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
이기철
주막은 주막이 아니라 酒幕이라 써야 제격이다
그래야 장돌뱅이 선무당 미투리장수가 다 모인다
그래야 등짐장수 소금쟁이 도부장수가 그냥은 못 지나가고
방갓 패랭이 짚신감발로 노둣돌에 앉아 탁주사발을 비우고 간다
그래야 요술쟁이 곡마단 전기수들이 주모와 수작 한 번 걸고 간다
酒幕은 으슥으슥 해가 기울어야 제격이다
번지수가 없어 읍에서 오던 하가키가 대추나무 돌담에 소지처럼 끼어 있어야 제격이다
잘 익은 옥수수가 수염을 바람에 휘날려야 제격이다
돌무지 너머 참나무골에는 여우가 캥캥 짖고
누구 비손하고 남은 시루떡 조각이 당산나무 아래 널부러져 있어야 제격이다
시인 천상병이 해가 지는데도 집으론 안 가고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 손바닥에 시를 쓰고
그 발치쯤엔 키다리 시인 송상옥이 사흘 굶은 낯으로 통기타를 쳐야 제격이다
주막은 때로 주먹패 산도적이 공짜술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아야 제격이다
주막, 주먹 왈패 풍각쟁이 벙거지들이 다 모인 酒幕
지까다비 면소사 고지기 벌목장들이 그냥은 못가고
탁주 한 잔에 음풍농월 한 가닥 하고야 가는 酒幕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인생에 진 사람들이
인생의 얼굴을 몰라 아예 인생이 뭐냐고 물어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무명베옷 기운 등지게 자락을 보이며 떠나가는 酒幕
-미네르바 2009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