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의 예술과 난향(蘭香)에 취한 하루
이 충 웅
⊙ 설레는 마음
2003. 12. 7 일 산행은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에 위치한 「운보의 집」을 방문한다는 안내문을 받고 가슴이 설렜다.
운보 김기창 화백이 동양화의 대가요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자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나는 이번에 가면 운보의 작품들을 가까이에서 접하고, 그의 삶의 족적들을 통하여 그를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서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안 좋은 일인가? 며칠째 포근하던 영상의 초겨울 날씨가 12월 7일 당일 날은 영하 5도 이하로 급강하한다면서 기상청에서는 이례적으로 한파주의보까지 내리는 것이 아닌가. 평소 건강이 좋지 않은 나는 운보의 집 방문도 좋지만 감기라도 들면 어쩌나 하고 포기를 할까, 도 생각했지만 모처럼의 기회이니 다녀오기로 마음을 굳히고 내복 위에 조끼, 조끼 위에 다시 오리털 파카로 중무장을 하고 예술회관으로 향했다.
⊙ 출발
근래에 드물게 18명 (성인 17 명 어린이 1 명) 이 참석하여 15인승 봉고차 1대와 승용차 1대에 분승하여 추운 날씨에도 많은 회원이 참석한 것을 서로 자축하면서 08:30 분에 예술회관을 출발하였다. 좁은 차안에서는 아침 식사를 대신하여 김밥과 떡을 돌렸다. 용인 휴게소에서 잠시 커피 타임을 하고 중부고속도로로 접어들어 막힘 없이 달려 11:20 분께 충북 청원군 「운보의 집」에 도착하였다.
⊙ 운보의 집
넓은 정원에 수없이 놓여 있는 자연석과 조각품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연못엔 그의 <잉어도>에 그려져 있는 고기들이 살아서 유유히 헤엄을 치고 그가 말년에 작품활동을 했던 한옥은 운치와 품위가 있었다. 운보작품 전시관에서 그의 미술품들을 감상한 후 간단한 산행이라도 해야 오늘의 뜻이 더욱 깊다하여 김기창 화백의
묘소를 거쳐 그의 부모님이 안장돼 있는 뒷산을 잠시 오르는 것으로 이날의 산행을 대신하였다.
⊙ 점심
「고향산천」이라는 음식점이었는데 예술마을의 음식점답게 마당엔 골동품과 조각품들이 놓여 있고 실내에는 괴석, 도자기, 그림들이 빼곡이 놓여 있었다. 영양탕과 오리탕을 식성대로 먹었다. 식사 전에 지난 수년간 「인천문인산악회」를 이끌어 온 김기영 전 회장에 대한 감사패 전달이 있었다.
⊙ 난 화원 견학
점심 후 인근에 있는 이병록 부회장님의 사위가 경영하는 「난 화원」을 견학하였다. 넓은 비닐하우스 안에 각종 풍란들이 자라고 있었다. 난 화원을 경영하는 사위님은 충북 일대에서는 난 박사로 통할만큼 난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15년의 실무경험을 겸비한 촉망받는 원예가로서 난 기르는데 대한 자상한 설명을 해주었다. 난 화원을 떠나려할 때 우리의 봉고차가 진흙에 빠져 모두 내려서 남성들은 차를 밀고 트럭으로 견인하는 촌극도 있었다.
⊙ 스파텔 호텔의 초정 약수 온천
난초 화원 방문을 마치고 귀가 길에 오르려 하자 이병록 부회장은 스파텔 호텔의 초정 탄산 약수 온천을 이미 예약해 놓았다면서 건강과 피부미용에 좋으니 꼭 들렀다 가라고 강권하는 바람에 우리는 온천으로 향했다. 그런데 귀가길이 바쁘니 목욕시간은 30분으로 제한한다는 임노순 회장의 엄명(?)에 일부 회원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목욕을 하고, 일부회원은 호텔 로비에서 맥주를 즐겼다.
⊙ 귀가 길
이병록 부회장의 사위님이 회원수만큼 선물로 주시는 풍란을 받아들고 우리를 환대해준 정겨운 분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귀가 길에 올랐다. 다행히 길이 막히지 않아 차는 제 속도를 내면서 달렸다. 차안에서는 남아 있던 술과 안주가 바닥이 나고 정겨운 담소로 왁자지껄, 차의 천정이 들썩들썩하였다. 출발점인 예술회관에 도착한 시각이 저녁 8시 20분, 운보의 예술에 취하고 난향에 취한 12월의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