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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동안 말린 가자미의 배 껍질은 겨울철 손바닥처럼 꾸득꾸득하고 건조했다. 냉동했다 녹인 생선은 겉에 물기가 축축하게 묻어난단다. 가자미는 대략 손바닥 크기를 기준으로 '작은 가자미'와 '큰 가자미'로 나뉜다. 가자미 사촌뻘 되지만 덜 잡히기 때문에 값이 더 나가는 미주구리는 작은 편이다.
김씨가 가르쳐준 말린 가자미 조리법은 이렇다. 칼국수에 간할 때 넣어 먹는 간장 양념에 고춧가루와 물엿과 물을 넣어 조림장을 만든다. 가자미를 작은 것은 3등분, 큰 것은 4등분 정도로 썰어서 가자미 한 겹 조림장 한 겹 차례로 올려 자글자글 조려 먹는다. 설탕은 가자미 표면을 '꿉게'(굳게) 하니까 금물이다.
생선을 유난히 좋아한다면 경북 지역 사람들이 즐겨 먹는 가자미 미역국에도 도전해볼 만하다. 두 입 크기 정도로 큼직하게 썬 가자미를 미역국에 풍덩풍덩 넣어 끓여 먹는 식이다. 미주구리는 가자미와 같은 방법으로 요리해도 되고 소금 살살 쳐서 구워 먹어도 맛있다.
소쿠리에 담아 파는 가자미 가격은 큰 것이 10마리에 '하나 얹어서 2만원', 작은 녀석은 10~12마리에 '두 개 얹어서 1만원'이다. 미주구리는 큰 것이 8~9마리에 2만원, 작은 것이 8마리 정도에 1만원. 현빈이네 건어물 위치는 감포 수협 맞은편, 010-8770-6662
감포에서 걸어서 10분 정도면 닿는 감포 시장에선 바싹 말려 거의 쥐포 수준인 가자미와 미주구리를 파는 노점 10여 군데가 몰려 있다. '감포 시장 큰아지매'라고 자신을 소개한 할머니에게 바싹 말린 미주구리 새끼 한 봉지(5000원)를 샀다. 무작정 사긴 했는데, 어떻게 먹어야 할지 막막하다. '아지매'는 커다란 가위를 번쩍 들었다.
"이걸 요래! 요래! 요래! (몸통을 작게)잘라서, 씻지 말고 고추장 양념 버무려서 볶아 먹으면 아주 맛있다. 처음 할 때는 양념 잘 못 맞추니까 요만큼만 쥐어서 해 봐라. 큰놈은 요래! 요래! 요래! (머리·꼬리·지느러미를) 잘라내고 기란(계란) 묻히고 밀가루 발라서 부침 해묵는다. 이것도 맛있다."
서울에 돌아온 후 '아지매'를 따라 가위를 꺼냈다. 양념장을 만들어 '요래 요래 요래' 자른 생선에 무친 다음 기름에 볶아 먹었다. 쥐포보단 덜 달고 대구포보단 부드러운 바닷바람의 맛… 감포에서 서울까지 잘도 따라와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먹을거리_ 감포항 부근엔 횟집이 몰려 있다. 제철 회를 주로 파는데 메뉴와 가격은 비슷비슷하다. '현빈이네 건어물' 김정숙씨는 "매운탕이 맛있다"며 북해도횟집(054-744-3665)을 추천했다. 서울서 잘 팔지 않는 가자미회(한 접시 3만원)는 쫄깃하고 고소했다. 주인아주머니가 한 줌 곁들여준 빨간 살의 '아지'(전갱이)는 쫄깃함과 고소함이 한 수 위다.
주변 가볼 만한 곳_ 감포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10분 정도 가면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의 수중릉(水中陵)인 문무대왕릉이 있다. '감포'의 또 다른 어원이라고 추정되는, 통일시대 초기 석탑(감은사지 삼층석탑)도 약 10분 거리다.
뻘건 콩나물 벗어던진 순결한 아귀여
아귀수육이 제맛 ②모포
철 지난 모포해수욕장(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모포리)은 여행객의 발길이 끊겨 고요하다. 해가 서둘러 지는 동해의 저녁,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종이컵 하나씩을 손에 들고 집 앞에 앉았다. 뽀얀 눈동자에 비치는 바다 뒤로 '오늘'이 꿀꺽 넘어간다.
포항을 찾은 이들은 모포(牟浦·다른 지역보다 봄에 보리가 일찍 난다고 이런 이름을 얻었다)에 잘 들르지 않는다. 부산 해운대만큼 화려한 북부해수욕장, 일출 명소 호미곶, 과메기로 유명한 구룡포…. 놀고 먹기 좋은 바닷가 휴양지가 지척인데 외지고 작은 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올 리 없는 모양이다. 포항시에서 낸 지도에도 모포는 찾을 길이 없다. 이 작은 해수욕장에 굳이 찾아드는 이들은 사람 많은 데를 억지로 피해 다니는, 호젓한 취향의 소유자들이다.
저녁 마실 나온 할머니들에게 "뭣 하러 왔소?"란 질문을 대여섯 번쯤 받은 후 '해정회식당'에 닿았다. 모포초등학교에서 빨간 등대가 있는 방파제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식당 앞엔 곧 떠날 듯한 배 두 척이 나란히 서 있다. 바닷가 옆, 통나무로 만든 식탁에선 아저씨 네 명이 곰 발바닥만한 굴을 막걸리와 함께 해치우는 중이다.
"아구(아귀)가 한 주 전부터 많이 잡히는데예, 점심때 다 팔아서 없어예. 우리 아저씨가 잠수하면 굴또 따아고 하는데 오늘은 쪼매 늦어서예…. 내일 오실 거면 아저씨한테 굴 따아라카고요."
주인 남경주(45)씨에게 다음날 아귀와 굴을 꼭 남겨두겠다는 다짐을 받고 발걸음을 돌렸다. 이튿날 점심, 시커먼 잠수복을 입은 '아저씨'가 바구니 한가득 굴을 잡아다가 성큼성큼 식당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다 옆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남씨는 "아귀는 수육이 맛있다"고 권했다. 포항 사람들은 아귀찜만 찾는 서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맛있고 쫄깃한 아귀를 매운 양념과 콩나물로 범벅해서 먹으면 무슨 맛이냐는 것이다. 이 동네 사람들은 대신 좋은 아귀가 들어오면 일단 수육을 만든다. 한 마리를 대가리에서 꼬리까지 큼직하게 잘라 삶은 다음 올통볼통한 뼈 사이사이를 열심히 발라먹는다.
수박만한 접시에 산산이 분해된 아귀가 흰 속살을 드러내며 하나 가득 담겨 나왔다. 밍밍하게 간한 부추 겉절이와 김 풀풀 나는 데친 부추도 따라왔다. 아귀 한 점을 데친 부추로 돌돌 감싸서 간장 살짝 찍어 입어 넣었다. 쫄깃하고 고소하고 통통한 육질이 입안에 퍼진다. 처음엔 체면 차리느라 젓가락으로 살살 먹었지만, 어느 순간부턴 엄지 검지로 움켜잡고 살 한 점 놓칠세라 열심히 뜯어 먹게 된다.
아귀 수육의 절정은 입에서 참기름 뭉치처럼 녹는 '애'다. 생선 간을 일컫는 '애'는 냉동시키면 금세 녹아버린다(푸석푸석해진다). 서울선 쉽게 먹지 못하는, 귀한 부위다. 8㎝ 남짓한 애를 손톱만한 크기로 잘라 젓가락에 올려 입에 쏙쏙 넣었다.
"아이고, 애도 먹을 줄 알아예? 나는 경북 청송이 고향이거든예.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생선 이름 외우는 것도 힘들어예."
무슨 사연인지 바닷가에 살게 된 산골 아지매가 설(說)을 풀어놓는 사이 '아저씨'는 생굴을 쑥 내밀었다. 해변서 250m쯤 배 타고 나가 바다 아래로 7m 잠수해 방금 따왔단다. "엊그제까지는 산란기라 통통한 게 터질 것 같던데 이제는 '우유'를 다 뿜어버려서 푹 꺼졌다"고 안타까워하며 내민 굴은 씨름 선수 손바닥만큼 컸다. 도시 사람들은 산란기인 5~8월에 독이 있을 수 있다고 피하는데 바닷사람들은 통통하게 오른 굴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아무것도 찍지 말고 그냥 드셔요. 뭐든지 재료 그대로 먹는 게 제일루 맛있다 아입니꺼."
손대지 않을수록 맛이 사는 싱싱한 재료들 덕분에 산골 아주머니가 차려내는 해산물 한 상이 충분히 맛깔지다. 아귀수육 2만5000원, 자연산 생굴(5개) 2만원.
●해정회식당_ 포항시 남구 장기면 모포1리 18-1 (054)284-4948
하루에 다섯 끼라도 먹고 싶다
물 깊고 맑은 항구 ③양포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 자리 잡은 양포(良浦)의 오전 7시는 이미 '해산' 분위기다. 이 시간이 되면 수산물 공판장은 경매가 벌써 끝나 몇몇 어부들만 남은 생선을 치운다. 일송정식당앞 주황색 플라스틱 대야에 아귀 두 마리가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식당 주인 남희자(66) 할머니가 매일 오전 5시50분 양포 공판장에서 열리는 수산물 경매에 나가 떼어온 녀석들이다. 두세 명 먹을 분량인 2만원짜리 아귀탕(공깃밥 한 개 1000원 별도)을 시켰다.
할머니가 주방으로 들어가고 나서 '텅! 텅! 텅! 텅!' 하는 칼질 소리가 들려왔다. 약 20분 후 바글바글 끓여 나온 아귀탕은 자작한 국물에 무, 파, 콩나물이 넉넉히 들었다. 고춧가루를 풀어 소금으로 간을 했다는 국물은 말갛고 깨끗하다. 국물부터 한술 떠서 입에 넣었다. 혀에서 식도를 지나 위까지 직행하는 국물이 꽉 막힌 속을 뻥 뚫고 남은 잠을 쫓는다. 복어탕과 진검 승부를 펼쳐 볼 만한 맛이다. 고소한 '애'(생선 간)는 입에서 살살 녹는다. 이 자리에서 40년째 식당을 하고 있다는 남 할머니는 "서울선 귀하다고 애를 아무나 안 준다는데, 우리는 흔하니까 싫다고만 안 하면 넣어준다"고 했다. "아침엔 주로 탕을 내고 점심 저녁엔 물메기(곰칫과 생선으로 '물곰'이라고도 한다) 회를 많이 먹지. 문어를 삶아가 쌍그라모(썰어서) 먹어도 맛있다."
아침부터 배를 두드리며 해변으로 나왔다. 경북 포항에서 경주로 넘어가기 직전에 있는 양포는 작은 만(灣)을 끼고 있다. 경주시와의 경계인 감재산(해발 286m)에서 흘러내리는 수성천이 양포만에 모인다. 옛날부터 물이 깊고 맑기로 이름났던 항구, 아직도 바다 바닥이 들여다보인다.
양포에서 동쪽으로 쭉 뻗은 방파제 위엔 걷기 좋은 푹신한 산책로가 깔려 있다. 방파제 끝 빨간 등대를 향해 걸어가는 사이 남쪽 동쪽 서쪽 삼방(三方)으로 펼쳐진 바다 풍경이 제각각 장쾌한 기세를 자랑한다.
방파제가 시작되는 지점에 걸린 '해녀 포장'이란 현수막 뒤를 보면 절벽 아래 할머니 두 명이 부지런히 해삼 멍게 소라(한 접시 각각 약 1만원)를 썰어 파는 작은 포장마차가 보인다. "자연산인가요"라고 물었다. 당연하다는 듯 "응"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일송정식당_ 포항시 남구 장기면 양포공판장 옆 (054)276-2055
주변 가볼 만한 곳_ 양포에서 929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영일장기읍성에 닿는다. 고려 현종(1011년) 때 왜적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의 둘레는 1.4㎞ 정도. 성 군데군데가 스러져 일주하긴 힘들지만 어느 한 곳에 서더라도 넓은 논 너머 펼쳐지는 구릉과 그 위를 둥그렇게 감싸는 동해 수평선을 감상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929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14번 국도로 갈아타면 오어사(吾魚寺)에 닿는다.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와 혜공(惠空)이 수도를 하다가 '법력'으로 개천의 죽은 물고기를 살리는 시합을 벌였는데 그 중 한 마리가 헤엄을 치자 서로 "내가 살렸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 전설에서 '나 오(吾)'에 '물고기 어(魚)'자를 따서 절 이름을 지었다. 아담한 사찰보다는 진입로부터 따라오는 고요한 연못 오어지(吾魚池)가 볼거리다. 청록색 깊은 물이 엄마가 아기를 안듯 오어사를 꼭 감싸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