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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물결 이야기>를 시작하며
은물결이라는 열세 살,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는 여섯 살에 시골로 이사를 왔으니까 시골살이가 8년째입니다. 그리고 시골 초등학교, 그것도 아주 작은 분교에 다니고 있는데요, 모든 게 너무나 행복하다고 합니다. 요즘 ‘교육이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은물결은 ‘학교가 참 좋다.’ 고 합니다. 시골도 너무 좋다고 합니다. 과연 무엇이 은물결을 그렇게 행복하게 하는 것일까? 그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은물결의 6학년 한 해 동안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려 합니다. 물론 지금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은물결이 열세 살까지 살아오는 이야기들도 다 바탕이 되어 함께 하겠지요.
-장주식
1. 드디어 육학년
나는 열세 살이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육학년이 되었다. 드디어,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다. 나는 하호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하호학교의 육학년은 특별한 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육학년이 된 첫 날, 나는 아빠와 함께 학교로 갔다. 아빠는 하호학교의 선생님이고, 또 이건 조금 맘에 안 드는 일이지만, 나의 담임선생님이다. 아빠는 하호학교에 전근을 와서는 지난해와 지지난해 두 해 동안 내리 육학년만 했다. 작년 오학년 때 친구들이
“야, 은물결. 너희 아빠가 내년에도 육학년 담임하시겠지?”
하고 말할 때 나는
“아니, 노,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아니 있어선 안돼!”
하고 나는 소리치곤 했다.
하지만 봄방학을 하는 날,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아빠가 실실 웃으면서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은물결, 아빠가 육학년 담임을 하면 니들 반 애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순간 바로 대답을 못하고, 망설였다. 나는 싫어! 하고 말하면 아빠가 실망을 하겠지? 하지만 아빠가 담임을 하는 건 영 뭔가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거짓으로 아이들이 아빠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절친, 유미는 아빠가 담임이 되었으면 너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며, 까불이 상호도 툭하면 아빠에게 가서 안기면서 “선생님, 내년에도 육학년 하실 거죠?” 하고 떠들어댈 정도다. 아니, 우리 반 일곱 명 가운데 유미와 상호 말고 다른 애들도 아빠를 은근히 좋아하는 눈치다. 아빠도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아빠는 그런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므로, 내가 대답을 선뜻 안 하니까
“응?”
하고 재촉하며 싱긋 웃는다. 나는 할 수 없이 이렇게 말했다.
“뭐, 싫어하진 않겠지.”
내가 일부러 뚱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자 아빠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닐걸. 애들이 좋아할 걸.”
“그건 아빠 착각!”
나는 아빠가 담임이 되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같은 반 친구들보다 내가 아빠를 더 좋아했으면 좋아했지, 싫어할 까닭이 없었다. 다만 담임이 된다는 게 부담스러워 그런 거지. 어쨌든 나는 아빠에게 이런 약속을 안 받아 낼 수는 없었다.
“내가 못하는 거 있어도, 혼내지 않기야. 알았지?”
“당근!”
아빠가 시원스레 대답했다.
이제 봄방학이 끝나고, 새로운 학년으로서 첫날, 학교에 가는 길이다. 아빠 차는 우리 마을에서 나와 들판으로 들어섰다. 학교까지 승용차로 십오 분 정도 걸리는데,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면소재지로 해서, 큰 차도로 가는 길과 들판으로 나가 농로와 강둑길을 따라 가는 길. 아빠도 나도 들판으로 가는 길을 좋아한다. 물론 들판 길로 학교까지 갈 수는 없다. 우리 마을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 가운데 반 정도 거리를 들판으로 가는 것이다. 들판으로 가다보면 학교 가는 큰 길을 만날 수 있다. 들판으로 나가면 우선 가슴이 확 트이는 느낌이다. 여주 남한강변에서도 이름 있는 ‘대신들’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넓게 펼쳐진 논과 고구마 밭, 끝이 안 보이는 채소 기르는 비닐하우스들, 길게 꼬리를 끌고 구비 져 돌아가는 강둑길.
강둑길을 가면서 아빠는 휘파람을 불었다. 아빠는 들판으로 가는 게 참 즐거운 모양이다. 나도 아빠 말처럼, 들판 길이 눈앞이 시원하게 확 트여서 좋기도 하지만, 진짜 좋은 까닭은 따로 있다. 들판으로 가면 큰 길로 가는 것 보다 한 십분 더 돌아서 가므로, 그 시간에 음악시디를 더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빠 차에는 내가 좋아하는 소녀시대, 원드걸스, 카라, 다비치의 시디가 다 있다. 아빠는 비 올 때만 아빠가 원하는 감상음악을 틀어달라고 하지만, 다른 날에는 다 내 맘대로 듣는다.
강물에서 청둥오리 떼가 푸드득거리며 날아오른다. 아빠가 휘파람을 불다가 뚝 멈추고 갑자기 나에게 말했다.
“눈곱! 야~ 아가가 어느 새 육학년이라 이거지.”
“응, 아 떨려!”
“흠, 떨리긴 하겠지. 하호 육학년이니 말이야.”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어. 눈곱, 넌 잘할 거야.”
“아빠, 고마워. 잘할 거라고 해 줘서. 근데, 아빠. 앞으로 말 좀 조심해야 할 걸.”
“뭐? 무슨 말?”
아빠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날 본다. 내가 또박또박 말해 줬다.
“금방 한 말, 아가니, 눈곱이니, 하는 거 말이야.”
“응, 그거? 에이, 그거 못하면 재미없는데. 하고 싶은데…….”
아빠가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사실 뭐 나도 아빠가 나를 별명으로 부르는 게 싫지는 않다. 아빠가 날 부르는 별명을 세어보자면 한 열 가지되나? 원래 내 이름인 ‘은물결’에서 나온 물결, 금물결이 있고, 금은 하면 생각나는 은덩어리, 금덩어리. 그걸 세게 발음하여 나온 떵어리, 떵어리스. 아빠가 나를 아기처럼 부르는 눈곱, 꼽눈, 눈꼬비, 강아지, 똥강아지, 강아지똥. 친구들이 붙여준 장독대도 있는데 그 별칭은 아빠가 잘 부르지 않는다. 아빠가 지은 게 아니라는 이유다. 그밖에도 한 두어 가지 더 있는데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수많은 별명보다도 나는 내 이름, ‘은물결’을 가장 좋아한다. 달 밝은 밤, 깊은 산 속, 드넓은 호수에 은빛 물결이 일렁이는 걸 나의 태몽으로 꿈꿨다고 엄마가 말한 뒤로 더욱 좋아한다. 하호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이학년 때부터 아빠와 같이 다니면서 줄기차게 불러온 별명들. 아빠가 장난스럽게 부르는 이름들이지만, 거기엔 날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음을 잘 안다. 그래서 늘 같이 부르며 좋아했다. 하지만 엄마는 아빠와 나의 그런 장난을 좋아하지 않았다.
“애를 아주 강아지로 만들어요, 강아지로. 어디, 손 줘! 해보시지.”
하면서 꾸짖었다. 사학년 때까지는 그냥 핀잔만 주던 엄마가 작년 오학년 때는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애가 점점 어려지잖아. 당신 때문에. 애가 몇 살이야? 좀 의미 있는 대화를 해봐.”
아빠와 나는 엄마의 꾸지람에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했다. 그러다 엄마의 꾸지람이 끝나면, 아빠가 씩 웃으며 내게 이런 식으로 묻는다.
“은물결. 요즘 청소년들의 게임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그럼 나도 아빠의 물음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척하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음, 게임문화라. 그거 문제 많죠. 첫째, 중독증세를 보이면 현실과 가상을 구별 못하고, 둘째…….”
그런 우리를 보고 엄마는 입을 벌리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아이고, 못 말려. 정말.”
하고 픽 웃곤 했다.
아빠가 시무룩한 얼굴이 되어서 좀 안됐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는 마음을 다져먹고 말했다.
“아빠, 이젠 육학년이잖아. 할일도 많고. 아빠가 자꾸 장난스럽게 그러면 나도 자꾸 아기처럼 장난을 치고 싶어지거든. 그러니까 아빠가 도와줘.”
“알았어.”
아빠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진지하게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더니 곧
“눈꼬비!”
하고 크게 소리치고는 낄낄 웃었다.
“아빠, 정말, 그럴래!”
나는 아빠를 흘겨보면서 소리쳤다. 그러나 나는 그런 아빠가 귀여워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학교에 도착해 교실에 올라가니 아이들이 다들 좀 긴장한 눈치다. 이미 담임이 누군지는 다 알고 있으면서도, 새 학년 첫날이니만큼, 몸도 마음도 좀 조심스러운 까닭이다. 역시 유미가 가장 먼저 반긴다. 키는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딸 셋인 집의 맏딸이라 맘씨도 어른스러운 유미다. 우리 학교에서 내가 두 번째로 크건만, 유미가 워낙 크다보니 나는 아주 작은 아이로 통한다. 유미와 나는 손을 잡고 풀꽃동산으로 갔다. 우리를 보는 동생들이 여기저기서 “언니, 언니!” 하면서 달려와 안긴다. 내가 “언니들 할 얘기가 있으니까 잠깐만 니들끼리 놀고 있어.” 하고 달랬다. 하지만 애들이 찰떡처럼 달라붙어 안 떨어진다. 유미가 짐짓 혼내는 얼굴로 “너희! 가 있어!” 하고 말했지만, 진짜로 화내는 게 아니란 걸 너무나 잘 아는 아이들은 겁을 먹지도 않는다. 오히려 샐샐 웃으면서
“언니, 언니들 무슨 얘기 할 건데? 응? 무슨 얘기할 건지 알려주면 가-지.”
하고 더 바짝 달려든다. 내가 또 꾀를 내 봤다.
“애들아. 수업시작 시간 됐다. 응? 어서 교실에 가라, 응?”
“언니들은 왜 안 가는데?”
아이들은 떨어질 생각이 조금도 없다. 할 수 없이 유미와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로 갔다. 이학년은 이학년 교실에, 삼학년은 삼학년 교실에 넣어 주고, 얼른 돌아서서 뛰었다. 아이들이 못 따라오도록 재빨리 뛰어서 풀꽃동산 단풍나무 밑으로 가서 낮게 앉았다. 교실에서 나온 아이들이 두리번거리며 우리를 찾아보다가 안 보이자, 천천히 교실로 돌아가는 게 보인다. 겨우 아이들을 따돌린 우리는 손을 마주 잡았다.
“나, 정말 떨려. 육학년이 되어서 말이야.”
유미가 말했고
“나도 그래. 우리 잘 할 수 있을까? 아후, 걱정 돼.”
내가 대답했고 유미와 나는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유미도 그렇겠지만 나도 정말 고민이 많이 된다. 우리 학교 육학년 일곱 명 가운데, 여자는 유미와 나, 달랑 두 명이다. 원래 네 명이었는데 두 명이 전학을 갔다. 지영이는 오빠 중학교 공부 때문에 이천으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갔고, 현희는 할머니 할아버지랑 살았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새엄마랑 사는 아빠에게 갔다. 딱 둘 뿐인 유미와 나는 절대로 다투면 안 된다. 다투면, 으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다투고 나서 잠깐이라 하더라도 각자 혼자서 지낸다는 건 도저히 상상도 하기 싫다. 이제 육학년이 되었으니, 정말 할일이 많다. 책임질 일도 많다. 수많은 체험학습을 모둠끼리 하는데 육학년은 모둠이끄미가 되어야 한다. 또 유미와 내가 서로 입 밖에 내서 말은 못하지만 서로 맘속으로 생각하는 게 있다. 그건 바로 전교회장선거다. 모둠이끄미 역할도 잘해서 선생님들에게 칭찬을 받고 싶지만, 유미도 나도 전교회장이 되고 싶어 한다. 유미와 나는 손을 마주 잡고, 눈빛으로 말을 나눴다.
‘우리 서로 상처주지 말고 잘 하자.’
내가 눈으로 그렇게 말하니까, 유미도 눈으로 그렇게 받았다. 우린 손을 꼭 잡고 교실에 올라갔다. 담임선생님은 첫 시간에 첫 인사말을 이렇게 했다.
“육학년이 된 걸 축하한다. 그리고 특별히 한 가지 약속하길 바란다.”
약속을 하라는 말에 우리 일곱 명은 긴장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선생님 말을 들었다.
“오년 동안 받은 것을 모두 되돌려 주기 바란다.”
그동안 육학년들이 모둠이끄미를 하면서 애쓸 때 우린 동생으로서 받기만 했으니까, 이제 언니들에게 받은 것을 모두 동생들에게 돌려주라는 말이었다. 아무도 선생님 말에 반발할 수는 없었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늘 능글거리면서 우스개 말도 잘하는 기형이도 굳은 얼굴이다. 쉬는 시간에 기형이가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아, 부담돼. 이게 육학년이 되는 거구나.”
“맞아. 난, 애들이 아무도 안 오면 어떡하지?”
까불이 상호가 한숨을 쉰다. 모둠 짤 때 아래 학년들이 모둠이끄미를 보고 모둠에 들기 때문이다. 아래 학년들이 냉정하게 아무도 안와서 혼자서 쓸쓸하게 서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해나 지지난해에도 늘 그런 선배가 있었던 걸 아이들은 다 알고 있다. 그 선배의 고통스러운 얼굴이라니. 참, 생각만 해도 떨리는 일이다. 호영이도 말은 안하지만 상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봐서, 긴장하긴 마찬가지다. 그렇게 육학년 첫 날이 흘러갔다.
첫댓글 하하호호 학교! 딱 봐서리 무지무지 재미있는 학교 같은데요? 뭔가 특별할 것 같은 학교에, 뭔가 더 특별할 것 같은 육학년 물결이...기대됩니다.
맨 마지막에 모둠 짤는 건 학급에서 이뤄지는 건가? 아님 하호학교 활동할 때 쓰는 모둠인가? 이리저리 머릴 굴려봅니다. 아빠가 담임샘으로 나오는 동화는 처음 인 것 같아요! 은물결 6학년 한 해 동안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무지 궁금합니다. ^0^
재밌네~ 잘 읽을 게....
선생님의 향기가 듬뿍 묻어있는 작품. 잘 읽겠습니다. ^^
<순간들>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회장선거며 모둠....앞으로 기대됩니다. ^^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주식 샘. 멋진 대장정 기대할게요~!
대장정이 시작되는 건가요? [어린이와 문학] 까페에서 연재되는 장편동화! 기대돼요. 재밌게 보겠습니다. ^^
여주에 있는 [하호 학교] 이야기 같아요.^^ 하호학교 아이들이란 책 읽었거든요.
처음 인사드려요. 동화 연재라니 생각만해도 기뻐요. 많이 배워가야 할 것 같고요.
재미 있을 것 같아요. <하오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아버지인 은물결의 이야기.. ^^*
공부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