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 살랑 불면 어떻게 알고 하늘은 저렇게 높아져 있는 걸까.
높은 하늘 사이로 뭉게 구름 피어나듯 가슴에 묻어 두고 살았던 그리움이 들국화 향기되어 사방에서 날아든다. 이럴 땐 어디로든 무작정 떠나고 싶다. 들국화 향기 날아온 그곳으로. 총동문회 갔다가 친정까지 다녀오면 초가을에 찾아든 이 짙은그리움 조금이나마 엷어 지려나?
8월 31일 이른 아침. 양재역 서초구민회관 앞에는 한껏 멋을 부린 중년의 여인들이 여기저기서 웅성대고 있다. 조금은 들뜨고 상기된 모습으로. 오전 9시 버스 3대에 나눠타고 드디어 목포를 향해서 출발. 마음은 벌써 파란하늘에 흰구름 되어 두둥실 뜬 기분이다. 목에는 각자의 이름표를 걸고,제일여고인이란 공통 분모 하나로 처음 본 사람들이 많은데도 너무도 정답고 친근한 그녀들. 선배님 후배님 정다운 친구들. 올해는 15회 후배님들이 마련한 자리란다. 정성껏 준비한 김밥과 간식거리 예쁜 메모까지 살짝 넣어둔 떡. 먹기도 아까울 정도다. 이어서 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게 9회 선배님의 재치있는 진행으로 우리들은 하하 호호 배를 잡아가며 웃었다. 노래자랑도 이어지고 그 중 합창으로 함께 불렀던 '친구'라는 노래 가사 중 "친구야 친구야 우리집 가까이 살았으면 좋겠네.란 노래가사와 '중년'이란 노래에서 '훨훨훨 떠나보자 떠나가보자.우리 젊은 날의 꿈들이 있는 그곳으로'란 부분에서 코끝이 찡해옴을 느낀다.
미래를 꿈꾸며 낭만을 찾기에는 너무도 버거웠던 그 시절. 낯설고 물설은 타향에 와서 자취하며 공부에 적응할라 교칙 엄수하랴 힘들고 우울했던 날들 속에서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몇몇 친구들이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던 시간들이었다. 그 추억을 함께 했던 친구들을 보러 가는 이 시간, 진정 우리가 중년이 되고 보니 갈수록 그 시간들이 그립고 더 애틋해져만 간다.
2시 넘어 목포에 도착하니 맛있는 순두부집에 점심이 잘 차려져 있었고 식사 후 모교 방문할 사람들은 3호차에 타란다. 그런데 친구들은 모두 모교 방문에는 시큰둥한 표정들이다. 우리가 다니던 교정이 아니라서 추억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한 친구가 잡풀이 무성하고 폐교가 되어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다녔던 그곳에 가야 모교 같은 기분이 들더란 말이 공감이 간다.난 친정붙이 하나 없는 친정집 같을 그 곳을 차마 갈 용기가 나지 않아 모교 방문은 포기했다.
오늘의 행사가 마련된 신안비치호텔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선후배님들이 와 계셨다. 식이 진행되고 교가를 소리 높여 부르는데 또 가슴이 뭉클해진다. '세기의 주인인 큰아기들이 배우며 자라라는 목포 제일여고', 그 갈래머리 소녀들이 어느새 중년을 넘어 초로의 노인들이 되어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이렇게 한 자리에 다시 모일 수 있음에 감사함과 세월의 무심함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각 기수별로 장기자랑이 이어지고 비롯 몸은 세월을 비켜갈 수 없지만, 마음만은 나이를 잊은 그녀들이 다시 소녀가 되어 한바탕 잔치를 벌였다. 준비에 애쓴 15회 후배님들 정말 고생이 많으셨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까지 들려서 보내시느라 더욱 부담이 컸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자리를 빛내기 위해 함께 해주신 선배님들 은사님들 모두 모두 건강하시길 마음 속으로 빌면서 자리를 떴다.
모든 행사 일정이 끝나고 동기들끼리 숙소로 이동하려고 밖으로 나왔다. 초가을 상쾌한 바람과 멀리 보이는 목포대교의 불빛. 바다는 마치 강물처럼 잔잔히 일렁이고 건너 고하도의 숲속 조명 불빛이 밤벚꽃처럼 운치있다. 아~~목포가 이렇게 아름다운 항구도시였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며 그냥 차를 타고 쌩 가버리기엔 너무나 아름다워 우리들은 숙소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밤길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살아가며 이런 시간들을 자신에게 선물 할 수 있음에 또 한번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동기들이 마련한 숙소에 찾아가니 정말 입이 떡 벌어질만큼 아름다운 곳에 숙소를 정해놓았다. 삼학도가 보이는 6층짜리 페밀리호텔.옥상에서 바베큐 파티에 살아있는 전복을 한 하나씩 통째로 먹었다 . 어떻게든지 친구들에게 고향 음식을 하나라도 더 먹여보려고 애쓴 목포친구들의 마음이 담긴 음식들. 생고기를 고추장 소스에 찍어서 한 입, 광양에서 가져온 기정떡, 알맞게 익은 열무김치와 배추김치,말랑하고 달달한 무화과, 소주 맥주에 이어 순수 담근 쑥주에 복분자. 산해진미가 모두 모여 있었다.나중에 찾아온 친구는 국산 쥐포까지. 삼삼오오 이야기꽃이 피기도 하고 각자의 끼를 살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깊어가는 밤하늘보다 더 깊은 우정으로 꽃을 피우며 새벽녘까지 지칠 줄을 모르고 놀았다.
이튿날 아침, 6시에 일어나 여섯 명은 유달산으로 향했다. 즉흥 산행이라 복장들이 볼만하다. 굽높은 샌들을 신은 친구, 욕실화 신고 선그라스 끼고 나선 친구, 청반바지에 구두까지. 그러면 어떠리오. 우리들은 두려움을 모르는 중년의 아줌마들인 것을. 그 복장으로도 우리들은 용감하게 마당바위 거쳐 일등 바위에 올라다 소요정 정자에 잠시 머물고 있는데 15회 후배님들이 다른 코스로 올라와 그곳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 우리들은 다시 이등바위까지 갔다 유달산 종주를 하고 하산했다.
산행 후 땀으로 젖은 옷을 우리들은 흉허물없이 다 벗어버리고 셋이서 알몸이 되어 욕실에서 개구장이들 처럼 낄낄대며 씻기도 했다. 말 그대로 깨복쟁이 친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 사이에 아무것도 가릴 게 없이 내 전부를 보여 줄 수 있다는 것, 바르고 그리고 덮씌우지 않고 민낯을 보여주고 거기다 알몸을 보이고도 부끄럽지 않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참 좋다. 마치 피를 나눈 혈육 같은 느낌이다.
준비 된 아침 식사를 하기 전 막간을 이용해 김대중 기념관에도 잠깐 들렀다만 왔다. 그리고 모두는 짐들을 챙겨서 숙소를 나왔다. 밤새 먹고 남은 떡은 각자 나눠들고, 아점으로 민어회와 맑은국 (민어지리)로 잘 차려 있는 식당으로. 본인은 일이 있어 이 자리에 못 참석한다면서도 친구들에게 식사를 대접해 준 친구, 식사할 때 맛보라고 보내온 친구가 담근 간장 게장맛은 일품이었다. 혈육이 아니고야 어디가서 이렇게 마음이 담기고 정이 묻어나는 식사를 해볼 수 있을것인가. 친구만이 해 줄 수 있는 정성에 또 한 번 감동할 뿐이다.
한 번씩 내려오면 이렇게 거한 대접을 받고 떠나니 은근히 부담도 된다. 마지막으로 장소를 옮겨 커피까지 대접 받고 버스에 오를 때는 무화과 한 상자씩까지 손에 들려 보내 준 친구들. 이렇게 자꾸 가슴이 뭉클해지다가는 친구들 자주 만나다 보면 내 가슴 혹시 너무 말랑해져 각박한 서울 생활하는데 지장이 오지 않을까 염려가 될 정도이다. 하기사 뭐든 딱딱하게 굳어버린는 게 병이지 말랑거리는 건 병이 안 될거니 다행이긴하다.
이제 모든 일정은 끝나고 너무 고생만 시킨 우리 목포 친구들 얼굴이 핼쓱해진 것 같다. 이제 다시 떠나 보자. 가슴 가득한 행복감을 안고 친정집으로.
그 가난했던 시절 어려운 살림에 목포까지 유학 보내 주셔서 내가 제일여고인의 한 사람으로 자리 매김 할 수 있도록 애써 주신 우리 부모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떠나야겠다.
또 다시 찾아 가보자. 언제나 내 그리움의 원천이 시작되는 그곳으로.
첫댓글 2013년
15기 행사때
대단했음
행사 다음날
일요일 아침에
재경팀들은
신안비치호텔.숙박 하고
2기.13기.15기
일등바위..산행을 했음
그때.그시절이야기...11년전 이야기.ㅎ
15회 !
멋져요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