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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렇게 초롱초롱 별처럼 빛나는 눈망울을 가진 고향 후배님들을 만나게 되어서 반갑고 기쁩니다. 얼마 전,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제게 독서학교 개학식 날, 강연을 부탁하는 유민현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부담스러워서 처음에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곧 생각을 바꿨습니다. 왜냐하면 절친한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려웠기도 했고, 독서에 대한 제 경험을 고향 후배 여러분께 이야기한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저는 2011년 시 전문 문예지인 서정시학 겨울호 신인상에 당선되어서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 제 14회 시흥문학상(우수상)을 수상했고 올해 2014년 아르코창작기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올해 7~8월에 제 첫 시집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들으신 것처럼 저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열정으로 시를 쓰고 문학평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제가 여러분께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열정뿐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독서에 대한 학술적인 강연이나, 성공 사례 등이 아니라 지금의 저를 있게 했고 또 제 운명을 바꿔버렸던 독서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여러분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입니다.
저는 남해읍 남산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아버님께서 서울로 전학을 시키셨습니다. 말하자면 서울로 유학을 간 것입니다. 아마 아버님께서는 집안에 장남을 크게 키워보시겠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게 서울은 지옥이었습니다. 부모님도 친구도 없는 낯선 대도시 서울은 저를 고아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늘 만화방에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고향이 그립고 부모님이 보고 싶고 친구들이 보고 싶은 마음을 잊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중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우리가 중학교에 갈 때는 평준화라는 교육정책이 시작된 지 3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서울의 중학생 전체가 연합고사라는 시험을 쳐서 성적순으로 약 상위 40%가 인문계 고등학교에 컴퓨터 추첨으로 갔습니다. 그러니까 소위 말하던 명문 고등학교라는 것이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중학교에서 상위 40%에만 들면 인문계 고등학교에는 들어갈 수 있었고 그런 이유로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학생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 저는 공부에서 멀어진 채, 좀 엉뚱한 생각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방학 때 고향 집에 내려오면 동화책을 읽고는 했습니다. 제 독서가 만화에서 동화로 진화했다고 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집에 동화책이 많이 있었던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재미있게 읽었던 것으로 기억나는 것은 로빈슨 크루소, 또 왕자에서 거지로 거지에서 다시 왕자로의 신분변화가 재미있었던 거지왕자와 동화로 편집한 그리스 로마 신화, 동양의 전설 등등 이었습니다.
만화책과 동화책들을 읽은 탓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었는지, 저는 점점 말이 없어져갔습니다. 그 시절 했던 엉뚱한 생각은 이런 것입니다. 지금 벚꽃이 피려고 하고 있습니다. 매화는 이미 피었더군요. 그런데 벚꽃이 피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데 아름다운 벚꽃이 해마다 피는 것이 지겹게 느껴졌습니다. 왜 벚나무에는 해마다 벚꽃만 필까? 장미도 피고 국화도 피고 아니 라면도 피고 자동차도 피고 여러분들이 좋아는 별에서 온 도민준이 같은 우주인이 피지 않는 것일까? 답답하고 지겨웠습니다.
냇가에 가서, (옛날 남해말로 냇고랑이라고 했습니다.) 헤엄치는 물고기를 봅니다. 시장에 가면 죽은 생선들을 봅니다. 그 순간 왜 물고기들은 물속에서만 살까? 물고기라고 이름을 지어줘서 그런가요? 우리가 사는 육지의 세상을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공중을 둥둥 떠다니는 송사리, 피라미, 고래, 상어들, 그리고 하늘을 나는 새들이 어느 날, 모두 물속을 날아다니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피라미처럼 물속을 날아다니는 참새들.... 내 눈앞을 슬렁슬렁 헤엄쳐 지나가는 붕어들..... 매일 아침마다 하늘에 떠오르는 해도 너무나 반복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겨웠습니다. 어느 날 세 개의 해가 떠오르는 하늘을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정말 황당한 생각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저는 참 심각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과 존재의 단순함에 허무가 밀려왔습니다.
저는 정말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지만, 그 결과는 이상한 녀석, 웬 헛소리, 등등으로 대꾸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물론 선생님께도 말씀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말씀드리면 “내일 부모님 모시고 와!”라고 하실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부모님을 모시고 가면 선생님께서는 분명히 “저 녀석이 이상하니 병원에 한 번 데려가 보라고 하실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저는 점점 말이 없어져 갔습니다. 그렇다고 친구가 없는 외톨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여러 부류의 친구들이 많았고 늘 즐겁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는 제 모습은 당연히 저의 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제 본 모습을 숨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대화할 상대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답해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저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홍대 옆, 연남동이라는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였습니다. 그런데 그 고등학교에 입학한 첫 주, 첫 번째 한문시간에 제 인생을 바꿔버린 사건이 일어납니다. 연세가 지긋하신 한문 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은 말없이 교실로 들어오시더니 인사도 받지 않으시고 칠판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非常名> 그리고 “도를 도라하면 그것은 이미 도가 아니요. 이름을 이름이라 하면 그것은 이미 이름이 아니다.” 라고 그 뜻을 설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위자연의 노자 사상에 대해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순간 전기에 감전된 듯한, 느낌에 빠져들었습니다. 제 온 정신이 선생님의 말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학교 앞 문구점에 들렸습니다.
당시 학교 앞 문구점에서는 참고서와 학용품을 팔았지만 한 쪽 구석에 책도 팔았습니다. 그 책 중에 “삼중당”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손바닥 크기의 책이 있었습니다. 크기는 작았지만 내용은 일반 책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가격은 절반 이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책 중에 노자가 있었습니다. 그 책을 발견한 순간, 너무 기뻐서 가슴이 마구 뛰었습니다. 그리고 노자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노자를 읽으면 당연히 이어서 장자를 읽게 됩니다. 그리고 공자와 맹자, 그 제자들의 책들, 불교 서적들, 마지막에는 인도 우파니샤드 철학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요가라는 것도 우파니샤드 경전에서 처음 언급된 깨달음의 한 방법이죠. 깨달음을 외부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을 향한 수양과 수행에서 얻으려 하는 것이죠.
그리고 다음으로는 서양철학, 사회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우주에 관련된 책들, 시, 소설, 희곡, 평론, 등등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는지, 그 조금 뒤였는지 약간 흐릿하지만 마르크스와 모택동 사상도 읽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별로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하나의 단일체로 보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회학 저서 중에 독일의 프랑크프르트학파의 마르쿠제가 쓴 일차원적인 인간이 기억납니다. 그는 소외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현대사회는 일차원적인 고도산업사회이며 때문에 인간 역시도 내적 차원을 상실한 채 일차원적인 사고를 하게 되는 일차원적인 존재로 전락한다고 한다고 주장하였죠. 또 그 후에 조지 오웰이라는 소설가가 1984에서 보여준 우울한 현대사회의 풍경, 빅브라더로 상징되는 거대한 독재적 지배자의 모습에 책을 읽으면서 전율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 독서는 20대 중반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당시 진정한 제 모습을 드러내고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는 책뿐이었으니까요. 책은 제 친구였고 동시에 위대한 스승이었고 거대한 사색의 우주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학교에 가기 싫어졌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책에 있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학교는 학생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학교에 가는 날보다 안 가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학교에 가서도 딴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대학은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학에 진학하는 친구들이 불쌍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억지로 한 번의 휴학과 복학을 거쳐 4년 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집에서 빈둥거리며 책이나 읽으면서 보낸, 제 20대 초반은 어떤 현실적인 인생의 목표도 없었습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돈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다만 세상이 너무 단순해서 갑갑하다고만 느꼈습니다. 참 황당한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러다가 훌쩍 남해를 떠나 서울로 올라가서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눌러앉게 되었습니다. 정확히는 경기도 안양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친척분의 소개로 만화영화사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만화영화사에서 하는 일은 부서와 부서를 연결시켜서 만화영화 작업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하는 업무였습니다. 그런데 만화영화사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친하게 지내던 만화 원화를 그리는 분을 따라서, 영화진흥공사에서 시행하는 영화 워크숍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언젠가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그분을 따라가서 영화와 영화 시나리오에 대한 교육을 일주일간 하루 두 시간 씩 받았습니다. 그리고 단편 시나리오를 공모한다고 해서 시나리오를 응모했습니다. 영화 시나리오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던 저는 원화를 그리던 그분께 영화 시나리오 작법에 관한 책 한권을 빌려서 읽고 시나리오를 쓴 것입니다. 당선이 될 리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쓰고 싶은 대로 써보았습니다. 얼마 뒤, 공모 당선작 발표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당선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심사위원께서 제 작품이 너무 파격적인 것이어서 당선작에서는 제외 했지만, 정말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을 해주셨습니다. 당선작보다 더 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저를 당시 영화인협회 이사장님이셨던 정진우 감독님께 데리고 가서 인사를 시켰습니다. 뛰어난 신인을 발견했다는 말씀과 함께 말입니다. 그리고 시나리오 협회장님께서는 제 작품을 영구보존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저를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심사위원 선생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오래되어서 어렴풋하지만 그 작품을 회상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제가 뛰어난 재능이 있었고 또 어떤 분들이 말씀하셨듯이 천재였을까요? 아닙니다. 제가 쓴 시나리오에는 그 이전에 읽었던 책들이 자양분으로 남아 있다가 작품으로 드러난 것일 뿐입니다. 말하자면 제 유별난 독서 경험이 조금 유별난 시나리오를 쓰게 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쏟아지는 칭찬과 격려에, 마치 시나리오 작가로 성공이나 한 것처럼 먹고 살 걱정이 없어진 것으로 착각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던 만화영화사를 그만 두고 시나리오 쓰기에 몰입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아도 제가 제대로 된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3년의 시간이 필요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먹고 살 돈이 없었습니다. 저는 일 년을 버티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약 30년이 흘러갔습니다. 시를 한 편 읽겠습니다.
아름다운 날의 소풍
쥐어지지 않는 주먹으로 하는 권투였다
들을 수 없는 음역으로 울리는 하늘의 소리를 쫓는 귀처럼
감겨버린 눈에 대해
누구도 다가와 귀띔해주지 않아도
날마다 총탄 자국처럼 돋아나던 피멍이 알려주었다
아래로 위로 좌로 우로 어느 방향으로든
주먹이 닿기 전에 휘청휘청
나를 먼저 흔들어야만 하는 날들이었다
늦은 밤 불어터진 국수를 건져 먹던
가슴마저 중심을 잃고 바닥에 처박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끝끝내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바닥,
번쩍이는 주먹에 부릅뜬 눈이
하루도 빗나간 적 없이 날아들었다
쥐어지지 않는 주먹으로 허우적거리는
내 급소를 하품하며 찾아내었다
무릎 꿇기 위해서 차례를 기다리는 굽은 어깨 위로
무너져 내리는 하루해는
눈에 빗장을 거는 무거운 눈꺼풀이었다
승자만이 주먹을 쥘 수 있는 링,
필사적으로 움츠리고 좌로 우로
위로 아래로 비틀거릴지라도 우아해야 한다는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꿈을 잊은 적 없다
쓰러져 널브러질 때까지
작은 비바람에도
나는 어두운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곤 했다
2011년 제 등단작입니다. 원래 제목은 “나의 권투 체험기”인데 시집원고를 퇴고하면서 제목을 바꿨습니다. 30년 가까이 시나리오나 글 쓰는 것에서 멀어져 있던 제가 이 시를 써서 문단에 등단하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그 동기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2006년이었습니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과 동업으로 건설회사를 운영하다가 배신을 당했습니다. 우울증에 홧병 그리고 간경화 초기라는 진단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심각했던 것은 인간에 대한 혐오감이었습니다. 제 인생의 가장 큰 위기였습니다. 극단적인 생각이 자꾸 떠올라서 제 자신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저를 구해준 것이 절친한 친구들과의 등산이었고 그리고 시 쓰기였습니다. 병으로 쓰러지지 않고 목숨 부지하고 살려면 내 안에 응어리져 있는 것을 밖으로 쏟아내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등산이었고 시였던 것이지요. 그래서 제 첫 번째 시집에 들어갈 시들은 잔혹하고 과격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때 제 내면이 그랬으니까요. 시 한 편을 더 읽겠습니다.
너에게 나라는 질량
너를 만날 때마다
무게의 눈금이 보고 싶지만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을 따라 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단다
이곳이 아름다운 별이라 하더라도
확신 없이 떠돌아야 하는 궤도
함께 웃고 떠들고 집으로 돌아와 백지처럼 증발해버린
너를 마주하게 되는 날들이 눈부셔
나는 자꾸만 허공 쪽으로 고개를 꺾고
허리마저 비트는 버릇이 생겼단다
가슴을 열어 펼쳐 보이는 그 짓
한 줌 부스러기 같아서
다가가 덥석 껴안았던 유리철창 너머,
나는 형틀에 묶인 얼굴로
내동댕이쳐져서 흘러다닌단다
얼마나 자주 낯선 질량 속으로
나를 던져 넣어야 했던지
한 치 오차도 없는 저울의 계산법으로
너는 휘파람 불며
이 광활한 세계를 잘도 오가는구나
이 시는 작년 제 14회 시흥문학상(우수상) 수상작입니다. 이 시도 조금 퇴고를 했습니다. 이 시 이후 금년에 저는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 나이 52세에 문단에 등단해서 올해 55세입니다. 늦었다면 많이 늦은 나이지만, 아직도 제가 가진 문학적 재능에 대해 그리고 제 문학적 미래에 대해 큰 기대와 놀라움을 표시하시는 동료 문학인들이 있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분들은 제가 무슨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20대 때 시나리오를 쓰는 법도 모르면서 시나리오 작법 한 권 읽고 썼던 단편 시나리오가 극찬을 받았던 것도 그리고 52세라는 늦은 나이에 등단을 해서 2년 남짓한 시간에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약간의 문학적 성과를 거둔 까닭도 제게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바로 어린 시절 빠져들었던 독서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의 독서가 부족하나마 지금의 제가 있게 한 근원인 것입니다. 제 문학적 기반은 독서에서 시작하고 독서에서 끝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은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제 인성과 저라는 내면의 모습은 그때 책에 빠져서 살았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현대 실존주의 철학자인 싸르트르는 이렇게 독서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내가 세계를 알게 된 것은 책에 의해서였다.” 또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고 했습니다. 그리고 빌게이츠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의 도서관이었다.” 라고 말했습니다.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제가 거듭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온갖 공상에 가까운 생각과 마치 인류의 고민을 혼자 떠안은 듯이 괴로워했던 철학적 사색과, 무한히 펼쳐져 있는 우주에 대한 끝없는 궁금증과 질문들이 당시의 제 모습이었고 또한 지금의 제 모습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제가 쓰는 글, 즉 시든, 소설이든, 문학평론이든, 그 바탕은 미로처럼 빠져들었던 독서의 시간들을 자양분으로 한 것임을 숨길 수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제게 이러한 독서의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조금이나마 주목 받는 시나리오를 쓰거나 시를 쓰는 사람도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좋은 책을 체계적으로 많이 읽는 것이 그 어떤 영양제나 학원이나 과외보다 소중요하고도 값진 것임을 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아니 청소년 시기에 올바른 독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축복이고 과제라고 저는 믿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께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했던 독서는 현명하지 못한 독서였습니다. 학교 공부를 병행하면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독서를 저는 하지 못했습니다. 책에 빠져들어 제 자신과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독서를 한 것입니다. 그 결과라고만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제게 많은 기대를 하시며 서울로 유학을 보내셨던 부모님께 불효를 안겨드렸습니다. 제 자신 역시도 현실의 삶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시절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만, 저의 독서는 균형 잡힌 독서가 아니었음을 다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저와 같은 어리석은 독서는 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후배 여러분, 여러분들은 정말 행복한 분들입니다. 이처럼 훌륭한 독서학교와 헌신적이고 뛰어나신 선생님들이 계셔서, 공부도 하면서 선생님과 함께 독서도 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저는 부럽습니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고 있는 여러분 모두는 분명히 대한민국 미래의 주역이 될 것입니다.
처음 이곳에 들어오면서 여러분들의 눈동자가 별처럼 초롱초롱 빛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맞습니다. 여러분들은 별입니다. 지금 공부를 조금 잘 한다고 또는 집이 잘 산다고 힘이 세다고 우쭐해하지 마세요. 그리고 지금 성적이 안 좋다고 집이 넉넉하지 못하다고 힘이 약하고 키도 작다고 절대로 우울해하거나 소심해지지 마시라고 부탁드립니다. 누군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밤하늘에 영롱하게 빛나는 별들은 사실은 이 지상에 도달하는 시간이 각각 다르다고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이 세상에 도달하는 시간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이미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별임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구나 여러분들은 이 독서학교에서 무한한 자양분을 먹으며 커가고 있는 눈부신 별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부디 이 자본주의적 기능만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당당히 자신의 영혼과 철학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지금 놀랍도록 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별들 앞에 서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제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남해 독서학교 개학식 강연 2014.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