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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象村) 신흠(申欽)선생 묘 첫번째로 신흠선생 묘를 올린다. 우리 학회에서도 여러 번 답사가 진행된 곳이니 많이 가보셨을 거로 생각된다. 물론 풍수적인 길흉도 거의 많이 알고 계시리라 짐작된다. 이곳을 첫 번째로 올리는 것은 풍수적인 길, 흉이 명확하여 많은 공부 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제가 이곳에 올리는 글은 제 블로그에 있는 것을 조금 각색해서 올리니 이해 바랍니다. 팔당에서 양평쪽으로 가다보면 먼저 최항선생 묘역이 보이고 퇴촌을 지나 천진암 방면으로 가다보면 큰 길가에 신도비가 보인다. 그러다보니 이곳은 오며가며 꼭 들르게 되는 묘역이다. 그런데 내가 갈때마다 이곳에서는 뱀을 보았는데 이번에도 불안해서 앞에 뱀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학우님을 세워서인지 이번엔 내 눈에 뱀이 보이지 않았다.ㅎ 신흠선생 신도비 부근은 뱀이 많았는데 근자에 이곳에 주택들이 많이 들어서는 바람에 아마도 사라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곳은 흔히 묘역으로 물이 모여드는 조래수(朝來水)가 멋진 곳으로 부귀왕정한 후손이 나오는 곳으로 여긴다. 그런데 몇가지 흠이 있다. 우선은 입수룡이 빈약하고 건해(乾亥)입수에 자좌오향(子坐午向)으로 용상팔살(龍上八殺)에 걸려있다. 또한 이기법적으로 자좌오향(子坐午向)에 우선수(右旋水) 손사파(巽巳破)로 살인대황천(殺人大黃泉)에 걸려있다. 함부로 말할수는 없겠지만 풍수서(風水書)에서 말하길 『만약에 형기적으로 용진혈적(龍盡穴的)한 혈(穴)을 구했다 하더라도 가장 두려운 것이 용상팔살(龍上八殺)과 살인대황천(殺人大黃泉)인데 만일 이 두 개의 대살(大殺)을 범하면 백전백패하여 결국 절손되어 대(代)가 끊어진다』고 하였다. 좀 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상촌(象村) 신흠(申欽)선생 묘 신흠(申欽, 1566~1628)은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경숙(敬叔), 호는 현헌(玄軒)·상촌(象村)·현옹(玄翁)·방옹(放翁). 증판서 신세경(申世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참찬 신영(申瑛)이고, 아버지는 개성도사 신승서(申承緖)이다. 어머니는 은진송씨(恩津宋氏)로 송기수(宋麒壽)의 딸이다. 송인수(宋麟壽)와 이제민(李濟民)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문장에 뛰어나서 조선 중기 한문학의 정종(正宗)으로 일컬어졌다. 장남 신익성(申翊聖)이 선조의 딸인 정숙옹주(貞淑翁主)의 부마로 간택되었고, 선조로부터 영창대군(永昌大君)의 보필을 부탁받은 유교칠신(遺敎七臣) 가운데 한명이었다. 1613년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선조로부터 영창대군(永昌大君)의 보필을 부탁받은 유교칠신(遺敎七臣)인 까닭에 이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1623년(인조 즉위년) 3월 인조의 즉위와 함께 이조판서 겸 예문관·홍문관의 대제학에 중용되었다. 같은 해 7월에 우의정에 발탁되었으며,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좌의정으로서 세자를 수행하고 전주로 피난했다. 같은 해 9월 영의정에 오른 후 죽었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었으나 학문에 전념하여, 벼슬하기 전부터 이미 문명을 떨쳤다. 벼슬에 나가서는 서인인 이이와 정철을 옹호하여 동인의 배척을 받았으나, 장중하고 간결한 성품과 뛰어난 문장으로 선조의 신망을 받으면서 항상 문한직(文翰職)을 겸대하고 대명외교문서의 제작, 시문의 정리, 각종 의례문서의 제작에 참여하는 등 문운의 진흥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사림의 신망을 받음은 물론, 이정구(李廷龜)·장유(張維)·이식(李植)과 함께 조선 중기 한문학의 정종(正宗: 바른 종통) 또는 월상계택(月象谿澤: 月沙 이정구, 象村 신흠, 谿谷 장유, 澤堂 이식을 일컬음)으로 칭송되었다. 묘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영동리에 있다. 1651년(효종 2) 인조묘정에 배향되었고, 강원도 춘천의 도포서원(道浦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봉분은 단분(單墳)이며, 묘역은 사성(莎城)으로 둘러져 있다. 봉분 앞에는 묘비·상석(床石)·향로석(香爐石)이 가까이 모여 있다. 상석 전방에는 장명등(長明燈)이 있으며, 상석과 장명등을 중심으로 좌우에 망주석(望柱石)과 문인석이 배치되어 있다. 묘비는 1628년(인조 6)에 건립된 것으로 뒷면에 새겨져 있는 비문은 그가 손수 작성한 것이다. 묘역 입구에 세워진 신도비는 경기도사 때 7대손 신응식(申應植)이 1699년(숙종 25)에 건립된 것으로 이수(螭首)·비신(碑身)·기대(基臺)로 구성되어 있다. 높이 335㎝의 대형이면서도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비례 감각을 보이고 있고 세부적으로 생동감 있는 조각 표현 등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비문은 이정구(李廷龜)가 짓고 심열(沈悅)이 글을 썼으며 전액(篆額)은 김상용(金尙容)이 썼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
문화재지정 | 경기도 기념물 제145호 |
문화재명칭 | 신흠(申欽)선생 묘 및 신도비 |
소재지 | 경기 광주시 퇴촌면 영동리 산 12-1 |
관리자(연락처) | 평산신씨 |
▼상촌(象村) 신흠(申欽)선생 신도비... 들어가는 입구가 예전과 달리 아래쪽에서 거꾸로 들어간다. 사진의 오른쪽에서...
▼상촌(象村) 신흠(申欽)선생 신도비 전경
▼상촌(象村) 신흠(申欽)선생 신도비 이수부분과 비신...
▼상촌(象村) 신흠(申欽)선생 묘 안내판
▼상촌(象村) 신흠(申欽)선생 묘 전경... 배위 전의이씨와 합장이다.
▼상촌(象村) 신흠(申欽)선생 묘비...
▼상촌(象村) 신흠(申欽)선생 묘 장명등...
▼상촌(象村) 신흠(申欽)선생 묘 석물...
▼상촌(象村) 신흠(申欽)선생 묘 백호쪽 석물...
▼상촌(象村) 신흠(申欽)선생 묘에서 바라본 현무봉...
▼상촌(象村) 신흠(申欽)선생 묘와 현무봉...
▼상촌(象村) 신흠(申欽)선생 묘 입수룡... 건해룡(乾亥龍)이다.`
▼상촌(象村) 신흠(申欽)선생 묘 후경... 이곳은 묘역으로 물이 모여드는 조래수(朝來水)가 멋진 곳으로 부귀왕정한 후손이 나오는 곳으로 여겨진다. 앞쪽의 명당이 혈을 향해 기운을 모으고 멀리 조산도 멋지게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건해(乾亥)입수에 자좌오향(子坐午向)으로 용상팔살(龍上八殺)에 걸려있다. 또한 이기법적으로 자좌오향(子坐午向)에 우선수(右旋水) 손사파(巽巳破)로 살인대황천(殺人大黃泉)에 걸린 것으로 보인다. 멋진 형세와는 다른 모습이다.