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하 〉소설가
충북 영동출생. 미국 오하이오(Ohio) 주립대학교. 사범대학에서 물리 교육학을 공부
한 박권하 선생은 1994년 오늘의 문학에 단편소설「바람은 불어도 여자는 울지 않는
다」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수필집「한송이 수선화 같은 이름으로 1991」과 장편소설「천국에서 길을 잃다
2008」「연체동물 사육하기 2009」가 있고 그 외에 다수의 컴퓨터서적과 영어 회화 책
이 있다.
박권하 약력
․ 충북 영동출생
․ 미국 오하이오(Ohio) 주립대학교에서 물리 교육학 공부
․ 자유 여행가로 세계 110 여 개국을 여행함
․ 문학 신인작품상. 문화부문 대일비호대상. 홍조근정훈장 수상
․ 현재 여행사에서 이사(理事)로 근무함.
나는 상대방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는 까다롭지만 의복에는 대단히 둔감한 사람이다. 양복도 한
번 구하면 낡을 때 까지 몇 년을 입는다. 특히 겨울철에 입는 와이셔츠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의
겨울이래야 사실 두서너 달인데다 출퇴근 시 걷는 거리를 제외하면 버스나 지하철은 물론 근무하는
실내에도 적정 온도가 유지 되니까 구태여 두꺼운 옷의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낡은 옷을 입은 내가
안쓰러웠던지 아니면 불쌍했던지 아내가 겨울용 와이셔츠를 하나 선물하겠다고 했다. 며칠 후 보라
색이 섞인 갈색의 멋스런 옷을 하나 구입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내가 내민 건 와이셔츠가 아니라 그걸 구입했다는 긴 종이였다. 이유인 즉 나의 목둘레보
다 큰 것만 있어서 삼일 후에 보내 준다는 말과 함께 받아온 영수증이었다. 시내의 초대형 상점에서
구입했다는 고급의 와이셔츠는 가격이 십만 원을 훨씬 넘었다. 그런데 며칠만 반값으로 판매를 한다
해서 구입했노라고 아내는 자랑을 하면서 가격의 반을 벌었다고 까지 했다. 나는 그 소리를 듣는 순
간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언젠가 대도시의 어느 상점에서는 반값에 판매를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원가의 두 배로 금액을 책정해 놓고 반값에 판다고 했으니 소비자들만 속은 셈이라는 내용을 보도
한 적이 있었다. 혹시 이게 그런 제품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게 했다. 더더욱 나를 의심나게 한
것은 시내에 나가보면 부도처리 제품이라면서 와이셔츠 하나에 오천 원에 판매 한다는 팻말을 본적
도 있었다. 물론 오천 원짜리하고 그 가격의 열배도 넘는 제품하고는 차이가 있을 테지만 가격처럼
제품에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약속 날짜보다 하루 늦은 저녁에 와이셔츠가 도착했다. 입어보려고 목
둘레를 확인하는 순간 또 놀랐다. 맞는 게 없어서 삼일 후에 보내준다 했는데 도착된 것은 너무 큰
것이 아닌가. 급히 전화를 해서 자세한 내용을 이야기 했더니 그 쪽의 대답이 정상인의 상식을 뛰어
넘고 있었다. ‘며칠 후에 원하는 크기의 와이셔츠를 보내 줄 테니 그냥 입으시고 새 와이셔츠가 도착
하면 입던 것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다시 ‘입던 것을 보내도 되느냐’고 확인 차 물으니까 ‘본사로 보
내면 된다’고 했다. 본사로 보낸 후 제품을 폐기하는 건가? 아니라면 혹시 내게 온 제품이 그리고 다
시 보내 준다던 다른 제품이 남들이 며칠씩 입었던 것을 손질해서 비닐 포장지에 넣어 보낸 것이 아
닐까 하는 기분 나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내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이걸 돌려주고, 다시는 그 상점과 거래하지 말라’고. 나는 거래의
중요한 조건이「정직과 신용」이라 배웠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그걸 바란다는 게 바보들이나 하는
짓인가……. 적당한 선물을 받으면 기쁨이 두 배가 된다던데 나는 두 배로 나빠진 기분 때문에 잠까
지 설친 우울한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