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eb(동사형은 treiben)과 어원이 같은 영어 단어는 drive라고 한다. 제임스 스트라치는 그럼에도 Trieb를 instinct로 번역했다. drive가 Trieb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이유에서였다.(스트라치의 입장에 대해서는 Standard Edition 제 1권의 xxiv쪽의 Trieb 항목을 보라.) 하지만 그렇다면 instinct는 Trieb와 같은가? 이것은 많은 논란이 되었고 이제는 drive라는 번역어가 instinct라는 번역어에 대한 승리를 쟁취한 것 같다.
하지만 열린책들에서 나온 전집에서는 스트라치를 따라서 ‘본능’이라고 번역했다. 그 후 ‘욕동’이라는 번역어가 유행했다가 이젠 ‘충동’이란 번역어로 굳어지는 추세인 것 같다. 그 외에도 ‘추동’이란 번역어를 고려하는 사람(이성민님)도 있었으며 나는 엽기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번역을 포기하고 그냥 음차를 해서 ‘트리프’로 해볼까도 생각해 보았다.
문제는 나로서는 ‘충동’이란 번역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시대에 뒤진’ ‘욕동’을 고집하고 싶다. 다음은 그에 대한 나의 변이다.
일단 이 사건에 휘말린 피해자들인 독일어 용어들에 대해 우리집에 있는 독일어-한국어 사전(MinJung Essence Deutsch-Koreanisches Worterbuch)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들어보자.
Trieb : 충동, 욕구, 본능, 경향, 성향, 의욕, 성욕, 정욕, 싹, 어린 싹, 어린 가지, 발아, 생장, 생장력, 구동기어, (시계의) 작은 톱니바퀴, 그리고 고어로는 다음을 뜻하기도 한다. 가축몰기, 목장, 가축 통로, 목장 사용권, 방목권, 짐승떼, 가축떼
Impuls : 충격, 자극, 추진력, 동인, 충동, 전기충격, 임펄스, 충격량
Regung : 미동, 활동, 운동, 흥분, 동요, 감동, 충동, 자극
Zwang : 강제, 억압, 위협, 강요, 구속, 속박, 부자유, 억지, 영향력, 마력, 필연성, 불가피성, 구속력, 의무, 폭력, 폭력 행사, 강압, 생리적 충동, 본능적 충동, 강박, 강박 관념, 사슴의 발자국, 그리고 고어로는 징병구, 조합, 길드 등을 뜻하기도 한다.
스트라치는 Trieb를 instinct로 Impuls를 impulse로 번역했다. 그리고 Regung도 impulse로 번역했다(항상 impulse로 번역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Impuls는 impulse와 ‘충동’으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트라치는 Regung도 impulse로 번역했는데(예를 들어 Triebregung을 ‘instinctual impulse’로) 내 생각에는 부적절한 것 같다. Regung에서는 오히려 흥분의 측면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따라서 나는 Triebregung을 ‘욕동흥분’으로 번역하고 싶다. 홍준기님은 이것을 ‘충동자극’으로 번역했다. Regung을 ‘자극’으로 번역한 것이다. 하여튼 Regung도 그 나름대로 골치아픈 용어이다. 흥분, 충동, 자극을 모두 뜻하기 때문이다.
Zwang에도 충동이라는 뜻이 있으며 어떤 때는 프로이트가 그런 뜻으로 사용한 듯한 곳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Zwang을 ‘충동’으로 번역할 수는 없다(예외적으로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물론 Zwang과 Impuls에 비해 Trieb과 Impuls는 훨씬 더 닮았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분명히 Trieb과 Impuls를 상당히 다른 의미로 사용했으며 따라서 그 둘은 구분되어서 번역되어야 한다. 만약 Trieb를 충동으로 번역하고자 한다면 Impuls에 대한 번역어를 찾거나(그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아마 ‘추동’이 가장 유력한 후보이겠지만 Impuls는 역시 ‘충동’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스트라치의 방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스트라치는 Trieb와 Instinkt를 모두 instinct로 번역했기 때문이 그것이 Instinkt의 번역어일 때는 일일이 각주에 표시를 해 주었다. 프로이트는 Instinkt란 단어를 여섯 번 정도 사용했다고 한다.
내가 ‘욕동’이란 번역어에 흡족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로서는 대안이 없다. 도저히 ‘충동’이란 번역어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욕동에는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신조어라는 것이다. 만약 욕동이란 단어가 이전부터 있었다면 기존의 뉘앙스와 Trieb의 충돌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욕동은 신조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Trieb의 뉘앙스를 훨씬 수월하게 대입할 수 있다. 그리고 욕동의 ‘욕’자도 그리 나쁜 것 만은 아니다. Trieb에는 정욕, 성욕이라는 의미도 있으며 아마도 프로이트는 이런 의미를 한 구석에서는 염두에 두고 Trieb란 단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욕동으로 번역하든 충동으로 번역하든 새싹, 발아, 생장의 측면은 희생된다. 이는 기발한 번역어를 찾아내거나 만들어내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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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서도 이 단어(Trieb)는 여전히 문제거리인 것 같다. <정신분석학적 대상관계 이론>를 번역한 이재훈 님은 Trieb를 욕동으로 Lebenstrieb를 삶 본능으로 Todestrieb를 죽음 본능으로 번역했다. 이 글은 원래 영어로 쓰여졌으며 아마도 원문에는 drive, life instinct, death instinct라고 쓰여져 있는 듯하다. reconstruction님으로부터 영어권에서 Trieb를 문맥에 따라 drive로 번역하기도 하고 instinct로 번역하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 하여튼 나로서는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