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두드러기/ 김기수
“엄마~ 이상해. 내 살이 이상해! 여기저기 가렵고 울퉁불퉁 불어났어.” 국민학교 입학 한참 전이니까 너 댓 살쯤
되었고, 겨울은 살짝 물러가고 봄이 초가집 마당까지 왔을 즈음, 항상 배고픔에 절여 있던 시절이니만큼 먹을 수만
있다면 뭐든지 먹어버리는 시절이었다. 그때도 뭘 먹었는지, 아마도 설을 새고 남겨둔 부엌 뒷문 밖의 소쿠리에
떡점-가래떡을 빗썰어 말린 것-이 겨울 내내 얼어붙어 있다가 봄이 와 녹으면서 툭툭 갈라진 것을 상한 줄도 모르고,
좀 연해진 것이 먹기 좋으니까, 그저 몰래 먹었던 것이 내 몸 속에 들어가 뭔가 엄청나게 잘못되었던 것이다.
처음 보는 이상해진 내 살을 보고 놀래서 엄마에게 달려가며 내는 소리였다.
엄마는 내 윗도리를 걷어 부치고 “두드러기구먼” 하더니 이내 손을 끌고 옆집 마당으로 데려가 놓고는, 변소에서
청소용으로 쓰던, 다 따라서 몽당하고 시껌스레한 수수빗자루를 가지고 나왔고, 또 집 앞 논바닥이에서 잘 말라 있
는 볏짚을 두어 다발 가지고 와 풀어 놓고서 불을 지폈다. 그 앞으로 나를 끌어 댕겨서는 옷을 홀랑 벗기기 시작하는
데, 나는 그것이 창피해서 안 벗겠노라고 발버둥 치다가 결국 벗겨지고 말았고, 그 다음 엄마는 불더미에 굵은 소금
한 주먹을 흩어 뿌리는데 이때 불을 성이 나서 더 타오르고 나는 이래저래 뜨겁고 무섭다며 벗어나려고 난리를 치다
가 또 한 대 얻어 맞고 억지로 잡혀 울상하며 고추를 가리는 듯 엉거주춤 서있다. 엄마는 서둘러 화장실 몽당 빗자루
를 짚불에 이리저리 쪼여서 뜨겁게 만든 다음 내 알몸을 쓰러 내리기를 여러 번 반복하였다. 엄마의 의도를 전혀 모
르고 있던 어린 나로서는 반항, 생난리를 치다가 도망치고 말았다. 이건 아마도 놓아준 것이겠다. 잠시 후 얼추 오줌
한 판 누울 시간쯤 지나 신통하게도 두드러기는 없어졌다. (후에 들은 얘기로는 반드시 옛날 푸세식 화장실에서 쓰
던 빗자루, 지푸라기 불, 굵은 소금 뿌린 불에 쬐어진 빗자루가 키워드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 내가 걸린 피부이상 병은 두드러기 증상의 식중독이었다. 남보다 좀 허약했던 나는 걸
릴 수 있는 병은 죄다 걸려 보면서 자랐다. 식중독 역시 있는 종류 별로 모두 체험하게 되는데 내 생각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이미 경험해 본 두드러기 방식인 것이고, 또 하나는 그냥 식욕이 떨어지고 뭔지 모르게
몸이 무기력하게 하는 식중독이 있으며, 나머지 하나는 설사에 배는 찢어지는 듯하고 허리를 잘려 나갈 듯이 아파서
꼼짝달싹 못하는 것이 있는데, 이 두 가지는 병원 가서 주사 한 방이나 약 지어먹으면 낫는다. 그러나 병원이고 약이
고 없었던 시절, 엄마는 가난하지만 지혜로운 조상님들의 노하우로 단번에 낫게 하셨다. 빗자루로 씻더니 말 그대로
씻은 듯이 나았다. 얼마나 놀라운 민간요법이란 말인가! 엄마의 또 다른 요법 중 하나는 내가 역시 그 나이 즈음
에 옻이 올랐었는데 처방은 생쌀을 반쯤 씹어 그것으로 얼굴 등의 환부에 덕지덕지 몇 번 바르고 하루 정도 지나면
역시 감쪽같이 낫는다. 사실 이 방법도 지저분하고 보기에 좀 내키지 않는 행색이다. 앞집 벙어리, 경식이 아저씨
가 내 얼굴을 보고 “애~애~ 뻐버~”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내며 놀리기도 했다. 물론 이 방법으로 옻오름은 치료되
었는데, 이러한 것들을 추억이라고만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조상의 지혜와 노하우가 생활 곳곳에 숨겨져 있는데, 이렇게 사장시키고 말 것인가? 본인
의 노하우를 전수 못하고 끊기는 경우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으로 아깝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뜻 있는 분 중에 이러한 민간요법을 활용해서 돈 없는 백성을 불치의 병으로부터 낫게 해주는 분들도 계신
다. 얼마 전 “현대판 화타” 라 불리는 장병두 옹 역시 만인에게 헤아릴 수 없는 도움을 주었다. 말기 암 환자가 洋醫에
서 얼마 살지 못한다고 판정 내린 사람들을 거의 살려 내었다 한다. 본인만의 민간요법 힘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것
을 어떤 의료 단체에서는 불법의료행위라고 하여 고소하였고, 법원은 또 유죄를 선고하였다 한다. 백수가 넘으신
노인을 기소하고, 법원은 노인에게 당신의 방법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라 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어의상실하고 만다.
그렇다면 엄마가 나에게 두드러기를 낫게 한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이 될까? ‘동의보감’은 허준의 비법이지 과학서
가 아니다. 동의보감도 과학적으로 증명한 후에 사용해야 하는가? 내 엄마도 불법 의료 행위를 하신 건가? 이런,
불보다 더 성이 날 노릇이다. 물론 현행법이라는 것이 있고 허가 받은 자만이 의료행위가 가능하다지만, 입법자는
더 섬세하고 신중하게 해서 조상의 지혜를 멸하려는 법을 만들지 말고, 보호 발전할 수 있게, 오히려 지원법을 만들
어야 함이 당연하다 싶다. 개인적으로 바람이 있다면 현행법도 개정해야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지원법을 제정해서,
누군가가 소위 ‘한국민간요법집대성’ 이라는 책을 엮어 냈으면 한다. 이때 나도 내 엄마의 두드러기 요법을 무조건
건네 줄 수 있겠다.
☞ 07.12.26
첫댓글 훌륭하십니다...
찬성요 저두~~한표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