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지 못한 연인들의 슬픈 전설이 어린 가평 연인산(1,068m)은 산이 높고 골짜기는 길며, 능선은 첩첩이 쌓여서 깊고 그윽하다. 산속으로 들어서면 복잡한 지형에 정상이 어딘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고개와 산중고원, 오르막과 내리막 등 온갖 복잡한 지형을 헤치며 물길을 10여 차례나 건너는 외줄기 산길은 장장 35킬로미터를 돌아내려온다.
이름 없는 봉우리, ‘연인산’이 되다
가평은 웬만한 강원도 산골을 능가하는 경기도 최고의 산악지대다. 경기도 최고봉인 화악산(1,468m)을 비롯해 고도 1,000미터가 넘는 높은 봉우리들이 즐비하고, 온통 높은 산들로만 꽉꽉 채워져 평지가 드물다. 이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고장은 사시사철 등산객들로 붐비고 여름이면 골짜기마다 피서객들로 넘쳐난다. 그리고 이름부터 감미로운 연인산을 필두로 산악자전거의 천국으로도 사랑받는 곳이 가평이다. 연인산은 최근까지 이름 없는 봉우리였으나 길수와 소정의 애잔한 전설을 기려 1999년 가평군에서 ‘연인산’으로 이름 지었다. 2005년에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산 전체가 보존되고 있다. 연인산은 독립된 봉우리가 아니라 수많은 능선과 봉우리, 골짜기가 뒤얽혀 있어 어디가 정상인지 모를 정도로 지형이 복잡하다. 1,000미터를 갓 넘는 높이지만 품이 매우 넓고 기암괴석과 수량이 풍부한 용추구곡은 길이가 12킬로미터에 달한다. 계곡 상류에는 완만한 지대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이 길수와 소정의 전설이 서려 있는 ‘아홉마지기’다. 아홉마지기 일대는 잣나무 숲이 울창하고 주능선에는 매년 5월 중순이면 철쭉이 장관을 이뤄 들꽃축제가 열린다.
남성적인 산 아래, 여성적인 산속
연인산은 높이만 보고 산속까지 지레 짐작하면 안 된다. 어찌나 산이 넓고 골짜기가 깊은지 산속으로 들어서면 속세는 완전히 차단되고 온통 숲과 정적, 그리고 그 속으로 뻗어난 외줄기 길뿐이다. 산이 포용하고 있는 규모가 대단해서 산속에서 길을 잃거나 사고가 나면 전화도 통하지 않으므로 상당히 곤란해질 수 있다.출발점은 산 아래의 용추구곡이나 경반리계곡 둘 중 하나로 잡으면 된다. 용추구곡은 경치가 좋고 편의시설도 많지만 주말이면 자동차와 사람들로 붐빈다. 여기서는 비교적 한적한 경반리 쪽을 추천한다. 코스를 도는 방법은 시계방향과 반시계방향 두 가지다. 일반적으로는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사람들이 많은데, 험한 오르막을 먼저 오른 다음 나중에 내리막을 즐기고 싶다면 시계방향으로 도는 것이 좋다. 어느 쪽으로 가든 초반의 계곡길은 거칠고 경사가 급하지만 산 속으로 들어서면 온화해진다.
수도권 최고의 산악 코스
연인산 품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길은 무려 35킬로미터에 이르는데, 여기에 산악자전거를 유혹하는 요소 대부분을 가지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일부 급경사가 있으나 노면이 좋고 길이 빤한데다 이정표도 대체로 잘 되어 있어서 길 잃을 염려가 적다. 자전거를 타고 10여 번이나 물을 건너야 하는 계곡길, 체력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거친 오르막, 산짐승이라도 나올 듯한 음습한 숲길, 이채로운 잣나무 숲, 사연이 깃든 고갯마루, 무려 10킬로미터의 내리막길 등은 35킬로미터 내내 숨 돌릴 틈 없이 한껏 매력을 내뿜는다. 특히 가을이면 온 산을 물들인 단풍이 산중 별세계를 이룬다. 연인산을 가본 사람이라면 이곳이 수도권 최고의 산악코스라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고, 전국의 유명한 산악코스를 두루 가보았다면, 연인산을 그 중 최고로 손꼽는 데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