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파데(파운데이션)’ 뭐예요?”
신데렐라 된 무명 제품
홍씨 꾸밈없는 메이크업 영상 호평
재고까지 완판, 중국 진출 계획도
입소문 마케팅 활발
인기 동영상 제작자가 판매 좌우
매니지먼트 회사·대행사도 생겨
인플루언서 몸값 급등
영상 한 편 제작에 5000만원 협찬
구독자 15만 넘으면 부르는 게 값
지난달 22일 심야에 방송된 예능프로그램 ‘인생술집’에 가수 홍진영·김영철 편이 방영되자 홍씨의 소셜미디어엔 이런 질문이 쏟아졌다.
술을 못하는 홍씨는 프로그램 컨셉트에 따라 맥주를 몇 모금을 마셨다가 온몸이 새빨개졌지만 화장한 얼굴은 전혀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화장 비법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았고 폭주하는 다이렉트 메세지(DM)을 감당하지 못한 홍씨는 같은달 29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쌈바홍’에서 아예 사용 제품을 생방송으로 공개했다.
소개한 제품 8종은 거의 동시에 동났다.
이 중 가장 수혜를 누린 제품은 국내 중소 화장품 회사인 미바의 BB크림이다. 홍씨가 지난해 5월부터 모델을 맡은
이 회사의 비비크림을 에스티로더 파운데이션과 1대1로 섞어 바른다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에서 박스로 보내줘 주변 사람에게 많이 나눠주고 메이크업에 실제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명 브랜드의 제품은 돌연 뷰티 업계의 신데렐라가 됐다. 하루에 1~2개 팔리던 제품이 각종 검색어 순위에 올랐고 재고 5000개는
금세 소진됐다.
4일 현재 선주문 2만5000개를 순차적으로 배송 중이다.
종업원 수 30명, 연 매출액 30억원 남짓한 중소기업이 창사 이래 처음 경험하는 호재다.
강석창 미바 대표는 “주문량은 메이크업 방송 첫날의 약 80%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며 “올해는 이 아이템 하나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중국에도 진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홍진영 파데 대란’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인플루언서(Influencer) 마케팅의 최신 사례로 쓸 만한 요소를 모두 담았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주변 사람들의 소비나 생활에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 즉 인플루언서의 마음을 얻어 좋은 소문을 내고
그 주변을 장악하는 방식이다.
인플루언서 마케팅 전문가로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쓴 테드 라이트에 따르면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인플루언서들은
▶정보와 경험을 나누고 싶어하고
▶열정을 갖는 대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모든 것을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고
▶내적 동기에 이끌려 입소문을 내는 집단이다.
최근엔 입소문의 유튜브 등 각종 소셜미디어로 옮겨가면서 구독자·팔로우를 많이 보유한 유명 동영상 크리에이터가
핵심 인플루언서로 꼽힌다.
특히 화장품·패션 업계에서 이들의 활동은 절대적이다.
거리낌 없이 민낯을 공개하고 단계별로 거짓말처럼 변신하는 모습이 보는 사람의 구매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화장품 업체들은 뷰티 인플루언서의 화장대 위에 립스틱 하나라도 놓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브랜드별로 적절한 인플루언서를 골라 신제품을 보내는 것은 기본, 이들의 동영상 제작을 적극 협찬한다.
인플루언서에게 구독자(팔로워)는 힘이자 곧 돈이다.
보유한 구독자의 수와 연령대 지역에 따라 인플루언서에게 제공되는 협찬의 수준이 갈린다.
즉흥적으로 만든 영상물로 막대한 영향력을 보여준 홍진영씨의 방송은 역설적으로 인플루언서 전성 시대의 이면을 보여준다.
뷰티 인플루언서들은 영상에 점점 더 많은 돈과 공을 들이고 있지만 진정성을 담보하기는 갈수록 어렵다.
상업성이 짙어졌고 튜토리얼이라기보다는 오락성이 강조되는 경향이다.
이런 흐름에 식상했던 사람들은 사심 없이, 대충 만든 듯한 홍씨의 메이크업 동영상에 오히려 환호했다는 것이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저비용 고효율’ 마케팅 수단이라는 것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상위권 제작자를 움직이는 데는 상당한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인플루언서를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회사인 멀티채널네트워크(MCN)나 대행사 개입이 일반화되면서 비용은 더욱 증가하는 추세
다.
소속사가 생기면서 제작 영상의 수준은 향상됐다.
화려하고 눈에 띄는 동영상 제작을 위해 첨단 장비가 등장하기도 하고 대부분 자체 스튜디오를 갖고 있다.
구독자 수가 수천 명 안팎인 일명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를 써도 지출이 만만치 않다. 이들에게는 ‘구독자 1인=1000원’이라는 공식이
적용된다.
‘좋아요’ 100개당 일정한 가격을 부르는 일종의 러닝 개런티가 붙어있기도 하다.
한 뷰티 업계 관계자는 “구독자 15만 명이 넘어가면 부르는 게 값”이라고 귀띔했다.
1회 제작에 최대 5000만원 이상을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입소문 마케팅의 핵심인 ‘옆집 사람이 사심 없이 알려주는 정보’라는 특징은 퇴색할 수밖에 없다.
저예산 동영상은 점점 설 자리가 없다. 지난해 ‘시장 갈 때 메이크업’ 등으로 화제가 되면서 구독자 40만명을 확보한 박막례(72)
할머니는 뷰티 동영상에서 볼 수 없었던 소박한 만듦새로 화제가 됐지만, 극히 이례적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포니, 이사배 같은 상위권 뷰티 인플루언서가 자신의 이름을 건 제품을 출시하는 등 뷰티 사업에 뛰어들고 있어
기존 업체의 계산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들의 영향력은 탐나지만 잠재적 경쟁 업체의 ‘얼굴’을 키워주는 ‘양날의 칼’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아예 자체적으로
인플루언서를 키우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롯데홈쇼핑의 경우 지난해 12월 ‘쇼룸 크리에이터’ 10명을 선발해 이들이 만든 동영상을 마케팅에 사용하기도 했다.
롯데 홈쇼핑 관계자는 “홈쇼핑 고객층을 확대하고 1인 미디어 시대에 대비하자는 차원”이라면서
“이들과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협업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