 때에는 하나임을 추구하게 된다. 이것이 삶의 연극이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있는 하나임인 것이다. 하나임이 하나임을 찾고 있는 것이다.
스크린 위에 나타나는 영화의 비유는 여기에서 유용하다. 영화는 내용이고, 스크린은 앎이다. 그 둘은 함께 하나이다. 이 스크린은 다차원의(multi-dimensional) 스크린이고 영화는 스크린 위에서 나타난다. 모든 것은 다차원 스크린의 배경위에서 나타난다. 그리하여 이 영화 속에서 ‘의식'-전체-하나임은 항상 모든 형태로 자기 자신을 지각, 인지하는 것이다.
의식은 모든 것으로 내재하여 나타난다. 하나임은 이미 당신의 본성이다. 하나임인 ‘당신’은 모든 형태의 ‘당신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이 생각 스토리에 매몰되어있음으로 인해 간과된다. 소위 “영적 구도” 또는 비이원(non-duality)의 이름 아래 하나임의 추구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만족감, 살아나가는데 안락한 자리, 만족스러운 직업을 추구하는 모든 형태의 추구행위, 이 모든 것은 하나임과 전체를 추구하는 행위이다.
앎의 내용으로 현재 나타나는 것이 하나임의 현재 모습이며 오늘 자신의 본성을 찾아 이 방을 꽉 채운 등장인물들(character)인 것이다. 하나임은 이 방과 모든 등장인물에 내재되어 나타나게 되는데, 미래에 일어날 일로 소위 깨어남(awakening)을 계획하고 자기 자신을 찾고자 하는 생각 스토리에 몰두해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이미 100%의 깨어있음(awakeness)이 존재할 뿐이다. 앎과 앎의 내용이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내재하여 나타나는 하나임은 자기 자신의 생각 스토리에 의해서 최면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일 뿐이다.
출처 : "Already Awake", Nathan G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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