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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성남(모란) 영화관에서 건국전쟁 영화를 보았다(09:17 ~10:57)
건국전쟁(다큐멘트리)영화
- 건국전쟁 포스터-
◈ ◈ ◈ 다큐멘트리 영화감독 김덕영이 2020년 다큐멘트리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을 촬영하였는데, 이 영화는 6.25 당시 북한에서 5천 여명의 전쟁 고아들을 동유럽 국가의 가정에 입양시켰는데, 동유럽 국가로 보낸 전쟁 고아들의 삶을 이야기 한 것이다. 특히 루마니아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북한 남자 선생과 루마니아 여성의 사랑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 ◈ ◈ 그후 약 4년만에 김덕영 감독이 이번에는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이야기하는 건국 전쟁을 촬영하여 2024년 1월 22일 시사회와 2월 1일 부터 전국 영화관에서 절찬리에 상영 중 이며, 2월12일 현재 영화관에서 상영 중이다.
1954년 미국 뉴욕 맨해튼 '영웅의 거리' 에서 카프레이드를 하는 이승만 대통령
1965년 이슴만 전 대통령이 하와이에서 사망하여 시신을 운구하는 해군장병들
1904년 11월 미국으로떠나기 전 서울의 기쿠다마코토(菊田眞)라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 왼쪽부터 이승만의 맏누나(우태영의 부인). 이승만의 아버지 이경선옹. 이승만의 아들 봉수(앞줄 어린이) 아들 뒤편에 생질 우종구(우태영의 아들). 이승만. 이승만의 첫째 부인 박승선. (이승만은 15세때 박승선과 결혼하여 아들 봉수를 낳았으나 봉수 (프란체스카 난중일기P404 아들 이름이 '태산' 이며 필라델피아의 한 병원에서 전염병으로 격리 되었다가 14살에 죽었고), 부인 박승선과는 성격 차이로 이혼을 하였다고 한다. -출처 :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비전-
1919년 4월 11일 이승만을 국무총리로 선거한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명장. 이 임명장은 대한민국 임시 의정원 의장 이동녕의 명의로 발급되었다. -출처 :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비전-
1920년 12월 28일 상하이 교민단이 베푼 환영회에 참석한 이승만 '임시대통령 각하'(가운데). 서 있는 사람들 왼쪽부터 손정도, 이동녕, 이시영, 이동휘, 이승만, 안창호, 박은식, 신규식, 장붕. -출처: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비전-
1921년 1월 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임시 의정원 신년 축하식 기념 사진. 임시 대통령 이승만은 둘째줄 가운데에 앉아있다.
맨앞줄 왼쪽에서 세번째에 경무국장 김구의 모습이 보인다. -출처 :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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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패망 하는 것은 나라안에서 분열하기 때문이다.
일제하의 36년 동안 나라없는 쓰라린 경험이 있음에도 각성하지 못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행동을 언제 바르게 할 수 있을까?. 정말 한심한 노릇이다.
1950년 6월25일 소련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의 북한군이 남침을 하였을때, 유엔군 파병을 위한 미국을 중심으로한 자유 우방국이 나라가 일본에 병합되었다가 해방되어 지구상에서 이름도 모르는 新生國 대한민국을 위해 안전보장 이사회를 소집하였을 때, 안전보장 상임이사국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당시는 장개석의 자유중국), 소련] 의 회의 소집시, UN안전보장 상임이사인 소련 대표가 탄 승용차가 고장으로 상임이사국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여,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 우방 16개국 유엔군이 참전하여 대한민국이 공산화 되지 않았습니다. "하늘이 도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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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자유중국(장개석)이 공산당 모택동에게서 패망하여 자유중국 정부를 대만으로 옮기고 중국 대륙은 공산정권(모택동)이 점령하여 UN안전보장 상임 이사국인 자유중국이 해임되고, 1952년 부터 공산 국가인 중국이 상임 이사국 으로 바뀌어서, 소련의 침략으로 전쟁중인 "우크라이나" 를 유엔군이 참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전보장 상임 이사국의 거부권을 두나라 [중국, 소련(러시아)]가 거부하기 떄문이며, 1950년 남침한 북한이 남침을 1952년 이후에 하였다면, UN상임이사국 중(중국과 소련)이 거부권을 행하여 대한민국은 공산화 되었을 수 있습니다. "하늘이 도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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